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다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진실’을 깨닫기 위한 ‘고독, 절망, 공포에서 비롯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두 개의 거짓, 너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이 소설 속의 있을 법하지 않으면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운명의 상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고 ‘그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을 믿지 않게 된 현재의 나를 돌이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의 중반부부터는 A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B면으로 바꿔줘야 하는 레코드판을 바꾸듯이 나름의 반전을 거듭하는 것을 보며 후반부까지 적잖은 스릴도 느꼈다. 그리고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들이 전개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해 하던 내게 그 수수께끼의 열쇠는 마지막까지 다 읽었을 때쯤 손에 쥐어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무 살이 된 여름까지 자신을 기억하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하나 없이 모든 것이 결락된 상태로 지독한 외로움에 잠식되어 자신이 외로운지도 몰랐던 한 열일곱 살의 천재 ‘의억기공사’ 소녀 마쓰나기 도카가 한 인간의 숨은 열망을 뽑아내기 위해 상세히 기록되는 ‘이력서’를 보고 자음 하나만 바꾼 나쓰나기 도카가 되어 그 또한 모든 것에 결락이 있고 자신의 삶과 인생을 증오하고 비난하며 달콤한 기대는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복한 꿈은 악몽보다 더 해롭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한 소년 아마가이 치히로를 자신의 소꿉친구로 만들어내는 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첫머리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꿉친구가 있다.’ 초반부까지는 이것이 ‘나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어 똑같은 글이 ‘너의 이야기’로 중첩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에는 그 글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넘어 ‘그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의억에 의한 가공의 소꿉친구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서로의 기억과 추억이 거짓임을 알고 난 이후 거짓을 밝혀내려는 마음도 있는가 하면 거짓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동반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 되었고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연인이 된 ‘그들의 이야기’.
그런 그들이 만들어낸 패러렐 월드 속 ‘그들의 이야기’와 ‘추억’에는 우스운 것, 유치하기도 하고 풋풋하기도 한 것, 뻔한 것, 기쁜 것과 슬픈 것, 이해가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그들과 함께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만들어낸 저자의 소설 속 저자의 이야기에는 참신한 것, 흥미로운 것, 그럴싸한 것, 가슴 아픈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의억, 의자, 의억기공사, 이력서라니. 그린그린, 레테, 메멘토, 엔젤, 허니문, 히어로, 히로인이라니. 정말 기가 막히고 신기하지 않나.
의억이란 어디까지나 결락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허니문’이라는 의억에 중독되어 현실의 삶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는 치히로의 아버지. 그와 이혼한 후 ‘레테’로 가족과의 기억을 통째로 삭제하는 단호한 삶의 방식을 택한 치히로의 어머니. 그들은 세상 무엇보다 허구를 사랑했고 세상 무엇보다 현실을 증오했다. 그런 부모들이 ‘엔젤’의 의억으로 만들어낸 네 명의 자식 중 한 명인 치히로. 그들은 그야말로 일그러진 가정이고 거짓의 총체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없고 자식들은 방치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조차 소외감을 느끼며 사랑 자체를 알지 못한 채로 성장해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전혀 모르는 인간이 된 치히로는 고독한 어린시절에 이은 청춘시절을 보낸다. 그런 완벽한 잿빛의 나날들은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텅 빈 것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며 완전한 제로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전부 잊어버리기 위해서 ‘레테’를 구입했는데 어이없게도 클리닉에서 이력서를 잘못 읽어서 ‘그린그린’을 보내 왔던 것이다. 클리닉에 배송 오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받았던 두 개의 ‘레테’. 하나는 소년 시절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 또 하나는 나쓰나기 도카에 관한 의사 기억을 지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 두 개의 ‘레테’가 소설 마지막에 가서 반전의 복선이 된다. 이 부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불꽃놀이 무늬가 수놓아진 짙은 남색 유카타. 이목을 끄는 하얀 피부. 붉은 국화꽃이 달린 머리핀. 축제 때의 이 이미지는 아주 중요한 이미지가 되는데 이 또한 도카가 만들어낸 의억이었다. 도카가 열아홉에 얻은 새로운 병 신형 AD (Alzheimer’s Disease)는 오래전 기억부터 점차 최근의 기억까지 없어지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죽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 나서서 시곗바늘을 돌리기까지 하며 소극적이고 완만한 자살에 대해 언급할 때에도 초연했던 그녀가 신형 AD 환자 모임에서 다들 가족, 친구, 연인과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자신은 그런 추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그녀가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어 줬던 공상 속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거짓말로 만들어내게 된다. 이로 인해 고독과 절망이 점점 깊어지면서 허무감이 임계점에 다다라 이제껏 쌓아 올려왔던 방어책이 무너져 버리고 죽기 전 딱 한 번이라도 그녀의 고독을, 그녀의 안에서 갓난아이처럼 오열하고 있는 갓 태어난 시절의 그녀, 한 살 때의 그녀부터 열여덟 살의 그녀들을 치유하고 그녀를 100퍼센트 이해해줄 현실적인 구원자인 100퍼센트의 남자에게 100퍼센트의 사랑도 받고 싶고 칭찬, 토닥임, 동정을 받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그’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 그러나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공상 속의 존재에 대해 이토록 깊이 빠지고 변함없이 사랑할 수는 없는 거라며 어쩌면 실재하는 인물이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고향으로 떠난 날, 열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축제에 나란히 걸어가는데 그 여자아이가 딱 남색 유카타를 입고 머리에 붉은 국화꽃이 달린 머리핀을 꽂고 있었던 것이다.
짙은 남색 유카타와 하얀 피부, 붉은 국화꽃이 달린 머리핀의 이미지의 도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기필코 ‘레테’를 복용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기억을 지우기에 좋은 날이 아니라는 식으로 회피하며 ‘레테’를 복용하지 못하던 치히로는 사랑이란 실재하는 인간끼리 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채근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달 후 아파트 복도에서 도카와 우연히 마주치고 보이지 않는 못에 의해 공간에 고정되어 서로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여름의 마법이 일어났다. 그 마법에서 깨고 싶지 않으면서도 속임을 당하는 걸까봐 두려워서 마법에서 깨려고 노력하는 치히로. 그는 도카가 실재인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과거를 잊고픈 인간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졸업앨범은 전멸상태라 확인할 길이 없어서 도카가 그랬듯이 그의 고향도 찾아가고 고향에서 떠난 후 한 번도 연락도 않던 아버지에게, 그리고 중학교 때 학급의 부적응자들이 몰렸던 도서관의 같은 주민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동지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극히 몇 안 되는 상대 중 하나였지만 그 때도 교류가 없었고 졸업 이후로도 교류가 없던 동창 기리모토 노조미와 SNS로 연락하고 직접 만나서 도카에 대해 묻기도 한다. 그렇게 도카는 확실히 자신의 과거에는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의억이라는 것은 몽상보다 좀 더 현실적인 ‘최선의 가능성’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과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므로 ‘행복한 패러렐 월드에 속한 또 다른 내가 겪는 일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리얼'하고 또 그만큼 내가 ‘그토록 원했으나 이루지 못 했던 열망을 발현해 낸다’는 점에서는 '잔혹'하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애정을 받거나 쏟아 붓고 싶어 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히어로가 되거나 누군가가 자신의 히어로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이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러한 상실감에서 오는 무력함과 자기혐오에 가까운 비관이나 슬픔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히로는 깊은 슬픔을 느끼다가 뻔히 도카가 가공의 인물임을 알면서도 태풍이 오면 천식이 심해지고 발작하기도 했던 의억 속의 도카를 걱정해서 도카 집 문을 두드리며 “도카!”라고 이름을 외치고 그 때부터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진실이라 믿고 싶은 마음과 혼합되어 둘만의 새로운 추억을 쌓아 나아간다.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이 “도카!”라고 외쳤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 도카의 이야기에서 봤을 때 그 순간은 바로 도카가 신형 AD 때문에 죽음으로 시시각각 다가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떻게든 치히로에게 소꿉친구로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도카에게 벌을 내리듯 치히로가 도카의 요리를 눈앞에서 쓰레기통에 하나의 의지와 다짐이자 표시로서 버렸을 때 그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을 알고는 더욱 상처를 받아 자신이 물러날 타이밍이라 느낀 도카가 그날 밤 자신의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다 이상하게 평온해진 것을 느끼고 그 때 이후로 서서히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굳이 죽음을 얌전히 기다릴 필요가 없이 먼저 마중 나가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전에 이미 한 차례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던 때가 있었으나 치히로의 ‘이력서’를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살기로 했었다. 그렇게 다시 살아보려고 했던 도카는 질식사로 죽는 것은 어려서부터 겪었던 천식의 고통 때문에 싫다며 높은 데서 떨어져 죽기로 한다.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맨션의 비상계단 난간에서 떨어져 죽으려던 찰나 발 밑에 떨어져 있던 불꽃놀이 장난감을 들고 불꽃놀이(花火)를 뒤집어놓은 도카(火花)는 그 이름이 운명을 암시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불꽃은 상승한 끝에 밤하늘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반면에 자신은 밑으로 추락한 끝에 땅바닥에 붉은 꽃을 피우려 한다는 그런 운명. 너무 미화한 듯한 표현들이었지만 저자가 인물의 이름 같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글을 구성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그 불꽃놀이 장난감 덕분에 단지 10초 정도만 생각에 잠겼지만 바로 그 10초 덕분에 그녀는 그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치히로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데 도카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아파트로 달려간 것이었다. 그 때가 바로 치히로가 도카를 구하러 달려왔을 때였던 것이다. “도카!”라고 외쳤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시인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치히로가 도카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도카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가 치히로가 도카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도카는 치히로에게로 와서 온전히 꽃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인생에서 가장 거짓되면서도 진실 되고 단 하나뿐인 소중한 꽃. 그렇게 그들은 약 3개월간 규칙적이고 건전한 생활을 하며 알콩달콩 지내다 도카의 병이 악화되어 도카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어떻게 치히로에게 배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도카의 ‘이력서’와 도카가 신형 AD 환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자신을 속이려고 한 것에 대해 사과한 짧은 편지를 받은 후 도카가 둘의 뇌에 의억을 이식해서 추억 속의 둘을 구원하려고 했던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청춘좀비’가 헛되이 보냈던 청춘을 어떻게든 되돌려 보려고 발악하듯이. 치히로는 그런 자신들을 생각하며 불쌍해 하고 원망한다. 도카의 최후까지 허구의 힘에만 의지하고 비눗방울 같은 연약한 행복에만 몰두하다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놓친 어리석음에 가여워하고, 상처받는 것에 두려운 나머지 그녀와 너무도 똑같은 아픔과 상실, 증오를 느끼며 자라왔기에 그녀의 고독, 절망, 공포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었던 그였음에도 그녀가 기억을 잃어가는 그 끔찍한 공포와 내내 싸우면서 누구에게도 의지도 못하고, 이해받지도 못하고, 위로받지 못한 외로운 상태에서 절실히 기도하는 심정이었던 그녀의 구원 요청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더욱 악착같이 도카라는 존재를 거부하고 그녀에게 속아주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스러워한다. 도카가 그를 위해 뭐든지 다 바치기로 스스로 약속했듯이 그도 그녀를 위해 여생을 남김없이 그녀가 이 세계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녀를 위해 쓰기로 스스로 약속한다. 너무 억지스럽고 소설스럽고 비현실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분명 있다. 10여 년 전에 TV에서 봤던 한 연인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들을 모티브로 했던 이승환의 노래도 있었다. 들을 때마다 그 연인이 떠올라 가슴 먹먹해지고 노래 후반부의 가사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 너만의 나이길 우리만의 약속 그 약속을 지켜 줄 내 사랑’ 이 부분은 멜로디만으로도 가사가 떠올라 언제든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한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정말 어떻게 사랑이 그럴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정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논픽션에 기반을 둔 픽션이니까.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치히로는 그 날 이후로 매일 도카의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도카가 그에게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큼이나 충실하고 성실하게 ‘소꿉친구 계획’을 이어간다. 도카도 처음에는 그를 유산을 노린 사기꾼이라 칭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연기를 하며 관계에 선을 긋고 스스로를 제어하며 둘 사이에 거리감을 둔다. 도카도 상처 받는 게 두려워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죽어가고 있는 상태라서 ‘앞으로 잃을 것’이나 다름없는 ‘앞으로 손에 넣을 생의 가치’를 제로로 삼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거라는 걸 치히로가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한다. 생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죽음의 위협도 커지고 죽음에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생각났다. 그는 서른여섯의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는데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초연하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존엄사’를 선택한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도카와 치히로는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둘이서 보내는 시간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치히로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며 둘의 이야기를 요구하는 도카. 치히로는 도카 앞에서 이야기해 나간다. 그들 사이에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추억. 일어났으면 했던 추억. 일어났어야 했던 추억. 책의 세 페이지 이상을 차지했던 온갖 의억으로 생긴 가짜 추억들을. 그렇게 그들은 일곱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9년간을 다시 산다. 그 이후의 내용은 없지만 치히로는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정당한 ‘속편’을 만들며 이야기를, 거짓말을 계속 이어나가면 도카가 더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2주간 그렇게 오래된 추억을 이야기하며 세계의 종말을 지켜본다. 이야기는 도카가 생을 이어나가게 하는 최후의 실이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치히로는 도카의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완성되어 그녀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나는 싸구려에 당돌하고 억지스럽고 예정 조화적인 꿈을 꾸는데 현실과 너무 대조되어 치히로는 하룻밤을 고민하지만 시작된 순간 끝나는 사랑과 시작되기 직전에 끝나는 사랑, 둘 중 어느 쪽이 비극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각각이 최악이니까. 정말 둘 다 너무 아련하고 마음 아픈 비극인 것 같다.
