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결투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다자이를 읽는 일이 이렇게까지 심신을 지치게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글이 형편없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나 자신으로, '인간실격'에 흠뻑 빠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모든 글에서 인간실격의 흔적을 찾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 한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글은 또 그것 나름의 재미를 찾으면 될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머릿속을 온통 인간실격으로 채워넣고 다른 글을 읽었으니 지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자이의 글이라면 전부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다자이 읽기를 쉬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그러나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인간실격 이상으로 좋아질 글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의 최고의 글부터 읽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 마치 최고의 음식을 맛보인 다음 맛있지만 최고는 아닌 음식들을 먹어야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맙소사! 그렇다면 다자이 읽기는 내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절대로 허기가 면해지지 않을테니까. 차라리 인간실격 사모으기나 할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른 접시에 담긴 최고의 음식을 음미하기로 할까? 아, 다자이는 왜 이렇게 일찍 죽어버렸을까. 인간실격 이후의 성장을 지켜볼 수 없다니. 나는 영원히 다자이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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