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이트 워치 – 새라 워터스
‘나이트 워치’가 무슨 뜻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해서 정독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일주일동안 읽어 나가면서 아쉽게도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도 여전히 왜 이 소설의 제목은 나이트 워치인지 모르고 막연히 밤의 파수꾼일까? 서치 라이트를 지칭하는 다른 말일까?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다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야경꾼 또는 야간 구급대원이라는 뜻이 있었다. ‘야경꾼’이라면 케이 몰래 헬렌과 만남을 가졌던 줄리아가 홍차를 담았던 야경꾼 병에서 봤고 ‘야간 구급대원’이라면 내가 가장 아끼고 관심을 가진 등장인물 케이가 전쟁 때 가졌던 직업이기도 하다. 둘 중 야간 구급대원의 의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케이와 줄리아, 그리고 헬렌 세 사람의 관계를 중점으로 다루면서 다른 세 인물인 덩컨과 비브, 그리고 레지 혹은 프레이저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성을 좋아하는 케이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신사적이고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며 상대방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어떻게 보면 전인류적이고 용감한 사람이다.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는 끔찍한 전쟁 중에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부상자를 구하거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 케이는 덤덤하게 집안에만 얌전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아서라고 말을 한다. 괜한 너스레나 영웅심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했던 경험과 맞물려 부상자였던 헬렌을 구조하다 얼굴을 씻겨 주고서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헬렌과 연인이 되어 그토록 헬렌을 아껴주고 어려운 시기에도 돈을 투자해 커피에 오렌지에 실크리본 묶은 분홍색 상자에 담은 진주색 새틴 잠옷까지 생일 선물로 챙겨주고 사랑해 주었는데도 케이를 짝사랑하다 엇갈린 애정으로 결국 인연을 이루어지지 못했던 매력적인 여인 줄리아가 헬렌과 만남을 가지면서 케이를 배신하게 되어 그 상처와 배신감과 함께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다. 케이는 전후 외출할 때마다 매일 매일이 모든 날과 마찬가지로 백지이고 목적지도 분명치 않고 가는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 채 할 일도, 갈 곳도, 볼 사람도 없이 매 걸음 고심해서 발 디딜 곳을 만들어내는 중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인물이 있다면 나라도 케이에게 호감을 느꼈을 정도로 케이는 성숙하고 차분하면서도 용감한 멋진 인물이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말도 안 되게 부담스러워 하는 헬렌은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몇 번인가 말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세상에 그렇게 사랑을 주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부담스러워 하다니...... 어찌 보면 자신에게 너무 환상을 갖는 것 같아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면 케이가 싫증내거나 싫어할까봐 지레 겁을 먹고 그런 것일 수도 있어서 헬렌에게도 동정심이 느껴지기는 했다. 특히 줄리아와 연인이 된 후 줄리아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줄리아의 물건들을 뒤지고 그녀의 책상 모서리를 이마에 짓찧으며 이보다 더 아파야 줄리아를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독백하며 이게 다 줄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나 줄리아와 말다툼을 하는데 이성적이지 못한 억측으로 줄리아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는 데다가 자신은 히스테리적인 여자는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면도칼로 허벅지를 그어 피를 내는 모습을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심정이 들면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어쩔 수 없이 약하고 모순적이고 감정에 치우치는 여성이라는 생각에 짠하면서도 어리석은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그냥 내 눈에는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고 자신의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으로만 보였고, 특히 케이처럼 멋진 사람이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음에도 스스로 외모적으로나 경제, 사회적 지위로나 줄리아보다 훨씬 더 못난 사람이라고 자기비하를 하는 모습도 정말 아쉽고 안타까웠다.