그렇게 둘의 진짜 추억을 만들어 나가다가 이 모든 계획의 시작점이 도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도카. 그녀는 치히로에게 마지막 거짓말을 한다. 치히로의 소년 시절의 기억을 지울 ‘레테’를 복용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이 리뷰 초반에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했던 복선이 되는 두 개의 ‘레테’중 하나였다. 사실 그 ‘레테’는 도카가 도카의 기억만 지우는 ‘레테’였는데 치히로의 집에서 두 개를 바꿔치기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반전은 그 뒤에 있었다. 도카가 마지막에 레테를 바꿔치기 할 줄 알고 그 전에 이미 치히로가 두 개의 레테를 바꿔치기 해 놓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치히로가 복용한 레테는 결국 도카의 기억만 지우는 레테가 아닌 소년 시절의 기억을 지우는 레테였던 것이다. 도박 같은 치히로의 머리싸움의 승리로 그의 소년 시절에는 도카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상대의 성향을 완벽히 이해하고 간파하고 있었고 그런 것을 깨닫고서 둘은 뭔가를 확인하기 위한 키스가 아닌 오로지 키스를 위한 키스를 나누고 ‘궁극의 둘’이 된다. 이후 도카는 고요하고 평온하게 짧은 생애를 마치고 치히로에게 영원할 것 같던 그 짧은 여름도 끝이 난다.
도카와의 이야기를 공유한 그는 허구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 10년 후, 치히로도 도카처럼 의억기공사가 되어 ‘히로인’의 개발자가 된다. 그는 ‘히로인’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단 하나의 아름다운 진리를 믿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 진리란 바로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이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서른이 되어서도 치히로는 여전히 도카만을 사랑하고 있다, 바보처럼. 그는 10년 만에 모교에서 강연 의뢰를 받아 고향을 방문하는데 마침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고 운명이 일어난다면 꼭 일어나야 할 장소인 그곳에서 그는 운명의 상대를 다시 만난다. 불꽃놀이 무늬가 수놓아진 짙은 남색 유카타. 이목을 끄는 하얀 피부. 붉은 국화꽃이 달린 머리핀. 만났다기 보다는 아마 치히로의 의억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패러렐 월드의 도카였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이 소설의 리뷰를 마무리 하면서 남기고 싶은 나와 우리 모두의 헛되고 공허해 보이지만 결국 진리일 수밖에 없는 희망과 바람이 있다. 나는 너의 ‘히로인’이 되고, 너는 나의 ‘히어로’가 되어 서로 마주치거나 스쳐 지나가더라도 직감적으로 뒤돌아보게 되는, 일곱 살 때 만났어야 했지만 ‘그 목소리’를 믿지 않거나 무시해 버리는 바람에 그 시기를 놓치더라도 언젠가는 노후에라도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는 그런 ‘운명의 상대’. 만났을 수도 있지만 만나지 못했거나, 만나지 못했으나 만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사람. 전자든 후자든 만나기 전인 것은 똑같다. 만나기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똑같다. 그러니 운명의 빨간 실로 연결된 ‘운명의 상대’와 만나서 사랑하지 못 했던 그동안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에 너무 집착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 공백을 한 순간이라도 채울 수 있는 기회와 나날들이 있다면 그것도 못 이룬 인생이 훨씬 더 많은 것을 감안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행운이고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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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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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이트 워치 – 새라 워터스
‘나이트 워치’가 무슨 뜻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해서 정독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일주일동안 읽어 나가면서 아쉽게도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도 여전히 왜 이 소설의 제목은 나이트 워치인지 모르고 막연히 밤의 파수꾼일까? 서치 라이트를 지칭하는 다른 말일까?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다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야경꾼 또는 야간 구급대원이라는 뜻이 있었다. ‘야경꾼’이라면 케이 몰래 헬렌과 만남을 가졌던 줄리아가 홍차를 담았던 야경꾼 병에서 봤고 ‘야간 구급대원’이라면 내가 가장 아끼고 관심을 가진 등장인물 케이가 전쟁 때 가졌던 직업이기도 하다. 둘 중 야간 구급대원의 의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케이와 줄리아, 그리고 헬렌 세 사람의 관계를 중점으로 다루면서 다른 세 인물인 덩컨과 비브, 그리고 레지 혹은 프레이저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성을 좋아하는 케이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신사적이고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며 상대방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어떻게 보면 전인류적이고 용감한 사람이다.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는 끔찍한 전쟁 중에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부상자를 구하거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 케이는 덤덤하게 집안에만 얌전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아서라고 말을 한다. 괜한 너스레나 영웅심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했던 경험과 맞물려 부상자였던 헬렌을 구조하다 얼굴을 씻겨 주고서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헬렌과 연인이 되어 그토록 헬렌을 아껴주고 어려운 시기에도 돈을 투자해 커피에 오렌지에 실크리본 묶은 분홍색 상자에 담은 진주색 새틴 잠옷까지 생일 선물로 챙겨주고 사랑해 주었는데도 케이를 짝사랑하다 엇갈린 애정으로 결국 인연을 이루어지지 못했던 매력적인 여인 줄리아가 헬렌과 만남을 가지면서 케이를 배신하게 되어 그 상처와 배신감과 함께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다. 케이는 전후 외출할 때마다 매일 매일이 모든 날과 마찬가지로 백지이고 목적지도 분명치 않고 가는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 채 할 일도, 갈 곳도, 볼 사람도 없이 매 걸음 고심해서 발 디딜 곳을 만들어내는 중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인물이 있다면 나라도 케이에게 호감을 느꼈을 정도로 케이는 성숙하고 차분하면서도 용감한 멋진 인물이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말도 안 되게 부담스러워 하는 헬렌은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몇 번인가 말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세상에 그렇게 사랑을 주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부담스러워 하다니...... 어찌 보면 자신에게 너무 환상을 갖는 것 같아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면 케이가 싫증내거나 싫어할까봐 지레 겁을 먹고 그런 것일 수도 있어서 헬렌에게도 동정심이 느껴지기는 했다. 특히 줄리아와 연인이 된 후 줄리아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줄리아의 물건들을 뒤지고 그녀의 책상 모서리를 이마에 짓찧으며 이보다 더 아파야 줄리아를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독백하며 이게 다 줄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나 줄리아와 말다툼을 하는데 이성적이지 못한 억측으로 줄리아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는 데다가 자신은 히스테리적인 여자는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면도칼로 허벅지를 그어 피를 내는 모습을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심정이 들면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어쩔 수 없이 약하고 모순적이고 감정에 치우치는 여성이라는 생각에 짠하면서도 어리석은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그냥 내 눈에는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고 자신의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으로만 보였고, 특히 케이처럼 멋진 사람이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음에도 스스로 외모적으로나 경제, 사회적 지위로나 줄리아보다 훨씬 더 못난 사람이라고 자기비하를 하는 모습도 정말 아쉽고 안타까웠다.
만일 내가 줄리아의 처음 헬렌을 만나려는 의도를 모른 상태였다면 나도 줄리아라는 인물에게 호감이 갔을 수도 있다. 아주 독립적이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즐겁게 살아가려는 뜻도 많은 인물인데다 헬렌이 보기에 줄리아는 어떤 혼란 속에서도 가뿐히 빠져나와 참 어처구니없게도 단정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재주가 있어서. 그러나 처음에 헬렌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헬렌의 어떤 점이 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지 궁금해서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줄리아가 너무 미웠다.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도 줄리아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고 케이 몰래 만나는 헬렌도 너무 미웠다. 그러나 사람 일은 특히나 인연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누가 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을 많이 비우고 읽었다. 내가 너무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지 않으면 케이가 너무 불쌍하고 줄리아와 헬렌이 너무 미워서 온전히 독서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였다. 헬렌과 연인이 된 이후에도 줄리아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고 헬렌이 조금만 줄리아를 의심해도 아예 말다툼 자체를 시작하지 말라는 식으로 “하지 마, 헬렌.”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고 줄리아는 상대방을 배려해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의 인간미는 있기 때문인지 헬렌은 그런 줄리아에게 오히려 사과하고 그런 모습을 보인 자신이 밉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 정말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결국은 더 많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게 정말 맞는 말일까 라는 생각도 들어서 씁쓸했다. 그게 삶인가? 그게 사랑인가?
