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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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ankind is nothing. Nature is everything. 기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정점에 있는 생물종이 아니야. 다른 생물들, 더 크고, 더 작고, 더 느리고, 더 빠르고, 더 오래되고, 더 젊고, 더 강한 생물들이 지배하고, 공기를 만들고, 햇볕을 먹지.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패트리샤 웨스터퍼드가 이익 기업의 경쟁적인 개벌의 중단을 결정하는 법정에서 증인의 신분으로 판사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불현 듯 떠올랐던 그녀의 아버지가 했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책에 적어 놨던 영어 문장이다. 현재 나의 메신저 상태메시지이기도 하다. 초반부 내용 중 요르겐 호엘의 장남 존 호엘이 매달 21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파수꾼 밤나무의 전신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프랭크 호엘과 세 번재 호엘가의 사진사가 된 그의 아들 프랭크 주니어의 의미 없는 사진 찍기 의식이 이어지고 또 그의 아들 에릭이 찍어왔던 그 사진들은 76년 동안 매달 한 장씩 찍혀서 창작자 4세대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마술 같은 영화를 보여주는 5초짜리 필름이 되어 세기의 4분의 3을 모두 담고 있는, 언제나 질리지 않는 유일한 ‘농장 보물’이 된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니컬러스 호엘이 소유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키 큰 나무를 1년 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의 전율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부분을 읽은 이후로 나도 매일(일요일은 제외) 같은 시간에 키 큰 나무의 똑같은 부분을 찍고 있는데 사진들을 모아놓고 보면 나뭇잎의 색깔이나 위치들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그 사진들은 내 휴대폰 속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인 ‘생명’, ‘숲’, ‘향기’, ‘나무들’, ‘40억 년의 생명체’, ‘존재들’, ‘그들’, ‘무언가’, ‘아주 단순하고 자명한 것, 분명한 것’, ‘이것’, ‘모든’, ‘두 개의 영원’인 ‘지금’과 ‘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과 결합’, ‘감탄’ 중에서 내 첫 아기의 태명인 ‘감탄’이라는 단어가 ㅡ첫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내 감정이 감탄스러워서 감탄이라 지었다.ㅡ 정말 너무나 자주 나와서 볼 때마다 더 반가웠고 더 뜻깊었고 내게 작지만 큰 변화를 준 책이다. 최근 신간들 중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기에 한번쯤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침 알라딘 이벤트인 독서리뷰대회에 참가하려고 바로 구매한 책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추측할 수가 없었다. 표지가 산뜻하고 깔끔하다는 생각밖에는. 저자소개에서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나 있으며 거대한 삼나무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는 것과 원시림이나 숲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분을 보고서야 자연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오버스토리,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 조감도. 아! 그래서 책 표지가 그랬던 거구나! 흔히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먼저 보라고들 하는데 나는 누구보다 나무를 먼저 볼 줄 알고 나무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읽고 ‘부디 숲을 먼저 볼 줄 알고 크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에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기 시작했다. ‘뿌리’에서 시작해 ‘몸통’과 ‘수관’, 그리고 ‘종자’로 이어지는 책의 구성은 순서대로 흐르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뿌리’에서 등장인물인 9명(짧게 이름만 쓰고 줄임말은 줄여 쓰겠음. 닉, 미미, 애덤, 레이와 도러시, 더기, 닐리, 팻, 리비)의 부모나 조부모들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역사와 성장배경, 주변 인물들을 알려주고 나서 ‘몸통’과 ‘수관’, 그리고 ‘종자’에서 그 모든 인물들의 모든 상황과 운명들이 마치 최근의 우주 평행이론을 생각나게 하는 시간의 평행구조로 번갈아가며 나오고 서로의 관계가 아주 똑같은 형식은 아니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와 비슷하게 원이 열렸다가 닫혀가며 환원되는듯한 구조로 짜여 있고(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그러다가 모든 것이 있었다. 꼼짝하지 않는 나무 몸통 기단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아무것도 아니다. -> 지금은 모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여전히’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이것’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것’은 우리가 눈가리개를 벗지 못하고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멸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 그리고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있는 그대로 놔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숨겨진 메시지 : 여전히 한동안은 태초부터 생명이 말해왔던 단어인 ‘자연’) 뒤로 읽어 갈수록 퍼즐조각이 맞춰 지듯이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인 얼개를 갖추고 있다. ‘사탄탱고’ 이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났던 책들이 있다. ‘살아있는 숲’이 의지가 있고 ‘빌 네이지에’의 말 중에서 나무는 당신을 본다. 