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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도시, 서울의 공원 - 소신과 열정의 공원 만들기 40년
최광빈 지음 / 이유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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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도시, 서울의 공원
_소신과 열정의 공원 만들기 40년
지은이: 최광빈
발행일: 2025년 8월 14일 (초판 1쇄 발행)
펴낸곳: 이유출판
‘푸른 도시, 서울의 공원’에는 냉정한 소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공원을 만들며 가꾸어온 서울시 녹지 행정의 전설, 최광빈 작가, 그의 40여 년의 녹지 행정직 공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쓴 최광빈 작가는 기술직 최초로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을 두 차례나 역임하며 서울의 녹화사업과 공원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전지적 인물이다.
여름숲의 초록을 닮은 이 책은 40여 년 동안 작가가 펼쳐온 녹지 행정에 대한 기획과 정책들에 대한 주옥같은 에피소드와 녹지행정의 노하우가 빠짐없이 담겨있다.
이 책에는 수없이 많은 서울시의 공원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서서울호수공원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김포공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리는, 공원이 없는 신월동.
이 동네 아이들은 비행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비행기의 밑바닥을 그린다고 한다. 저자는 디자이너와 함께 이런 아이들에게 저수지 역할을 하는 자연호수를 디자인적 요소들로 꾸며 탈바꿈한 호수 공원을 선물했다.
이 호수 주변을 생태적으로 디자인하면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데크 쉼터를 만들어 배치했다. 이 호수의 상공을 지나 김포공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80dB 이상이 되면, 열을 지어 배치된 노즐에서 차례로 물을 뿜는 분수를 연출했다.
비행기 소음으로 고통받던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이 공원 개장 이후 서서울호수공원의 호숫가에선 ‘언제 비행기가 날아오나?’하고 비행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비행기 소음을 기다림의 대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디자인이었다.
(p. 204~206 3. 도시 공원을 만드는 사람들_시달림을 기다림으로 디자인한 서서울호수공원)
또한 아이들의 공원을 아이들의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분투기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학교에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특활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신이 놀고 싶은 놀이기구를 그려보도록 하고 그 자료들을 모아 실제 놀이기구들을 구현하여 놀이터에 배치하는 등의 노력은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공원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실질적인 해법들도 주제에 맞추어 친절하게 정리하고 설명하고 있다.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않던 공원과 자연에 대한 많은 것들에 대해 혜안(慧眼)이 열리게 해주는 행정교재로도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공원에서의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풍성한 콘텐츠의 개발과 인간과 조화로운 공원의 모습,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도 경쟁력있는 관광지로서의 공원에 대해 역설하기도 한다.
공무원을 떠올리면 수동적이고 조금은 따분한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자의 이런 역동적인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나무가 늘어선 산책로를 걷는다. 최광빈 선생이 조성한 길은 아니지만 그런 산책로를 걷다보면 복잡한 머리 속이 정리되면서 답답한 마음이 풀렸다.
그러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도가 떠오르기도 하고 막혔던 글귀가 트이기도 한다. 공원과 숲이 주는 위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흔히 행간(行間)을 읽는다고 한다.
글줄 하나 하나 보다는 글줄 사이 사이에 작가가 숨겨놓은 깊고 진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독서의 참맛, 참멋으로 여긴다.
또 그러한 재미는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공원의 푸름을, 자연의 푸르름을 진정 이해하는 사람은 숲에서 초록색만을 찾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녹지행정가인 최광빈 선생은 그 초록이 다 사라진 후의 수간(樹幹), 즉 잎이 사라진 연후의 나뭇가지들의 색에서 진정한 숲의 색과 숨을 읽었다.
독서의 고수들이 행간에서 작가의 색과 숨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기와진회색’!
최광빈 선생이 쓴 공원 조성 분투기, ‘푸른 도시, 서울의 공원’을 읽으며 나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단어다. 기와진회색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은 나처럼 책을 읽으며 찾아보시길 바란다.
조화로움을 강조한 그의 녹지 행정에는 남다른 심미안(審美眼)과 함께 ‘사람’이 있었다.
어린이, 장애인, 삶에 지친 도시인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각별한 그의 노력은 공원과 서울숲 곳곳에 숨어있었다.
깊이있는 안목(眼目)과 미래를 내어다보는 그의 통찰력에 감탄하고 진정 감사해하며 글을 읽었다.
백령도 외딴섬 소년은 운명처럼 서울의 섬들을 만났다.
그를 만난 서울의 섬들은 잿빛을 벗고 푸르고 조화롭게 변화했다.
그가 기획하여 보듬은 많은 공원에서 아이들은 맘껏 웃고 즐기며, 어른들은 각박한 삶을 위로받는다.
그가 선물한 서울의 공원은 서울 시민들에게 공원 이상의 것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어디에선가 먼 훗날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고 있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
p. 412 에필로그
김동률 ‘여름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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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의대 가고 싶어요! -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쓴 꿀팁 가이드!
김병수 외 지음 / 이유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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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의대에 가고 싶어요

