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없는 시간 속에 책을 들여다 볼 여유가 가끔씩 생겨서 좋다.

비가 오는 날이면, 책 보기에 더 좋다.

작은 거실에서 아이들이 복작복작 놀고 있는 오후.

잠깐 들고 읽기에 딱 좋았던 책을 소개할까 한다.

소재를 생각하면 내용은 분명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데, 의외로 간결하고 담담한 그러면서도 사실적이었던 책.

이 표현을 꼭 적어두고 싶었다. 왠일로 내가 읽어보라며 건네자 그 자리에 앉아 읽어내려간 바깥편이 어땠냐는 내 물음에 "카르페 디엠"이라 답했다.

당신의 그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 가.

사실, 처음 <시간이 멈춘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우리의 시간도 지금 멈추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더 눈길이 갔다. 작게 쓰인 부제를 보고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일지 짐작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손을 든 이유는.....

읽고나면 시간이 멈추었던 그 방을 잘 정리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멈춰있는 우리들의 시간이 다시 잘 시작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책을 쓴 사람은 고지마 미유라는 유품정리인이자, 특수청소일을 하는 한 여성이다.

책의 내용은 그녀가 일본의 '엔딩산업전'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고독사현장의 미니어처들을 다룬다.

그녀가 미니어처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가까운 일들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책에는 미니어처 8점을 통해 고독사 현장을 소개한다.

1장 ― 아버지의 소식불통

2장 ― 쓰레기 집, 그 각각의 사정

3장 ― 집 안의 밀실

4장 ― 유품이 많은 방

5장 ― 벽에 남긴 한마디, '미안해'

6장 ― 남겨진 반려동물들

7장 ― 마지막 쉴 곳

목차를 통해 어떤 현장들이 다루어질지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실사가 아니라 미니어처라서 그냥 만화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첫 번째 미니어처 장면을 보고 처음엔 그냥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 장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번째 미니어처는 그녀가 주로 접하는 현장의 특징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50~60대 남성.

발견 시점은 사후 3~6개월.

발견자는 늘어난 해충과 고약한 냄새 등을 통해 변고를 눈치챈 아파트 집주인 또는 수도 계량기 검침원이나 신문 배달원.

이것이 내가 방문한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유형이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 19

그녀가 요약해둔 가장많은 유형의 고독사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건,

하나 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유형의 죽음이 늘어가고 있고, 이런 짧은 문구로 축약된 이야기들을 꽤 접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현장을 표현한 이 한 장은.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다.

집 안은 정돈이라는 말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광고 전단지와 먹다 남긴 도시락, 빵 봉지, 빈 캔과 뭉쳐 버린 휴지, 비닐봉투와 약 따위가 곳곳에 어질러져 있고 빨래 건조대에는 속옷이 널린, 생활의 흔적이 역력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갈색으로 변색되고 사람 모양의 주름이 잡힌 이불이 보였다.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이불 주위에는 남은 음식쓰레기와 잡지, 약과 주삿바늘이 잔뜩 뒹굴고, 베개에는 피를 토한 흔적이 있었다. 당뇨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23


작가가 표현한 이 장면은 처음 현장에서 접하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시신이 남겨져있던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그렇지만 무표정하게 (왠지 표정이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적어두었다.

시신이 있던 장소를 치우는 작업에 대한 묘사는 놀랍도록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하지만 굳이 옮겨적고 싶지는 않은 건, 왜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글 중에 '고독사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 후에야 고인의 유족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는 표현에서

그 작업을 직접 손으로 옮겨적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미니어처들 모두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두번째 미니어처가 가장 충격적이다.

쓰레기로 가득한 집의 이야기.

천장까지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안 그럴거야.'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 같다. 재밌게도 이 장의 시작에 나와 똑같은 속엣말을 내뱉는 여성이 등장한다.

재밌게도 요즘 <남자 가정부가 필요해?>라는 일본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자신의 일에서는 프로지만 집안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짐들에 점령당해 살아가는 모습이 초반에 등장했었다.

일에 전력을 다하느라 집안 일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사람이 그녀뿐은 아닐 것이다. 책속에도 작가가 소개하는 집안 정리가 잘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람은 내가 가진 에너지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닥치면 살아가는 공간이나 자신이 먹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한다. 당장 나만해도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먹을 것을 매끼니 고민해가며 만들고, 아이가 지내는 공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쓸고 닦지만 그러느라 내가 입는 옷, 내가 가진 물건들은 어느 한쪽 방안에 가득 쌓아두고 정리하거나 잘 꾸밀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충격적인 쓰레기집의 고독사 현장은. 그 안에 쌓인 쓰레기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쓰레기들이 정리된 만큼 그 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도 가벼워지고 평안해졌길 바래본다.