당신의 말을 듣는다. 와 ‘생명은 미래에 말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라는 부분에서는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가 생각났고, ‘아라한’과 ‘왕유’ 이해하기 힘든 시에서 이어지는 낚시꾼의 노래와 반지들의 이야기를 볼 때는 ‘이외수’의 ‘벽오금학도’가, 식물녀 패티가 아버지에게서 열네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변신 이야기’ 삭제판을 읽으며 인간들의 엄청난 위기 앞에서 다른 생물들이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야성을 재흡수하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꼈던 부분과 원시림과 문명의 재앙에 대한 우려와 경고에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 떠올랐고, 또 그녀의 가설에 대한 학계의 공격과 비난 때문에 힘든 시절을 겪는 모습이나(패티가 ‘가장 좋아하는 포유류’인 사랑하는 남편 데니스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유일한 것, 독버섯으로 요리를 해서 거의 입에 넣을 뻔 했던 일) 그 이후 가설이 입증되어 명성을 얻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과학적 패러독스’인 ‘열광적인 지루함’을 친구로 삼고 나무와 숲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연구의지를 보여주는데 거기에서는 ‘호프 자런’의 ‘랩 걸’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더기가 절름발이 상태로 퇴역한 참정공군의 신세로 옛 중대의 친구의 동정으로 ‘문명의 외상장부보다 긴’ 겨울을 보내는 로키산맥의 등줄기 위, 아이다호폴스 근처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는데 농장의 말들에게 종종 읽어주었던 글 중 ‘야만은 미끄러운 비탈길’이라는 문장을 보고 예기치 못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미끄러운 비탈길이 있다면 요즈음에는 그대로 둘 리가 없다. 그것은 문명의 길이므로 야만은 그 미끄러운 비탈길을 그대로 보존해 놓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셈페르비렌스인 미마스를 전동톱으로 잘라내려고 하는 낫을 든 죽음의 사신들 같은 벌목꾼들에게 “우리는 이곳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원주민이 되어야 한다고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이 책이 생각났다.
특히 ‘숲은 생각한다’는 내가 읽었던 최초의 자연과 숲,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에 관련된 책이었고 저자가 인류학자라서 그런지 매우 진지한 책으로 다 읽고 음미하고 리뷰를 쓰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사고력이 확장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오버스토리’를 읽을 때에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들도 꽤 많았는데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얼마나 생생하고 상상력을 북돋아 주는지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웰메이드 SF영화가 펼쳐지는 듯해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서술방식이 간결하면서도 특이하게 현재시제라서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책 속의 인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인물과 함께 있는 것처럼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미마스에서 함께 풍경을 관찰하던 닉과 리비의 소감을 표현했던 ‘풍경이 가슴을 쪼개는 것 같다’, ‘말문을 잃을 만큼 멍청하게 만드는 창조물들의 뒤엉키고 풍부한 안정감’이라는 글에서는 내 눈 앞에 가슴이 쪼개지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듯 했다!) 그리고 디테일함에서도 매우 새로웠다. 도러시가 외도하던 당시 합창 연습을 하러 간다며 팔에 들고 있던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악보집의 제목을 팔에 가려 두 개로 쪼개져 보이는 대로 표현한 부분(BR MS, Ein Deu equiem)이 참신했다. 그리고 뇌졸중으로 자신 안에 갇힌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레이가 십자말 퍼즐을 시작하고 성자 같은 인내심으로 아침에 못 풀었던 낱말 퍼즐을 잠시 나갔다 온 도러시에게 간신히 움직이는 손으로 몇 분간 끔찍한 몇 개의 선으로 ‘위로가 되는 싹의 귀환’의 답인 ‘releaf(새잎)’를 써낸 부분에서는 작가의 독창성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나도 도러시 못지않게 쾅,하고 감동을 받고 기뻐했으며 소름도 돋았다.
이 소설에서 내가 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것도 많아 신선한 즐거움도 얻고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미미의 ‘옻칠한 상자’ 속 두루마리 안에 살면서 인생이라는 문제를 푸는 작은 부처들인 루오한(아라한), 졸만레(졸업할 때까지만 레즈비언의 줄임말ㅡ확실히 동양문화에서도 이것은 인정하기에 조금 민망하기는 하나 자명한 사실), 1200년 된 왕유의 시, book의 어원 beech(너도밤나무), 드립라인(drip line), 아메리카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마치 ‘Who cooks for you?’로 들린다는 것, 그리스어 xenia가 환대라는 뜻이라는 것, 나무 tree와 진실 truth의 단어 뿌리가 같다는 것.
