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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는 힘 - 상처받지 말고 성장하라
아가와 사와코 지음, 류랑도 엮음, 오화영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이 혼나거나 혼을 내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가까운 가족 관계에서부터 직장과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혼을 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혼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상황에 따라 포지션은 얼마든지 바꿔진다. 가히 혼나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어렵다고 해야 할 정도다. 혼나고 혼내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하다면, 어떻게 해야 ‘잘’ 혼나고 ‘잘’ 혼낼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 혼나는 일, 지혜가 필요하다.
 
책의 저자인 아가와 사와코는 일본의 방송 인터뷰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기성 세대로서 혼나는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통찰력을 발휘한다. 주로 혼이 나는 입장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솔직한 감상을 덧붙이며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혼나는 시간이란 코칭의 시간이며 소통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악역을 떠맡고 누군가는 불쌍한 희생자가 되는 불편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지침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잘 혼나고 잘 혼내기 위한 지혜를 소개하고 있다.


- 혼나는 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혼나다’라는 우리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기본 정의가 자못 무시무시하다. 말 그대로 혼(魂)이 나간다는 뜻이다. ‘힘들고 고되어서 정신이 빠질 지경에 이르다‘, ‘넋이 나갈 만큼 놀란 상황이다’, ‘넋이 나갈 만큼 시련을 당하다’ 등등 하나같이 자연재해를 만났을 때와 비견할 만한 공황 상태를 일컫는다. 혼난다는 말의 속뜻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혼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쾌한 감정들-충격과 공포, 수치-을 쉽게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혼나는 일이란 잘못을 지적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을 서로 간에 확인하는 일이 핵심이다. 감정은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혼을 내는 사람은 없다. 결국 혼나는 과정을 극복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혼내는 사람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좋지 않은 감정을 앞세워 상대방을 질책하고 상처를 주기 위해 혼내는 시간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 혼나는 일, 상대의 이유를 경청한다.
 
저자는 베스트셀러인 전작 <듣는 힘>을 통해 수신력이 의사소통의 중요한 방법임을 설파했다. 경청의 중요성에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하는 마음 이면에 듣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인식이 더욱 크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한다. 사회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기능은 말하기, 즉 자기 의사 표현이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않으면 쌍방 간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이고 진정한 의미의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 저자는 이것이 혼내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직의 리더는 일방적으로 팀원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훈계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리더에게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잘못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당사자의 이유와 사정을 먼저 물어보고 리더의 생각을 말해 주어도 늦지 않다. 질책을 받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지적하는 문제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자신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잘못된 행동이나 문제를 고치려는 의지를 비쳐야한다. 이처럼 양방간의 소통이 이뤄졌을 때 혼나고 혼내는 시간이 덜 괴로울 뿐 아니라, 무의미한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 훨씬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 혼나는 일, 성장이 되어야 한다.
 
요즘 세대들은 혼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쉽게 의기소침하거나 돌발 행동을 해서 혼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있다. 하지만 비교적(?) 요즘 세대인 내가 생각할 때는 제멋대로인 일부를 보고 전체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오히려 다 큰 어른인 것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깍듯하게 처신하는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규직 채용의 가느다란 빛을 붙들고 하루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냉정한 사회 속에서 배우는 일의 대부분이 바로 혼나고 깨지는 일이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기에 상사로부터, 조직의 리더로부터 들들 볶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위안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혼나는 일은 그럴 자격을 잃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의외의 특권이다.
 
혼날 수 있는 자격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보다 젊고 가능성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혼을 낼 수 있는 자격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더로서의 용기가 필요하고 잘못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가 필요하다. 칭찬만큼 상대방에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현명한 꾸지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본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혼을 ‘잘’ 내는 사람은 나이의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사람들로부터 어른 대접을 받는다. 설령 운이 좋지 않아서 그만한 적임자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의 도움을 통해 ‘잘’ 혼날 수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어른임에 틀림없다. 무의미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부담스러운 악역 놀이, 훈계의 형식만 빌린 화풀이의 지지부진한 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혼나고 혼내는 일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성장이 되어야할 때이다.



 

- 오늘도 욕먹는 당신에게
 우리 나라 말 중에
‘혼나다’ 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어휘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욕먹다’이다. 혼나다는 말보다 왠지 더 리얼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의 진정한 힘은 바로 욕을 먹는 상황에서 발휘된다. 다가오는 욕을, 피할 길이 어디에도 없다. 마치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입 벌려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문맥이 뭔가 수상하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불평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욕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게 꼭꼭 씹어 삼키는 것이다.
 
