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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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아일린 – 오테사 모쉬페그
독서리뷰 첫 문장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적이 없었다. 다 읽고 난 후에 바로 책 여백에 짧은 소감을 적을 때는 이런 망설임이 없었는데 막상 제대로 리뷰를 쓰려고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지금 이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일린 던롭, 그녀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할 것이며 후에도 존재할 여자다. 지금 내 안에 아일린의 일부가 살아 숨 쉬는지도 모른다. 역사책에서나 봤던 1964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아일린이 스물 네 살이었던 당시 운명적인 여인 리베카를 만나고 난 이후 크리스마스이브의 중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6일 전 금요일부터 순차적으로 사건과 인물들, 배경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고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스물 네 살이었던 아일린은 사라지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그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아일린의 의지와 계획대로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탈출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도망치다시피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아일린은 오히려 리베카가 아니었다면 이제껏 잘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과 회한에 젖은 채 하느님께 이제부터는 잘 살아가겠다고 맹세했을 거라며 리베카 덕분에 전혀 회한이 없다는 어조로 이야기를 한다.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모두 50년 후 리나라는 새로이 태어났던 여자의 회상과 정확하거나 부정확한 기억들, 추억들로 짜여있다.
전혀 특별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우리가 시내버스 안에서 한 명쯤 볼 법한 아가씨처럼 생긴 아일린. 끔찍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우리들보다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던 사람들이었던 그녀의 가족. 어디에서 잘못 된지 모르겠다고 독백하는 부분에서 몸서리를 쳤다. 끔찍한 사람들의 조합이 아닌 곳에서 끔찍할 수도 있을 결과가 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대화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평소에 하던 대로 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것에. 그리고 현대에 와서야 상황이 훨씬 좋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자식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화풀이 대상이나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아일린과 그녀의 가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에. 그런 사람들은 보통 게으르고 내성적이어서 큰 계기와 용기가 없는 이상은 그런 모습이 본인들의 타고난 성향과 기질이라 믿어 버리기 때문에 잘못된 것에 집착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분별력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되어 ‘이렇게 하면 괜찮다, 안 된다’의 구분이 모호해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인 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상처를 주고 상처가 될 줄 모르는 무지함으로도 상처를 주게 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나부터 앞으로 꾸려나갈 가정에서 그렇지 않은 가족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에서 나올 것임을 믿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다짐하겠다.
살벌하게 추운 맨하탄 외곽의 소도시, 아일린이 X빌이라 부르던 곳에서 살고 있던 성난 그녀는 스스로가 잔 다르크나 햄릿 같은 사람이었으나 잘못된 인생을 타고났다고 확신하는 반영웅적인 성향의 여자애였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혐오했고 자신을 통제하려하면 할수록 더욱 어색해지거나 불행해지고 화가 나는 사람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내숭쟁이에 말라깽이이고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상상, 공상, 환상을 즐기는 인물이다. 나도 어릴 때와 30대 중반까지는 상상이나 공상을 정말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상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공상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공상 덕택에 각종 과학의 진보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오고 있기에 공상 또한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환상을 갖는 것은 자칫하면 너무 허황되기도 하고 지나치면 무모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공상은커녕 상상조차 거의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엉뚱한 연관성이기는 하지만 생생하게 상상하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꿈의 공식 R=VD을 최근에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다시 아일린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의 흥미로운 표현에 따르자면 그녀는 면역되지 않은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짝사랑하고 스토킹하는 랜디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 로미오처럼 다락방 창문에 돌을 던지고 집 앞에서 그의 오토바이가 뿜어대는 연기를 상상하는 것이라든가 자신의 직장인 민간 청소년 교정시설의 별칭 무어헤드(리나의 삶을 살던 때의 못된 집 주인 이름 델빈 무어헤드의 이름을 가져다 씀) 의 소년들 중 몇몇이 다 자라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남자아이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그리고 열아홉이나 스물로도 보이는 외모를 가졌지만 겨우 열네 살이었던 미치와 리타의 아들 레너드 리 포크가 동굴에 갇혀 혼자 간이침대에 누워서 하는 행동을 보고 리에게도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그 행동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고 흥분으로 인한 수치심, 수치심으로 인한 흥분도 느낀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상상과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수치스러운 도착증을 내숭의 허울 속에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옮긴이도 말했듯이 그런 것에 대해 서로가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그 누구나에는 나도 분명히 속해있다. 