이외에도 이 책에는 각주가 따로 없어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단어들을 기록해 본다면(개인에 따라 아주 지루할 수도 있을 부분임), 아린 : 싹 비늘, bud-scale, 슬래그, ‘모두 베기’로 순화된 개벌, ‘보르헤스’의 문장, 시과 : key fruit, 특히 조사하다가 가슴이 뛰고 왠지 모르게 눈물도 나고 심지어 소름도 돋았던 ‘존 뮤어’(존 뮤어 트레일을 도보하는 꿈을 꾸게 해 준 자연의 수호자), 관거 : pipe, culvert, 구과 : cone, 조사하고 나서 꼭 충북 제천 측백나무 트레킹도 가보고 싶게 만들었던 측백나무, 에일병 : 에일 멕주, Ale(Lager와 맥주의 양대산맥), 놀리 티메레 : 두려워하지 마라, Noli timere(성경에도 나왔고 시인 셰이머스 히니의 유언이기도 했다고 함), 조사해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는 항복응력 : yield stress, 이 독서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내 목에 걸려 있는 파촐리 오일 목걸이를 차고 있게 했던 파촐리 오일 : patchouli, 책을 읽는 동안 예기치 않은 집안 일로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겼을 때 나의 타오르는 분노를 끊을 수 있게 만들어준 뜻밖의 문장인 ‘라 루타 노스 아포르토 오트로 파소 나투랄 : 길은 자연스럽게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준다(회문)ㅡ이 문장이 왜 분노를 끊게 도와줬는지는 의외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읽으나 저렇게 읽으나 똑같네?‘라는 생각이 ’이런 일 가지고 내가 화내봤자 바뀔 건 없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ㅡ 스코빌 : scoville, 가고일 : Gargoyle, 용혈수 : Dragon’s blood tree(드라세나 드라코 : Dracaena draco), 서지 : serge, 주상고행자, 르포르 골절 : Le fort fracture, 위자 플랑셰트 : Ouija planchette, 팔라펠 : Falafel, 리어타드 : leotard, 치코 멘데스와 왕가리 마타이, 평소에 먹으면서도 어디서 생기는지 궁금해 하지조차 않았던, 알고 보니 멸종위기 식물이었던 브라질너트나무 베르톨레티아, 판근 : buttress root, 코블러 : cobbler, 알도 레오폴드 : ‘대지윤리ㅡ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연에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생명 공동체다.’를 만들어낸 인물, 가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걸 보고 직접 가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도서관’ 이런 정보들을 검색하고 알아보며 또 한 번 ‘지식과 정보’라는 것은 정말 끝이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우주나 생명의 본질에서는 벗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위에 말했던 9명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어떻게든 ‘연결과 결합’이 된다. 그것도 아주 밀접하게.
맨 처음 니컬러스 호엘은 나중에 올리비아 밴더그리프에게 ‘파수꾼’이라는 애칭을 얻는데 호엘가 밤나무가 명소가 된 후 농부들이 ‘파수꾼 나무’라고 불렀던 것과 연결이 되고, 식물녀 패티가 사랑하는 작가 뮤어가 했던 말인 “The Mountains are calling and I must go.”를 인용하여 패티가 사랑하는 또 다른 한 사람 남편 덴과 떨어져 살면서 ‘숲은 공동체이며 지하의 시냅스를 통해 함께 돕고 서로를 고치며 형성하며 숲은 마치 뿌리가 커다란 한 그루의 슈퍼 나무’라는 확신에 대한 연구를 이끄는 소명을 ‘숲이 부르고 있는 그녀는 가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연결시킨 부분,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의 도서관’에서 애덤의 눈에 들어왔던 작은 책 한 권 ‘곤충에 대한 최고의 가이드’가 레이먼드 B. (레이 브링크먼을 지칭)라는 팔머 필기체로 쓰여 있었던 부분, 죄수번호 571번 더기가 심었던 ‘더글라스전나무’를 사랑하는 식물녀 패티, 생명보호군에 들어갔던 닉과 올리비아가 60미터짜리 미마스에 올라가는데 미마스는 셈페르비렌스나무이고 닐리가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계속하다 최종적으로 만들어 낸 게임 지배 8의 영감을 주었던 나무도 셈페르비렌스인 점.