쓰레기집 이후로 등장한 미니어처는 집안의 밀실편이었다. 욕실과 화장실에서의 고독사를 다뤘는데. 사실 이 미니어처가 시각적으로는 쓰레기집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고령의 경우 겨울철 히트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자신은 아직 젊기때문에 (젊다고 믿고 살아간다 ㅎㅎ)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망사유였다. 흔히 말하는 겨울철 심장마비가 욕실에서 씻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볼일을 보기 위해 차가운 변기 위에 앉았다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4장과 5장에선 유품이 많은 집 VS 정돈되어 있는 집이 연달아 다루어진다.

두 죽음의 현장을 붙여서 소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유품이 많다는 건 (쓰레기집과는 다르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뜻일 거다.

그 유품을 대하는 마음이 어떨까....

재밌게도,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에 나타나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는 불쾌한듯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남겨진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쓰인다면 오히려 그 물건의 입장에선 좋은 일인지 모른다.

다만, 아무 준비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경우엔 그 물건의 소유권이 불분명하고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쓰게 웃겼다.

다다미를 뜯어가겠다는 사람. 피규어를 가져가겠다는 사람. 발견되지도 않은 돈뭉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으로... 보이는 그들의 욕심에 희한하게 웃음이 났다.

죽음을 다루는 책에서 이토록 뻔뻔한 좀도둑 이야기라니. 웃기지 않은가?

먼저 돌아가신 어른들의 사진, 상장 그리고 벽장 속 전통 인형. 자식과 손자들이 놀러 오면 덮을 엄청난 이불들. 언젠가 다시 읽겠지 싶어 꽂아 둔 선반의 책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소중히 포장한다.

유품이 많은 방,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70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의 시간. 내가 떠난 후의 내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인상을 받을까?

그 질문은 지금의 내게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5장에선 자살자들의 현장을 다룬다.

유품이 많은 집과 자살자의 집을 연달아 배치한건, 유품이 많은 죽음과 달리 자살자의 경우 집안을 정돈해두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죽음을 예견한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정돈한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 죽음을 예견한다면 아마도 내가 속한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이 버틸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심정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해본적은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늘 평탄하게 행복하기만한 사람은 없으니까.

책에서는 자살 그 자체를 평하기보다는 그 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순간 먹먹해졌다.

아무래도 다른 죽음의 현장보다는 훨씬 '죽음'이라는 단어가 짙게 묻어나는 유형이라서 그런 것 같다.

주위에 마음 아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손 내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다.

괜히. 지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도 해보고 말이다.

그런 작은 불꽃들이 우리 삶을 차가워지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온기들을 찾아내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온기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죽음 이후의 공간을 다룬다는 게, 어떤 걸까..?

뉴스나 <그것이 알고싶다>, 추리드라마나 영화같은 컨텐츠들을 통해 살인사건이나 자살현장의 이미지 같은 건 본적이 많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책을 보면서,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죽음 이 후의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주로 산 사람들이 차지한 장면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외갓집 조부모와 애틋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외가쪽 친척들과는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외사촌들을 돌보느라 바쁘셨던 외할머니와는 그저 명절이면 얼굴을 보는 친척 정도의 거리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년 전에는 할머니와 꽤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것 같다. 아픈 할머니께 드린다고 꽃다발을 사들고 가던 버스 안에서 맡았던 후리지아 꽃향기와 뒤섞인 그 시골 동네의 향기가 아직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 몇년은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물으며 지냈었는데.

그때 할머니댁에서 봤던 한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백발의 할머니가 전화기를 붙들고 울며 어떤 이야기를 하셨던 그 날의 기억.

그 후로 일하다가 받은 할머니의 부고에 나는 정신없이 사무실 바깥 복도에서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장례식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연이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게 몇일이 지나가 버려서.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잘 모르겠는 지경이었다.

책을 덮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맞았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 내 안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남았있구나.' 그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애틋했다.

태어난 존재는 모두 죽는다.

그 당연한 진실을 우리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삶이 그렇게 가벼워지고, 하찮아지고, 불편한 감정으로 가득해지는지도 모른다.

겨우 몇십년. 불운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주어진 삶이라는 여행을.

우리가 '늘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하루를 허무하게 채우는 죽음이 아닌,

나의 삶을 아름답게 채우기 위한 이유가 되어줄 죽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던 처음의 마음대로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청소현장에서 꽃다발을 들고 간다는 그녀가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고마웠다.

