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오 보만스 엮음, 민영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 만화경 같은 사랑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책의 부제인 동시에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는 물음이다. 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진지하게 품어봄직한 질문이면서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을 꺼리는 난제이기도 하다. 일단 사랑에 대한 기본 정의조차 쉽지 않다. 사랑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인 동시에 한 가지 언어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기 사랑의 변치 않는 속성을 발견한 다음날 사뭇 다른 변질감을 느끼고 당황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손에 쥔 막대 사탕처럼 뿌듯해하다가 더 끌리는 것을 발견하고 넘어지는 것조차 아랑곳없이 달려가는 어린애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떨어져 흙이 묻은 막대사탕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애써 추억하려고 하는 잃어버린 어떤 맛이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처럼 제각각이다. 여기에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과 나라가 어우러지면 수백, 수천 개의 가지가 생겨난다. 이를 한 개인이 살펴보며 궁구하는 것은 능력을 벗어난 무리한 일이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통한다면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사랑의 오색찬란한 파편들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 예쁜 책, 예쁜 척하지 않는 연구 결과들
 이 책의 수석 편집자인 레오 보만스는 적극적인 시민이자 작가이고 강연자이며 저널리스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수기도 아니고 소설은 더더욱 아니며 연설문이나 시시한 정치적 견해가 실린 칼럼도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다. 50여개 국가 출신의 최고 연구자 100명이 쏟아놓는 견해가 461쪽에 달하는 책을 가득 채운다. 소개 부분에 국적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연구 결과와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광범위하지만 각각의 소단락은 간결한 짜임새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은 최대한 1000자를 넘지 않는데 대부분 쉽게 읽히는 짧은 글임에도 결코 얕지 않은 통찰력이 깃들어있다. 돋보이는 것은 구성이다. 아무 때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쉽게 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한 구석이 엿보인다. 적절하면서 감성적인 느낌의 사진과 그림들을 삽입해서 예쁜 인상을 풍기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딱딱하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 연구 결과들이 제법 재미난 글줄로 다가온다. 물론 재미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어쨌거나 사랑이라는 주제는 영원히 매혹적인 것이다. 추구하는 방식이 지성과 냉철함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흥미로운 사랑의 파편이 곳곳에 숨어있다. 반전이 있다면 감흥에 겨워 꽃잎이 휘날리는 것 같은 착오적인 결말이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바 그대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할리우드가 멈춘 곳에서부터 우리를 낭만적 사랑의 심장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데려간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진짜 사랑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어나간다.


 

 

- 사랑의 본때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열정적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커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것이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실망을 감추기는 어렵다. 열정적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이 비어버린 공백에 ‘동반자적인 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주목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막 사랑에 빠진 남녀는 약간은 제정신이 아닌, 일종의 도취 상태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도취의 상태에서 평생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과 사랑하는 상태를 완전히 다른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라고 조란 밀리보예빅은 말한다. 사랑이 정말로 개인의 자유 선택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학자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는 감정과 인식과 낭만적 신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결혼은 ‘내 선택’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웃음거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완벽히 합리적이며 자유롭다는 착각에서 한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생물학적,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사랑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있는가하면 사랑을 생화학적 현상으로 접근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낭만적 사랑의 징후가 강박장애와 유사한 스트레스 상태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스트레스다.’ 도나텔라 마라지타 교수의 사랑 실험실에서는 사랑을 분자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녀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무엇보다 사랑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
사랑에 대한 풍부한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이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집필에 참여한 다수의 저자들은 이론가인 동시에 무수한 임상사례를 보유하고 있는 삶의 전문가들이다. 책에는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의 여러 가지 시련에 봉착한 사람들, 사랑을 믿지 않거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조언들이 실려 있다. 조언들은 대부분은 울림이 크고 세심하며 따뜻하다. 사랑에 대한 밀도 있는 연구가 일차적으로 연구자 본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서 그들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지혜와 통찰의 결정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사랑에 대한 크고 작은 정의가 넘쳐난다. 어떤 구절은 의표를 찌르고 또 다른 구절은 가슴에 깊게 와 박힌다. ‘사랑은 상상의 산물이다’, ‘사랑은 애착에서 벗어난 상태다’,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으면서 우리는 또한 사랑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을 느끼며,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만큼 확고부동한 것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이론들이 출현하고 있고 개중에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때로 사랑은 사랑이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무한한 감동으로 각인하는 행위는 사랑인가 도취인가, 아니면 강박인가. 사랑이면 진짜이고 도취나 강박이면 가짜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 아니다.  연인들의 사랑이나 종교적인 열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본질은 쪼개어서 생각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 아닌 것이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짧게나마 이야기해야겠다. 그저 태어났는데 부모라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랑이다. 분명 ‘더’ 살아있는 느낌인데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이 사랑이다. 사랑은 아주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때로는 무기력함이고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 없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힘껏’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데 내 안에 아무 사랑이 없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의하면 지옥은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겹더라도 사랑을 말하고 듣고 온몸으로 감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생애가 애초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다름 아닌 이곳에서, 생생한 삶으로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책 속 밑줄 긋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순식간에 그의 포로가 되고 인질이 된다. 사람의 심장이 가느다란 혈관에 매달려 몸 바깥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사람은 극도로 유약하고 취약하며, 몸 바깥에 있는 심장의 변덕과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사랑은 고통 없이 오지 않는다. 사랑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무감각해지고 덜 민감하고 덜 사랑하는 방법과 더 사랑하고 피를 흘려서 외부 심장에 자신의 피가 스며들게 하여 동화시키는 방법이다. - 68P

진정한 사랑은 본성이 같다. 모든 형태의 삶을 비옥하게 하고, 한없이 유연하고, 끝없이 새로워지고, 본래 풍부하고, 본질적으로 관대하고, 어떤 것에도 매이거나 가둬지지 않는 숨결이다... (중략)... 진정한 사랑의 본성은 재지 않고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어떤 것으로도 분해할 수 없는 우리의 깊은 본질을 음미하라. 우리는 사랑이다. -3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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