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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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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세월호에 325명의 단원고 학생이 타고 있었다. 그중 생존 학생은 75명이었다. 살아남은 학생들의 모임이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인데 뜻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이들은 재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의 한 생존자가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책을 썼다. (p. 58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중에서)”

 

 어떤 책은 구매가 망설여진다. 마음이 여린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아픔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있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동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끝내 이 책을 손에 잡지 못했다.

2014, 그날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서평가 김미옥 선생님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통해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기가 힘들었던 그 책을 만났다.

내 아이와 그리 나이차가 나지 않는 아이들의 힘겨운 생존기, 그나마 선생님의 3쪽짜리 서평을 읽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남은 생이라 하기엔 너무나 젊은 그들의 생존기가 너무나 가슴 아팠고, 사회가 보호해주지 않는 그들의 치유가 애달파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면서 그들을 위해 썼던 내 글을 다시 찾아 보았다.

 

2024. 4. 16 세월호 10

오늘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이런 기분으로 글을 쓰게 되면 십중팔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마냥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전염시킬 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그저 조용히 쌓여있는 자료나 정리하자며 일부러 유쾌한 노래들을 틀어놓은 채 3시간이 넘게 앉아 자료를 보고 있다.

10년 전 그날, 전국민을 경악시킨 최악의 해상 참사가 벌어졌다. 그날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며 단원고 학생 325명 중 250명이 사망하고 교사 11명이 사망하였다. 일반인 사망자는 4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총 사망자는 304명이다. 구조자는 단원고 학생 75, 교사 3, 일반인 94명으로 총 172명이다.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기에 국민들의 충격이 다른 사건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나게 컸었다. 이 사고로 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 해역이 있는 전남 진도군이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으며 안산 올림픽기념관과 안산 화랑유원지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이 사고로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닥치게 되었고,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국민들은 참사가 일어난 것에 애통하며 함께 울었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고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고 책임자는 강력히 처벌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은폐했고 회피했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태도에 국민들은 분노하며 시국 선언문이 쏟아냈지만, 정부는 유가족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만 했다. 이후 국민들의 분노는 촛불 집회로 이어졌다.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마인드를 크게 뒤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된 대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던 한국 안전 관리 실태와 혼란스러운 사회의 극치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참사로 인해 당시 출범 2년차였던 ㅂㄱㅎ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사회계, 정치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다. 이후 언론, 정계, 경제계, 교육계 그리고 문화계까지 수많은 갈등이 야기 되었는데, 이는 참사를 수습하기는 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여 그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정부의 잘못이 크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큰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을 준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해상 사고로 다섯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330명이 사망한 창경호 침몰 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 사고, 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사고 후 4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재난 사고이다. 20세기에 일어난 위의 사건들과 달리 21세기에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들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 이 사고는 전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결정적으로 깨닫게 했다. (구글 나무위키 자료 참조)

2014년 그 날, 일을 하던 사업장에 사장이 틀어놓은 TV덕분에 세월호 사고 상황을 하루종일 지켜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중 3명이 아줌마였고, 한 명도 그나마 아가씨여서 성별이 같은 여자 넷이서 방송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방송을 보던 중간에 전원 구조 되었다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뉴스는 가짜 뉴스였다. 구조는 더디기만 했다. 그 이튿날도 구조 소식은 잠잠하기만 했고, 나처럼 오지랖이 넓은 사람도, 넓지 않은 사람들도 느리기만한 구조 상황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차가운 바닷물 속 배 안에 갇혀있을 아이들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사건은 해상 사건을 한 번도 겪지 않은 내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잠든 바다의 팽목항엔 하늘의 별을 닮은 노란 띠가 하나씩 묶이기 시작했다. 바다를 떠나 하늘로 올라 간 가여운 영혼들은 그렇게 개나리빛 별이 되었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이상 증세를 보였다. 어떤 학생은 교실에서 지나치게 잠을 잤고 어떤 학생은 지나치게 책을 보았고, 저자는 지나치게 산만해져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기자들이 수시로 접근해서 트라우마를 일깨웠다. 무책임한 어른들은 단원고 학생이라면 호기심을 갖고 그날의 일을 물었다.

 그가 만난 가장 좋은 어른은 택시기사였다. ‘단원고라고 하면 또 물어볼까 싶어 옆 건물 이름을 댔는데 그는 차비를 받지 않았다. “그냥 가.”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어른 인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는 TV 실시간 중계방송으로 침몰하는 배를 구경한 시청자였다.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부모들 옆에서 게걸스럽게 파자를 먹던 인간들도 있었다. 놀러 가다 죽은 건데 왜 난리냐는 말은 이태원 참사때도 반복되었다.