이런 좋은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당신의 일을 소개해 줘서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더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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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
장샤오헝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행복'을 내 삶 안에 들여놓으라고.. 이야기 해주는 친구의 조언 같다.

눈을 뜨면 틀어두는 음악처럼, 잠들기 전에 보는 좋아하는 영상들처럼... 다른 불편한 것들은 내려놓고 행복의 손을 잡으라고 이야기해 준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의 어느 누구하나 가벼운 마음인 사람이 있을까 싶게...

아마...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숨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을 고르자면 인디고 블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 책에 손이 간 것 같다. 제목에서 어쩐지 우울한 내 마음에 위로를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쟝샤오헝이라는 저자 이름은 책이 도착한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ㅎㅎㅎ

쟝사오헝이 누구지? 검색창에서 찾아봤다.

<마윈처럼 살아라>를 비롯한 다수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정보 말곤는 작가의 전작에 쓰인 저자소개 중 일부를 보고 감을 잡았을 뿐이다.

쟝샤오헝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수천 년간 다져진 중국 철학과 인문학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다. 그러던 중 동양 인문학의 보고, 베이징대학교와 그곳을 스쳐 간 수많은 저명인사의 인생철학과 삶에 대한 통찰에 매료되어 오랜 시간 그들의 글과 발언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묶어 책으로 펴내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중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촌철살인의 거침없는 문체로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느리게 더 느리게》와 《마윈처럼 생각하라》라는 도서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베이징 링윈비(凌雲筆) 도서창작센터를 설립하여,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도서 제작에 힘을 쓰고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라는 제목 아래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라는 부제를 달고있어서, 처음엔 장샤오헝이라는 작가가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작에선 <베이징대 철학수업>이라는 제목을 쓴 것으로 봐서, 제목을 뽑는 규칙같은 걸... 유명대학명으로 정한 것 같다.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든, 출판사의 아이디어든)

작가는 친절하게 서문에서 그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해피어로 유명한 탈 벤 샤하르라는 하버드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말이다.

덕분에 긍정심리학을 만들어낸 창시자의 홈페이지에도 찾아가 보게 되었다 ㅎㅎㅎ

(긍정심리학은 10년 전에 일하다가 시도해보고 싶어서 사내에서 스터디를 했던 주제라 반가웠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을 이렇게 찾아본 건 오래간만이었다. 여러가지 궁금증을 갖게 만든 서문 덕이다. :)

책 속의 목차를 보고, 이게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는 목차일까? 궁금했다.

왜냐하면 책속의 챕터가 정확하게 카테고리화되어 있지는 않는 것 같아서였다. 개념들이 조금 섞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미국식의 책들은 카테고리가 딱딱 떨어지는 책들이 많았다. 분명한 걸 좋아하는 아메리칸스타일.

(나도 좀 그런것도 같다) 그래서... 찾아봤다. ㅎㅎㅎ

흐름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카테고리명도 달아놓지 않았구나.... 추측해봤다.

아마도 미국 VS 중국이라는 문화적차이와 작가가 쓰고 싶은 생각의 흐름에 맞게 재구조화된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어찌되었건,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리고 행복을 내 안에 자리잡게 만들기에 좋은 조언들이 많이 쓰여 있었다.

내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들을 갈무리 해보았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쩔수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면 더 이성 젊지 않다. ....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5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저릿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이상 젊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인생이 무엇인지 아직 깨달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젊지도 않다니. 입이 썼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행복의 조건을 정의한다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나는 행복한가?"

놀랍게도 우리는 이 중요한 문제를 일부러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한다. 사실, 삶의 질은 관심사가 어디에 집중되어 잇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가끔은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해 보자.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볼지라도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말라!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6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때때로 행복하다. 때때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고보니, 내 행복은 절반만 채워졌구나.... 좋아하는 일을 이제부터 찾아야겠다.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물질을 행복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그들의 결정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20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

인생을 논하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내 욕심의 그릇을 채운 후로는 잠깐 동안 자유롭지만, 희안하게도 그 그릇은 자꾸만 넓어져 간다. ;)

샤하르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실패하는 법을 배워라, 아니면 배우는 데 실패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31. 불완전한 사람이 행복하다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나에게는 있을까?

포기가 아닌 인정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언제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저 구석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까.

나는 전업주부지만, 요리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

청소나 정리정돈은 하면서 그럭저럭 재미를 느끼지만, 요리와 설겆이는 할수록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가끔 로또라도 맞은 듯 맛있게 요리가 되면 그날은 기분이 좋다.