혼나는 일의 민낯은 이런 게 아닐까. 언제나 납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혼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혼나는 상황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 때나 찾아온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수긍하는 척 열심히 혼나는 편이 낫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어떤 계기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되거나, 역시 분풀이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얻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정신의 안위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이 남아있다. 재주껏 주어진 욕을 다 먹어치운다면, 다시 말해 욕을 먹을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훗날 과거를 돌아보면서, 훌륭히 소화시킨 욕이 업무 능력 향상의 원동력이 되었노라 고백할 수도 있다.)

 ​욕이 남을 것인가. 내가 남을 것인가. 책 <혼나는 힘>이 당신에게 꼭 필요했던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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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적 - 나의 인생을 바꿔 놓을 21일 믿음 습관 만들기
이영훈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 믿음
 믿음이란 무엇일까
? 성경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히 11:1) 달리 말하자면 믿음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보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드러남을 마음으로 보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다. 믿음의 정의는 이토록 단순하고 극명하다. 달리 말하자면 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주어진 상황에 지칠 대로 지쳐 믿음 그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믿음이란 없다가도 갑자기 생겨나고, 그러다가 다시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좀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는 믿음을 붙들면서 그것이 혹여 감정의 과잉이 아닌지 의혹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의 흔한 신념과 기독교의 믿음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믿음이 그토록 특별하다면, 왜 나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건지 또한 궁금했다.

 

 

 

- 믿음에 대한 공부

 어느 날 우연히 시청하게 된 성서 강해 동영상이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방법은 말씀에 주의 깊게 집중하는 것이었다.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내 멋대로의 견해에 빠져드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 뒤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서적을 찾아서 읽었다. 다행히 시중에는 양질의 기독교 서적이 많이 출간되어 있었다. 어떤 책은 읽는 내내 전율이었고 어떤 책은 나도 모르는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믿음이 살아있는 말씀에 기초하는 것이라던 목사님의 말이 그제야 실감났다.
 
이 책은 믿음에 대한 명료한 설명과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21일 동안의 자기 훈련을 통해 믿음 생활의 본질을 배우며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저자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표인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중심으로 다양한 예화를 곁들인다. 시종일관 간결하면서 힘 있는 메시지가 주의를 집중시킨다. 말씀 선포의 형식이기에 처음에는 다소 딱딱한 느낌이었지만 읽을수록 깊이 각인되는 장점이 있다. 저자인 이영훈 목사는 <믿음의 기적>을 <감사의 기적>, <기도의 기적>, <십자가의 기적>을 잇는 마지막 시리즈로 선택하면서 믿음이 지닌 가치와 중요성을 선포하고 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믿음은 축복입니다. 믿음은 기적입니다.”

 

-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라

 처음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상 속의 기도와 예배에 힘을 쏟는다. 달리 말하자면 '더욱 잘 믿기 위해' 그렇게 한다. 믿음 생활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불화하는 것이며, 한낱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때 믿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경지는 나의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이다. 아침의 감사,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수많은 목소리들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가려 듣는 것, 기쁘게 순종하며 나아가는 매순간이 믿음을 확고히 서게 만든다. 특히 기도는 믿음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을 선명하게 발견하며 전진할 수 있게 해준다. 믿음은 주어진 상황을 초월하여 나아가는 힘이며 방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믿음을 붙들면서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 9:26-27)’ 믿는 사람의 삶은 방황하지 않는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만들면서까지 추구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에 대한 끝없고 힘겨운 추구가 아니다. 내 몸과 영혼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믿음의 능력으로 인해 거듭난 삶, 예수 그리스도이다.

 

​- 믿음, 하나님의 선물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온전한 믿음은 개인이 노력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본래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일컫는 것은 그것이 은혜의 범주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을 무슨 수로 쟁취하여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인 예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분을 통해 계시되는 살아있는 말씀이 믿음의 근원이다. 믿음이 만약 개인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남는 것은 행위이다. 본질이 아닌 자기의 열성적인 행위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믿음은 태생적으로 세상의 신념, 이상, 가치와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자칫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내가 죽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일이다. 죄에 얽매여 있던 나의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께 속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기적은 믿음으로써 실제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병에서 놓임 받는 것, 불화하던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 직장에서, 사회에서 중하고 귀하게 쓰임받는 기적같은 일이 모두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믿음의 기적은 가시적인 세속에서 거두는 성공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야말로 믿음이 선사하는 가장 복된 기적일 것이다.