 작년 9월 세월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내인설인지 외력설인지 오리무중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권은 진상규명을 방해했고, 문재인 정권은 방관했고, 윤석렬 정권은 종결했다. 생존 저자는 지금 26세의 청년이 되었다. 몸은 땅에 있지만, 정신은 팽목항 세월호에 남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생존자들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구조한 이야기가 [바람이 되어 살아날게].

 

 살아줘서 고맙다.


_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중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유가영 지음, 다른, 2023.

 

 

며칠 전, 막둥이의 학교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체험학습을 한다며 체험학습비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전해왔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코로나 이후 함께 모여 학교와 학원을 잊은 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소와 이동 수단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월호 이후 학교나 단체마다 이런 활동들이 축소되고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10년이나 지났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움직이는 활동에 곤두서는 신경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세월호 관련 글을 쓰려다 보니 갑자기 얼마 전 남편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샌드 아트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영상이 너무나 아프고 무겁기만 했다.

93회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작품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라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총기 사고로 딸 잃은 부모의 아픔 그려낸 작품이다. 옛날 사람들이 단장지애 (斷腸之哀)라는 표현으로 대신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인간사의 최악의 비애(悲哀)가 아닌가 싶다.

영화의 시작, 무거운 분위기의 부부는 시든 꽃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식사를 하고 있다. 고개를 떨군 채 먹고 있는 밥은 소화가 될까 싶을 정도다. 두 사람 마음의 거리는 양끝으로 길게 늘어져있는 식탁의 거리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부부는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아빠는 먹던 밥을 치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당에 나서자 집 외벽에 남은 딸아이의 흔적을 마주한 아빠, 아빠의 영혼은 딸아이의 흔적을 껴안다가 이내 미끄러졌다. 엄마는 빨래를 정리하다가 딸의 열린 방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을 닫는다. 세탁기에서 딸이 입던 자그마한 티셔츠를 발견했던 것이다. 엄마는 그 옷을 가슴에 품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교복 입은 딸에게 책가방을 메어 주던 날. 그날 아침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부모의 영혼은 학교로 향하는 딸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손을 뻗어보고 감싸 안아 보고 온몸으로 가려도 보지만, 결국 아이는 학교로 가고 말았다. “, 탕탕!”. 난데없이 공중에 퍼지는 총소리와 사이렌 소리, 아이들의 비명만이 가득 하다. 난리통에 딸은 부모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낸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랑해요)’.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으며 멀리 떨어져 앉아 밥을 먹던 부부를 생각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런 지옥을 참아왔을까? 참척지변(慘慽之變)의 슬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깊이의 고통과 아픔일 것이다. 예전에 세월호 학부모를 촬영한 다큐에서도 본 장면이 있었다.

세월호에 아이를 실어보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보냈어요. 다시 그날이 온다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어디도 내보내지 않을거예요.”

애니메이션을 본 그날도, 다큐멘터리를 보던 그날도 나는 울었다. 그리고 감히 내 아이를 품고서 울고 있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그런 그들을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유족들에게돈을 더 뜯어내려고 아직도 저런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죽을 벗겨보고 싶다. 정말 그 안에 사람이 들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젊은 사람이어서자식이란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그래, 뭘 몰라서 그러지하고 잠깐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새끼 낳아 함께 기르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예로부터 내리 사랑이라 하였다. 그래서 부모보다 조상보다 자식이 좋고 손주는 더 좋은 법이다. 그런 내리 사랑을 주고 품어 17년을, 18년을 키웠던 자식이, 멀쩡히 돌아올 줄만 알고 짐을 싸서 보낸 아이가 벌써 10년째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차디찬 바다에서 온 국민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구조 받지 못한 채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당신은 어떠했을까.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잠깐 외출했던 아이가 귓볼만 얼어서 와도 가슴이 시린 게 부모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무얼 겪고 무얼 느끼고 살아왔기에 그렇게도 무서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부모가 죽어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도 애가 닳아 아프고 슬픔을 가눌 길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내리 사랑만 주고 키워온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도 그들의 마음을 그저 가벼이 넘겨 짐작하는 것만 같아 한없이 무겁고 죄스러워 글을 쓰지 않았었지만, 오늘 누군가 올린 글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글로 남긴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자. 제발 그러지 맙시다.