저자의 글들 안에는 거의 매번 정확한 수치를 나타내는 단위들이 많았다. ㅇㅇ제곱킬로미터, ㅇㅇ킬로미터, ㅇㅇ미터, ㅇㅇ센티미터 등. 그리고 글들이 재치가 넘치고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거기에 감동도 더해주는 데다 기가 막힌 비유들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책의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지 모른다. 미미 마의 아버지가 말해주는 대목에서 미미가 세 그루 나무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 살고 있다는 설정을 세 자매끼리 하나씩 나눠가진 조그만 새알 같은 세 개의 옥반지에 아주 세밀하게 새겨진 나무 세 개로 설명하는 것(‘과거’는 미미의 뒤에 있는데, 그것은 일곱 번째 하늘의 경계에 있으면서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생명의 나무인 로트나무, ‘미래’는 미미의 앞에 있는데, 먼 동쪽에 있으며 생명의 영약을 지키는 마법의 뽕나무 푸상, 마지막 ‘지금’은 미미 주위 사방에 있으며, 가늘고 곧은 소나무로 미미가 어디를 가든 따라가는 나무ㅡ이것도 미미의 이야기 초반부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뒷부분에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알게 된 내용)과 시간이라는 것이 동심원들로 퍼져서 미래가 미미의 위와 뒤로 쌓인다는 표현은 정말 판타지 소설 같았고 영화 ‘인터스텔라’도 떠올랐다. 낚시하며 인생을 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나도 아주 어렸을 때 아빠와 바다낚시를 갔던 추억을 되짚으며 흐뭇했다.
저자가 문학에 관심도 많고 깊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도 많았다. 월트 휘트먼의 ‘긴 화물열차 같은 연’을 가진 시 ‘풀잎’부터 소설 속 닐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장; 모든 인간은 어떤 아이디어든 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인간이 그렇게 하는 미래를 믿는다., 더기가 목장 도서관에서 찾아 말들에게 읽어주었던 ‘길가메시 서사시’,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잘랄루딘 루미’의 등장, 그 위대한 칸트의 주장을 쓰고 그에 대해 감히 반박하는 문장을 쓴 것, 윌리엄 블레이크와 W.H.오든의 인용구들, ‘사람들의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던 밀그램과 타고르, 소로 등의 책들, 애덤이 ‘캐스케디아, 자유 생태 지역’으로 닉과 리비를 찾아가 합류하며 작은 의식을 치를 때 한때 애덤이 받아 적었던 문장인 알도 레오폴드의 격언의 일부인 행위는 옳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리그베다.(이들 중 내가 읽어본 것이라고는 풀잎,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잘랄루딘 루미의 시 몇 편 정도다.)
나의 공감을 이끌어낸 내용도 많았다. 그는 미래의 우주 지배자들(내 생각에는 잠재력을 발휘해 꿈을 이룬 사람들)이 인간 잠재력의 황금기가 10년 전에 지나갔다고 믿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혁명가들(내 생각에는 말로는 혁명을 외치지만 정작 인간 잠재력의 존재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사회화 되면서 믿지 않기 시작한 사람들)과 학교에 함께 앉아 공부한다며 학교는 시간이 엄청나게 왜곡된 공간이라 보는데 나도 그 의견에 깊은 공감을 했다. 애덤이 개미로 실험을 하는 장면들을 보고 나도 개미가 줄지어 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왠지 손가락으로 경로를 그어보고 싶어서 긋는 순간 뒤의 개미들이 갈 방향을 못 잡는 걸 보고 그들끼리 호르몬 등의 화학작용으로 의사소통하나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났고, 애덤이 개미 군집의 행동과 지능에 관한 관찰기라는 주제로 과학 박람회에 출전했는데 넉 달 동안 개미 등에 매니큐어로 점을 하나하나 찍으며 관찰하고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무언가를 발견할 때까지 작업 했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믿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메달조차 받지 못해서 눈물에 고였던 그를 보고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메뚜기 관찰 과제를 오랜 시간에 걸려서 정말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하며 일기장에 그려 갔는데 선생님은 끝까지 우리 엄마께서 숙제를 대신 해 줬다며 내가 그렸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던 데다가 반 아이들 앞에서 숙제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거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억울해서 울었던 기억도 났다. 