​


*책 속 밑줄 긋기

- 우리가 노력한다고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애쓴다고 우리의 믿음이 바로서지 않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님만 바라볼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 흠 없는 믿음, 정결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믿음의 눈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변화와 기적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초점을 잃어버리고 갈등하게 됩니다.

 

- 신앙 생활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 힘든 것은 성령 충만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지식, 경험, 감정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와도 좌절하고 낙심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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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인가? - Radical Faith 믿음으로 반응하라
김병삼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누가 왕인가?/김병삼 지음


-
내 삶의 왕이 누구인가.
 
“왕이신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 찬양하리라!” 요즘 자주 들으며 따라 부르는 CCM의 가사 구절이다. 노래를 하듯이 하나님을 내 삶의 왕으로 고백하지만, 실제적 삶은 그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결국 순도의 문제이다. 그 분의 완전한 임재를 원하지만 이왕이면 내 뜻이 관철되는 방향이기를 원한다. 실은 내 생각과 감정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뜻이 만약 내 생각과 다르다면 떼를 써서라도 돌이키고 싶다. 왕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이며 왕으로 군림하는 세계가 살아서 스스로를 주장하는 격이다. 상황이 이러니 내 삶의 진정한 주도권을 놓고 하나님과 타협을 시도하는 일도 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만큼 헌신하겠으니 이러 저러한 복을 주세요.' 복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는 일이 과연 온전한 믿음일까.
 
이 책은 독자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묻는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왕인가요, 아니면 단순한 헬퍼인가요?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라.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신앙의 본질, ‘Redical Faith'를 찾는다. 책에는 우리 신앙이 본질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이 책의 주요 독자들이 신자라는 점을 가정한다면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닿으면 데일 듯이 뜨겁다. 스스로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던 사울의 예가 그렇고 안락한 삶으로 인해 좌초되었던 히스기야의 예가 그러하다. 그들에게 찾아왔던 크고 작은 시험이 단지 시험으로 그치지 않고 타락과 비참한 최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들의 실패가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 즉 신앙의 변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한다. 신앙이란 곧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 아래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힘입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귀하게 쓰임받기를 갈구 하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주인 된 자의 음성을 주의 깊게 따라야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목소리에 힘을 싣게 되면서 자기 허욕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믿음이 앞선 사람이든 뛰어난 사람이든 똑같이 겪는 시험이다. 저자는 본질적인 믿음을 붙들 것을 반복해서 권고하며 세 가지 지침을 내놓는다. “하나님보다 앞선 걸음을 멈추라.’ ‘나를 놓고 하나님을 붙들라’,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라‘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삶을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악惡에 끌리는 자신과 세상을 이길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기만 하다면,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이 처하는 어려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어려움을 거뜬히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도 주어지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영적인 암흑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오히려 고난과 시련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뛰어넘어 더 크고 위대한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약속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앞으로 완성될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을 나의 주(主),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일은 곧 그 분의 뜻이 절대적임을 믿고 따르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이 위선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 아래에 살기를 원하면서 그 분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전적으로 내려놓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 재미있게도 하나님이 나의 고집 꺾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도망칠 생각만 했다. 어쨌든, 도망칠 수 없었다. 미리 겁먹고 삐쳐있었던 것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행하지도 않고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죽어도 모른다고 어떻게 단언한단 말인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품으시는 뜻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극명하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분이다. 이것을 세상 속에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권리인 동시에 참다운 소명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에 내가 있는 것이니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속의 일부가 되어 누리는 기쁨이, 대가 없이 주어진 영생이 유일한 자랑이다. 이것을 정말로 갖고 싶어 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어설픈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위선적인 신앙에 잠식되었던 마음을 버리고, 믿음의 본질을 붙드는 진짜 신앙인이 되고 싶다. 

 

- 왜 우리는 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렇게 무감각할까요?