덩컨은 그저 둘도 없는 친구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한 때 유일한 친구였던 알렉이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데 어른들이 전쟁을 일으켜놓고 아무런 죄 없는 청년들이 전쟁에서 왜 싸우는 지도 모르고 전쟁에 참가하는 건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꾀하는데 너무 극단적이게도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앗음으로써 불합리한 징병이라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유서까지 써 놓고 덩컨도 함께 하자고 설득한다. 덩컨도 그러겠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었기로서니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본인의 뜻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다른 방법도 아닌 자살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그저 허울 좋은 겁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알렉을 따라 별 생각 없이 덩컨도 함께 하겠다고 하다니. 기가 막혔다. 게다가 그들은 덩컨의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를 전투기 소리 같다고 말하며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대기도 한다. 오로지 자기들 생각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알렉이 면도칼로 목을 긋기 전 덩컨이 죽고 난 다음 우리가 어떻게 될지 묻는 말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냥 전등이 나가는 것처럼 꺼지는 것 뿐이라며 너무 태평스럽게 덩컨에게 이따 보자고 하고는 그대로 면도칼로 목을 긋는다. 그 때의 기억이 덩컨에게는 ‘부엌의 선홍빛 바닥’으로 남게 된다. 덩컨은 알렉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는데 여전히 병역거부를 한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그 감옥에서 먼디 교도관과 삼촌과 조카 같은 특별한 관계를 맺는데 출소 후에는 그 교도관에게 먼디 씨라 부르며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삼촌과 조카 같은 관계는 함께 살면서 아마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나온 걸 보고 조금의 거부감이 들기는 했다. 그리고 덩컨의 감방 동료였던 프레이저가 전후 기자가 되어 취재차 들렀던 덩컨의 직장인 양초공장에서 덩컨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후 덩컨이 먼디와 함께 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며 걱정한다. 프레이저와의 관계도 참 특이한데, 말빨도 좋고 금발머리에 잘생긴 프레이저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하찮은 일에도 그 순간만은 미친 듯이 기뻐하다가도 금세 깡그리 잊어버리는 성향 때문인지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그와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덩컨의 심리를 먼디도 눈치 채고 있었다. 참 인물간의 관계를 복잡미묘하고 긴장감 있게 잘 풀어낸 것 같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겉보기에는 남자답고 용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덩컨보다 더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기도 한 인물이다. 전쟁 대공습이 감옥 바로 근방과 감옥 마당까지 다가왔을 때 프레이저가 처음에는 대담한 척 하다가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과 이전에 여자애들을 만났던 자신을 대비하며 엄청난 좌절감에 쌓이다가 자신의 침대에서 손으로 뭔가를 하는 프레이저를 느끼고 덩컨도 흥분하며 그것을 한다. 그러다 프레이저가 겁을 제대로 먹고 덩컨 옆에 누워도 되겠느냐고 하고 덩컨은 또 그 부탁에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아무 감정 없이 프레이저에게 팔베개까지 해준다. 이 장면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남자들끼리 이럴 수도 있나 보구나. 남자도 겁을 먹으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구나. 덩컨이 한 달에 한 번씩 면회 오는 아버지와 누나 비브를 만나는 날이면 괜한 분노와 폭력성이 나오는데 면회가 끝나면 후회하곤 한다. 아무래도 외로움과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그를 압박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넌 우리의 자랑이야!” 라는 생각과 말을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욕심이기에 거기서 온 좌절감 때문에 본심과 다르게 삐딱한 심사가 튀어나와 그랬을 수도 있다. 이런 심정과 연결해서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던 장면은 수감생활을 하기 전에도 덩컨은 아버지에게 좀 다른 것 같지만 기본욕구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는 점이다. 알렉이 자살하러 덩컨 집으로 몰래 들어온 날 밤, 면도칼로 사건을 일으키려고 결심하기 전 목 매달아 죽을 거라며 프레이저가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덩컨의 파란 바탕에 금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가지러 자신의 방에 가다 보게 된 코 골며 자는 아버지를 보고 속으로는 자신이 자살할 거니까 좀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싶어 하는 덩컨의 숨은 마음이 그것인데, 아버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 했던 남자아이처럼 그런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덩컨을 보니 역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짠한 마음이 들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프레이저와 우연히 재회한 후 먼디 씨 집으로 놀러 오기로 했던 프레이저를 기다리다 시간이 점점 늦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덩컨의 속마음과 잠옷에 겉옷만 걸치고 알렉의 말투를 흉내 내며 속으로 ‘이제 후퇴는 없다, 덩컨 피어스!’라고 외치며 프레이저의 집으로 직접 가버린 덩컨의 심정, 그리고 거기서 전해들은 비브 누나와의 만남과 그들의 키스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거의 일 분 남짓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얼굴은 빨개져서 웃음보가 터져버린다. 왜 그렇게 웃음보가 터졌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덩컨에게 참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동성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덩컨과 프레이저. 고대시대, 특히 그리스 로마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동성끼리 사랑하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나나 내 주위 사람들한테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류의 사랑은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비밀로 간직했을지는 모르지만.
덩컨의 누나 비브는 사랑스러운 인물인 것은 확실하지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한다. 명민한 검은 눈과 해맑은 소년의 웃음을 간직한 덩컨이 말 그대로 늙은이의 집인 먼디 씨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도 연인 레지와 만날 때마다 받아오는 소고기 햄 통조림을 먼디 씨 집으로 가져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는 것이다. 비브에게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동생이고 둘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그 집에서 꺼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 비브는 자신도 모르게 덩컨을 아버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가족들은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덩컨 혼자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해 보이는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속상해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기운만 축날 뿐이라고 적당히 타협하고는 혼자 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동생을 아끼는 가족이라면 조금 더 단호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프레이저도 후에 비브와 만나서 덩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덩컨을 저대로 내버려 둘 거냐며 비브를 채근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도 비브는 덩컨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싶다는 투로 대답을 하는데, 이때까지도 비브는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일 테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는 했다. 너무 힘들면 자포자기 심정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소설이 시작되는 1947년까지도 그녀가 전쟁 중 기차 화장실 칸에서 우연히 만난 레지와 사랑을 키워가게 되는데, 중요한 건 레지가 유부남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레지와 사랑을 이어나가고 심지어 그와 만나는 동안 아이까지 갖게 된다는 것. 정말 이해불가였다. 물론 덩컨 못지않게 마음이 불안하고 피해의식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유부남이란 걸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생각할 수 있을까? 심지어 레지가 보여준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고도 비브는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느끼고 그들과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녀에게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는다면 덩컨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브가 세상과 사람이 완벽할 수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너무 어렸을 뿐이라는 게 내가 그녀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생각이다. 레지라는 남자가 재치도 있고 유쾌하다고 해도 그가 장모님이나 아내에게 찬밥신세를 당하고 미움만 받는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외롭고 마음이 허전한 인간이라는 건 알겠다. 그러나 진실여부는 알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리 그렇다고 아가씨를 꼬셔서 그런 만남을 이어가다니. 그것도 정말 이해불가였다. 특히 치과의사의 부업으로 행하는 그 수술 때문에 레지가 돈을 가져와 비브와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수술이 잘못 되었는지 자궁벽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과다출혈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는 큰 일이 있었는데 응급실에 가게 되면 레지의 신원이 드러나게 되고 아내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질까 봐 겁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 직전에 비브에게 미안해라는 입모양과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만 취하고 사라져버린 레지. 그런 레지가 줬던 조그만 금반지를 호텔 세면대에 두고 왔다며 미친 듯이 금반지를 찾아야 한다고 외쳐대던 비브. 또 둘 다 이해가 안 되고 용서도 안 되는 순간이었는데 정말 소름 돋았던 것은 응급실로 데려다 줬던 응급구조대원이 바로 케이였고, 케이가 새끼손가락에서 절대 뺀 적이 없었다던 그 금반지를 케이는 그 반지를 금세 찾아 왔다면서 비브에게 끼워줬던 것이었다. 아!! 소설 초반에 나왔던 조그만 천 뭉치에 아무 장식도 없는 낡은 금반지의 궁금증이 후반에 와서야 풀리는구나! 소설이라서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뿐이어도,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한테 친절을 베푸는 게 더 쉽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케이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책 소개 글을 보면 이 소설은 빅토리아시대 3부작으로 주목받았던 영국 역사 스릴러의 거장 세라 워터스가 빅토리아시대에서 20세기로 발걸음을 옮긴 첫 작품이며 전쟁의 흉터로 얼룩진 1940년대 영국의 이야기와 시대의 어둠을 초월해 사랑하고 증오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6명의 런더너들의 이야기를 1947년부터 1941년까지, 이들의 치열했던 6년을 역추적하며 상실의 폐허 속에 피어나는 설렘과 욕망, 격정과 후회를 더없이 세밀한 한 편의 드라마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역순으로 엮은 이 이야기는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수많은 장면을 썼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던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이면서 초반에는 진도도 느려서 작가 본인도 상당히 침울한 시기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자 이야기가 자리를 잡아갔고, 그에 맞춰 문체가 점차 바뀌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얼마나 그녀가 치열하게 작업을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가 이 한 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 1940년대의 소설, 영화, 사진, 지도, 일기, 편지, 2차대전과 전후 현대인의 전기를 포함한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다며 그 자료들의 저자와 제목들을 나열해 놓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그녀는 1940년대는 19세기와 확연히 다르게 훨씬 절제되고 정적이며 서늘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는 것도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시간을 역순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엄청난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서로 비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고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피폐한 현재에서 추억이 있고 현재의 결과를 가져다 준 시작점이 되는 풋풋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퍼즐조각이 맞춰지듯이 전후관계가 드러나게 되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옮긴이도 말했듯이 먹먹하고 아득하다. 나도 진짜 그랬다.
배경에서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변화는 소설 구성방식에도 있었다. 이전 작업들은 사건이 먼저였고 그 상황에 맞춰 캐릭터의 감정을 파악해나가는 식이었는데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가운데, 세 개의 챕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작가도 알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 이런 식으로도 글을 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등장인물들인 6명의 런더너들 이외에 주변 인물들도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저자가 주변 인물들까지 캐릭터들을 잘 살려낸 것 같다.
케이 랭그리시와 절친인 미키 카마이클. 그녀의 본명은 아이리스지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서인지 미키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케이와 전쟁 중에 나이트 워치로 함께 일을 했던 또 한 명의 용감하고 강단 있는 인물이다. 미키는 전후 트라우마를 겪는 케이를 걱정하는 진정한 친구다.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는 멋진 인물이지만 케이와 비슷한 성향이어서인지 둘은 이성의 감정은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케이가 줄리아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듯이.
덩컨 피어스의 단짝이었던 알렉 플레이너는 음악, 미술, 건축물들을 사랑하던 젊은이였고 나름 조숙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명함과 신중함, 그리고 진정한 용기가 부족해서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판단으로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빼앗고 만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그가 비록 덩컨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을지는 몰라도 알렉과 덩컨의 부모님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인생 전반적으로 놓고 봐도 덩컨에게 너무나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친구다. 그리고 덩컨의 부모와 가족들에게도. 알렉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그의 부모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물론 요즈음에는 존엄사라는 문제도 고찰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내 생각으로는 존엄사에는 들어가지 않는 범위 같아서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비겁하게 피하려는 것으로만 보였다.