 

지은이: 김병수 외 5인의 한의대 학생

그린이: 임지이
출판일: 20258 7(초판 1쇄 발행)

펴낸곳: 이유출판

 

한의대 입시생 정인적방(正人適方) 가이드북!

 

민트 색상의 커버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신간 나도 한의대에 가고 싶어요는 대전대학교 한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병수 교수와 그의 제자 5인이 함께 쓴 한의대 입학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가이드북답게 한의대에 가려는 학생을 위한 꿀팁들이 각 장마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펼쳐져있다.

 

1부에서는 한의대에 재학 중인 여러 학생들의 진학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1부의 1장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한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1부의 2장에는 다른 전공이나 직업을 경험한 후에 한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야기로 꾸며져 한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례들을 검토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2부에서는 한의대 재학 중인 학생들이 현재 배우고 있는 한의학 과정에 대해 과목의 내용과 학습 방법, 연구 과정 등에 대해 풀어놓고 있는데 침이나 뜸 혹은 한약 이외에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다양한 한의학 분야에 대한 자세한 소개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3부에서는 이 책의 집필을 책임지고 있는 대전대 한의학과 김병수 교수가 한의대를 졸업한 이후의 다채로운 진로 방향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알려진 것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는 한의학의 발달로 이전보다 훨씬 더 전망이 밝아지고 있는 한의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의학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4부에서는 김병수 교수의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한다. 이미 예전부터 한의학은 양방(洋方)과는 달리 정인적방(正人適方)을 치료의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한의학의 이런 치료 기조는 질병의 개별적인 증상만으로 다소 일률적인 처방을 하는 서양의학과 달리 질병의 개별적 증상보다는 환자의 평소 건강 상태와 몸의 체질 전체를 고려하는 처방을 내려 궁극적으로 환자의 빠른 치료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한다. 이러한 한의학의 근본이 기존 의학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환자의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접근법으로 개인맞춤형 의학으로 발전하여 효과적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데에 크게 이바지하여 의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질병보다도 환자(사람) 자체를 바라보는데 초점을 맞추는 한의학.
책을 읽으며 사람을 돈과 수단으로 평가하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의학대학에 대한 진학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관련학과인 한의학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공부만 하기에도 바쁘기만 한 입시생과 가족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가이드북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단순히 한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의대 입시를 준비하거나 생명과학 관련 분야의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한 번은 시간을 내어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175페이지 정도의 부담없는 양이니 시간 부담도 적으리라 생각한다.

작고 부담없는 사이즈의 책이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과 정성은 책의 무게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수험생들이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입시!
많은 학생들의 건투를 빌며 친절하고 소중한 안내서를 권한다.

 

 수험 생활은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합니다.

수험 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외로움과 불안과 절망을 일종의 기본값으로 여기고 이를 감내하고 이겨 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 일부일 뿐이지요. 그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마인드컨트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지만요.