샤하르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아직 나는 요리에 있어서는 실패를 덜한 모양이다.

당신이 고액권 지폐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할 수는 없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50. 모든 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없다

이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웃음이 픽 나면서 가슴에 팍 꽂힌 말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ㅎㅎㅎㅎㅎ


스콜틀랜드의 저명한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저서 <데일리 셀레브레이션>에 이렇게 썼다. '행복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건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희망을 갖는 것, 둘째는 할 일이 있는 것, 셋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행복은 완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물질이 부족해도 늘 행복하고 누군가는 돈이 넘쳐나도 불행하다. 지금, 자신의 행복관을 점검해보자.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63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잠시 덮어두고 생각해 봤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일어나 운동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침실에서 타박타박 걸어나와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얼굴,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온 얼굴로 환하게 웃는 가족들의 얼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엄지척을 치켜세우며 금새 식사를 끝내는 가족들의 입가, 집안일을 끝낸 오후 나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시간, 퇴근 후 날 위해 가방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남편의 귀여운 뒷모습 같은 것들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크게 놀라운 행복이나, 큰 돈이 드는 행복은 없다. 그저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늘 같은 하루를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 가짐에 따라 같은 하루의 일상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다.

더 멀리, 더 오래 걷고 싶다면 발에 맞는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런데 편한 신발이 꼭 가장 예쁜 신발은 아닐 수도 있다. 무조건 예쁘고 화려한 신발만 탐내고 고집한다면 결국 발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신발이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발보다는 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77 나의 장점으로 행복을 경영하라


내게는 신발과 얽힌 어릴 적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셨던 구두에 대한 기억이고, 하나는 엄마가 나와 함께 시장의 신발 가게에서 몇번이고 신었다 벗었다하며 골라주셨던 운동화에 대한 기억이다. 두 기억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인데 부모님은 모두 내 발이 편한 신을 고르기 위해 고심을 하셨었다. 20대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혼자 살게 된 나는 내 눈에 예뻐보이는 신발만 골라 신다가 (10cm씩 되는 힐을 어떻게 신고 다닌 건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발가락이 휘어지고, 무릎이 아파 마음껏 걷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내 신발장엔 운동화가 단 한결레도 없었다. 색상별, 소재별 구두만 가득했다. 작은 키가 컴플렉스였던 나는 구두를 통해 키가 커지면 내 안의 어딘가도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쇠도 씹어먹을만큼 신체가 튼튼한 20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힐을 신으라고 하면 발과 무릎이 아파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내 발을 아꼈던 것만큼만 내가 내 발을 아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보니,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고 아낀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말했다.

"원래의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잃어버렸을 때, 이를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늘 즐거웠던 것처럼 일어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만약 이 방법으로도 다시 즐거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정말로 용기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의지를 북돋아라. 그러면 어느 순간 용기가 두려움을 대신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00 두렵다면 행동하라

'하나의 의자만을 선택'하라는 표현은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전념해야 한다는 진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선택하고 추구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유한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손에 넣고자 욕심을 부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던 것이라 익숙하지만, 초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빨리 그 시간이 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곤 했다. 나는 결국 채우고 싶었던 10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내가 서 있던 곳에서 내려와야했지만, 또 다시 걷고 있는 '엄마'라는 직업도 10년이 되어가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구의 시간이든 허투루 지나가지 않게 살아낸다면 각자의 인생에서 지혜는 꽃피기 마련인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Andr Maurois)도 비슷한 맥락의 충고를 했다.

"우리는 종종 별것 아닌 일로 이성을 잃고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이 세상에서 겨우 몇십년을 살 뿐이면서 의미 없는 일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매이면 인생은 빛이 바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기란 그 자체로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한 일이다. 그 탓에 많은 사람이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얽매인다. 문제는 어떠한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실질적인 득실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소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빼앗긴다면 그보다 더 큰 손해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87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지 말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화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화가 치밀고 마음의 군형이 깨질 때 자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다. 이 일이 정말로 화를 낼만큼 가치가 있는가? ...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순간에도 자신이 가장 아끼로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구분한다. ... 어떤 순간에도 우선순위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일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89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지 말라

이 두 부분이 마음에 들어온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요 근래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 속에는 '분노', '상실감', '어이없음', '적대감'과 같은 것들이 한번씩은 자리를 잡고 앉았던 적이 있지 않을까?