덩컨을 사랑하면서도 미운 감정을 지니고 있는 누나 비비언 피어스가 거의 6년동안 비정상적인 만남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레지 니그리. 그와는 아마 비브가 1947년 로버트 프레이저를 만난 이후로 레지와의 관계는 끝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아니 레지와는 끝내고 프레이저나 그 이후 다른 더 좋은 남자와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줄리아 스탠딩. 헬렌 지니버는 줄리아가 침실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케이에게 배신과 아픔을 줬던 만큼 줄리아에게서 나름의 아픔을 겪는 헬렌과 그 아픔을 어쨌든 달래줘야 하는 짐을 지고 있는 줄리아는 둘 다 케이를 접점으로 이루어진 관계다. 서로 이름을 꺼내지는 않아도 둘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케이라는 점 하나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각자 별개로 살아가는 것 같은 주요 인물들과 주변 인물들은 또 어떻게든 전후에 연결이 되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타자수로 일하던 비브와 사무직으로 일하던 헬렌은 결혼정보업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된다. 헬렌이 보는 비브는 소소한 비밀이나 추억을 나누다가도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제나 커튼을 드리우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브는 병역거부라는 불명예스러운 죄명으로 수감생활을 했던 동생이야기나 남들에게 자랑도 할 수 없는 연인 레지의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이가 전후 일하는 곳은 레너드 박사의 병원인데 심리 치료 병원인 이 곳은 약물 치료가 아닌 최면을 거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들을 속삭이며 되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강도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케이가 환자들의 진료 약속을 잡는 일을 하는데 환자마다 오는 시간이 너무 정확해서 시계를 안 보고도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케이는 그 환자들이 오는 것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환자들 중 먼디 씨가 있고 항상 덩컨이 먼디 씨와 동행한다.
이 소설을 쓸 때 저자는 최초로 3인칭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 글 쓰는 방식이나 문체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배경이나 인물들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고군분투한 결과 좋은 소설책 한 권을 써낸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설을 다 읽은 이후에 가장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다. 케이와 헬렌, 그리고 줄리아 이 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비브와 프레이저, 레지는 어떻게 될까, 혹은 덩컨과 먼디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부족하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케이를.
그리고 독서리뷰를 하는 지금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다. 그런 시절, 원자폭탄과 강제 수용소와 가스실이 존재하는 그런 세계에서 가끔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쾌적한 기분을 느꼈다면 정상이 아닌 걸까. 지금 이 시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고 지구 곳곳에는 사회불안이 지속되고 살인과 기아가 횡행하고 재정 파탄과 쇠락의 길을 걷는 나라들이 존재해 있는데 이런 시절, 이런 세계에서 가끔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쾌적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정상이 아닌 걸까. 나는 과연 그런 시절에 케이나 미키처럼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덩컨, 프레이저처럼 양심이라는 이름 아래 두려움을 숨기고 병역거부를 하고 기꺼이 수감생활을 했을까, 알렉처럼 약간은 치우친 소신을 갖고 그냥 깔끔하게 스스로의 목숨을 앗았을까, 용감한 선택을 한 결과가 모두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겠지만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 트라우마를 겪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며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종말하기 전까지 변치 않을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어딜 가든, 좋은 ㅇㅇ, 나쁜 ㅇㅇ이 있고, 친절한 ㅇㅇ, 가혹한 ㅇㅇ이 있다. 세상과 사람이 완벽할 수도, 완벽하지도 않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은 인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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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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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아일린 – 오테사 모쉬페그
독서리뷰 첫 문장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적이 없었다. 다 읽고 난 후에 바로 책 여백에 짧은 소감을 적을 때는 이런 망설임이 없었는데 막상 제대로 리뷰를 쓰려고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지금 이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일린 던롭, 그녀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할 것이며 후에도 존재할 여자다. 지금 내 안에 아일린의 일부가 살아 숨 쉬는지도 모른다. 역사책에서나 봤던 1964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아일린이 스물 네 살이었던 당시 운명적인 여인 리베카를 만나고 난 이후 크리스마스이브의 중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6일 전 금요일부터 순차적으로 사건과 인물들, 배경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고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스물 네 살이었던 아일린은 사라지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그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아일린의 의지와 계획대로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탈출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도망치다시피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아일린은 오히려 리베카가 아니었다면 이제껏 잘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과 회한에 젖은 채 하느님께 이제부터는 잘 살아가겠다고 맹세했을 거라며 리베카 덕분에 전혀 회한이 없다는 어조로 이야기를 한다.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모두 50년 후 리나라는 새로이 태어났던 여자의 회상과 정확하거나 부정확한 기억들, 추억들로 짜여있다.
전혀 특별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우리가 시내버스 안에서 한 명쯤 볼 법한 아가씨처럼 생긴 아일린. 끔찍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우리들보다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던 사람들이었던 그녀의 가족. 어디에서 잘못 된지 모르겠다고 독백하는 부분에서 몸서리를 쳤다. 끔찍한 사람들의 조합이 아닌 곳에서 끔찍할 수도 있을 결과가 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대화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평소에 하던 대로 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것에. 그리고 현대에 와서야 상황이 훨씬 좋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자식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화풀이 대상이나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아일린과 그녀의 가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에. 그런 사람들은 보통 게으르고 내성적이어서 큰 계기와 용기가 없는 이상은 그런 모습이 본인들의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라 믿어 버리기 때문에 잘못된 것에 집착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분별력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되어 ‘이렇게 하면 괜찮다, 안 된다’의 구분이 모호해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인 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가 될 줄 모르는 무지함으로도 상처를 주게 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나부터 앞으로 꾸려나갈 가정에서 그렇지 않은 가족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에서 나올 것임을 믿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다짐하겠다.
살벌하게 추운 맨하탄 외곽의 소도시, 아일린이 X빌이라 부르던 곳에서 살고 있던 성난 그녀는 스스로가 잔 다르크나 햄릿 같은 사람이었으나 잘못된 인생을 타고났다고 확신하는 반영웅적인 성향의 여자애였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혐오했고 자신을 통제하려하면 할수록 더욱 어색해지거나 불행해지고 화가 나는 사람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내숭쟁이에 말라깽이이고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상상, 공상, 환상을 즐기는 인물이다. 나도 어릴 때와 30대 중반까지는 상상이나 공상을 정말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상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공상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공상 덕택에 각종 과학의 진보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오고 있기에 공상 또한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환상을 갖는 것은 자칫하면 너무 허황되기도 하고 지나치면 무모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공상은커녕 상상조차 거의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엉뚱한 연관성이기는 하지만 생생하게 상상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꿈의 공식 R=VD을 최근에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다시 아일린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의 흥미로운 표현에 따르자면 그녀는 면역되지 않은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짝사랑하고 스토킹하는 랜디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 로미오처럼 다락방 창문에 돌을 던지고 집 앞에서 그의 오토바이가 뿜어대는 연기를 상상하는 것이라든가 자신의 직장인 민간 청소년 교정시설의 별칭 무어헤드(리나의 삶을 살던 때의 못된 집 주인 이름 델빈 무어헤드의 이름을 가져다 씀) 의 소년들 중 몇몇이 다 자라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남자아이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그리고 열아홉이나 스물로도 보이는 외모를 가졌지만 겨우 열네 살이었던 미치와 리타의 아들 레너드 리 포크가 동굴에 갇혀 혼자 간이침대에 누워서 하는 행동을 보고 리에게도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그 행동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고 흥분으로 인한 수치심, 수치심으로 인한 흥분도 느낀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상상과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수치스러운 도착증을 내숭의 허울 속에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옮긴이도 말했듯이 그런 것에 대해 서로가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 누구나에는 나도 분명히 속해있다. 나라도 이런 것들에 면역이 완전히 되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가 알겠는가? 내 마음은 나만 아는 건데.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면서 여성스러운 매력이 다분한 언니 조우니에게는 사랑한다고도 말하며 성추행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스킨십을 하면서 조우니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깡마른 아일린에게는 온갖 자존감과 자존심을 해치는 말을 함부로 하며 천지차이로 대하는 위선을 지니고 있고 모든 사람을 불신하는 늙은 주정뱅이에 두려움이 많고, 정신착란 증세와 비슷한 자신의 눈에만 보이고 들리는 악당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아일린이 인정했듯 아일린과 비슷하게 제정신이 아닌 굉장히 진부한 아버지, 찰리 던롭. 그리고 신을 믿지 않고 아이들에게 크게 애정과 관심을 쏟지도 않고 남편도 싫어하는 정신이 온전치는 못한, 혼나기 무서워서 도망치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술이 찢어지고 심하게 다친 딸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문을 닫아버린 공감제로인 어머니.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란 두 딸이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어린이 같은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육아태도로 인한 비뚤어진 인생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부모 탓이 가장 큰 건 맞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 본인의 탓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조우니는 좀 더 밝은 성격이고 독립적인 성격이라서 아일린보다 먼저 부모를 떠나 부모의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아일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럽고 먼지투성이에 쓸데없는 장식들로 가득 차있고 사방이 물건, 물건, 물건으로 우글우글한데도 완전히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유령의 집 같은 곳에 아버지와 단 둘이 남겨져 아버지의 가정부 노릇을 하며 화가 나도 화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가 순결을 지키는 이야기라든지 순결을 지키면서도 은밀한 욕구를 묘사하는 부분들이 약간 민망하기도 했고 그녀가 혐오하는 아버지나 스스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포자기도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생이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면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외모에 자신이 없으면서도 자기집착이 강하기도 한 그녀가 차디찬 고드름이 정수리에 꽂혀 멋지게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상상하는 이야기들이나 자신감이 없는데도 어디서 그런 대담함이 나오는지 천하무적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며 정교하게 물건을 낚아채 소매 안에 감추는 기가 막힌 좀도둑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비뚤어진 것들을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도 하고 무뚝뚝하게 구는 자신을 명랑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약이 올랐다며 혐오와 당혹감으로 대해야 마땅한 자신을 감히 예의로 조롱한다는 식의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부분, 첫 경험을 감정이 풍부하고 다정하고 잘생겼으며 말도 안 되게도 남몰래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강제로 당하게 되는 생각을 한다거나 혼자만의 공상 속에서 이미 자신의 짝, 동종의 영혼, 동지라고 생각하는 리베카에게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거리낌 없는 사람이고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아가씨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되고 싶은 모습들로 자신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들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특히 자기연민이 심하고 피해의식이 많으며 모든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런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열린 마음으로 읽으니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세상에는 흔한 말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공간이었던 다락의 간이침대에 누워서 애정도 연락도 거의 없는 언니가 죽는다면 어떨지 궁금해 하며 깡통의 초콜릿들을 꺼내 씹다가 포장지에 하나하나 다시 뱉어내는 행동도 왜 그러는지 궁금하고 이해가 안 됐는데 뒷부분 내용과 연결해서 알고 보니 할로윈 때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준비했다가 결국 그런 집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아 실망했을 텐데도 그런 표현 하나 없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 그제야 너무 이해가 됐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고 없기를 바랐지만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너무 역설적인 그녀의 독백이나 기분이 나쁠 때면 항상 그저 눈물을 삼키고 차가운 돌 가면을 썼다는 글들을 읽을 때, 개의 죽음이 사람의 죽음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모나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부터 다락방에서 혼자 숨죽여 울다가 이튿날 모나를 그녀 손으로 직접 마당에 모종삽으로 판 구덩이에 묻었던 과정들과 그 때 숨죽여 울며 제대로 다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일주일 후 어머니가 죽었을 때 비로소 터놓고 울었다는 것을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3년 전 급성신부전증으로 우리 곁에서 떠나간 우리 막내였던 포포도 생각이 나면서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대놓고 소리 내어 울며 애도했던 내 모습과 아일린이 더욱 대비되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짠했다.