그 시절을 돌아보면 완벽하지 못했던 노력의 순간들조차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는 모든 분에게 자신만의 속도와 전략으로 꾸준히 나아가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p. 52~53 김문선(21학번, 2025년 현재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교대 3학년까지 다니고 입학)

 

#나도한의대가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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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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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호흡을 멈춘 시간, 나는 10여 년 만에 만난 옛 지인들과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내 술잔에 넘치도록 술을 따라댔다. 그것을 마시려 입으로 가져오다가 술잔에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도 통화했잖아. 별 일 있겠어. 내일 또 통화하면 되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해후(邂逅)는 길어지고 있었다

길어지는 시간만큼 술잔은 참 많이도 오갔다. 언니를 잠시 잊은 채 축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깨지 않은 머리를 부여 잡은 채로 언니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 내가, 무엇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을, 지금, 뭐가 잘못 되어서!

 

 뜻밖의 그날,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그 날, 

절박한 저 외침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되는 처절한 질문과 울음.

 

 

클레이 하우스의 의미있는 신간 축제의 날들은 아무리 답을 구하려고 해도 구해지지 않는 답을 구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산문이다

그 날을 축제의 날이라 명명할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죽음의 날축제의 날로 맞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홀로(one) 안절부절 했을까.

 

 ‘눈과 가슴에 힘을 빼고 읽자하며 읽었다. 곁에 있는 사람을 떠나 보낸 내가 이 글을 읽어내려면 그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읽었지만, 죽음에 처연히 마주 선 그녀의 생생하고도 절묘한 묘사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의 매력은 무너져 내림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대한 담대함이 서려있는 깊이 있는 묘사에 있었다.

 

 사랑하는 동물의 죽음, 사랑하는 친구의 병, 애인과의 헤어짐, 화재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 암과 조용히 싸우는 여자의 이야기 등 죽음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가볍지도 않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림으로써 평상시 잊고 사는 치료가 어려운 병이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살피게 하고 그런 살핌 속에서 위로 받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글을 쓰며 살지만 차마 글로 쓰지 못한 날과 표현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 보낸 날들에 관한 것은 감히 풀어 쓸 수가 없었다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알겠지만 그날은 차마 다시 떠올리기가 망설여질 만큼 아프고 잔인하다.

 

 

삶이 그렇게 포악할 수도 있다는 경험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무너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픔은 무뎌진다.

어쩌면 사람은 애초에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멀어진 사람보다는 제 몸과 마음을 챙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인 조 앤 비어드((Jo Ann Beard)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참혹한 날들을 어제의 일 마냥 빼곡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

마치 모네가 자궁암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아내 카미유를 그려낸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면서도 너무나 섬세한 사람인 것만 같다.

아무리 아름답게 치밀하게 묘사한다 해도 죽음은 죽음이다.

결코 아름다울 수도 즐거울 수도 없다.

 

그것을 축제라고 명명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잔인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야 했을까. 읽는 내내 그녀의 구체적인 문장들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안스러웠다.

 

 그러나 묘사하지 않는 것들은, 기록하지 않는 것들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헤어짐의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은 그렇게 기록하는 이의 노력에 의해 우리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으로 단절되었지만, 작가가 기록한 날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녀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이의 두려움은 언제나 내 두려움을 없애준다.’

그녀의 노력으로 쌓은 글들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독스를 선사할 것이다.

 

잔인한 순간 마저도 감성을 절제하며 고도의 작업으로 글을 마친 그녀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

 

축제의 공포 속에서

마을은 가난해지고 무심해졌네

가을의 나무처럼

여자들의 어깨 위에

발가벗은 소년들이 앉아 있네

조금은 수줍은 모습으로

팔을 허벅지 안에 숨긴 채

 

언젠가 어느 날

너의 얼굴을 바라보면

축제의 날들이 남긴

슬프고도 사연 어린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겠지

-       낸드 차투베디, [잔인한 축제의 시간]

p. 248 축제의 날들

 

2025. 6. 16. 월요일 저녁 8: 14
클레이하우스의 축제의 날들을 읽고

 

#서평

#클레이하우스_축제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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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비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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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지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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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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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
한민 지음 / 저녁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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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

 

지은이: 한민(멸종위기 1급 토종 문화심리학자)

출간일: 초판 1쇄 발행 20241125

펴낸곳: 저녁달

 

호모 피델리스(Homo fidélis).
피델리스fidélis는 라틴어로 믿음이 있는’, ‘신앙심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호모 피델리스는 종교를 가진 인류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스스로를 멸종위기 1급 토종 문화심리학자라 일컫는 호쾌한 강의의 주인공 한민 교수의 흥미로운 주제의 신간이 나왔다.