패티가 거대한 숲의 부름에 이끌려 커다란 서양측백나무를 만나고 그 나무와 대화를 하며 그의 선물에 고마워하다 마지막에 나무가 다시 자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닉과 올리비아가 공짜 나무 작품으로 만나 함께 숲의 보호자들인 생명 보호군(Life Defense Force, LDF)을 찾아갔을 때 1월의 밤 야외에서 2인용 천막 안에 둘이 누워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둘인데 닉과 올리비아, 파수꾼과 메이든헤어, 이 완벽한 4인조라고 표현한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결혼한 지 갓 한 달 된 내가 명심할 수 있을 만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한다. 닉과 올리비아는 깨닫기 전의 원래 자신들인 ‘미숙한 나’, 파수꾼과 메이든헤어는 새롭게 태어난 영혼들같은 존재인 ‘성숙한 나’. 결혼도 미숙한 나와 너, 성숙한 나와 너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리고 라비노프스키 교수가 방관자 효과를 몸소 보여주며 남긴 마지막 교훈이었던 ‘심리학을 배우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무용지물’에도 크게 동감한다. 왜냐하면 심리학을 배우고 접해본다 해도 매 순간 다가오는 위기와 고난 속에서 옳은 방향을 정하는 것은 매번 실수투성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바로 잡힐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항상 선량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책 중간 중간에 아무리 맥락을 다시 뒤져보고 구글링을 해 봐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미미의 가족들이 캠핑하러 가는 길에 조용한 자동차 성자의 날들에 치매가 시작된다는 부분(갑자기 웬 치매?), 미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 카먼과 어밀리아와 아버지 유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셋만 남자 카먼이 말한다는 부분(셋만 남자 카먼?), 세 자매를 세 명의 오페라 여주인공이라고 표현한 부분(오페라?), 미미의 엄마가 아버지의 자살 전 통화로 했던 말들 중 ‘살베 필리아 메아, 에고 라티남 디스쿤트, 비타 에스트 수플리키움’(인터넷을 죄다 뒤져봐도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애덤을 심리학의 길로 인도하고 제자들을 상대로 방관자 효과를 몸소 실험했던 루빈 라비노프스키 교수와 그의 대단히 우아한 책의 존재, 그리고 책에 나온 퀴즈 2개의 답,
계몽적인 면도 크다. 미미 마가 비인간과 소통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했는데도 행복한 창조자 역할을 했던 미미의 아버지 ‘시 수인 마’였던 ‘윈스턴 마’가 ‘나의 때가 오고 있다’며 탕 소리와 함께 홀로 불가능한 여행을 떠나고 뇌의 일부를 정원의 돌과 나무 몸통에 부드러운 조직 조각들로 남기고 사랑을 위한 자살의 피로 땅 구석구석의 열매를 얼룩지게 하는 바람에(어떤 계기였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태어났던 곳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실을 살다 보니 새로운 미미가 되어 사회적인 통념과 고정관념을 그대로 순종하는 섬뜩한 스텝포드와이프 분위기를 즐기며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다가 격렬한 업무적 성공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창문으로 ‘자신의 숲’을 내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숲이 벌채되기 전 ‘시청에서의 회의! 5월 23일!’이라는 표지판을 읽게 되는데(그 표지판은 더기도 읽는다.) 표지판을 본 다음 날 이미 숲에는 널따란 청회색 적란운만 남아있다.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이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곳에 간 미미는 갓 잘라낸 그루터기에 앉아 나이트에 빙 돌려가며 두꺼운 대문자로 ‘자는 동안 잘렸다.’라고 적는 더기와 만나 300달러쯤 혹은 달릴 수 있는 차를 가진 미미는 그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인간의 교활함과 인생에서의 부당함(잘못된 사람들이 모든 권리를 갖고 있기에), 그리고 오래된 상실감으로 ‘진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주요 인물 5인 중 하나가 되었다가 올리비아의 죽음을 똑바로 지켜보던 그녀는 방화사건 이후 죽어가는 사람의 눈동자를 봤던 경험으로 산 사람의 눈동자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대화하게 되는 상담가 주디스로 살아가다 뉴스로 애덤의 형기소식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할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대신 소리 없고, 나무로 되어 있고, 사방으로 퍼지는 대답만을 하는 존재와 이야기하는 늙은 여자가 된다. 이 대목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정말 나무가 되어버린 건지, 그녀는 과연 유죄인지 무죄인지였다. 아마 나무가 되고 싶은 그녀의 소망일 테고 당연히 무죄다. 유죄라면 사회와 이익기업과 법이 만든 유죄일 뿐이다.