이름도 없던 바이러스로부터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이 긴 싸움에 모두가 지쳤다. 나 또한 몇 달간 이유없는 분노에 휘둘린 긴 시간들중 대부분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금 상황을 회피하기도 해보고,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도 해온 것 같다.

마스크를 쓰고 문 밖에 나서야만 하는 일상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네 식구가 집 안엔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에 부딪혀 힘들어한 시간도 있었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예민해진 서로에게 실망하고 화가나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 아직 진행 중일 것이다.) 그 와중에 집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해 질 수 있도록 가족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규칙 같은 것들이 생겨난 것 같다.

종이에 꾹꾹 눌러 적어두진 않지만, 모두가 알아차리게 된 규칙들 말이다.

아마도. 각자의 마음 속에 우선순위가 정렬이 된 후 세워진 규칙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

많은 것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내게로 책임이 전가된 것들(초등1년생의 공부, 4살의 사회화, 그리고 늘어난 밥상, 한눈팔면 쌓여버리는 살림)에 대해 분노하지 않기 위해 내 집안의 뉴노멀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나 스스로를 살림&육아의 불쏘시개로 쓰이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한 시간도 꿋꿋이 챙기고 있다!

(몸 건강을 위해 운동, 마음 건강을 위해 글 읽기와 글 쓰기)

이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하르는 언제나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늘 감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그는 '감사 노트'를 만들라고 권한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함의 대상을 다섯 가지 정도 노트에 적는 것이다. 대상은 공기가 될 수도 있고 맛있는 식사나 가족, 혹은 낯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222 감사는 표현할 때 진짜 감사가 된다

"고마워요." 만큼 마음을 채워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이 부분을 보면서, 아이들과 가끔 생각이 날때 고마운 마음을 적어보자고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인지할 수도 있고, 마음을 표현할 용기도 생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곁에 둘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알려주어서 고마웠다.

저자 덕에 하버드에 잠시 청강을 하러 다녀온 것만 같았다.

중국사람이 풀어내는 행복이라는 게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나라여서 갖게되는 공감대는 있나보다.

때때로 읽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뭔가 강의실을 잠깐 일탈하고 싶은.... 그런 기분?)

끝까지 읽고나니, 좋았다!

장샤오헝 작가가 다음번엔 어떤 책을 쓸지 궁금해졌다.


이 글은 다연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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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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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중단편 여러권이 묶인 책이었다.

작가의 작품들 중에 한국사람에게 읽힐만한 것들을 솎아서 묶었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라는 한국사람의 취향에는 잘 맞았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SF라는 장르는 현재의 상식을 벗어난 세계관, 또는 소재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필요한데, 이 정도의 분량으로 그런 몰입감을 주는 작품은 오래간만에 읽어본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 예전에 읽은 SF작품 중에 어떤 여인이 브라질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여성의 가임기간을 끊임없이 늘리는 물질을 찾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나는 그것부터 떠올렸다.

있을법한 이야기 아닌가? 가임기를 늘린다는 건 젊음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다. <호>라는 작품은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날의 실수로 아이를 임신한 주인공은 아이를 낳아 부모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시체로 작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죽음'을 멈추는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영원한 사랑을 꿈꿨지만, 함께 실험대상이 된 남편은 유전자 결함으로 자신의 '생'을 단축시키고 만다. '영생'의 약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많은 이들의 삶을 무한대로 바꾸어놓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불행한 시간을 보낸다. 홀로 아이를 낳고 숨어 산다.

그녀가 낳은 그 아이가 사는 세상은 '죽음'이 희귀한 일이 된다.

'무한의 삶'이 당연한 것이 된 삶에는 애착도 우선순위도 없어보인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건 우리가 죽음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지우려고 만든 미신이예요.

그녀의 두번째 아이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삶에서 잘라내 버린 세대는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이런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들어 낸 가장 멋진 거예요. 나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두려운 일에 도전해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숨이 거칠어지게 하는 일들 말이에요. 그날 당신한테 다가갔던 것도 내가 언젠가는 늙어서 죽을 거라는 사실을 되새겼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에요.

기나긴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점점 더 오랫동안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불멸을 꿈꾼 옛 제국의 황제처럼 한걸음씩 더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정말 우리들이 원하는 삶일까?

이 책은 아마도, 죽음이 존재하기에 빛나는 우리 삶의 여러가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 애틋함, 그리움, 간절함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의 유한함이 안타깝지만 그럼으로 인해 잠들고 깨어나는 아침이 더 빛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다 읽고도 한 참이 지난 이제야 제목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제목으로 쓰인 <호>란 원둘레 또는 기타 곡선위의 두 점에 의하여 한정된 부분을 의미한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원 안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점을 찍고 싶어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은 책은 좋은 질문과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네 생각은 어때? 지금 이대로 괜찮아?'라고 말이다.

