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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프가 본 세상 1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t.s 가아프는 말한다. 재미로 책을 읽는 작가는 없다고. 그렇다면 작가란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순전히 재미로만 책을 읽는 나같은 독자는 만의 하나 재능이 있다해도 절대로 작가가 되고 싶진 않다.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릴 바에는 영원히 남의 재밌는 글을 도적질하는 삶에 만족하리라.
가아프가 본 세상은 재밌는 소설이다.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유쾌하기도 하다. 중간 중간 보여주는 그의 유머가 얼마나 탁월하던지. 만약 나처럼 재미로만 책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가아프가 본 세상은 절대로 그에게 실망스런 선택이 아닐 것이다. 물론 4점을 주기에는 약간 모자른 감이 없진 않다. 숫자로 표현한다면 5점 만점에 3.8 정도? 그러나 그것은 역시 3.5보다야 4점에 가까운 점수니 역시 재밌는 소설 분류에 넣어야 하겠지.
장편소설을 쓰는게 좋다는 존 어빙의 말처럼 그는 할 말이 많은 작가다. 두 권의 책에 어찌나 글자들을 꼭꼭 눌러담았던지 소설의 재미에도 불구하고 읽는 속도가 더뎌 책을 읽는 삼일동안 새벽에 잠들어야만 했다. 더 읽고 싶지만 너무 졸려서 눈 앞의 글자가 흐려보일 때까지 책을 읽어야만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점마저도 좋았다. 할 말이 없는 작가의 공백 많은 글을 읽느니 들려줄 말이 많은 작가의 촘촘한 글자를 읽는 편이 훨씬 포만감이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아, 이 책의 강점이 하나 더 있다. 이 책에는 가아프가 쓴 단편 소설이 세 편 있는데, 그건 존 어빙 자신의 단편을 추린 거라고 한다. 존 어빙이 쓴 몇 개 되지 않는 단편 중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 것들만 넣었다고 한다. ( 이 말은 책 뒤에 써있다.) 더구나 에필로그를 좋아하는 가이프 때문에 주요 주인공들의 에필로그까지 볼 수 있어서 나로선 정말 기뻤다. 에필로그의 수록은 예전에는 분명 흔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인기가 사라진 탓인지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에필로그라 무척 반갑고 신선한 시도라는 기분까지 든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없는 환자들이었을지라도, 나는 가아프가 본 세상이 좋다. 가아프 이후에도 삶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