그녀의 인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난 휴일이 크리스마스이고 크리스마스에 마을을 떠나는데 그녀에게 상투적인 자기연민과 같은 언짢은 감정을 일으키는 그 날, 그녀는 삶에 사랑과 온기가 부족한 것을 슬퍼하고 영화처럼 비참한 그녀를 건져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줄 천사를 보내달라는 소원을 비는 소위 크리스마스 정신에 매료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작 눈 덮인 관목들 위로 그녀가 좋아하는 땅콩 껍데기를 던진 장식 정도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전부라고 하니 이런 부분을 읽을 때 나는 표현을 절대 하지 않고 냉소적이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까지 한 그녀에게 동정심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그녀처럼 나도 데스마스크를 쓸 때도 있고 그래서 그 뒤로 숨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녀만큼 그렇게 자기 방어적이거나 자기 파괴적으로까지 하지는 않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속내를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었으나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아주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식일 수 있고 인생을 살면서도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마음이란 기복이 심하고 탐욕스러운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에서는 공감을 넘어서 나의 숨겨진 면모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나와는 다른듯하면서도 비슷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리베카처럼 그녀를 특별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아일린을 이용한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X빌을 혐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증을 가진 아일린. 그녀에게 함께 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주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가 되어줄 천사나 다름없는 리베카. 이런 인물구조가 아일린을 고향에서 떠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리베카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완전히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리베카는 본인의 인생에서 많은 주도권과 혜택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과 그래서 뿜어져 나오는 그녀 나름의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 과하여 약간의 오만이나 자만심이 생겨 리타 포크가 죄를 시인하게 할 수도 있고 교화시킬 수도 있다고, 그것이 바로 선행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아일린에게 했던 말 중 “난 선과 악이 있다고 믿지 않아.”라고 한 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 이 행동은 참 이율배반적이었다. 그녀의 충동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행동이 충분히 자신과 아일린에게 모두 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리나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아일린은 그녀의 삶이 이제는 귀중하다 여긴다. 노후에 그토록 거짓되고, 신경질적이고, 닳아빠진 사람이 바로 아일린이었을 때의 자신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아일린은 성숙해진다. 결국은 아일린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포크씨네 집 지하실에서의 경험이 그녀에게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게 하는 면역력을 키워줬다고나 할까. 나로서는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사건 이후의 삶이 천국으로 직진하는 길은 아니었으나 그 모든 헛디딤과 뒤틀림이 적절히 예비된 옳은 길로 들어섰다고 믿었다. 그러니 아일린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사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일린은 성숙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리베카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초대를 받은 이후 운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그 무엇도 그녀를 아프게 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그녀의 좋은 기분을 망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을 거라는 엄청난 자신감과 활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현관문 위쪽에 매달려 물을 뚝뚝 흘리는 얼음 단도들인 ‘고드름에 주의한다’는 표현을 쓰고 현관문을 가만히 잠그고 나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온갖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표정, 말투, 손짓 하나에도 신경 쓰고 고드름이 자신의 정수리에 꽂히는 것을 상상하던 그녀였고 그녀의 오래된 자동차 닷지의 조수석 사물함에 조그만 토템이자 행운의 부적이라며 현관 바깥에서 발견했던 공처럼 둥글게 꽁꽁 언 죽은 들쥐를 넣고 다니는 행동이나 핸드백에 든 총의 묵직한 무게감이 위로가 되었다는 그녀였다. 그런 식으로 병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까.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닫힌 문 뒤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 말이다. 아일린 본인도 한 때는 그랬지만 운명적인 계기로 그런 병에서 벗어났다.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이 없으면 얼마든지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이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를 계기로 나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생기면 그렇지 않아야겠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도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도록 해야겠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으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그럴 것이다.
아일린은 리베카와 첫 만남 이후 가졌던 사물함 앞에서의 대화만으로 자신의 세계는 탈바꿈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자신의 세계를 탈바꿈 시킨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아일린이었다. 물론 그런 탈바꿈이 가능하게 해주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런 인물은 자기가 상대방의 세계를 탈바꿈 시켜야겠다는 의도도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자주 있기에 그런 존재는 바로 자신이 맞다. 아무리 주위에서 새롭고 더 나은 세계로 들여놓으려고 해도 본인이 깨닫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일린은 이미 마음속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리베카가 일깨워 줬다고 생각하지만 아일린 자신의 의지와 용기, 결단력으로 이뤄낸 탈바꿈이었다. 만일 아일린을 만날 수 있다면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말들은 나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아일린, 당신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너무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졌었음에도 좌절하거나 자신을 파괴시키지 않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 셀 수 없는 상상, 공상, 환상, 거짓말들로 자신을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했던 의지력도 강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는 쉽게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자기비관을 하거나 갇혀 있고 고통 받고 학대당해서 진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환상을 품었다고 자책이나 후회를 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죠. 당신도 인정했듯이 다 지나고 나면 누가 누구보다 더 힘들었는지 헤아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법이잖아요. C’est la vie. 그런 게 인생이죠. 그걸 깨달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럴 수 있듯이 그걸 지혜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실천한 사람도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었던 만큼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에요. 50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며 나름의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 당신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충분히 잘해왔다고 토닥이며 위로도 하고 박수치며 축하도 해 주고 싶어요. 고생 많았습니다, 아일린! 당신은 충분히 잘해왔어요! X빌에서는 죽은 사람, 유령, 길 잃은, 영혼, 실패한 존재로 남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이 책 속에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지닌 불완전한 존재로, 깨닫기 전에는 항상 격분했고 부글부글 끓었으며 내달리는 생각과 살인자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삶의 진통을 겪었던 작은 인간으로 살았으나 진정한 자신을 보고 깨달은 후에는 지혜로운 존재로 남아있어요. Per aspera ad astra. 가시밭을 뚫고 별까지.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나 자신과 내 인생에게도 위로와 축하를 보낸다.
X빌을 떠나오는 길에 리타 포크를 닷지 안 옆자리에 앉혀 놓고 자신을 버리며 걸어가던 새벽에 만난 사슴 한 마리. 그 사슴 앞에서 눈물이 차올라 울었던 아일린과 함께 나도 눈물지었다. 그리고 눈물을 손으로 문지르고 얼굴에서는 피를 닦아내고 계속 걸어갔다는 아일린의 확신이 있던 발걸음에 나도 결연해졌다. 얼마나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힘차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에게 책 읽는 내내 생기지 않았던 존경심도 생겼다.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스쳐지나가는 옛 세상이 그녀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는 결말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정말 상상 불가, 이해 불가인 이 소설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리도 술술 읽히고 불편하면서도 공감이 되기도 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하기다 힘든데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부드럽게 읽힐 수 있던 걸까? 아일린이 겪는 고통과 혼란을 우리가 그대로 겪을 일은 사실 흔치 않다. 그러나 아마도 작가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이 아일린은 말없이 견디고 가면 뒤에 숨으며 참고 인내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고 알게 하고 함께 견디는 ‘벌’을 주고나 함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살아가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상상, 환상을 하고 남몰래 역겨운 생각들을 하면서 겉으로는 내숭을 떨며 본인은 아닌 척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내리는 ‘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도 혼돈과 혼란을 겪던 사춘기 때와 혈기 넘치던 20대 중반까지 했던 생각들,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역시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고 극단적이고 부끄러운 것들이 많다. 그 시기를 아일린은 가정환경 등에 의해 스물네 살까지 연장해 겪었던 것뿐이다. 솔직히 나도 여전히 같다. 예전보다 덜하지만 가끔은 성나있고 광기 어리고 무모하고 막연하다. 지혜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지는 못 했다. 50년이 지나 일흔이 넘어서나 생길지 모르겠다, 리나처럼 통찰과 지혜가.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자기 편의대로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기억, 유령, 두려움’. 이런 것들에 압도되거나 조종당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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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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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ankind is nothing. Nature is everything. 기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정점에 있는 생물종이 아니야. 다른 생물들, 더 크고, 더 작고, 더 느리고, 더 빠르고, 더 오래되고, 더 젊고, 더 강한 생물들이 지배하고, 공기를 만들고, 햇볕을 먹지.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패트리샤 웨스터퍼드가 이익 기업의 경쟁적인 개벌의 중단을 결정하는 법정에서 증인의 신분으로 판사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불현 듯 떠올랐던 그녀의 아버지가 했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책에 적어 놨던 영어 문장이다. 현재 나의 메신저 상태메시지이기도 하다. 초반부 내용 중 요르겐 호엘의 장남 존 호엘이 매달 21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파수꾼 밤나무의 전신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프랭크 호엘과 세 번재 호엘가의 사진사가 된 그의 아들 프랭크 주니어의 의미 없는 사진 찍기 의식이 이어지고 또 그의 아들 에릭이 찍어왔던 그 사진들은 76년 동안 매달 한 장씩 찍혀서 창작자 4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마술 같은 영화를 보여주는 5초짜리 필름이 되어 세기의 4분의 3을 모두 담고 있는, 언제나 질리지 않는 유일한 ‘농장 보물’이 된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니컬러스 호엘이 소유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키 큰 나무를 1년 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의 전율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부분을 읽은 이후로 나도 매일(일요일은 제외) 같은 시간에 키 큰 나무의 똑같은 부분을 찍고 있는데 사진들을 모아놓고 보면 나뭇잎의 색깔이나 위치들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그 사진들은 내 휴대폰 속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인 ‘생명’, ‘숲’, ‘향기’, ‘나무들’, ‘40억 년의 생명체’, ‘존재들’, ‘그들’, ‘무언가’, ‘아주 단순하고 자명한 것, 분명한 것’, ‘이것’, ‘모든’, ‘두 개의 영원’인 ‘지금’과 ‘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과 결합’, ‘감탄’ 중에서 내 첫 아기의 태명인 ‘감탄’이라는 단어가 ㅡ첫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내 감정이 감탄스러워서 감탄이라 지었다.