-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그 어떤 행위도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신앙이 성장하면 삶의 고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래서 그 외로움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독하게 설 수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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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오 보만스 엮음, 민영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 만화경 같은 사랑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책의 부제인 동시에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는 물음이다. 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진지하게 품어봄직한 질문이면서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을 꺼리는 난제이기도 하다. 일단 사랑에 대한 기본 정의조차 쉽지 않다. 사랑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인 동시에 한 가지 언어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기 사랑의 변치 않는 속성을 발견한 다음날 사뭇 다른 변질감을 느끼고 당황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손에 쥔 막대 사탕처럼 뿌듯해하다가 더 끌리는 것을 발견하고 넘어지는 것조차 아랑곳없이 달려가는 어린애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떨어져 흙이 묻은 막대사탕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애써 추억하려고 하는 잃어버린 어떤 맛이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처럼 제각각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과 나라가 어우러지면 수백, 수천 개의 가지가 생겨난다. 이를 한 개인이 살펴보며 궁구하는 것은 능력을 벗어난 무리한 일이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통한다면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사랑의 오색찬란한 파편들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 예쁜 책, 예쁜 척하지 않는 연구 결과들
 이 책의 수석 편집자인 레오 보만스는 적극적인 시민이자 작가이고 강연자이며 저널리스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수기도 아니고 소설은 더더욱 아니며 연설문이나 시시한 정치적 견해가 실린 칼럼도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다. 50여개 국가 출신의 최고 연구자 100명이 쏟아놓는 견해가 461쪽에 달하는 책을 가득 채운다. 소개 부분에 국적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연구 결과와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광범위하지만 각각의 소단락은 간결한 짜임새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은 최대한 1000자를 넘지 않는데 대부분 쉽게 읽히는 짧은 글임에도 결코 얕지 않은 통찰력이 깃들어있다. 돋보이는 것은 구성이다. 아무 때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쉽게 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한 구석이 엿보인다. 적절하면서 감성적인 느낌의 사진과 그림들을 삽입해서 예쁜 인상을 풍기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딱딱하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 연구 결과들이 제법 재미난 글줄로 다가온다. 물론 재미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어쨌거나 사랑이라는 주제는 영원히 매혹적인 것이다. 추구하는 방식이 지성과 냉철함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흥미로운 사랑의 파편이 곳곳에 숨어있다. 반전이 있다면 감흥에 겨워 꽃잎이 휘날리는 것 같은 착오적인 결말이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바 그대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할리우드가 멈춘 곳에서부터 우리를 낭만적 사랑의 심장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데려간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진짜 사랑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어나간다.


 

 

- 사랑의 본때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열정적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커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것이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실망을 감추기는 어렵다. 열정적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이 비어버린 공백에 ‘동반자적인 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주목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막 사랑에 빠진 남녀는 약간은 제정신이 아닌, 일종의 도취 상태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도취의 상태에서 평생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과 사랑하는 상태를 완전히 다른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라고 조란 밀리보예빅은 말한다. 사랑이 정말로 개인의 자유 선택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학자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는 감정과 인식과 낭만적 신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결혼은 ‘내 선택’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웃음거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완벽히 합리적이며 자유롭다는 착각에서 한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생물학적,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사랑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있는가하면 사랑을 생화학적 현상으로 접근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낭만적 사랑의 징후가 강박장애와 유사한 스트레스 상태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스트레스다.’ 도나텔라 마라지타 교수의 사랑 실험실에서는 사랑을 분자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녀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무엇보다 사랑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
사랑에 대한 풍부한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이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집필에 참여한 다수의 저자들은 이론가인 동시에 무수한 임상사례를 보유하고 있는 삶의 전문가들이다. 책에는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의 여러 가지 시련에 봉착한 사람들, 사랑을 믿지 않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조언들이 실려 있다. 조언들은 대부분은 울림이 크고 세심하며 따뜻하다. 사랑에 대한 밀도 있는 연구가 일차적으로 연구자 본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서 그들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지혜와 통찰의 결정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사랑에 대한 크고 작은 정의가 넘쳐난다. 어떤 구절은 의표를 찌르고 또 다른 구절은 가슴에 깊게 와 박힌다. ‘사랑은 상상의 산물이다’, ‘사랑은 애착에서 벗어난 상태다’,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으면서 우리는 또한 사랑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느끼며,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만큼 확고부동한 것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이론들이 출현하고 있고 개중에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때로 사랑은 사랑이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무한한 감동으로 각인하는 행위는 사랑인가 도취인가, 아니면 강박인가. 사랑이면 진짜이고 도취나 강박이면 가짜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 아니다.  연인들의 사랑이나 종교적인 열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본질은 쪼개어서 생각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 아닌 것이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짧게나마 이야기해야겠다. 그저 태어났는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랑이다. 분명 ‘더’ 살아있는 느낌인데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이 사랑이다. 사랑은 아주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때로는 무기력함이고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 없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힘껏’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데 내 안에 아무 사랑이 없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의하면 지옥은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겹더라도 사랑을 말하고 듣고 온몸으로 감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생애가 애초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다름 아닌 이곳에서, 생생한 삶으로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책 속 밑줄 긋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순식간에 그의 포로가 되고 인질이 된다. 사람의 심장이 가느다란 혈관에 매달려 몸 바깥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사람은 극도로 유약하고 취약하며, 몸 바깥에 있는 심장의 변덕과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사랑은 고통 없이 오지 않는다. 사랑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무감각해지고 덜 민감하고 덜 사랑하는 방법과 더 사랑하고 피를 흘려서 외부 심장에 자신의 피가 스며들게 하여 동화시키는 방법이다. - 68P