애덤 어피치는 곤충, 화석, 연못 생물체, 별, 바위와 광물, 파충류와 양서류에 대해서 관심을 쏟고 온갖 자연의 견본과 수집품을 모으기도 하고 개미에도 빠져서 개미의 영리함에 존경심도 품으며 비인간과 소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친구들과 그의 누나가 하나씩 차례로 자연에게서 멀어져서 사회생활로 넘어가는 것도 보고 과학 박람회에서의 경험으로 번뜩이는 창의력이 없어지는 순간들을 겪고 그가 읽었던 최고의 가이드들을 버리고 전시품 보물들도 어린애 같은 물건들이라며 부숴버린다. 어떻게 보면 잘못된 사회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번에 알라딘 이벤트 당첨으로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예매권을 받고 관람했던 영화에서도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재능 있는 아이들이 보호 등의 이유로 어른들과 사회로 인해 창의성이 죽어가는 것 말이다. 게다가 저자도 썼듯이 땅에 거꾸로 떨어진 씨앗은 똑바로 될 때까지 뿌리와 줄기가 커다란 U자 형태를 그리며 돌아가는데 인간은 자기가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 방향으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있기에 소설이지만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더 안타까웠다. 이렇게 사회화가 제대로 되는 바람에 ‘편견남’이라 조롱을 받는 애덤은 인정받는 교수도 되고 명성과 부도 얻고 아내와 아이도 갖게 되는데 심리학 논문 준비를 위한 실험을 위해 60미터 위의 거대한 플랫폼 미마스에서 생활하는 메이븐헤어(올리비아)와 파수꾼(닉)을 관찰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미마스에서 짧은 하룻밤을 함께 지내는데 그 짧은 하룻밤이 애덤에게 대부분이 합의하는 현실(교육되고 학습된 현실)에 면역을 가진(야생의, 자연 그대로의)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그가 이해해야 할 ‘비밀’(그들은 후에 미마스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더 암울하고 단호하기는 하지만 단결하여 응집력을 갖추고 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각자의 나무 이름도 있다. 이런 그들을 보고 애덤은 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회복력ㅡ회복탄력성, 내재성ㅡ인내와 끈기, 근원력ㅡ생명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야 말로 인류와 지구, 환경과 우주에 관심을 갖고 싸워나갈 수 있는 사라들인 것 같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하고 진실을 덮고 있는 눈가리개를 풀게 해서 애덤은 자연의 부름에 순응한다.(올리비아의 방화사건 이후, 죽은 올리비아를 제외한 주요인물 4명ㅡ메이든헤어(올리비아), 파수꾼(닉), 뽕나무(미미), 더그전나무(더기), 단풍나무(애덤)은 20년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던 중 뜻밖의 사건(더기가 지내고 있던 유령마을의 방문자 센터로 찾아온 여름 방문객들 중 한 젊은 여자 앨레나가 더기의 숙소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녀가 밤중에 더기가 방화사건이 있던 날의 기억들을 직접 꼼꼼하게 쓰고 밀봉해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넣어둔 노트를 읽고 신고하는 사건)으로 더기가 방화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애덤을 공범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애덤은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대량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되어 살인자, 국내 테러리스트라는 죄목으로 70년 더하기 70년의 형기를 받게 되는데도 억울해 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70년 더하기 70년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그만큼 애덤 자신이 뭘 의미하는지 배우고 자신의 인생이 가치가 있었는지, 어떤 가치를 따라갔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 있다며 자조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무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던 레이 브링크먼과 도러시 카잘리는 각자의 전문직을 가진 채 아마추어 연극단 배우를 하다 순정남 레이와 감성녀 도러시는 결혼해서 함께 6년을 살다 헤어졌다가 죄악 속에 함께 살자는 레이의 편지를 받고 그녀는 다시 약혼을 한다. 재결합한 후 레이는 도러시에게 식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앞으로 배워나가면서 함께 정원을 채워가는 것들을 바라보자고 약속을 하지만 지키지 못하다가 도러시의 외도, 그걸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레이, 독립적인 성향을 주장하는 논리적인 도약을 할 줄 아는 멋진 여자 도러시와 그것을 깨달을 줄 아는 멋진 남자 레이의 대화, 갑작스러운 레이의 뇌졸중과 중증마비, 미래는 약속한 남자와 지내며 역겹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레이의 병간호를 끝까지 해내는 도러시, 불완전한 조합으로 둘이서 그들의 정원에 심어진 스트로브잣나무를 알아내고 개간된 땅에 숲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훌륭하고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책 문장을 보고 잔디를 깍지 않아 집의 사방에서는 ‘야생’이 다가오고 있어 거의 일흔 된 도러시와 그녀의 남편 레이는 자신들만의 삼림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잔디를 깎으라는 시당국의 경고와 협박에도 초연하기만 하다. 그러다 레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도러시는 그녀만의 속도로 곧 레이를 따라갈 거라고(아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말한다.