ㅡ 정말 너무나 자주 나와서 볼 때마다 더 반가웠고 더 뜻깊었고 내게 작지만 큰 변화를 준 책이다. 최근 신간들 중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기에 한번쯤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알라딘 이벤트인 독서리뷰대회에 참가하려고 바로 구매한 책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추측할 수가 없었다. 표지가 산뜻하고 깔끔하다는 생각밖에는. 저자소개에서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거대한 삼나무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것과 원시림이나 숲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분을 보고서야 자연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오버스토리,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 조감도. 아! 그래서 책 표지가 그랬던 거구나! 흔히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먼저 보라고들 하는데 나는 누구보다 나무를 먼저 볼 줄 알고 나무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읽고 ‘부디 숲을 먼저 볼 줄 알고 크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에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기 시작했다. ‘뿌리’에서 시작해 ‘몸통’과 ‘수관’, 그리고 ‘종자’로 이어지는 책의 구성은 순서대로 흐르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뿌리’에서 등장인물인 9명(짧게 이름만 쓰고 줄임말은 줄여 쓰겠음. 닉, 미미, 애덤, 레이와 도러시, 더기, 닐리, 팻, 리비)의 부모나 조부모들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역사와 성장배경, 주변 인물들을 알려주고 나서 ‘몸통’과 ‘수관’, 그리고 ‘종자’에서 그 모든 인물들의 모든 상황과 운명들이 마치 최근의 우주 평행이론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의 평행구조로 번갈아가며 나오고 서로의 관계가 아주 똑같은 형식은 아니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와 비슷하게 원이 열렸다가 닫혀가며 환원되는듯한 구조로 짜여 있고(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그러다가 모든 것이 있었다. 꼼짝하지 않는 나무 몸통 기단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아무것도 아니다. -> 지금은 모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여전히’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이것’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것’은 우리가 눈가리개를 벗지 못하고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멸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 그리고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있는 그대로 놔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숨겨진 메시지 : 여전히 한동안은 태초부터 생명이 말해왔던 단어인 ‘자연’) 뒤로 읽어 갈수록 퍼즐조각이 맞춰 지듯이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인 얼개를 갖추고 있다. ‘사탄탱고’ 이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났던 책들이 있다. ‘살아있는 숲’이 의지가 있고 ‘빌 네이지에’의 말 중에서 나무는 당신을 본다. 당신의 말을 듣는다. 와 ‘생명은 미래에 말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라는 부분에서는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가 생각났고, ‘아라한’과 ‘왕유’ 이해하기 힘든 시에서 이어지는 낚시꾼의 노래와 반지들의 이야기를 볼 때는 ‘이외수’의 ‘벽오금학도’가, 식물녀 패티가 아버지에게서 열네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변신 이야기’ 삭제판을 읽으며 인간들의 엄청난 위기 앞에서 다른 생물들이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야성을 재흡수하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꼈던 부분과 원시림과 문명의 재앙에 대한 우려와 경고에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 떠올랐고, 또 그녀의 가설에 대한 학계의 공격과 비난 때문에 힘든 시절을 겪는 모습이나(패티가 ‘가장 좋아하는 포유류’인 사랑하는 남편 데니스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유일한 것, 독버섯으로 요리를 해서 거의 입에 넣을 뻔 했던 일) 그 이후 가설이 입증되어 명성을 얻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과학적 패러독스’인 ‘열광적인 지루함’을 친구로 삼고 나무와 숲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연구의지를 보여주는데 거기에서는 ‘호프 자런’의 ‘랩 걸’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더기가 절름발이 상태로 퇴역한 참정공군의 신세로 옛 중대의 친구의 동정으로 ‘문명의 외상장부보다 긴’ 겨울을 보내는 로키산맥의 등줄기 위, 아이다호폴스 근처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는데 농장의 말들에게 종종 읽어주었던 글 중 ‘야만은 미끄러운 비탈길’이라는 문장을 보고 예기치 못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미끄러운 비탈길이 있다면 요즈음에는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그것은 문명의 길이므로 야만은 그 미끄러운 비탈길을 그대로 보존해 놓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셈페르비렌스인 미마스를 전동톱으로 잘라내려고 하는 낫을 든 죽음의 사신들 같은 벌목꾼들에게 “우리는 이곳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원주민이 되어야 한다고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이 책이 생각났다.
특히 ‘숲은 생각한다’는 내가 읽었던 최초의 자연과 숲,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에 관련된 책이었고 저자가 인류학자라서 그런지 매우 진지한 책으로 다 읽고 음미하고 리뷰를 쓰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사고력이 확장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오버스토리’를 읽을 때에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들도 꽤 많았는데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얼마나 생생하고 상상력을 북돋아 주는지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웰메이드 SF영화가 펼쳐지는 듯해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서술방식이 간결하면서도 특이하게 현재시제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책 속의 인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인물과 함께 있는 것처럼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미마스에서 함께 풍경을 관찰하던 닉과 리비의 소감을 표현했던 ‘풍경이 가슴을 쪼개는 것 같다’, ‘말문을 잃을 만큼 멍청하게 만드는 창조물들의 뒤엉키고 풍부한 안정감’이라는 글에서는 내 눈 앞에 가슴이 쪼개지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듯 했다!) 그리고 디테일함에서도 매우 새로웠다. 도러시가 외도하던 당시 합창 연습을 하러 간다며 팔에 들고 있던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악보집의 제목을 팔에 가려 두 개로 쪼개져 보이는 대로 표현한 부분(BR MS, Ein Deu equiem)이 참신했다. 그리고 뇌졸중으로 자신 안에 갇힌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레이가 십자말 퍼즐을 시작하고 성자 같은 인내심으로 아침에 못 풀었던 낱말 퍼즐을 잠시 나갔다 온 도러시에게 간신히 움직이는 손으로 몇 분간 끔찍한 몇 개의 선으로 ‘위로가 되는 싹의 귀환’의 답인 ‘releaf(새잎)’를 써낸 부분에서는 작가의 독창성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나도 도러시 못지않게 쾅,하고 감동을 받고 기뻐했으며 소름도 돋았다.
이 소설에서 내가 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것도 많아 신선한 즐거움도 얻고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미미의 ‘옻칠한 상자’ 속 두루마리 안에 살면서 인생이라는 문제를 푸는 작은 부처들인 루오한(아라한), 졸만레(졸업할 때까지만 레즈비언의 줄임말ㅡ확실히 동양문화에서도 이것은 인정하기에 조금 민망하기는 하나 자명한 사실), 1200년 된 왕유의 시, book의 어원 beech(너도밤나무), 드립라인(drip line), 아메리카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마치 ‘Who cooks for you?’로 들린다는 것, 그리스어 xenia가 환대라는 뜻이라는 것, 나무 tree와 진실 truth의 단어 뿌리가 같다는 것.
이외에도 이 책에는 각주가 따로 없어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단어들을 기록해 본다면(개인에 따라 아주 지루할 수도 있을 부분임), 아린 : 싹 비늘, bud-scale, 슬래그, ‘모두 베기’로 순화된 개벌, ‘보르헤스’의 문장, 시과 : key fruit, 특히 조사하다가 가슴이 뛰고 왠지 모르게 눈물도 나고 심지어 소름도 돋았던 ‘존 뮤어’(존 뮤어 트레일을 도보하는 꿈을 꾸게 해 준 자연의 수호자), 관거 : pipe, culvert, 구과 : cone, 조사하고 나서 꼭 충북 제천 측백나무 트레킹도 가보고 싶게 만들었던 측백나무, 에일병 : 에일 멕주, Ale(Lager와 맥주의 양대산맥), 놀리 티메레 : 두려워하지 마라, Noli timere(성경에도 나왔고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유언이기도 했다고 함), 조사해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는 항복응력 : yield stress, 이 독서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내 목에 걸려 있는 파촐리 오일 목걸이를 차고 있게 했던 파촐리 오일 : patchouli, 책을 읽는 동안 예기치 않은 집안 일로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겼을 때 나의 타오르는 분노를 끊을 수 있게 만들어준 뜻밖의 문장인 ‘라 루타 노스 아포르토 오트로 파소 나투랄 : 길은 자연스럽게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준다(회문)ㅡ이 문장이 왜 분노를 끊게 도와줬는지는 의외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읽으나 저렇게 읽으나 똑같네?‘라는 생각이 ’이런 일 가지고 내가 화내봤자 바뀔 건 없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ㅡ 스코빌 : scoville, 가고일 : Gargoyle, 용혈수 : Dragon’s blood tree(드라세나 드라코 : Dracaena draco), 서지 : serge, 주상고행자, 르포르 골절 : Le fort fracture, 위자 플랑셰트 : Ouija planchette, 팔라펠 : Falafel, 리어타드 : leotard, 치코 멘데스와 왕가리 마타이, 평소에 먹으면서도 어디서 생기는지 궁금해 하지조차 않았던, 알고 보니 멸종위기 식물이었던 브라질너트나무 베르톨레티아, 판근 : buttress root, 코블러 : cobbler, 알도 레오폴드 : ‘대지윤리ㅡ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연에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생명 공동체다.’를 만들어낸 인물, 가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걸 보고 직접 가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도서관’ 이런 정보들을 검색하고 알아보며 또 한 번 ‘지식과 정보’라는 것은 정말 끝이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우주나 생명의 본질에서는 벗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위에 말했던 9명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어떻게든 ‘연결과 결합’이 된다. 그것도 아주 밀접하게.
맨 처음 니컬러스 호엘은 나중에 올리비아 밴더그리프에게 ‘파수꾼’이라는 애칭을 얻는데 호엘가 밤나무가 명소가 된 후 농부들이 ‘파수꾼 나무’라고 불렀던 것과 연결이 되고, 식물녀 패티가 사랑하는 작가 뮤어가 했던 말인 “The Mountains are calling and I must go.”를 인용하여 패티가 사랑하는 또 다른 한 사람 남편 덴과 떨어져 살면서 ‘숲은 공동체이며 지하의 시냅스를 통해 함께 돕고 서로를 고치며 형성하며 숲은 마치 뿌리가 커다란 한 그루의 슈퍼 나무’라는 확신에 대한 연구를 이끄는 소명을 ‘숲이 부르고 있는 그녀는 가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연결시킨 부분,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의 도서관’에서 애덤의 눈에 들어왔던 작은 책 한 권 ‘곤충에 대한 최고의 가이드’가 레이먼드 B. (레이 브링크먼을 지칭)라는 팔머 필기체로 쓰여 있었던 부분, 죄수번호 571번 더기가 심었던 ‘더글라스전나무’를 사랑하는 식물녀 패티, 생명보호군에 들어갔던 닉과 올리비아가 60미터짜리 미마스에 올라가는데 미마스는 셈페르비렌스나무이고 닐리가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계속하다 최종적으로 만들어 낸 게임 지배 8의 영감을 주었던 나무도 셈페르비렌스인 점.
저자의 글들 안에는 거의 매번 정확한 수치를 나타내는 단위들이 많았다. ㅇㅇ제곱킬로미터, ㅇㅇ킬로미터, ㅇㅇ미터, ㅇㅇ센티미터 등. 그리고 글들이 재치가 넘치고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거기에 감동도 더해주는 데다 기가 막힌 비유들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책의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지 모른다. 미미 마의 아버지가 말해주는 대목에서 미미가 세 그루 나무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 살고 있다는 설정을 세 자매끼리 하나씩 나눠가진 조그만 새알 같은 세 개의 옥반지에 아주 세밀하게 새겨진 나무 세 개로 설명하는 것(‘과거’는 미미의 뒤에 있는데, 그것은 일곱 번째 하늘의 경계에 있으면서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생명의 나무인 로트나무, ‘미래’는 미미의 앞에 있는데, 먼 동쪽에 있으며 생명의 영약을 지키는 마법의 뽕나무 푸상, 마지막 ‘지금’은 미미 주위 사방에 있으며, 가늘고 곧은 소나무로 미미가 어디를 가든 따라가는 나무ㅡ이것도 미미의 이야기 초반부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뒷부분에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알게 된 내용)과 시간이라는 것이 동심원들로 퍼져서 미래가 미미의 위와 뒤로 쌓인다는 표현은 정말 판타지 소설 같았고 영화 ‘인터스텔라’도 떠올랐다. 낚시하며 인생을 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나도 아주 어렸을 때 아빠와 바다낚시를 갔던 추억을 되짚으며 흐뭇했다.