나라도 이런 것들에 면역이 완전히 되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가 알겠는가? 내 마음은 나만 아는 건데.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면서 여성스러운 매력이 다분한 언니 조우니에게는 사랑한다고도 말하며 성추행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스킨십을 하면서 조우니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깡마른 아일린에게는 온갖 자존감과 자존심을 해치는 말을 함부로 하며 천지차이로 대하는 위선을 지니고 있고 모든 사람을 불신하는 늙은 주정뱅이에 두려움이 많고, 정신착란 증세와 비슷한 자신의 눈에만 보이고 들리는 악당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아일린이 인정했듯 아일린과 비슷하게 제정신이 아닌 굉장히 진부한 아버지, 찰리 던롭. 그리고 신을 믿지 않고 아이들에게 크게 애정과 관심을 쏟지도 않고 남편도 싫어하는 정신이 온전치는 못한, 혼나기 무서워서 도망치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술이 찢어지고 심하게 다친 딸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문을 닫아버린 공감제로인 어머니.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란 두 딸이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어린이 같은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육아태도로 인한 비뚤어진 인생관과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부모 탓이 가장 큰 건 맞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 본인의 탓도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조우니는 좀 더 밝은 성격이고 독립적인 성격이라서 아일린보다 먼저 부모를 떠나 부모의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아일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럽고 먼지투성이에 쓸데없는 장식들로 가득 차있고 사방이 물건, 물건, 물건으로 우글우글한데도 완전히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유령의 집 같은 곳에 아버지와 단 둘이 남겨져 아버지의 가정부 노릇을 하며 화가 나도 화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가 순결을 지키는 이야기라든지 순결을 지키면서도 은밀한 욕구를 묘사하는 부분들이 약간 민망하기도 했고 그녀가 혐오하는 아버지나 스스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포자기도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생이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면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외모에 자신이 없으면서도 자기집착이 강하기도 한 그녀가 차디찬 고드름이 정수리에 꽂혀 멋지게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상상하는 이야기들이나 자신감이 없는데도 어디서 그런 대담함이 나오는지 천하무적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며 정교하게 물건을 낚아채 소매 안에 감추는 기가 막힌 좀도둑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비뚤어진 것들을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도 하고 무뚝뚝하게 구는 자신을 명랑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약이 올랐다며 혐오와 당혹감으로 대해야 마땅한 자신을 감히 예의로 조롱한다는 식의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부분, 첫 경험을 감정이 풍부하고 다정하고 잘생겼으며 말도 안 되게도 남몰래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강제로 당하게 되는 생각을 한다거나 혼자만의 공상 속에서 이미 자신의 짝, 동종의 영혼, 동지라고 생각하는 리베카에게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거리낌 없는 사람이고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아가씨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닌 되고 싶은 모습들로 자신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들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특히 자기연민이 심하고 피해의식이 많으며 모든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런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열린 마음으로 읽으니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세상에는 흔한 말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공간이었던 다락의 간이침대에 누워서 애정도 연락도 거의 없는 언니가 죽는다면 어떨지 궁금해 하며 깡통의 초콜릿들을 꺼내 씹다가 포장지에 하나하나 다시 뱉어내는 행동도 왜 그러는지 궁금하고 이해가 안 됐는데 뒷부분 내용과 연결해서 알고 보니 할로윈 때 아이들을 위한 사탕을 준비했다가 결국 그런 집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아 실망했을 텐데도 그런 표현 하나 없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 그제야 너무 이해가 됐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고 없기를 바랐지만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너무 역설적인 그녀의 독백이나 기분이 나쁠 때면 항상 그저 눈물을 삼키고 차가운 돌 가면을 썼다는 글들을 읽을 때, 개의 죽음이 사람의 죽음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모나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부터 다락방에서 혼자 숨죽여 울다가 이튿날 모나를 그녀 손으로 직접 마당에 모종삽으로 판 구덩이에 묻었던 과정들과 그 때 숨죽여 울며 제대로 다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일주일 후 어머니가 죽었을 때 비로소 터놓고 울었다는 것을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3년 전 급성신부전증으로 우리 곁에서 떠나간 우리 막내였던 포포도 생각이 나면서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대놓고 소리 내어 울며 애도했던 내 모습과 아일린이 더욱 대비되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짠했다.