만일 내가 줄리아의 처음 헬렌을 만나려는 의도를 모른 상태였다면 나도 줄리아라는 인물에게 호감이 갔을 수도 있다. 아주 독립적이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즐겁게 살아가려는 뜻도 많은 인물인데다 헬렌이 보기에 줄리아는 어떤 혼란 속에서도 가뿐히 빠져나와 참 어처구니없게도 단정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재주가 있어서. 그러나 처음에 헬렌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헬렌의 어떤 점이 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지 궁금해서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줄리아가 너무 미웠다.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도 줄리아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고 케이 몰래 만나는 헬렌도 너무 미웠다. 그러나 사람 일은 특히나 인연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누가 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을 많이 비우고 읽었다. 내가 너무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지 않으면 케이가 너무 불쌍하고 줄리아와 헬렌이 너무 미워서 온전히 독서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였다. 헬렌과 연인이 된 이후에도 줄리아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고 헬렌이 조금만 줄리아를 의심해도 아예 말다툼 자체를 시작하지 말라는 식으로 “하지 마, 헬렌.”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고 줄리아는 상대방을 배려해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의 인간미는 있기 때문인지 헬렌은 그런 줄리아에게 오히려 사과하고 그런 모습을 보인 자신이 밉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 정말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결국은 더 많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게 정말 맞는 말일까 라는 생각도 들어서 씁쓸했다. 그게 삶인가? 그게 사랑인가?
덩컨은 그저 둘도 없는 친구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한 때 유일한 친구였던 알렉이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데 어른들이 전쟁을 일으켜놓고 아무런 죄 없는 청년들이 전쟁에서 왜 싸우는 지도 모르고 전쟁에 참가하는 건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꾀하는데 너무 극단적이게도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앗음으로써 불합리한 징병이라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유서까지 써 놓고 덩컨도 함께 하자고 설득한다. 덩컨도 그러겠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었기로서니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본인의 뜻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한 건데 그걸 다른 방법도 아닌 자살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그저 허울 좋은 겁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알렉을 따라 별 생각 없이 덩컨도 함께 하겠다고 하다니. 기가 막혔다. 게다가 그들은 덩컨의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를 전투기 소리 같다고 말하며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대기도 한다. 오로지 자기들 생각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알렉이 면도칼로 목을 긋기 전 덩컨이 죽고 난 다음 우리가 어떻게 될지 묻는 말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냥 전등이 나가는 것처럼 꺼지는 것 뿐이라며 너무 태평스럽게 덩컨에게 이따 보자고 하고는 그대로 면도칼로 목을 긋는다. 그 때의 기억이 덩컨에게는 ‘부엌의 선홍빛 바닥’으로 남게 된다. 덩컨은 알렉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는데 여전히 병역거부를 한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그 감옥에서 먼디 교도관과 삼촌과 조카 같은 특별한 관계를 맺는데 출소 후에는 그 교도관에게 먼디 씨라 부르며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삼촌과 조카 같은 관계는 함께 살면서 아마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나온 걸 보고 조금의 거부감이 들기는 했다. 그리고 덩컨의 감방 동료였던 프레이저가 전후 기자가 되어 취재차 들렀던 덩컨의 직장인 양초공장에서 덩컨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후 덩컨이 먼디와 함께 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며 걱정한다. 프레이저와의 관계도 참 특이한데, 말빨도 좋고 금발머리에 잘생긴 프레이저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하찮은 일에도 그 순간만은 미친 듯이 기뻐하다가도 금세 깡그리 잊어버리는 성향 때문인지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그와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덩컨의 심리를 먼디도 눈치 채고 있었다. 참 인물간의 관계를 복잡미묘하고 긴장감 있게 잘 풀어낸 것 같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겉보기에는 남자답고 용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덩컨보다 더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기도 한 인물이다. 전쟁 대공습이 감옥 바로 근방과 감옥 마당까지 다가왔을 때 프레이저가 처음에는 대담한 척 하다가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과 이전에 여자애들을 만났던 자신을 대비하며 엄청난 좌절감에 쌓이다가 자신의 침대에서 손으로 뭔가를 하는 프레이저를 느끼고 덩컨도 흥분하며 그것을 한다. 그러다 프레이저가 겁을 제대로 먹고 덩컨 옆에 누워도 되겠느냐고 하고 덩컨은 또 그 부탁에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아무 감정 없이 프레이저에게 팔베개까지 해준다. 