저자가 문학에 관심도 많고 깊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도 많았다. 월트 휘트먼의 ‘긴 화물열차 같은 연’을 가진 시 ‘풀잎’부터 소설 속 닐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장; 모든 인간은 어떤 아이디어든 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인간이 그렇게 하는 미래를 믿는다., 더기가 목장 도서관에서 찾아 말들에게 읽어주었던 ‘길가메시 서사시’,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잘랄루딘 루미’의 등장, 그 위대한 칸트의 주장을 쓰고 그에 대해 감히 반박하는 문장을 쓴 것, 윌리엄 블레이크와 W.H.오든의 인용구들, ‘사람들의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던 밀그램과 타고르, 소로 등의 책들, 애덤이 ‘캐스케디아, 자유 생태 지역’으로 닉과 리비를 찾아가 합류하며 작은 의식을 치를 때 한때 애덤이 받아 적었던 문장인 알도 레오폴드의 격언의 일부인 행위는 옳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리그베다.(이들 중 내가 읽어본 것이라고는 풀잎,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잘랄루딘 루미의 시 몇 편 정도다.)
나의 공감을 이끌어낸 내용도 많았다. 그는 미래의 우주 지배자들(내 생각에는 잠재력을 발휘해 꿈을 이룬 사람들)이 인간 잠재력의 황금기가 10년 전에 지나갔다고 믿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혁명가들(내 생각에는 말로는 혁명을 외치지만 정작 인간 잠재력의 존재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사회화 되면서 믿지 않기 시작한 사람들)과 학교에 함께 앉아 공부한다며 학교는 시간이 엄청나게 왜곡된 공간이라 보는데 나도 그 의견에 깊은 공감을 했다. 애덤이 개미로 실험을 하는 장면들을 보고 나도 개미가 줄지어 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왠지 손가락으로 경로를 그어보고 싶어서 긋는 순간 뒤의 개미들이 갈 방향을 못 잡는 걸 보고 그들끼리 호르몬 등의 화학작용으로 의사소통하나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났고, 애덤이 개미 군집의 행동과 지능에 관한 관찰기라는 주제로 과학 박람회에 출전했는데 넉 달 동안 개미 등에 매니큐어로 점을 하나하나 찍으며 관찰하고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무언가를 발견할 때까지 작업 했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믿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메달조차 받지 못해서 눈물에 고였던 그를 보고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메뚜기 관찰 과제를 오랜 시간에 걸려서 정말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며 일기장에 그려 갔는데 선생님은 끝까지 우리 엄마께서 숙제를 대신 해 줬다며 내가 그렸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던 데다가 반 아이들 앞에서 숙제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거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억울해서 울었던 기억도 났다. 패티가 거대한 숲의 부름에 이끌려 커다란 서양측백나무를 만나고 그 나무와 대화를 하며 그의 선물에 고마워하다 마지막에 나무가 다시 자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닉과 올리비아가 공짜 나무 작품으로 만나 함께 숲의 보호자들인 생명 보호군(Life Defense Force, LDF)을 찾아갔을 때 1월의 밤 야외에서 2인용 천막 안에 둘이 누워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둘인데 닉과 올리비아, 파수꾼과 메이든헤어, 이 완벽한 4인조라고 표현한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결혼한 지 갓 한 달 된 내가 명심할 수 있을 만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한다. 닉과 올리비아는 깨닫기 전의 원래 자신들인 ‘미숙한 나’, 파수꾼과 메이든헤어는 새롭게 태어난 영혼들같은 존재인 ‘성숙한 나’. 결혼도 미숙한 나와 너, 성숙한 나와 너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리고 라비노프스키 교수가 방관자 효과를 몸소 보여주며 남긴 마지막 교훈이었던 ‘심리학을 배우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무용지물’에도 크게 동감한다. 왜냐하면 심리학을 배우고 접해본다 해도 매 순간 다가오는 위기와 고난 속에서 옳은 방향을 정하는 것은 매번 실수투성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바로 잡힐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항상 선량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책 중간 중간에 아무리 맥락을 다시 뒤져보고 구글링을 해 봐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미미의 가족들이 캠핑하러 가는 길에 조용한 자동차 성자의 날들에 치매가 시작된다는 부분(갑자기 웬 치매?), 미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 카먼과 어밀리아와 아버지 유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셋만 남자 카먼이 말한다는 부분(셋만 남자 카먼?), 세 자매를 세 명의 오페라 여주인공이라고 표현한 부분(오페라?), 미미의 엄마가 아버지의 자살 전 통화로 했던 말들 중 ‘살베 필리아 메아, 에고 라티남 디스쿤트, 비타 에스트 수플리키움’(인터넷을 죄다 뒤져봐도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애덤을 심리학의 길로 인도하고 제자들을 상대로 방관자 효과를 몸소 실험했던 루빈 라비노프스키 교수와 그의 대단히 우아한 책의 존재, 그리고 책에 나온 퀴즈 2개의 답,
계몽적인 면도 크다. 미미 마가 비인간과 소통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했는데도 행복한 창조자 역할을 했던 미미의 아버지 ‘시 수인 마’였던 ‘윈스턴 마’가 ‘나의 때가 오고 있다’며 탕 소리와 함께 홀로 불가능한 여행을 떠나고 뇌의 일부를 정원의 돌과 나무 몸통에 부드러운 조직 조각들로 남기고 사랑을 위한 자살의 피로 땅 구석구석의 열매를 얼룩지게 하는 바람에(어떤 계기였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태어났던 곳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을 살다 보니 새로운 미미가 되어 사회적인 통념과 고정관념을 그대로 순종하는 섬뜩한 스텝포드와이프 분위기를 즐기며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다가 격렬한 업무적 성공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창문으로 ‘자신의 숲’을 내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숲이 벌채되기 전 ‘시청에서의 회의! 5월 23일!’이라는 표지판을 읽게 되는데(그 표지판은 더기도 읽는다.) 표지판을 본 다음 날 이미 숲에는 널따란 청회색 적란운만 남아있다.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이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곳에 간 미미는 갓 잘라낸 그루터기에 앉아 나이트에 빙 돌려가며 두꺼운 대문자로 ‘자는 동안 잘렸다.’라고 적는 더기와 만나 300달러쯤 혹은 달릴 수 있는 차를 가진 미미는 그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인간의 교활함과 인생에서의 부당함(잘못된 사람들이 모든 권리를 갖고 있기에), 그리고 오래된 상실감으로 ‘진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주요 인물 5인 중 하나가 되었다가 올리비아의 죽음을 똑바로 지켜보던 그녀는 방화사건 이후 죽어가는 사람의 눈동자를 봤던 경험으로 산 사람의 눈동자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대화하게 되는 상담가 주디스로 살아가다 뉴스로 애덤의 형기소식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할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대신 소리 없고, 나무로 되어 있고, 사방으로 퍼지는 대답만을 하는 존재와 이야기하는 늙은 여자가 된다. 이 대목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정말 나무가 되어버린 건지, 그녀는 과연 유죄인지 무죄인지였다. 아마 나무가 되고 싶은 그녀의 소망일 테고 당연히 무죄다. 유죄라면 사회와 이익기업과 법이 만든 유죄일 뿐이다.
애덤 어피치는 곤충, 화석, 연못 생물체, 별, 바위와 광물, 파충류와 양서류에 대해서 관심을 쏟고 온갖 자연의 견본과 수집품을 모으기도 하고 개미에도 빠져서 개미의 영리함에 존경심도 품으며 비인간과 소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친구들과 그의 누나가 하나씩 차례로 자연에게서 멀어져서 사회생활로 넘어가는 것도 보고 과학 박람회에서의 경험으로 번뜩이는 창의력이 없어지는 순간들을 겪고 그가 읽었던 최고의 가이드들을 버리고 전시품 보물들도 어린애 같은 물건들이라며 부숴버린다. 어떻게 보면 잘못된 사회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번에 알라딘 이벤트 당첨으로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예매권을 받고 관람했던 영화에서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재능 있는 아이들이 보호 등의 이유로 어른들과 사회로 인해 창의성이 죽어가는 것 말이다. 게다가 저자도 썼듯이 땅에 거꾸로 떨어진 씨앗은 똑바로 될 때까지 뿌리와 줄기가 커다란 U자 형태를 그리며 돌아가는데 인간은 자기가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 방향으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있기에 소설이지만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더 안타까웠다. 이렇게 사회화가 제대로 되는 바람에 ‘편견남’이라 조롱을 받는 애덤은 인정받는 교수도 되고 명성과 부도 얻고 아내와 아이도 갖게 되는데 심리학 논문 준비를 위한 실험을 위해 60미터 위의 거대한 플랫폼 미마스에서 생활하는 메이븐헤어(올리비아)와 파수꾼(닉)을 관찰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미마스에서 짧은 하룻밤을 함께 지내는데 그 짧은 하룻밤이 애덤에게 대부분이 합의하는 현실(교육되고 학습된 현실)에 면역을 가진(야생의, 자연 그대로의)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가 이해해야 할 ‘비밀’(그들은 후에 미마스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더 암울하고 단호하기는 하지만 단결하여 응집력을 갖추고 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각자의 나무 이름도 있다. 이런 그들을 보고 애덤은 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회복력ㅡ회복탄력성, 내재성ㅡ인내와 끈기, 근원력ㅡ생명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야 말로 인류와 지구, 환경과 우주에 관심을 갖고 싸워나갈 수 있는 사라들인 것 같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고 진실을 덮고 있는 눈가리개를 풀게 해서 애덤은 자연의 부름에 순응한다.(올리비아의 방화사건 이후, 죽은 올리비아를 제외한 주요인물 4명ㅡ메이든헤어(올리비아), 파수꾼(닉), 뽕나무(미미), 더그전나무(더기), 단풍나무(애덤)은 20년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던 중 뜻밖의 사건(더기가 지내고 있던 유령마을의 방문자 센터로 찾아온 여름 방문객들 중 한 젊은 여자 앨레나가 더기의 숙소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녀가 밤중에 더기가 방화사건이 있던 날의 기억들을 직접 꼼꼼하게 쓰고 밀봉해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둔 노트를 읽고 신고하는 사건)으로 더기가 방화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애덤을 공범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애덤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대량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되어 살인자, 국내 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70년 더하기 70년의 형기를 받게 되는데도 억울해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70년 더하기 70년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그만큼 애덤 자신이 뭘 의미하는지 배우고 자신의 인생이 가치가 있었는지, 어떤 가치를 따라갔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 있다며 자조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무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던 레이 브링크먼과 도러시 카잘리는 각자의 전문직을 가진 채 아마추어 연극단 배우를 하다 순정남 레이와 감성녀 도러시는 결혼해서 함께 6년을 살다 헤어졌다가 죄악 속에 함께 살자는 레이의 편지를 받고 그녀는 다시 약혼을 한다. 재결합한 후 레이는 도러시에게 식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앞으로 배워나가면서 함께 정원을 채워가는 것들을 바라보자고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못하다가 도러시의 외도, 그걸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레이, 독립적인 성향을 주장하는 논리적인 도약을 할 줄 아는 멋진 여자 도러시와 그것을 깨달을 줄 아는 멋진 남자 레이의 대화, 갑작스러운 레이의 뇌졸중과 중증마비, 미래는 약속한 남자와 지내며 역겹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레이의 병간호를 끝까지 해내는 도러시, 불완전한 조합으로 둘이서 그들의 정원에 심어진 스트로브잣나무를 알아내고 개간된 땅에 숲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훌륭하고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책 문장을 보고 잔디를 깍지 않아 집의 사방에서는 ‘야생’이 다가오고 있어 거의 일흔 된 도러시와 그녀의 남편 레이는 자신들만의 삼림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잔디를 깎으라는 시당국의 경고와 협박에도 초연하기만 하다. 그러다 레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도러시는 그녀만의 속도로 곧 레이를 따라갈 거라고(아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말한다.