 

그러나 이 좋은 책이 도착하기 이틀 전 느닷없이 대통령의 계엄이 선포되었고, 전국이 혼란에 빠졌다. 하루종일 뉴스 속보를 쫓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며 휴대폰으로 속보를 쫓아다니느라 잠을 설쳤다.

 

생활이 엉망으로 꼬였다. 그 사이에도 제출해야 하는 원고가 있었고, 원고를 쓰지 않는 시간에는 뉴스에 온 신경이 몰렸다. 자연히 읽어야 하는 책들이 쌓여갔다.

 

한달 보름이 넘어서야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구속되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산책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남편과 항상 산책을 하며 지나는 곳에 꽤나 규모가 있는 교회가 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십자가 옆에 이스라엘 국기의 가운데에 있는 유대인 마크가 함께 걸려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항상 웃으며 짜증을 냈다.
아니 저기는 십자가 옆에 왠 유대인 표식이야?’
쟤들 성경 안 읽나? ㅋㅋㅋ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십자가 옆에 유대인이니?’

지나칠 때마다 우리는 교회 정면에 걸린 그 두 가지의 표식을 보면서 누구 아이디어일까를 궁금해하곤 했다.

 

토종문화심리학자인 한민 교수의 신간을 읽으면서 산책을 하며 내내 묵은 체증처럼 걸려있던 궁금증이 한방에 깨끗하게 풀렸다.

 

보수 세력의 집회에서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한국 기독교인(개신교)들은 나라를 빼앗긴 자신의 처지를 성경의 백성, 유태인과 동일시했다. 유태인도 한국처럼 옛날부터 이집트, 바빌론, 로마, 독일 등 강대국으로부터 고통받았던 역사가 있고, 최근 2,000년 동안은 나라없이 각지를 헤매며 박해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찾았다. 그리고 이어진 중동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지역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모든 일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세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세계사를 목격하면서 한국의 기독교인은 우리도 기독교를 열심히 믿으면 이스라엘처럼 다시 나라를 찾고 부강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미국은 일본을 패망시키고 한국에 독립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북한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아주었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맞아떨어지는 한국의 역사에 깃든 하나님의 뜻에 감동하는 한편, 한국도 이스라엘 같은 성경의 백성임을 확신했다. 그들의 마음에서 한국, 이스라엘, 미국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객관적인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갖고 있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든 이스라엘은 셩경의 민족이요, 하나님의 백성일 뿐이다.”-285 4장 비뚤어지기 쉬운 신앙_05 그들은 왜 성조기를 드는가

 

 조선말기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기독교, 기독교 세상에는 신분에 의한 차별도 없고 배움과 풍요로움이 가득한 천국의 종교였다. 그런 종교를 믿는 선교사의 나라 미국은 당연히 신이 선택한 나라로 보였다. 책에 따르면 그들의 나라 미국은 제사장의 나라라는 것이다.

보수 세력의 집회에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가 등장하는 건 단순한 정치 집회를 뛰어넘는 처절한 기도회라는 것이 한민 교수의 설명이다.

(그들의 집회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고래(古來)로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인 불교, 도교, 기독교, 천주교, 무속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들을 편견없이 해석하고 문화적 역사적으로 두루 살리며 그것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과 상호작용을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해설해놓았다.

 

한민 교수의 특유의 유머와 문체로 쉽고 자세하게 풀어놓아 제법 무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재미있게 탐독할 수 있는 책이다.