그녀의 인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난 휴일이 크리스마스이고 크리스마스에 마을을 떠나는데 그녀에게 상투적인 자기연민과 같은 언짢은 감정을 일으키는 그 날, 그녀는 삶에 사랑과 온기가 부족한 것을 슬퍼하고 영화처럼 비참한 그녀를 건져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줄 천사를 보내달라는 소원을 비는 소위 크리스마스 정신에 매료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작 눈 덮인 관목들 위로 그녀가 좋아하는 땅콩 껍데기를 던진 장식 정도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전부라고 하니 이런 부분을 읽을 때 나는 표현을 절대 하지 않고 냉소적이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까지 한 그녀에게 동정심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그녀처럼 나도 데스마스크를 쓸 때도 있고 그래서 그 뒤로 숨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나 그녀만큼 그렇게 자기 방어적이거나 자기 파괴적으로까지 하지는 않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속내를 깊이 공감하기는 힘들었으나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아주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식일 수 있고 인생을 살면서도 일어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과 마음이란 기복이 심하고 탐욕스러운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에서는 공감을 넘어서 나의 숨겨진 면모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나와는 다른듯하면서도 비슷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리베카처럼 그녀를 특별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아일린을 이용한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X빌을 혐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증을 가진 아일린. 그녀에게 함께 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주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가 되어줄 천사나 다름없는 리베카. 이런 인물구조가 아일린을 고향에서 떠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리베카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완전히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리베카는 본인의 인생에서 많은 주도권과 혜택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과 그래서 뿜어져 나오는 그녀 나름의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 과하여 약간의 오만이나 자만심이 생겨 리타 포크가 죄를 시인하게 할 수도 있고 교화시킬 수도 있다고, 그것이 바로 선행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아일린에게 했던 말 중 “난 선과 악이 있다고 믿지 않아.”라고 한 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 이 행동은 참 이율배반적이었다. 그녀의 충동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행동이 충분히 자신과 아일린에게 모두 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리나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아일린은 그녀의 삶이 이제는 귀중하다 여긴다. 노후에 그토록 거짓되고, 신경질적이고, 닳아빠진 사람이 바로 아일린이었을 때의 자신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아일린은 성숙해진다. 결국은 아일린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포크씨네 집 지하실에서의 경험이 그녀에게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게 하는 면역력을 키워줬다고나 할까. 나로서는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사건 이후의 삶이 천국으로 직진하는 길은 아니었으나 그 모든 헛디딤과 뒤틀림이 적절히 예비된 옳은 길로 들어섰다고 믿었다. 그러니 아일린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사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일린은 성숙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리베카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초대를 받은 이후 운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그 무엇도 그녀를 아프게 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그녀의 좋은 기분을 망칠 수 없었고, 그 무엇도 그녀를 괴롭힐 수 없을 거라는 엄청난 자신감과 활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현관문 위쪽에 매달려 물을 뚝뚝 흘리는 얼음 단도들인 ‘고드름에 주의한다’는 표현을 쓰고 현관문을 가만히 잠그고 나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온갖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표정, 말투, 손짓 하나에도 신경 쓰고 고드름이 자신의 정수리에 꽂히는 것을 상상하던 그녀였고 그녀의 오래된 자동차 닷지의 조수석 사물함에 조그만 토템이자 행운의 부적이라며 현관 바깥에서 발견했던 공처럼 둥글게 꽁꽁 언 죽은 들쥐를 넣고 다니는 행동이나 핸드백에 든 총의 묵직한 무게감이 위로가 되었다는 그녀였다. 그런 식으로 병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까.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닫힌 문 뒤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 말이다. 아일린 본인도 한 때는 그랬지만 운명적인 계기로 그런 병에서 벗어났다.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이 없으면 얼마든지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이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를 계기로 나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생기면 그렇지 않아야겠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도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도록 해야겠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으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그럴 것이다.