진짜 실험 때문에 죄수 역할을 했던 건지 아직도 헷갈리게 하는 죄수번호 571번 더글라스 파블리첵. 그는 C-130 기상적재사가 되어 캄보디아로 일일 운반을 하러 가는 길에 수송기가 피격되는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낙하산을 타고 하나의 반얀나무(하나의 우주, 300개의 굵은 몸통과 2,000개의 얇은 몸통으로 이루어진 타원형 숲이 된 하나의 무화과나무) 안에 추락해 목숨은 구하지만 절름발이가 된다. 그렇게 더기는 나무에 목숨을 빚지게 되어 후에 서쪽으로 향하는 길에 숲으로 들어갔다가 마주치게 된 골짜기의 개벌작업에 분노를 느끼고, 그가 말들에게 읽어주면서도 그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말(메시아가 왔을 때 당신이 손에 묘목을 들고 있다면, 우선 묘목을 심고 그다음에 나가서 메시아를 맞이하라)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가장 귀중한 목재용 나무인 ‘더글러스전나무’를 심어서 개벌 현장의 모습을 지우는 일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 붓게 된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 나무를 심어봤자 이익기업에게는 미래에 나무를 더 개벌할 기회만 늘릴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좀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기로 하고 올리비아와 함께 ‘캐스케디아, 자유 생태 지역’으로 가서 방화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현장에 있던 주요 인물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중에 미미를 몇 번 찾아갔다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다 위에 썼던 여름 방문객인 젊은 여자 앨레나에 의한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인내심은 모든 좋을 것들을 만드는 기반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구자라트인 아버지 바불 메타와 라자스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닐리 메타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인간이 다른 생물체로 바뀌는 것을 돕게 되는 소년이다. 그들은 실리콘밸리에 사는 부유한 가족이다. 어릴 때 아빠에게 선물 받았던 초기 컴퓨터 키트부터 시작해 현재 컴퓨터 용어로 슈퍼컴퓨터의 딥러닝을 프로그래밍하고 회사를 차리고 자신이 중추가 되어 팀원들과 함께 거대한 가상의 대륙들을 설계하는 코딩까지 섭렵하는 그는 18개월마다 칩의 트랜지스터가 두 배가 되는 ‘무어의 법칙’의 속도도 느리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성적인 프로그래머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열한 살 때 학교에서 길핀 선생의 문학 수업 시간에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위한 연 프로그램 공책을 연구하다 길핀 선생에게 노트를 뺏기고 분노에서인지 실수 때문인지 모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 이후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데 그는 생각의 기묘한 지대를 영원히 탐험하는 우주선의 선장 자리라 생각한다. 끝내주는 의자에 앉은 비쩍 마른 인도 꼬마는 열두 살 때부터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를 배회하고 다니며 코딩도 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려 다닌다. 그러다 스탠퍼드 안뜰에서 종교적이고 짙은 초록빛의 환영을 만나는데 그것은 그를 불구로 만들었던 삼나무의 환영이었다. 이 삼나무들은 천 년은 걸릴 계획을 진행 중인데 닐리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그렇게 그는 환영과 환상에서 영감을 받아 게임의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더하며 승승장구 한다. 닐리는 존재들에게서 계속 영감을 받아 그들의 존재를 그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인물들 중에 회의적인 인물이 바로 닐리인데,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위대한 자연의 힘을 게임으로 연결시키고 가상의 대륙을 만들고 커뮤니티 등을 만들어 나가는 성장게임으로 연결시키는 부분은 의아했다. 현대시대를 어느정도는 반영하고 싶어서 설정한 인물인 것 같기는 했다.
