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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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또한 나만큼이나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습득하고 있는 듯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세계가 나를 두고 멀리 가버린다. 내게 익숙한 세계는 이제 죽어가고 있고 곧 유효기간이 끝날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클래식의 세계로 떠밀려가는 중이다. 너무 과거라 오히려 낯선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한 채 흉상으로 박제되어 있는 위인들의 세계 말이다. 곧 내가 속한 카테고리는 그쪽이 될 듯하다.

예전에 유서깊은 조리원의 백전노장 신생아 돌보미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아기들이 진화하고 있다고. 30년 전이라면 백일 아기나 했을 법한 행동들을 생후 1~2주에 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인간은 늙고, 죽는다. 그리고 세포 단위로 모든 것을 리셋해 더 업그레이드된 다음 세대를 남긴다.

다음 세대를 판단하지 말지어다. 기성이 된 세대는 그들을 그저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은 그들이 우리보다 낫다. 그러라고 우리가 그들을 낳았지 않았나. 우리가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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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신전의 미스터리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김서정 옮김 / 크래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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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급 유머이지만,
그래서 이 책을 어린이용 도서로 구분하는 것은
서점이 마케팅 실수를 범하는 일이겠지만,
이 책은 딱 내 취향이었다.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풍자와 해학이 있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그림책 작가 버전이라고나 할까.

원문은 더 재치가 넘쳤을 테고, 그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고생 꽤나 하셨을 것 같은 짐작이 든다.

한동안 맥컬레이식 유머에 잠겨 헤엄치고 다니며 실없는 농담을 남발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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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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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사료를 바탕으로 허구를 써야 한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물론 이 책은 사료뿐 아니라 과학이론과 과학이 발견한 세계상까지 포괄한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몇몇 위대한 과학자들로 인해 급격히 변화하였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나면 그 위대한 이들의 정신도 인간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통 받고 깨닫고 좌절하는 인간들.

미학적 문장과 과학 세계관의 독자적 해석을 결합한 소설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토마스 핀천의 <엔트로피>와 나란히 혹은 그들보다 앞에 나는 이 소설을 세우고 싶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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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인터뷰집 《우리는 sf를 좋아해》에서 김초엽과 심완선의 대화를 읽고 알게 된 sf평론집이다. 캐서린 헤일즈의 전작과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는 로쟈 서평을 읽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닐 스티븐슨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남성향의 냄새가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건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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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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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다가 울었다. 추천사의 김미월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눈은 울고 입은 웃었다. 내가 왜 이러나. 그러면서.

이건 소설인데 소설이 아니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허구의 요소가 있겠지만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빨치산 아버지, 혁명운동가 어머니,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현대사의 질곡을 지극히 비루하고 비근한 개인의 삶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사람들.
무엇보다 화자가 살아있다. 이 화자는 건조한 서술이 현대소설이라 믿는 근래 소설들의 모든 화자들을 엿먹인다. 냉소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비겁한 지식인들의 방어기제인 것이다.

정지아. 이 이름을 앞으로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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