이 책에는 <호> 이외에도 11개의 작품이 더 있다.

하나하나 독특하고 재미있다. 쓴맛을 남기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건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어서 덮어버렸지만 꼭 들여다봐야만 하는 것들을 결국에는 끄집어 내게 하는 작가의 영민함 때문인 것 같다.

<심신오행>에는 우리도 꽤 익숙한 오행에 따른 의술이 나온다. 현대의학의 발전에 의해 많은 것을 누리고는 있지만, 한의학 또한 의지하는 나로서는 꽤 반가운 작품이었다. 먼 미래에 우주비행선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잘못 정착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시기즈음으로 퇴보하게 될까? 그리고 그 퇴보한 인류는 자신의 지혜를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까? 그런 상상을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이어나간 것 같다. 매우 동양적인 관점으로 말이다. :)

<매듭묶기>에선 입이 비릿했다. 진심으로 감정이 이입되었던 것 같다.

자신의 기술을 노랑머리 톰에게 빼앗긴 채 부족 전체를 빚더미에 앉힌 '소에보'를 보면서 답답하고도 안쓰러웠고, 이 작품에 나오는 구름 위의 마을이 마치 우리나라 같았다. 힘이 없고 기술이 부족했던 민족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눈을 감은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깎이고 깍여나갔다. 그 구름 위의 마을에 펼쳐질 일들은 뻔했다. 빚을 갚기 위해 자신들의 것을 잃어버리고 또 잊혀질 것이다. 부단히 부지런히 일하지만 그 댓가는 엉뚱한 이들의 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기술의 발달이 두렵게 느껴지는 서늘함을 선사했고, 그 후에 배치된 <카르타고의 장미>는 끔찍했다. 자신의 뇌를(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으깨서복사본을 남긴다는 생각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이어지는 한가지 주제를 떠오르게 한다.

'물질'이 우선인가? '정신'이 우선인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희안하게도 지난 번에 읽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학자들이 설왕설레 해가며 세상의 진리를 논한 성리학의 발전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성리학의 결말이 무엇이었더라.. ㅎㅎㅎ

<카르타고의 장미>에선 혀끝은 비릿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말을 보여주었다.

나는 홍옥을 한입 깨문다. 그 황홀한 신맛이 내 몸을 타고 퍼져 나가도록

<카르타고의 장미> 중에서

나는 아직... 육체가 더 중한가보다. 어쩌면 이제 내 몸이 느끼는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카르타고의 장미는 - 싱귤레리티 3부작 중 하나의 작품인데, 이 묶음집에서는 다음 이야기로 바로 건너가지 않고 <만조>를 보여준다. <만조>에선 바다가 되어버린 지구. 모든 것이 물에 잠겨가는 그 때에 인류는 이 땅을 버리고 탈출한다. 왜 다들 고쳐쓸 생각은 하지 않고 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의 지점을 지났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바다에 아내를 잃은 주인공의 아버지는 커져버린 달을 향해 날아간다.

그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도 주인공도 짐작하는 것 같다. <만조>를 읽으면서 절망감이 차올랐다.

SF를 읽다보면 독특한 전제들 덕분에 언젠가 지금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세상이 무너지고 말거라는 불안감을 만드는 작품들이 많은데 <만조>는 그 색채가 어둡고 짙었다. 부모가 된 후로 그런 걱정이 내 안에 겹겹이 쌓였기 떄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이리라....

<카르타고의 장미>와 <만조>를 섞어 버무려진 세상이 싱귤레리티 3부작 중 두번째인 <뒤에 남은 사람들>에서 펼쳐졌다. 포화된 땅에서 사람들은 육체를 버린 영생을 선택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망자'라고 불렀다. 달리 부를 이름이 있을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버린 땅위의 사람들은 <심신오행>에서 등장하는 어느 머나먼 별에 사는 이들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절망적이다.

개인적으로 <뒤에 남은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전체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장 많은 고민과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애버래스팅사가 북극해의 스발바르제도에 거대한 데이터 선테를 짓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는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살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한 소동이 벌어졌다. 업로드된 인간이 한명 생길 때마다 생명을 잃은 육체 한 구가 남기 때문이다. 파괴적 스캔과정을 거친 두뇌가 피투성이 곤죽이 된 채로.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인간에게, 그의 본질에게, 더 잘어울리는 표현이 없어서 굳이 말하자면, 그의 '영혼'에게?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이 작품만 들고 읽었다면, '대체 이게 뭔 일이래?'싶었겠지만, 작가의 작품들이 내 머릿속에서 한켠 한켠 견고한 틀을 쌓아올렸고, 파괴적 스캔을 통한 '영혼' 또는 '본질' 또는 '정신'이 디지털 세계 속에서 마치 <호>에서 처음 등장한 불완전한 '영생'을 드디어 이룩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떤 열차에 올라탈 것인가?