듣기도 말하기도 힘든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는 그녀의 어눌한 모든 말들과 그녀의 나무 세상을 항상 이해하는 빌 웨스터퍼드의 딸이다. 그녀는 인간의 지혜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너도밤나무의 빛보다도 적다는 사실에 진짜 기쁨을 느끼고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 아니라 ‘겸손함과 관찰뿐’이라는 것을 알고 성인이 된 그녀의 일자리를 뺏은 야생을 싫어하는 성나고 겁먹은 사람들 모두를 용서할 줄도 알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며, 멈춰서 40억 년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이 보고 있는 게 뭔지 ‘정말로 볼 줄’ 아는 식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소녀다. 그녀는 자신의 책 ‘비밀의 숲’의 서두에 밝혔듯 나무는 15억 년 전에 인간과 둘로 나뉘었지만 지금도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하지만 나무와 인간은 여전히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한 그루의 슈퍼 나무와 같은 한 몸이기에 공동체로서 공기 중으로도, 지하의 시냅스를 통해 땅 속으로도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과 온화한 정글에서 보이지 않게 뒤엉킨 수백만 가지의 순환고리는 그 순환을 지속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죽음을 거래하는 중개자들(지의류 무리, 지하의 들쥐, 균류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밝힌다.(여기서 죽음도 삶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됐다. 죽은 나무를 없애면 안 되는 이유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는, 그래서 자연이다.) 마지막 인물이자 정말 중요한 인물인 올리비아 밴더그리프. 뿌리에서 가장 짧게 설명된 인물이고 가장 식물과 관련 없어 보이고 허무한 결말로 끝나서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한 그녀. 스스로 말하기에 난잡한 생활을 했던 그녀는 이혼 후 얼마 안 되어 감전사고로 죽었다 살아난다. 그 이후로 몸통에서 그녀는 방화사고로 화장당해 죽었는데도 몸통, 수관, 종자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며 계속해서 다른 인물들에게 환청처럼 메시지를 보내 위험을 피하게 해주기도 하고 영감을 주는 그녀. 생명체의 40억 년 동안에 가장 경이적인 산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그들, 창설자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부름을 받고서, 끝없는 자기애를 졸업하고 목적 없는 인류와 사랑에 빠진 상태로 아주 미약하게 시작한 그녀의 활약은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 주인공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미마스를 지켜내려 하고, 빛의 존재들이 그녀를 이끌었던 공짜 나무 작품을 만들던 닉과 더기, 애덤, 그리고 미미까지 목재회사들의 탐욕을 저지하려는 운동에 합류하게 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은 아마도 훌륭한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힘일 것 같다. 처음에 그녀가 감전사로 죽었고,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되살아나 모든 것이 존재했다. 빛의 존재들, 40억 년 된 가장 경이적인 산물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렇듯 9명의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 다른 개성과 재능, 그리고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동체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뿌리와 가지를 전 세계에 뻗고 이어나가는 한 그루의 슈퍼나무처럼 말이다.
오래 걸렸던 독서리뷰를 끝내가는 시점에서 앞으로 내 인생에서도 잊지 않아야 하고 내년 초쯤 태어날 첫째 아이, 그리고 계획 중인 둘째와 셋째에게도 잊지 않도록,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고 있는 남편도 잊지 않도록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보고 싶다.
닉과 올리비아가 인정했듯이 가장 강한 마약이고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되 그 사람들이 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하더라도 바뀌지 말 것. 자연의 부름에 따라 바뀌는 것은 받아들일 것. 그렇게 다른 존재가 될 것. 나무의 지혜와 인내와 단순함을 알고 사랑할 것. 소로가 말했듯이 오래된 나무들을 우리의 부모이고, 어쩌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일 것이기에 자연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면 더 많은 인류애를 키울 것. 관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세 단어, the giving tree;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잊지 않을 것. 통제는 죽인다, 연결은 치유한다는 것, 집(자연, 숲)으로 오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한다는 것을 알 것. 잘랄루딘 루미의 시처럼 현상이나 일부나 껍데기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과 전부와 영혼에 눈을 돌릴 것. ‘유용하다’는 것은 바로 ‘재앙’이라는 것을 유념할 것. 궁극적인 계명은 자기 자신을 돌봐라. 네 유전자를 보호해라. 하나의 자식, 두 명의 형제, 혹은 여덟 명의 사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는 것과 세상은 자신의 종보다 더 앞세워야 하는 행복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 내일의 세계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일이며 우리가 볼 수도 있었던 것들이고 우리가 ‘여전히’ 줄 수 있었던 것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유용함이라는 명분으로 행하는 벌채를 포함한 모든 지구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문명을 내세운 인간 활동들을 그만 두고 자연적인 삶으로 돌아갈 것.
그리고 최근에 뉴스를 보고 알았던 정보가 있는데 나는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기사와 연설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심리학 논문을 위해 연구차 미마스에 들렀던 애덤의 눈가리개를 풀게 해 줬던 질문들을 던진 올리비아의 말들과 그레타 툰베리의 경고를 토대로 마지막 문장을 쓰고 즐거웠고 길었던 오버스토리 독서리뷰를 끝내겠다.
세상이 대체할 수 있는 속도보다 인간이 자원을 사용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아주 확실하고 간단한 문제다. 유한한 시스템 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인간들의 권력이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우리들은 사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나의 자녀를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은 자녀들의 눈앞에 있는 미래를 빼앗는 부모, 어른이 되지 말자. 우리는 한 조상에게서 나온 형제자매인 인류와 자연을(인간과 비인간을), 모든 생명체들을 사랑하고 보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게 하고 리뷰를 쓰며 다른 존재로 변화할 수 있을만한 기회와 동기를 갖게 해 준 알라딘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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