이 장면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남자들끼리 이럴 수도 있나 보구나. 남자도 겁을 먹으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구나. 덩컨이 한 달에 한 번씩 면회 오는 아버지와 누나 비브를 만나는 날이면 괜한 분노와 폭력성이 나오는데 면회가 끝나면 후회하곤 한다. 아무래도 외로움과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그를 압박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넌 우리의 자랑이야!” 라는 생각과 말을 했으면 좋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욕심이기에 거기서 온 좌절감 때문에 본심과 다르게 삐딱한 심사가 튀어나와 그랬을 수도 있다. 이런 심정과 연결해서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던 장면은 수감생활을 하기 전에도 덩컨은 아버지에게 좀 다른 것 같지만 기본욕구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는 점이다. 알렉이 자살하러 덩컨 집으로 몰래 들어온 날 밤, 면도칼로 사건을 일으키려고 결심하기 전 목 매달아 죽을 거라며 프레이저가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덩컨의 파란 바탕에 금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가지러 자신의 방에 가다 보게 된 코 골며 자는 아버지를 보고 속으로는 자신이 자살할 거니까 좀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싶어 하는 덩컨의 숨은 마음이 그것인데, 아버지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 했던 남자아이처럼 그런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덩컨을 보니 역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짠한 마음이 들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프레이저와 우연히 재회한 후 먼디 씨 집으로 놀러 오기로 했던 프레이저를 기다리다 시간이 점점 늦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는 덩컨의 속마음과 잠옷에 겉옷만 걸치고 알렉의 말투를 흉내 내며 속으로 ‘이제 후퇴는 없다, 덩컨 피어스!’라고 외치며 프레이저의 집으로 직접 가버린 덩컨의 심정, 그리고 거기서 전해들은 비브 누나와의 만남과 그들의 키스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은 거의 일 분 남짓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얼굴은 빨개져서 웃음보가 터져버린다. 왜 그렇게 웃음보가 터졌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덩컨에게 참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동성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덩컨과 프레이저. 고대시대, 특히 그리스 로마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동성끼리 사랑하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나나 내 주위 사람들한테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류의 사랑은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비밀로 간직했을지는 모르지만.
덩컨의 누나 비브는 사랑스러운 인물인 것은 확실하지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한다. 명민한 검은 눈과 해맑은 소년의 웃음을 간직한 덩컨이 말 그대로 늙은이의 집인 먼디 씨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도 연인 레지와 만날 때마다 받아오는 소고기 햄 통조림을 먼디 씨 집으로 가져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는 것이다. 비브에게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동생이고 둘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그 집에서 꺼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 비브는 자신도 모르게 덩컨을 아버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가족들은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덩컨 혼자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해 보이는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속상해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기운만 축날 뿐이라고 적당히 타협하고는 혼자 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동생을 아끼는 가족이라면 조금 더 단호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프레이저도 후에 비브와 만나서 덩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덩컨을 저대로 내버려 둘 거냐며 비브를 채근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도 비브는 덩컨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싶다는 투로 대답을 하는데, 이때까지도 비브는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일 테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는 했다. 너무 힘들면 자포자기 심정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소설이 시작되는 1947년까지도 그녀가 전쟁 중 기차 화장실 칸에서 우연히 만난 레지와 사랑을 키워가게 되는데, 중요한 건 레지가 유부남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레지와 사랑을 이어나가고 심지어 그와 만나는 동안 아이까지 갖게 된다는 것. 정말 이해불가였다. 물론 덩컨 못지않게 마음이 불안하고 피해의식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유부남이란 걸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생각할 수 있을까? 