디지털 영생이라니 끝내주는데? 그런데 이미 우리는 영생을 누리는 나를 이 디지털 세상에 마구 흩뿌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한번 기록되면 삭제하지 않는 한 영원이 남아있는 것들을 말이다. ㅎㅎㅎ

작가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생각을 드러내 보여준다.

로라 누나는 이메일을 읽으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런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진짜 엄마는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토록 엉망진창인 세상에서도 살아가고자 애쓰는 진솔함이었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엔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갈망이었고, 우리 육체가 겪는 고통과 수난이었다. 엄마는 삶에 끝이 있기 때문이 우리가 인간인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작가 고유의 생각이라고 보여지는 이 문장을 보면서 작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창을 열면 느껴지는 공기. 그 안에 닮긴 새로이 시작되는 하루에 대한 기대감. 내 손이 느끼는 직접적인 감들. 그 자체가 바로 생이자 삶이라고.

내가 만진 흙과 내가 공들인 세상의 질감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 하루를 진한 노동으로 채워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등장한다.

오로지 이 세상뿐이다. 우리가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세상, 우리를 붙들어 놓고 우리에게 존재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나의 개인적인 바램과는 상관없이 <뒤에 남은 사람들> 속 사람들은... <카르타고의 장미>에 등장한 인물들의 다음 세대였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루시가 결국은 '인간이 아닌 상태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해'라는 아버지의 절박한 충고를 외면하고 셔틀에 몸을 싣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본래의 방식을 버리고, 쉬지 않고 반복되는, 정신이 아닌 기록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삶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싱귤래리티 3부작의 마지막 편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 많은 순록 떼가>라는 작품은 기이하다. 앞편의 루시와 같이 고대인으로 불리는 여자의 딸인 '르네'가 등장한다. 고대인이라니..., 나원참. 디지털화된 삶을 선택했지만 3차원의 삶을 고수하는 르네의 엄마. 르네를 데리고 짧지만 긴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겐 하루지만 남은 이들에겐 몇십년이 지나가버리는 삶.

르네는 그 여행에서 '진짜'세상을 만난다. 3차원의 밋밋한 세상.

막상 '진짜' 마주쳐보니 상상보다 훨씬 멋진 세상을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 왜 작가가 이 3부작을 그려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진짜 '지금'의 모습은 르네와 엄마가 여행하면서 이야기 하는 '오버엔지니어링' 세상인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엔지니어링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제 원자로 지은 건물은 비효율적이고, 비유동적이고, 제한적이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 나는 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이 암흑시대의 기술이라고 배웠다. 사람들이 아직 깨우치기 전의 기술이라고. 그에 비하면 비트와 큐비트는 훨씬 더 문명적이고 상상력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중에서

이 글을 쓰면서 싱귤래리티의 뜻을 검색해봤다. 싱귤래리티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결합이 가져올 미래를 상징하는 용어로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점`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설겆이는 식기세척기가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고 있다. 우리집은 월패드와 스마트폰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디서나 온도조절이나 조명조절, 방범센서 같은 것들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것들은 몸을 움직여서 직접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수 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살다보면 내가 기계의 한부분이 된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집의 수 많은 가전제품과 디지털기기들이 내 팔과 다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싱귤래리티라는 아이디어로 인간자체의 디지털화라는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싱귤래리티 3부작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다니던 대학근처에 무슨 과학관이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의 뇌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를 한다고 대형현수막이 걸려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한 사람의 뇌를 꺼내서 보관하며 그걸 돌려가며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 전시에는 가보지 않았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가깝지 않은 친척들을 떠올렸다. 아마 작가 자신도 낯선 땅에 살아가는 사람이어서인지, 이 작품에선 다른 작품과는 다른 편안한 익숙함이 있었다. 금을 캐던 시절은 아니지만, 작가도 어린시절 이민을 가서 낯선 삶을 살아야 했던 장본인일테니까.