사람이라면, 그것도 자식을 키워보신 분이라면 제발 참아주세요.

마음 속으로만 갖고 있되 사사로이 꺼내지 말아야 하는 말과 심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10, 갓난 아이가 자라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생이던 꼬맹이가 자라 성년이 되는 시간.

세월호에서 멀어져간 아이들도 나는 어딘가에서 그렇게 성인이 되어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생전 몰랐던 나라에 도착해서 기억을 잃은 채 살고 있다고 생각하련다.

언론이 바뀌고, 사회가 개혁되어 그들의 슬픔이 온전히 드러나는 그 날에, 나는 비로소 그들이 밝은 별이, 노란 옷을 입은 아름다운 별이 되리라 나혼자라도 그렇게 생각하련다.

빛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오늘 하루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련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은 불교 용어로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의 실상을 깨닫고 마음의 근본을 깨달아 알게 됨을 뜻한다. 감성과 깨달음의 조화가 균형을 이룬 김미옥 선생의 서평에 딱 맞춤한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기도하고 울음하는 것만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것, 그들의 남은 삶을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하는 것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규명하지 못한 많은 사건과 슬픔이 있다. 그들과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들과 용기있게 나가 싸우며 행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들을 지원하고 아끼며 그들을 알아나가는 것도 그들을 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 김미옥 선생 한 사람의 한 구절 덕분에 함께 감()하고 함께 각()하는 시간을 누렸다. 순간 순간, 이보다 신성(神聖)할 순 없다.

 책이 결코 어려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양서(良書), ‘()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분명 서평계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녀의 따뜻한 감((), ()을 오랜 시간 간직할 것만 같다.
서슴없이 감각의 지평을 열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https://youtu.be/kR3qqA4z438?si=PqLhoDNtBE0ieEhi

 

