손주는 할머니가 늘 창피해 미웠다
가슴 설레던 소풍에 몸빼 입은 채 학교에 와
삶은 달걀 든 도시락 건네던 할머니가 창피했다
머리에 쓴 수건은 더 창피했다
만원버스에서 누가 자리 양보라도 하면
손주 이름 큰 소리로 불러 앉히고 당신은 서서 가셨다
손주는 얼굴이 벌게서 할머니가 미웠다
구더기 기는 떨이 꽁치 호박잎으로 벅벅 씻어
염천에 땀으로 구워내
맛있다고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
짜디짠 거짓말에 도리질 쳤다
쉬어터진 보리밥 덩이 찬물에 흔들어
풋고추 된장 찍어 먹는 입맛은 더 싫었다
삭정이 같은 손마디로 건네주던 학사금
다시는 독촉하지 못해
몇 개월 미납자 명단에 첫 째로 오를 때마다
손주는 할머니가 미웠다
천근만근인 눈꺼풀에
소금 얼룩 밴 적삼 이불 두른 채
손주 밥 먹는 소리가 미소되는
흙발인 할머니 목침 위 낮잠
발뒤꿈치 굳은 살 갈라터진 틈에 비친 피가
제 목구멍에 혹으로 맺혀
손주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쓰디쓴 익모초로도 다스리지 못하던
할머니 서증(暑症)
누가 벼이삭에 맺힌 새벽이슬이 특효라고 해
손주는 사기그릇으로 갓밝이에 벼를 훑었다
이슬은 대접에 채 고이기 전 검정 고무신에 먼저 찼다
무논에 미끄러져도 그릇을 둘러엎을 순 없었다
해 뜨기 전 마셔야 약이 된다기에
조바심이 턱까지 차오르던
어린 손주의 반 십리 길
벼꽃 후후 불어 마시면서
그까짓 그까짓 이슬 반 대접이 뭐라고
할머니 눈가에 번지던 습기가
구부려 밥 먹는 제 볼에서 방울 맺혀
손주는 할머니가 정말 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