진정한 사랑은 본성이 같다. 모든 형태의 삶을 비옥하게 하고, 한없이 유연하고, 끝없이 새로워지고, 본래 풍부하고, 본질적으로 관대하고, 어떤 것에도 매이거나 가둬지지 않는 숨결이다... (중략)... 진정한 사랑의 본성은 재지 않고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어떤 것으로도 분해할 수 없는 우리의 깊은 본질을 음미하라. 우리는 사랑이다. -3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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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미로로 만들어진 거대한 정원을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다지 방향 감각이 뛰어나지 않았던 나는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다른 일행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마 미로에 갇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전체 그림을 알 수 없으니 의지할 것이라곤 자신의 직감 뿐인데 이것은 결코 믿을만한 길잡이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사방이 막힌 벽이 기다리고 있는 식이다. 그렇게 거듭 실패하고 나면 출구가 있음직한 길을 찾아 더듬 더듬 나아가게 되지만 그마저 막다른 골목일 때가 있다. 딜레마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미로와 같은 복잡한 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다. 진로의 문제, 인간 관계의 어려움,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간극 등 문제는 실로 다양하다.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방식 또한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감을 믿고 또 다른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무턱대고 답을 종용하기도 한다. 다행히 인생의 여러 난관에는 절대적인 답, 하나의 출구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가 해결되는 방식도 때로는 극적이다. 어떤 문제는 전혀 생각지 못한 묘수를 이끌어내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를 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하기를 바란다. 눈 앞에 놓인 상황에 너무 마음을 쓴 나머지 문제의 제거를 가장 큰 과제로 생각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모든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무미건조한 삶을 원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성공 법칙을 따라 똑같이 자로 잰 듯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세상은 아무래도 무섭다. 하지만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문제를 유연하게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로에 갇혔을 때처럼 인생의 전체 그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를 돕는 것은 미리 앞서 경험한 선진들의 지혜이다. 그들 중 어떤 위대한 이들이 남긴 발자취는 그 자체로 길이며 답이 된다. <문제보다 해법이 많다>의 저자로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저자 우간린이 주목한 사람은 공자이다.

 

 중국의 공자는 지난 이천여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걸음직한 길이 되어왔다. 인생의 멘토로서 자격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성인이라는 휘광 때문에 좀처럼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공자에 대한 일부 오해와 편견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등한시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 책의 저자인 우간린은 공자도 때로는 실수를 하며 여느 사람과 다름 없이 절망에 빠지기도 하는 인간임을 포착한다. 사람이 살면서 부딪히는 시련과 고난을 공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고향인 노나라에서 쫒기 듯 떠나 정처 없이 열국을 주유할 적에는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과 같은 극한의 고통을 맛보기도 했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위정자들을 보며 실망하는가 하면 아끼는 제자들의 때 이른 죽음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픔에 젖었다. 칠십 평생에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부침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공자는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기 위해 애썼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군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굳건히 지켰기에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물론 닥친 위기를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한 것은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의 본질을 파악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했다. 한 가지 원칙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수를 염두하며 보다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공자의 지혜와 임기응변은 실로 놀라워서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선사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단지 지식에만 몰두한 고리타분한 위인이 아님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죽은 지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서 세상에 덕화를 끼치는 지혜이다. 하지만 지혜는 습득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때문에 공자는 무엇보다 참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치를 깨우쳐 머리를 맑게 하고 오랜 시간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눈을 길렀을 때 비로소 내면의 지혜가 반짝 빛을 발한다.