#세월호_10주기

#유가족들을응원합니다

#Remember0416

#감으로읽고각으로쓴다_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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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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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중독자김미옥서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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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지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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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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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문난 맛집이었다. 미오기네 곰국에는 다른 집과는 다른 맛들이 풍부했다. 일반 곰국이 아니었다. 미오기네 곰국은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쓴맛의 오미(五味)가 다 느껴졌다. 나는 비법을 캐러 들어간 잠입 기자와 같이 꼼꼼하게 그녀를 탐색했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내가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간과(看過)하고 넘어간 큰일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글은 화장을 하고 읽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오후 외출을 위해 오랜만에 치성을 다해 그려놓은 얼굴이 얼룩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인기 절정의 푸바오같은 얼굴로 그녀가 차려준 곰국 한 권을 붙들고 앉아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비오는 날 미친 여자가 되어버렸다.
서평을 읽다가 울게 만드는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나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를, 그래서 모니터나 휴대전화의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좋아하는 내가 종이책의 활자로 진즉부터 만나기를 고대했던 것이 미옥쌤의 곰국 시리즈였다.
“책 제목은 [미오기傳]이지만 시간순으로 쓴 글은 아니다. 말하자면 통증 지수가 높은 기억의 통각점들을 골라 쓴 점묘화다.”-프롤로그에서
시간 순의 전기문(傳記文)이었다면 미오기전은 선화(線畫)였을테지만 한 가지 색으로 색칠을 하고 그려진 선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오기전은 한 점, 한 점 아픔이 담긴 이야기들이 다양한 색을 머금고 찍혀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다양한 컬러의 크기가 다른 작은 점들에 불과하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미오기의 화사한 웃음이 담긴 멋진 초상화 한 점이 될 것이다.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아직 누가 볼 새라 마음 속 깊이 꾹꾹 눌러 담아 놓은 서글펐던 날의 많은 기억을 밖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난 후에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데 즉석 라면처럼 한 번 후루룩 먹고 말기도 어려운 이야기들을 꺼내 그것으로 한참을 우려내는 곰국을 끓인다? 나같이 마음이 좁아터진 쫄보에게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미오기네는 그것을 재료로 곰탕을 끓여댄다. 곰국은1번 끓이는 맛이 다르고, 2번 우려낸 맛이 다르다. 미오기네의 아픈 이야기들은 그렇게 곰국 재료로 쓰이며 미오기네만의 독특한 맛을 제조해낸다. 아프면서도 맛있다. 그렇게 미오기네 곰국은 추억 맛집이 되었다.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프롤로그 중에서
어렵고 학술적인 단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쓰인 그녀의 글은 아주 단순한 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위로를 건넨다. 잠시 숨을 멈추고 삶을 멈춘 채 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러니 사람들은 미오기네 오고 또 오게 되는 것이다.
미오기네 곰국에는 사람들의 기막힌 군상들로 가득하다. 곰국 속의 그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한껏 꾸미고 멀리 그리고 높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곁에 항상 있던 가족이거나 이웃이었다. 유명 작가가 썼다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하다. 그래서 미오기네 곰국은 한 번 맛보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함부로 맛보지 마시길 바란다. 중독을 각오하고 와야 하는 집이 미오기네다.
“지울 수 있는 과거는 없다. 다만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굳은 살로 돋아나 생살보다 튼튼해진다. 같이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이다.” (p. 174 공주미용실의 치정 난투극)
사람의 높낮이도, 돈의 유무도 가리지 않았던 오랜 장터 국밥 맛집처럼 오늘도 그녀는 활자와 추억으로 인생을 끓여낸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끓인 그 곰국을 후한 인심으로 여기 저기 퍼서 먹인다. 그리하여 나처럼 상처 입은 많은 이에게 힐링과 치유를 선사한다. 인심이 후한 집은 원래 입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미오기네 곰국은 희한하기도 해서 식지 않았다 280여 페이지의 활자 하나 하나가 작은 불꽃으로 모여 책의 온도가 끝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활자로 끓여낸 곰국도 맛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책 속에서 나는 여러 번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한 채 홀로 걷고 있는 미옥씨가 보였다. 오지랖이 태평양인 내게 너무나 힘이 들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지혜롭고 발랄하게 세상을 향해 두 주먹을 날린다. 그리하여 지금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게 웃는다. 그런 그녀에게 반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정작 이 맛난 곰국을 즐겨야 할 사람은 미옥씨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쿨하게 끓여낸 곰국의 성찬(盛饌)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 채 본인은 이미 끓인 곰국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곰국을 미옥씨에게 먼저 가득 퍼서 먹이고 싶다.
영구 머리를 하고 다 늘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는 어린 미오기에게
생물 선생을 짝사랑해서 밤잠을 설치며 환경 도서를 읽던 단발머리의 미오기에게
입주 교사를 하며 모래밥을 먹던 대학생의 미오기에게
막 끓여낸 곰국을 여러 번 토렴해서 한 사발 가득 아슬아슬하게 퍼서 먹이고 싶다.
그러면 그녀는 핸드백에서 맑고 작은 소주잔을 꺼내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윤정씨! 여기 두꺼비도 한 병!!!”
혼자 먹기엔 정말 아까운 곰국이었다. 당분간 나를 찾고 싶거든 미오기네 곰국집으로 오시길 바란다. 나는 아마도 미오기네 앞에 서서 지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을테다.
김미옥 선생님! 여기 곰국 한 권 더요!
2024. 5. 14. 화요일 화창한 봄, 미오기네 곰국을 붙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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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하는 엄마 - 불평등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를 행복한 인간으로 기르는 법
파라 알렉산더 지음, 최다인 옮김 / 아고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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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던 시절페미니스트 일명 여성주의자들은 좀 대하기가 버거웠다짧은 숏커트의 머리치마를 잘 입지 않는 패션의 그녀들학내 투쟁 때는 머리에 빨간 글씨를 쓴 띠를 두르고 여학생들의 선봉에 섰었다그런 그녀들의 앞선 행동은 학내 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한 뜨거운 열의였고용기있는 행동이었기에 부럽기만 했었다용기도 의식도 없는 나와는 먼 사람들이라 생각했었고 그렇기에 같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러르는 마음이 드는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선배를 오빠라고 부르는 내게머리에 붉은 띠를 둘렀던 그녀가 여기 네 오빠가 어디있느냐?!’며 강한 어조로 나를 꾸짖었다젠더의 평등을 부르짖고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그녀들의 강한 인식과 운동은 옳다고 믿었음에도 그날 이후 그녀들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그녀들에게 다가가기엔 뭔가 부담스럽고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인지하며 지나온 세월페미니스트들을 거의 잊은 반백이 다 된 나이에 책으로 만난 페미니즘은 여성에만 국한된 학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으며 동시에 페미니스트는 그저 아이를 사랑하고 인류애가 넘치는 나와 같은 엄마였음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여성을 천적이나 경쟁자 취급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이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는 자매로 생각하자다른 여성들의 어려움과 성취에 고루 시선을 주고다른 여성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자.