심지어 레지가 보여준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고도 비브는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느끼고 그들과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녀에게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는다면 덩컨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브가 세상과 사람이 완벽할 수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너무 어렸을 뿐이라는 게 내가 그녀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생각이다. 레지라는 남자가 재치도 있고 유쾌하다고 해도 그가 장모님이나 아내에게 찬밥신세를 당하고 미움만 받는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외롭고 마음이 허전한 인간이라는 건 알겠다. 그러나 진실여부는 알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리 그렇다고 아가씨를 꼬셔서 그런 만남을 이어가다니. 그것도 정말 이해불가였다. 특히 치과의사의 부업으로 행하는 그 수술 때문에 레지가 돈을 가져와 비브와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수술이 잘못 되었는지 자궁벽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과다출혈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는 큰 일이 있었는데 응급실에 가게 되면 레지의 신원이 드러나게 되고 아내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질까 봐 겁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 직전에 비브에게 미안해라는 입모양과 어쩔 수 없다는 제스쳐만 취하고 사라져버린 레지. 그런 레지가 줬던 조그만 금반지를 호텔 세면대에 두고 왔다며 미친 듯이 금반지를 찾아야 한다고 외쳐대던 비브. 또 둘 다 이해가 안 되고 용서도 안 되는 순간이었는데 정말 소름 돋았던 것은 응급실로 데려다 줬던 응급구조대원이 바로 케이였고, 케이가 새끼손가락에서 절대 뺀 적이 없었다던 그 금반지를 케이는 그 반지를 금세 찾아 왔다면서 비브에게 끼워줬던 것이었다. 아!! 소설 초반에 나왔던 조그만 천 뭉치에 아무 장식도 없는 낡은 금반지의 궁금증이 후반에 와서야 풀리는구나! 소설이라서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뿐이어도, 때로는 가까운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한테 친절을 베푸는 게 더 쉽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케이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책 소개 글을 보면 이 소설은 빅토리아시대 3부작으로 주목받았던 영국 역사 스릴러의 거장 세라 워터스가 빅토리아시대에서 20세기로 발걸음을 옮긴 첫 작품이며 전쟁의 흉터로 얼룩진 1940년대 영국의 이야기와 시대의 어둠을 초월해 사랑하고 증오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6명의 런더너들의 이야기를 1947년부터 1941년까지, 이들의 치열했던 6년을 역추적하며 상실의 폐허 속에 피어나는 설렘과 욕망, 격정과 후회를 더없이 세밀한 한 편의 드라마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역순으로 엮은 이 이야기는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수많은 장면을 썼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던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이면서 초반에는 진도도 느려서 작가 본인도 상당히 침울한 시기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자 이야기가 자리를 잡아갔고, 그에 맞춰 문체가 점차 바뀌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얼마나 그녀가 치열하게 작업을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가 이 한 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 1940년대의 소설, 영화, 사진, 지도, 일기, 편지, 2차대전과 전후 현대인의 전기를 포함한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다며 그 자료들의 저자와 제목들을 나열해 놓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그녀는 1940년대는 19세기와 확연히 다르게 훨씬 절제되고 정적이며 서늘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는 것도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시간을 역순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엄청난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서로 비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고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피폐한 현재에서 추억이 있고 현재의 결과를 가져다 준 시작점이 되는 풋풋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퍼즐조각이 맞춰지듯이 전후관계가 드러나게 되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옮긴이도 말했듯이 먹먹하고 아득하다. 나도 진짜 그랬다.
배경에서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변화는 소설 구성방식에도 있었다. 이전 작업들은 사건이 먼저였고 그 상황에 맞춰 캐릭터의 감정을 파악해나가는 식이었는데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상황을 주도하는 가운데, 세 개의 챕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작가도 알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 이런 식으로도 글을 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등장인물들인 6명의 런더너들 이외에 주변 인물들도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저자가 주변 인물들까지 캐릭터들을 잘 살려낸 것 같다.
케이 랭그리시와 절친인 미키 카마이클. 그녀의 본명은 아이리스지만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서인지 미키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케이와 전쟁 중에 나이트 워치로 함께 일을 했던 또 한 명의 용감하고 강단 있는 인물이다. 미키는 전후 트라우마를 겪는 케이를 걱정하는 진정한 친구다.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는 멋진 인물이지만 케이와 비슷한 성향이어서인지 둘은 이성의 감정은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케이가 줄리아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듯이.
