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왕인가? - Radical Faith 믿음으로 반응하라
김병삼 지음 / 두란노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누가 왕인가?/김병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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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왕이 누구인가.
 
“왕이신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 찬양하리라!” 요즘 자주 들으며 따라 부르는 CCM의 가사 구절이다. 노래를 하듯이 하나님을 내 삶의 왕으로 고백하지만, 실제적 삶은 그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결국 순도의 문제이다. 그 분의 완전한 임재를 원하지만 이왕이면 내 뜻이 관철되는 방향이기를 원한다. 실은 내 생각과 감정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뜻이 만약 내 생각과 다르다면 떼를 써서라도 돌이키고 싶다. 왕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이며 왕으로 군림하는 세계가 살아서 스스로를 주장하는 격이다. 상황이 이러니 내 삶의 진정한 주도권을 놓고 하나님과 타협을 시도하는 일도 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만큼 헌신하겠으니 이러 저러한 복을 주세요.' 복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는 일이 과연 온전한 믿음일까.
 
이 책은 독자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묻는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왕인가요, 아니면 단순한 헬퍼인가요?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라.

  저자는 이스라엘의 왕들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신앙의 본질, ‘Redical Faith'를 찾는다. 책에는 우리 신앙이 본질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이 책의 주요 독자들이 신자라는 점을 가정한다면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닿으면 데일 듯이 뜨겁다. 스스로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던 사울의 예가 그렇고 안락한 삶으로 인해 좌초되었던 히스기야의 예가 그러하다. 그들에게 찾아왔던 크고 작은 시험이 단지 시험으로 그치지 않고 타락과 비참한 최후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들의 실패가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 즉 신앙의 변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한다. 신앙이란 곧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 아래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힘입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귀하게 쓰임받기를 갈구 하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주인 된 자의 음성을 주의 깊게 따라야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목소리에 힘을 싣게 되면서 자기 허욕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믿음이 앞선 사람이든 뛰어난 사람이든 똑같이 겪는 시험이다. 저자는 본질적인 믿음을 붙들 것을 반복해서 권고하며 세 가지 지침을 내놓는다. “하나님보다 앞선 걸음을 멈추라.’ ‘나를 놓고 하나님을 붙들라’,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라‘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삶을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악惡에 끌리는 자신과 세상을 이길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기만 하다면,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이 처하는 어려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어려움을 거뜬히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도 주어지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영적인 암흑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오히려 고난과 시련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을 뛰어넘어 더 크고 위대한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약속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앞으로 완성될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을 나의 주(主),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일은 곧 그 분의 뜻이 절대적임을 믿고 따르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마땅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이 위선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 아래에 살기를 원하면서 그 분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전적으로 내려놓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 재미있게도 하나님이 나의 고집 꺾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도망칠 생각만 했다. 어쨌든, 도망칠 수 없었다. 미리 겁먹고 삐쳐있었던 것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행하지도 않고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죽어도 모른다고 어떻게 단언한단 말인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품으시는 뜻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극명하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분이다. 이것을 세상 속에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권리인 동시에 참다운 소명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에 내가 있는 것이니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속의 일부가 되어 누리는 기쁨이, 대가 없이 주어진 영생이 유일한 자랑이다. 이것을 정말로 갖고 싶어 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어설픈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위선적인 신앙에 잠식되었던 마음을 버리고, 믿음의 본질을 붙드는 진짜 신앙인이 되고 싶다. 

 

- 왜 우리는 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 때문에 그렇게 슬퍼하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렇게 무감각할까요?

-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그 어떤 행위도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신앙이 성장하면 삶의 고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래서 그 외로움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독하게 설 수 있어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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