진짜 실험 때문에 죄수 역할을 했던 건지 아직도 헷갈리게 하는 죄수번호 571번 더글라스 파블리첵. 그는 C-130 기상적재사가 되어 캄보디아로 일일 운반을 하러 가는 길에 수송기가 피격되는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낙하산을 타고 하나의 반얀나무(하나의 우주, 300개의 굵은 몸통과 2,000개의 얇은 몸통으로 이루어진 타원형 숲이 된 하나의 무화과나무) 안에 추락해 목숨은 구하지만 절름발이가 된다. 그렇게 더기는 나무에 목숨을 빚지게 되어 후에 서쪽으로 향하는 길에 숲으로 들어갔다가 마주치게 된 골짜기의 개벌작업에 분노를 느끼고, 그가 말들에게 읽어주면서도 그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말(메시아가 왔을 때 당신이 손에 묘목을 들고 있다면, 우선 묘목을 심고 그다음에 나가서 메시아를 맞이하라)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가장 귀중한 목재용 나무인 ‘더글러스전나무’를 심어서 개벌 현장의 모습을 지우는 일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 붓게 된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 나무를 심어봤자 이익기업에게는 미래에 나무를 더 개벌할 기회만 늘릴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좀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로 하고 올리비아와 함께 ‘캐스케디아, 자유 생태 지역’으로 가서 방화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현장에 있던 주요 인물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중에 미미를 몇 번 찾아갔다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다 위에 썼던 여름 방문객인 젊은 여자 앨레나에 의한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인내심은 모든 좋을 것들을 만드는 기반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구자라트인 아버지 바불 메타와 라자스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닐리 메타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인간이 다른 생물체로 바뀌는 것을 돕게 되는 소년이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에 사는 부유한 가족이다. 어릴 때 아빠에게 선물 받았던 초기 컴퓨터 키트부터 시작해 현재 컴퓨터 용어로 슈퍼컴퓨터의 딥러닝을 프로그래밍하고 회사를 차리고 자신이 중추가 되어 팀원들과 함께 거대한 가상의 대륙들을 설계하는 코딩까지 섭렵하는 그는 18개월마다 칩의 트랜지스터가 두 배가 되는 ‘무어의 법칙’의 속도도 느리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성적인 프로그래머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열한 살 때 학교에서 길핀 선생의 문학 수업 시간에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위한 연 프로그램 공책을 연구하다 길핀 선생에게 노트를 뺏기고 분노에서인지 실수 때문인지 모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 이후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데 그는 생각의 기묘한 지대를 영원히 탐험하는 우주선의 선장 자리라 생각한다. 끝내주는 의자에 앉은 비쩍 마른 인도 꼬마는 열두 살 때부터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를 배회하고 다니며 코딩도 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려 다닌다. 그러다 스탠퍼드 안뜰에서 종교적이고 짙은 초록빛의 환영을 만나는데 그것은 그를 불구로 만들었던 삼나무의 환영이었다. 이 삼나무들은 천 년은 걸릴 계획을 진행 중인데 닐리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그렇게 그는 환영과 환상에서 영감을 받아 게임의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더하며 승승장구 한다. 닐리는 존재들에게서 계속 영감을 받아 그들의 존재를 그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인물들 중에 회의적인 인물이 바로 닐리인데,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위대한 자연의 힘을 게임으로 연결시키고 가상의 대륙을 만들고 커뮤니티 등을 만들어 나가는 성장게임으로 연결시키는 부분은 의아했다. 현대시대를 어느정도는 반영하고 싶어서 설정한 인물인 것 같기는 했다.
듣기도 말하기도 힘든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그녀의 어눌한 모든 말들과 그녀의 나무 세상을 항상 이해하는 빌 웨스터퍼드의 딸이다. 그녀는 인간의 지혜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너도밤나무의 빛보다도 적다는 사실에 진짜 기쁨을 느끼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 아니라 ‘겸손함과 관찰뿐’이라는 것을 알고 성인이 된 그녀의 일자리를 뺏은 야생을 싫어하는 성나고 겁먹은 사람들 모두를 용서할 줄도 알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며, 멈춰서 40억 년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이 보고 있는 게 뭔지 ‘정말로 볼 줄’ 아는 식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소녀다. 그녀는 자신의 책 ‘비밀의 숲’의 서두에 밝혔듯 나무는 15억 년 전에 인간과 둘로 나뉘었지만 지금도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하지만 나무와 인간은 여전히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한 그루의 슈퍼 나무와 같은 한 몸이기에 공동체로서 공기 중으로도, 지하의 시냅스를 통해 땅 속으로도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과 온화한 정글에서 보이지 않게 뒤엉킨 수백만 가지의 순환고리는 그 순환을 지속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죽음을 거래하는 중개자들(지의류 무리, 지하의 들쥐, 균류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밝힌다.(여기서 죽음도 삶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됐다. 죽은 나무를 없애면 안 되는 이유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는, 그래서 자연이다.) 마지막 인물이자 정말 중요한 인물인 올리비아 밴더그리프. 뿌리에서 가장 짧게 설명된 인물이고 가장 식물과 관련 없어 보이고 허무한 결말로 끝나서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한 그녀. 스스로 말하기에 난잡한 생활을 했던 그녀는 이혼 후 얼마 안 되어 감전사고로 죽었다 살아난다. 그 이후로 몸통에서 그녀는 방화사고로 화장당해 죽었는데도 몸통, 수관, 종자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며 계속해서 다른 인물들에게 환청처럼 메시지를 보내 위험을 피하게 해주기도 하고 영감을 주는 그녀. 생명체의 40억 년 동안에 가장 경이적인 산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그들, 창설자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부름을 받고서, 끝없는 자기애를 졸업하고 목적 없는 인류와 사랑에 빠진 상태로 아주 미약하게 시작한 그녀의 활약은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 주인공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미마스를 지켜내려 하고, 빛의 존재들이 그녀를 이끌었던 공짜 나무 작품을 만들던 닉과 더기, 애덤, 그리고 미미까지 목재회사들의 탐욕을 저지하려는 운동에 합류하게 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은 아마도 훌륭한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힘일 것 같다. 처음에 그녀가 감전사로 죽었고,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되살아나 모든 것이 존재했다. 빛의 존재들, 40억 년 된 가장 경이적인 산물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렇듯 9명의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 다른 개성과 재능, 그리고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동체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뿌리와 가지를 전 세계에 뻗고 이어나가는 한 그루의 슈퍼나무처럼 말이다.
오래 걸렸던 독서리뷰를 끝내가는 시점에서 앞으로 내 인생에서도 잊지 않아야 하고 내년 초쯤 태어날 첫째 아이, 그리고 계획 중인 둘째와 셋째에게도 잊지 않도록,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고 있는 남편도 잊지 않도록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닉과 올리비아가 인정했듯이 가장 강한 마약이고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되 그 사람들이 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하더라도 바뀌지 말 것. 자연의 부름에 따라 바뀌는 것은 받아들일 것. 그렇게 다른 존재가 될 것. 나무의 지혜와 인내와 단순함을 알고 사랑할 것. 소로가 말했듯이 오래된 나무들을 우리의 부모이고, 어쩌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일 것이기에 자연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면 더 많은 인류애를 키울 것. 관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세 단어, the giving tree;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잊지 않을 것. 통제는 죽인다, 연결은 치유한다는 것, 집(자연, 숲)으로 오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한다는 것을 알 것. 잘랄루딘 루미의 시처럼 현상이나 일부나 껍데기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과 전부와 영혼에 눈을 돌릴 것. ‘유용하다’는 것은 바로 ‘재앙’이라는 것을 유념할 것. 궁극적인 계명은 자기 자신을 돌봐라. 네 유전자를 보호해라. 하나의 자식, 두 명의 형제, 혹은 여덟 명의 사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는 것과 세상은 자신의 종보다 더 앞세워야 하는 행복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 내일의 세계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일이며 우리가 볼 수도 있었던 것들이고 우리가 ‘여전히’ 줄 수 있었던 것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유용함이라는 명분으로 행하는 벌채를 포함한 모든 지구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문명을 내세운 인간 활동들을 그만 두고 자연적인 삶으로 돌아갈 것.
그리고 최근에 뉴스를 보고 알았던 정보가 있는데 나는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기사와 연설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심리학 논문을 위해 연구차 미마스에 들렀던 애덤의 눈가리개를 풀게 해 줬던 질문들을 던진 올리비아의 말들과 그레타 툰베리의 경고를 토대로 마지막 문장을 쓰고 즐거웠고 길었던 오버스토리 독서리뷰를 끝내겠다.
세상이 대체할 수 있는 속도보다 인간이 자원을 사용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아주 확실하고 간단한 문제다. 유한한 시스템 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인간들의 권력이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우리들은 사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나의 자녀를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은 자녀들의 눈앞에 있는 미래를 빼앗는 부모, 어른이 되지 말자. 우리는 한 조상에게서 나온 형제자매인 인류와 자연을(인간과 비인간을), 모든 생명체들을 사랑하고 보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게 하고 리뷰를 쓰며 다른 존재로 변화할 수 있을만한 기회와 동기를 갖게 해 준 알라딘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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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를 비교합니다 - 하나를 보다 잘 알기 위한 비교 OKer 시리즈
케빈 강.윤훈관 지음 / 사람in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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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유용한 정보를 잘 담고 있어서 좋고 학생들에게도 보충학습 자료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복사해서 쓸 생각이어서 분철 신청했는데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중간중간에 큰 글씨로 양쪽 페이지를 분할해서 대화체를 써놓은 부분들은 가운데쪽이 살짝 펀칭이 뚫려있다는 걸 감안해야할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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