  • p. 246 3부 본보기 보이기_9장 자매의 손을 잡아 일으켜라

 

고전 명작 <쉰들러 리스트>를 봤다면 아마도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한 생명을 구하는 이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이 구절로 유대인들은 쉰들러가 유대인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인간성을 구원했음을 표현했다이 말은 원래 유대교 율법과 신학을 집대성한 탈무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말의 속뜻은 누구나 각자 자기 안에 온 세상만큼의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모든 생명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며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인류에 엄청나게 큰 공헌을 할 수도 있다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세상에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이바지할 수도 있다다음 세대도 마찬가지다그 한 사람의 후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그들이 모두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하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인류를 위한 도미노처럼이렇게 해서 한 사람에게서 출발해 세상 전체가 창조된다탈무드에 나오는 이 개념대로라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세상 전체를 품고 있는 셈이다그러므로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실현 가능했던 세계 하나가 파괴된다반대로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면 실현 가능한 세계 하나가 구원을 받는다.

  • p. 291 4부 정치의 주체로 서기_12장 엄마가 세상을 구한다

 

 세상의 성소수자가난한 사람들이민자들불법체류자들감금된 사람들장애가 있는 사람들소수민족원주민들까지 엄마’ 특유의 섬세함과 마음을 다한 공감으로 그들을 진심으로 안아주고그들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 나서고입법 활동을 하는 등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활동들을 페미니즘하는 엄마들이 전세계에서 이어나가고 있다.

 잊고 살았던 많은 문제들을 일깨우고 그런 활동들에 참여를 독려하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저 뉴스에서 흘려 듣고 지나치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경쟁 사회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가진 우리나라 엄마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며 소홀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 엄마의 경험을 풍부하게 살려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지에 대해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는 책이다.

 도덕적 합리가 그리는 호는 저절로 구부러지지 않는다우리가 미래의 정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편견과 성차별혐오에 맞설 줄 아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호를 구부리는 데 필요한 힘이다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악을 넘어서는 법을 배울 것이다인류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기에 엄마의 육아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사회운동이 된다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미래를 키워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 p. 300 4부 정치의 주체로 서기_12장 엄마가 세상을 구한다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페미니즘 하는 엄마!’ 당신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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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회전목마 팝업북) - 출간 75주년 기념 수량 한정 특별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 제라르 로 모나코 / 문예출판사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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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책입니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책입니다.
덕분에 4권째 주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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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박나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제목: 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지은이: 박나미
출판사: 영진닷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붓과 물감을 펼쳐놓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그림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이 쓰는 수채물감과 물통, 수채화붓, 팔레트를 신문지를 펼쳐놓은 책상 위에 놓고
학생시절 미술시간으로 돌아간 것 마냥 떨리는 손으로 물감을 짜고 붓에 물을 묻혀 정성스럽게
하얀 종이에 살짝 살짝 찍어가며 그림을 그려본다.



손으로 하는 것은 그리도 재주가 없는 내가, 감히 수채도구들을 펼치게 된 것은
볼수록 즐거운 책


생활 속 행복한 캘리그라피
덕분이었다.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있었지만 손재주가 없으니 언제나 남들 작품만 부러운 듯 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생활 속 행복한 캘리그라피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영원히 수채화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시작하지 못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생활 속 행복한 캘리그라피가 좋았던 첫번째 이유!


1.
사용할 도구에 대한 자세한 설명

, 쿨감, 그리고 각종 펜까지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도구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좋다.


2. 수채화를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도 편안하고 쉬운 방법으로 소개하는 각종 채색법이 나와있다.

3. 물과 물감으로 표현해보는 다채로운 표현법들이 시선을 끈다.




4. 쉬운 설명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수줍음속에 떨리는 손으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갈피와 생일 축하 엽서를 만들어서 책선물과 함께 포장해서 건네주었다.

선물을 받은 이는 웃으면서 네가 만든거야? 그럼 아주 특별한 선물이잖아, 고마워. 고생했어라며 내 선물을 반겨주었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아니 가끔이라도 지은이 박나미씨의 지도를 따라하다보면,
더 예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을 것도 같다.

뿌듯함과 기쁨을 내게 선물하는 좋은 책!
생활 속 행복한 캘리그라피

많은 분들이 함께 보고 많은 작품들을 함께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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