 저자가 공자의 언행을 토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 하고자 하는 지혜는 다음과 같다. ‘현실을 벗어난 공부는 죽은 공부다.’ ‘동기뿐 아니라 결과까지 좋아야 한다.’ ‘성공을 얻기 위해 인생을 잃지 않는다.’ ‘주관이 없는 지혜는 독이다.’ ‘힘이 없다면 지혜도 없다’ ‘인생이 무상할수록 평정심이 필요하다.’ ‘기준은 높이고 자세는 낮춘다’ ‘옳은 일에는 고통과 모욕이 따른다.’ ‘가장 특별한 것은 평범한 속에 있다.’ ‘물러남이 부끄럽지 않아야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배움의 거처다.’ 등의 격언은 원하는 삶을 위한 인생의 지침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자는 독자들이 보다 재미있고 실감나게 공자와 그의 일화를 접할 수 있도록 스토리 텔링 형식을 취한다. 공자의 여러 제자 중에 스승과의 친밀도가 깊은 자공의 눈을 빌린 일화는 한편 한편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물론 가장 흥미를 돋우는 것은 공자라는 인물이지만 그가 일평생 아끼며 사랑했던 제자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숨기지 않는다. 책 속에는 제자들이 푸르른 노송 아래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얻거나 행단에 모여 한 솥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꾸밈없이 그려진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심회가 복잡하면 홀로 방안에서 거문고 타기를 즐겼던 공자는 오늘날로 치면 음악 애호가이며 아마추어 연주자였다. 일찍이 ‘시에서 일어나고, 예에서 배우며, 음악에서 완성한다.’ 라는 관점을 내세웠던 그이기에 이러한 면모는 신선함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일종의 깨달음을 시사한다.
 
 공자가 일평생 품었던 포부는 예(禮)와 인의(仁義)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여러 크고 작은 나라들이 패권을 놓고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자의 권위는 어디에도 없고 열국의 제후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보다 일신의 안위에 관심이 있었다. 혼탁한 정치의 희생자는 애먼 백성들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자가 치국안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고향인 노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위와 송나라와 같은 타국에서도 한결같은 배척을 당했다. 그렇다면 그는 원하는 삶을 손에 넣지 못한, 소위 인생의 실패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치국의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은 분명 그를 낙담하게 만들었지만 그에게는 백성의 교화(敎化)라고 하는 보다 본질적인 목표가 있었다. 공자가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수단으로 꼽은 것이 교화이다. 교화는 미래의 인재인 제자들을 성심으로 가르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공자가 말년에 이르러 더욱 가르침에 몰두한 것은 실패를 자위하기 위함이 아니라 치국의 초석을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그 자체로 치국안민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옛 성현들 중에서도 공자 만큼 인간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사람은 드물다. 세상을 떠나 은거하는 현인들과 달리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살며 궁구하기를 즐겨했기에 그 지혜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자가 일생을 바쳐 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죽음과 사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살아가는 문제이다.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이다. 강조해야할 부분은 ‘어떻게’이다. 공자는 도덕과 인의를 신념으로 삼아 인생이라는 이름의 긴 바다를 항해하고자 했다. 군자다운 품성을 잃지 않기 위해 틈만 나면 자기 자신을 돌보았다. 기회가 있으면 용감히 나아가고 때가 어지러우면 한걸음 물나 몸을 보전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상황에서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저자가 암시하는 것 외에도 공자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서 배울 점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람마다 울림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거기에는 분명 살아있는 지혜가 존재한다. 그것을 삶에 적용하여 놀라운 가능성의 꽃을 피우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몫이다. 눈 앞에 닥친 문제와 위기를 극복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일단 손에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미로를 헤쳐나가는 사명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물론 우리가 철저히 혼자인 것은 아니다. 책이라고 해도 좋고 옛 성현의 말씀, 혹은 지혜라고 일러도 좋은 든든한 길라잡이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설령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눈에 보이는 법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곁에 공자의 살아있는 지혜가 나란히 걸음하길 기대해본다.

 

 

 

"지식은 죽은 것이지만, 지혜는 살아 있습니다. 지혜는 지식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p.91

...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까닭을 근심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자신을 알 수 있게 힘써야 한다. 군자란 자신의 능력이 없음을 걱정해야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늕다고 걱정해서는 안 된다. p.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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