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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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호흡을 멈춘 시간, 나는 10여 년 만에 만난 옛 지인들과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내 술잔에 넘치도록 술을 따라댔다. 그것을 마시려 입으로 가져오다가 술잔에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도 통화했잖아. 별 일 있겠어. 내일 또 통화하면 되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해후(邂逅)는 길어지고 있었다

길어지는 시간만큼 술잔은 참 많이도 오갔다. 언니를 잠시 잊은 채 축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깨지 않은 머리를 부여 잡은 채로 언니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 내가, 무엇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을, 지금, 뭐가 잘못 되어서!

 

 뜻밖의 그날,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그 날, 

절박한 저 외침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되는 처절한 질문과 울음.

 

 

클레이 하우스의 의미있는 신간 축제의 날들은 아무리 답을 구하려고 해도 구해지지 않는 답을 구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산문이다

그 날을 축제의 날이라 명명할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죽음의 날축제의 날로 맞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홀로(one) 안절부절 했을까.

 

 ‘눈과 가슴에 힘을 빼고 읽자하며 읽었다. 곁에 있는 사람을 떠나 보낸 내가 이 글을 읽어내려면 그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읽었지만, 죽음에 처연히 마주 선 그녀의 생생하고도 절묘한 묘사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의 매력은 무너져 내림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대한 담대함이 서려있는 깊이 있는 묘사에 있었다.

 

 사랑하는 동물의 죽음, 사랑하는 친구의 병, 애인과의 헤어짐, 화재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 암과 조용히 싸우는 여자의 이야기 등 죽음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가볍지도 않지만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림으로써 평상시 잊고 사는 치료가 어려운 병이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살피게 하고 그런 살핌 속에서 위로 받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글을 쓰며 살지만 차마 글로 쓰지 못한 날과 표현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 보낸 날들에 관한 것은 감히 풀어 쓸 수가 없었다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알겠지만 그날은 차마 다시 떠올리기가 망설여질 만큼 아프고 잔인하다.

 

 

삶이 그렇게 포악할 수도 있다는 경험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무너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픔은 무뎌진다.

어쩌면 사람은 애초에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멀어진 사람보다는 제 몸과 마음을 챙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인 조 앤 비어드((Jo Ann Beard)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참혹한 날들을 어제의 일 마냥 빼곡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

마치 모네가 자궁암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아내 카미유를 그려낸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면서도 너무나 섬세한 사람인 것만 같다.

아무리 아름답게 치밀하게 묘사한다 해도 죽음은 죽음이다.

결코 아름다울 수도 즐거울 수도 없다.

 

그것을 축제라고 명명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잔인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야 했을까. 읽는 내내 그녀의 구체적인 문장들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안스러웠다.

 

 그러나 묘사하지 않는 것들은, 기록하지 않는 것들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헤어짐의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은 그렇게 기록하는 이의 노력에 의해 우리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우리의 시간은 죽음으로 단절되었지만, 작가가 기록한 날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녀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이의 두려움은 언제나 내 두려움을 없애준다.’

그녀의 노력으로 쌓은 글들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새로운 패러독스를 선사할 것이다.

 

잔인한 순간 마저도 감성을 절제하며 고도의 작업으로 글을 마친 그녀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

 

축제의 공포 속에서

마을은 가난해지고 무심해졌네

가을의 나무처럼

여자들의 어깨 위에

발가벗은 소년들이 앉아 있네

조금은 수줍은 모습으로

팔을 허벅지 안에 숨긴 채

 

언젠가 어느 날

너의 얼굴을 바라보면

축제의 날들이 남긴

슬프고도 사연 어린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겠지

-       낸드 차투베디, [잔인한 축제의 시간]

p. 248 축제의 날들

 

2025. 6. 16. 월요일 저녁 8: 14
클레이하우스의 축제의 날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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