 

 사회의 많은 현상들에는 이렇듯 해설이 필요한 문화들이 있다. 사람들의 문화에는 이렇듯 역사와 삶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의미들을 캐어내는 것은 일반인들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그 학자들이 모두 친절한 것은 아니다. 어렵고 다가가기 어려운 학문은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한민 교수의 신간이 늘 새롭고 반갑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워드로 정리해두는데 이번 책은 좋은 내용들이 워낙 많아서 정리하다보니 벌써 A4옹지로 20장이 넘고 있다.

겨우 20장을 정리하고 힘들어하면서 저자의 저력에 대해 다시 한 번 탄복했다.

 

문화만사성(文化萬事成)!
 
문화의 힘을 전파하는 한민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를 읽는 자!
 
종교와 문화를 숭배하게 될지어다!!!

 

2025. 1. 21. 화요일 밤 10: 59
한민 교수 신간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를 읽고

 

#숭배하는자들_호모피델리스
#
한민교수
#
멸종위기1급토종문화심리학자
#
문화만사성
#
저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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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달
김정식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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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동의 달’을 읽고


 작가는 25년이나 한 동네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 동네가 변해가는 모습, 즉 그 동네의 역사와 함께 해왔을 것이다.

 나 역시 작가보다는 횟수에서 뒤지기는 하지만, 이사를 꽤나 많이 다녔었다. 그리고 이사를 할 때마다 거리가 먼 동네로 이사를 해왔기 때문에 한 동네가 오랜 시간동안 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자기가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다시 방문한 사람들은 실망하고 놀란다고 한다. 자기가 뛰어 놀던 곳이 그리 작았나 하는 생각에 실망하지만, 자기가 한 세계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데에 놀란다고 한다. 나는 자랄 때 지나온 동네들을 다시 가보지 못했다. 멀기도 했지만 이사를 올 때마다 힘든 기억들이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도 어린 시절 우리 동네를 찾아간 것만 같은 강한 느낌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작가가 그려준 금호동이라는 동네도, 글에 등장하는 식구들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작가보다 연식이 조금 늦은 내게도 조금 늦긴 하지만 그와 비슷한 시절, 7~80년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스케이트장이 아닌 땅에 물을 대어 얼린 공터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2차선 도로보다 좁은 통로를 두고 마주한 가게에서 서로 손님을 보내주던 재래 시장이 있고, 한 지붕아래 서너 가구가 함께 쓰던 마당의 수도와 화장실, 그리고 그 수도에 겨울이면 칭칭 동여 맨 새끼줄과 내복을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 시절에만 있었던 정과 낭만을 느끼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두부 아저씨 종소리는 벌써 멀리 걸어가 버렸다. 귀를 기울이면 두부 장수가 끌고 가는 수레의 쩔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아침이라기엔 서툴고 새벽이라기엔 게으른 묘한 시간의 골목 사이에서 주춤거렸다. 부엌에 물을 받아 둔 항아리에는 어둠과 같이 밤을 보낸 먼지가 얕게 쌓여 도마에 남아 있는 생선 비늘처럼 미끈거렸다. 두부 수레의 환청과 미끈거리는 부엌의 항아리에 ‘담긴’ 물의 촉감을 생각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p. 14 1장 유년의 기억_새벽 수돗가

“무리를 지어 사는 짐승들은 가족처럼 다정해 보인다. 그러다 어쩌다 다친 한 마리에게 맹수가 달려들면 무리는 외면한다. 상처 입은 짐승이 포식자에게 먹이가 되면 다른 짐승들은 잠시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엔 정신 나간 녀석들도 가끔 있다. 늑대들은 까딱 잘못하면 자기들도 맹수에게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도 상처 입은 다른 늑대들 옆에서 서성댄다고 한다. 얼빠진듯한 늑대들. 그러면 상처 입은 늑대를 노리던 맹수는 여러 마리를 다 잡기가 버거워 사냥을 포기한다.