아일린은 리베카와 첫 만남 이후 가졌던 사물함 앞에서의 대화만으로 자신의 세계는 탈바꿈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자신의 세계를 탈바꿈 시킨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아일린이었다. 물론 그런 탈바꿈이 가능하게 해주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런 인물은 자기가 상대방의 세계를 탈바꿈 시켜야겠다는 의도도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자주 있기에 그런 존재는 바로 자신이 맞다. 아무리 주위에서 새롭고 더 나은 세계로 들여놓으려고 해도 본인이 깨닫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일린은 이미 마음속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리베카가 일깨워 줬다고 생각하지만 아일린 자신의 의지와 용기, 결단력으로 이뤄낸 탈바꿈이었다. 만일 아일린을 만날 수 있다면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말들은 나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아일린, 당신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너무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졌었음에도 좌절하거나 자신을 파괴시키지 않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 셀 수 없는 상상, 공상, 환상, 거짓말들로 자신을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했던 의지력도 강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는 쉽게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자기비관을 하거나 갇혀 있고 고통 받고 학대당해서 진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환상을 품었다고 자책이나 후회를 했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죠. 당신도 인정했듯이 다 지나고 나면 누가 누구보다 더 힘들었는지 헤아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법이잖아요. C’est la vie. 그런 게 인생이죠. 그걸 깨달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럴 수 있듯이 그걸 지혜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로 결심하고 실천한 사람도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었던 만큼 당신은 용감한 사람이에요. 50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며 나름의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 당신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충분히 잘해왔다고 토닥이며 위로도 하고 박수치며 축하도 해 주고 싶어요. 고생 많았습니다, 아일린! 당신은 충분히 잘해왔어요! X빌에서는 죽은 사람, 유령, 길 잃은, 영혼, 실패한 존재로 남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이 책 속에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지닌 불완전한 존재로, 깨닫기 전에는 항상 격분했고 부글부글 끓었으며 내달리는 생각과 살인자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삶의 진통을 겪었던 작은 인간으로 살았으나 진정한 자신을 보고 깨달은 후에는 지혜로운 존재로 남아있어요. Per aspera ad astra. 가시밭을 뚫고 별까지.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나 자신과 내 인생에게도 위로와 축하를 보낸다.
X빌을 떠나오는 길에 리타 포크를 닷지 안 옆자리에 앉혀 놓고 자신을 버리며 걸어가던 새벽에 만난 사슴 한 마리. 그 사슴 앞에서 눈물이 차올라 울었던 아일린과 함께 나도 눈물지었다. 그리고 눈물을 손으로 문지르고 얼굴에서는 피를 닦아내고 계속 걸어갔다는 아일린의 확신이 있던 발걸음에 나도 결연해졌다. 얼마나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힘차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에게 책 읽는 내내 생기지 않았던 존경심도 생겼다.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스쳐지나가는 옛 세상이 그녀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는 결말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정말 상상 불가, 이해 불가인 이 소설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리도 술술 읽히고 불편하면서도 공감이 되기도 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하기다 힘든데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부드럽게 읽힐 수 있던 걸까? 아일린이 겪는 고통과 혼란을 우리가 그대로 겪을 일은 사실 흔치 않다. 그러나 아마도 작가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이 아일린은 말없이 견디고 가면 뒤에 숨으며 참고 인내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고 알게 하고 함께 견디는 ‘벌’을 주고나 함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살아가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상상, 환상을 하고 남몰래 역겨운 생각들을 하면서 겉으로는 내숭을 떨며 본인은 아닌 척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내리는 ‘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도 혼돈과 혼란을 겪던 사춘기 때와 혈기 넘치던 20대 중반까지 했던 생각들,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역시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고 극단적이고 부끄러운 것들이 많다. 그 시기를 아일린은 가정환경 등에 의해 스물네 살까지 연장해 겪었던 것뿐이다. 솔직히 나도 여전히 같다. 예전보다 덜하지만 가끔은 성나있고 광기 어리고 무모하고 막연하다. 지혜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지는 못 했다. 50년이 지나 일흔이 넘어서나 생길지 모르겠다, 리나처럼 통찰과 지혜가.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자기 편의대로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는 ‘기억, 유령, 두려움’. 이런 것들에 압도되거나 조종당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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