덩컨 피어스의 단짝이었던 알렉 플레이너는 음악, 미술, 건축물들을 사랑하던 젊은이였고 나름 조숙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명함과 신중함, 그리고 진정한 용기가 부족해서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판단으로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빼앗고 만다.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그가 비록 덩컨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을지는 몰라도 알렉과 덩컨의 부모님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인생 전반적으로 놓고 봐도 덩컨에게 너무나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친구다. 그리고 덩컨의 부모와 가족들에게도. 알렉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그의 부모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물론 요즈음에는 존엄사라는 문제도 고찰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내 생각으로는 존엄사에는 들어가지 않는 범위 같아서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비겁하게 피하려는 것으로만 보였다.
덩컨을 사랑하면서도 미운 감정을 지니고 있는 누나 비비언 피어스가 거의 6년동안 비정상적인 만남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레지 니그리. 그와는 아마 비브가 1947년 로버트 프레이저를 만난 이후로 레지와의 관계는 끝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아니 레지와는 끝내고 프레이저나 그 이후 다른 더 좋은 남자와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줄리아 스탠딩. 헬렌 지니버는 줄리아가 침실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케이에게 배신과 아픔을 줬던 만큼 줄리아에게서 나름의 아픔을 겪는 헬렌과 그 아픔을 어쨌든 달래줘야 하는 짐을 지고 있는 줄리아는 둘 다 케이를 접점으로 이루어진 관계다. 서로 이름을 꺼내지는 않아도 둘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케이라는 점 하나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각자 별개로 살아가는 것 같은 주요 인물들과 주변 인물들은 또 어떻게든 전후에 연결이 되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타자수로 일하던 비브와 사무직으로 일하던 헬렌은 결혼정보업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된다. 헬렌이 보는 비브는 소소한 비밀이나 추억을 나누다가도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제나 커튼을 드리우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브는 병역거부라는 불명예스러운 죄명으로 수감생활을 했던 동생이야기나 남들에게 자랑도 할 수 없는 연인 레지의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이가 전후 일하는 곳은 레너드 박사의 병원인데 심리 치료 병원인 이 곳은 약물 치료가 아닌 최면을 거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계속해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들을 속삭이며 되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강도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케이가 환자들의 진료 약속을 잡는 일을 하는데 환자마다 오는 시간이 너무 정확해서 시계를 안 보고도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케이는 그 환자들이 오는 것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환자들 중 먼디 씨가 있고 항상 덩컨이 먼디 씨와 동행한다.
이 소설을 쓸 때 저자는 최초로 3인칭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 글 쓰는 방식이나 문체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배경이나 인물들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고군분투한 결과 좋은 소설책 한 권을 써낸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설을 다 읽은 이후에 가장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다. 케이와 헬렌, 그리고 줄리아 이 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비브와 프레이저, 레지는 어떻게 될까, 혹은 덩컨과 먼디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부족하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케이를.
그리고 독서리뷰를 하는 지금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다. 그런 시절, 원자폭탄과 강제 수용소와 가스실이 존재하는 그런 세계에서 가끔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쾌적한 기분을 느꼈다면 정상이 아닌 걸까. 지금 이 시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고 지구 곳곳에는 사회불안이 지속되고 살인과 기아가 횡행하고 재정 파탄과 쇠락의 길을 걷는 나라들이 존재해 있는데 이런 시절, 이런 세계에서 가끔이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쾌적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정상이 아닌 걸까. 나는 과연 그런 시절에 케이나 미키처럼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덩컨, 프레이저처럼 양심이라는 이름 아래 두려움을 숨기고 병역거부를 하고 기꺼이 수감생활을 했을까, 알렉처럼 약간은 치우친 소신을 갖고 그냥 깔끔하게 스스로의 목숨을 앗았을까, 용감한 선택을 한 결과가 모두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겠지만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 트라우마를 겪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며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종말하기 전까지 변치 않을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어딜 가든, 좋은 ㅇㅇ, 나쁜 ㅇㅇ이 있고, 친절한 ㅇㅇ, 가혹한 ㅇㅇ이 있다. 세상과 사람이 완벽할 수도, 완벽하지도 않다.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은 인생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