 아주 오래전 금호동에 다른 늑대의 상처를 핥아 주는 얼빠진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늑대는 내 자전거를 밀어주고 나와 눈싸움을 했었다. . -p. 99 1장 유년의 기억_얼빠진 늑대”

작가가 살던 금호동에는 다른 동네에서는 찾아 보기가 힘든 사람들이 보인다. 이 동네 사람들은 저 하나 살기도 그리도 퍽퍽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상처입은 사람을 보듬고 핥아주었다. 금호동에는 작가의 표현처럼 얼빠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얼빠진 사람들이 많은 금호동, 그 동네를 가보기도 전에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바로 직전에 지나온 길도 뱅글 뱅글 돌며 ‘이 길이 맞는겨?’하고 묻는 내가 혼자서 금호동이라는 동네에 가보고 싶어졌다. 금호동에 도착해서 정식이가 새로 사귄 친구라 하면 안여사가 반겨주실 것만 같다.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선학 냄비에 금새 지어낸 고소하고 뜨끈한 냄비밥에 배춧국을 끓여, 어젯밤 구워 둔 김으로 집밥을 지어 차려주실 것만 같다. 그럼 나는 또 넉살 좋게 그 밥을 밥알 하나 국물 한 숟가락 남기지 않고 다 먹을거다. 마지막 남은 김 한 장을 입에 물고 고소함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어느 까만 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밤에, 금호동에 가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김정식 작가의 노오란 수필집이 달이 되어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한동안 올려다 보지 못한 그 시절의 우리만 아는 달이다.

그 달 속에는 계수나무집도 있고, 개천 옆에 살던 규호도 있고, 허스틀러를 손에 쥐고 입에 침을 잔뜩 바른 동환이가 있다. 용무늬 잠바를 입은 가오의 대명사 은상형도 있다. 인물이 준수한 성도형과 뽀빠이 천규 삼촌도 보인다. 그리고 저 뒤에 물컹하고 긴 순대를 훌라후프처럼 손목에 건 용준이도 보인다.
 함께 지나온 세월 속에 지금은 서로 약간은 달라진 모습을 하고, 그때를 잊은 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그들이 작가의 기억 속에 이리도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그 시간을 온전히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그가 사랑한 그 시간들을 달빛을 잔뜩 받은 특별한 추억의 종이로 한 장 한 장 빛나는 수필로 엮였다.
 책을 붙들고 추억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울다가 웃다가 결국엔 화장을 다시 고쳐야 했다. 조신하지만 조근조근 할 말을 다 하는 말솜씨가 꽤나 좋은 선배가 자기 동네 금호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화려하진 않은 고백을 하고 있었지만 진행 솜씨가 워낙 좋은 가이드여서 25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40~50대 중년에게는 추억 여행을 떠나기에 너무나 좋은 가이드북이기도 하고, 우리보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모나 이모 또는 삼촌 같은 어른들의 시대를 알게 해주는 훌륭한 추억의 답사서가 되기도 한다. 세대를 막론하고 함께 읽기를 권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자신을, 또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것은 때로는 즐겁고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모든 추억이 달고 맛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프고 쓰기도 하다. 그런 추억들을 이렇게 잘 정리한 작가에 대해 사뭇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또 이 책을 읽는 당신은 김정식 작가처럼 추억 속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과 이별에 관한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Say not in grief 'he is no more' but in thankfulness that he was.

- Hebrew Proverb -

'그 사람은 이제 없다'라는 말과 함께 슬퍼하지 말고, 그가 당신의 삶에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는 말이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금호동’을 그리워하는 작가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의 말이다.
‘금호동’이 김정식 작가 당신의 삶에 있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나  부러운 일이니 말이다.

“기억이라는 게, 내 나이쯤 되면 천상병의 시처럼 해맑게 남거나 흑백사진의 기형도처럼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잊고 있던 오래전 모습들이 마치 금홍이가 외출하면 혼자 방을 지키던 이상이 화장품 뚜껑을 만지작거리던 몽환적인 느낌으로 한 번씩 내게 돌아온다. 일곱 살의 내가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지금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이제 알았다. 나는 나를 다시 만나려 살고 있다는 걸.”- p. 16 새벽 수돗가


 금호동에는 아직도, 달이 뜬다.

2024. 7. 17. 수요일 오후
금호동의 달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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