내게도 그런 지인이 있다. 결혼적령기에 한국에 여행을 왔던 미국남자(지금의 이모부)을 만나 미국에 가서 살고 있는 이모는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곤 했는데, 긴 비행시간을 차치하고서라도 만나는 순간마다 얼굴에 드리워진 묘한 피곤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낯선 나라. 낯선 땅에 정착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쓸쓸한 일일지... 이 작품을 보며 잠시 이모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엔 별 생각없이 신기하고 즐거운 만남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이모를 만날때마다 '과연 저 사람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가족을 찾아 떠난 사람'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라는 작품에서 중국남자들은 그들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자 많은 것을 내어준다. 그렇지만 현실의 기록은 참 마음아프게 남아있다. 그들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고 그들은 그렇게 살다 미국 땅에서 사라져갔다.

책의 머릿말에 저자는 자신은 '도래할 것 같은 미래'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예언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도래하지 말아야할' 세상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리의 내일은, 우리의 진보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바라건데 싱귤래리티 3부작 같은 세상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는 내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에 대해 잠깐의 고찰을 선사해주었다.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진짜로 실감해가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좋은 독서였다!


이 글은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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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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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 ˝오로지 이 세상뿐이다. 우리가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세상, 우리를 붙들어 놓고 우리에게 존재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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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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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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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엘리너 데이비스의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페달을 밟습니다>다.


요즘 주말마다 집근처에서 당일치기 캠핑장에 들고가서 한 컷! :) 


책과 캠핑이 잘 어울린다. 



밝은세상에서 이런책도 나오는구나. 


처음 봤는데, 제목이 흥미로웠다. 나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책 고른 이유 80%는 자전거다!) 


9살에 나만의 자전거가 생긴 후로는 매일을 자전거로 어디든 다녔고, 대학시절엔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과행사가 있어서 매해 참여할만큼 좋아했다. 책 제목을 보는데 그날들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오래탄 (아마도 적어도 8시간 정도?) 날에는 허벅지 근육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다음날 계단을 오르내리는게 정말 고역이었다. 왜인지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동에서 서로 횡단한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2,78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가능한 일이구나 싶으면서도 그 당사자가 여자라서 더 반가웠다. 


(나도 할 수 있으려나?!) 



책의 도입부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유를 묻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은 '어떤 일을 실행하는데 완벽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였다.

그녀의 이유들이 어떤 것은 웃음이 나고, 어떤 것은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 중 3번째 이유가 마음에 닿았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이 없어서...그런 것 같다.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던 20대의 나는 매일의 퇴근길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었다. 좋지 않은 생각을 아주아주 많이 했었다. 

처음엔 처절하던 그 감정이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런 날들을 더 감당하다간 큰 일이 날 것만 같아서 주인공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그 길을 벗어났다.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해 놓고 다음 페이지엔 무릎을 냉동 콩으로 찜질하는 모습이 나온다 ㅎㅎㅎ 


있었던 생각과 하루를 그려놓은 거겠지만, 완급조절을 잘하는 작가구나 싶었다. 

주인공은 6일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데, 그녀가 6일간 달려온 그 길을 자동차는 단 3시간만에 달려간다. 부모님과 만난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긴 길을 떠나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현실적으로 자전거를 정비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나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면 "아이를 키우는 게 다 그런거야."라면서도 "네 몸 잘챙겨."라며 걱정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엄마와, 별말없이 그저 듣고만 계시다가 손주들이 놀 수 있게 이런 저런 필요한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아빠가 떠올랐다. 



여행에 대한 소소하고 담담한 것들이 내 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바람이 옆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바람 때문에 길 한복판이나 길 밖으로 밀려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풍이 불때는 사위가 완전한 침묵에 휩싸인다. 바람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엄청나게 빨리 가고 있다는것만 자각할 뿐이고 빨리 가기는 쉽다." 라는 말이 쓰여있었는데 어떤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페이지를 보자 문득 삶이란 게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그것도 역풍이) 부는 날들이 있고, 그럴 땐 차라리 그 바람이 나를 데려가는 대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바람에 맞서는 것보다는 낫다(에너지가 덜 든다). 맞서다가는 지치고 또 지치다가 나가 떨어질 수가 있다. 바람떄문에 길 밖으로 밀려나는 자전거 여행처럼 말이다. 



계속 이어진 자전거 타기는 그녀에게 무릎 통증이라는 빌런을 마주하게 한다. 


건강때문에 무언가를 멈춰야 할때 우리는 돌봐야할 자신을 비난하고 나무란다. 그녀는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위기를 극복했다. 자전거 가게 주인이 머물곳을 소개해주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주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 자신만 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여 살고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날들의 여행 일정을 짜다가 패닉에 빠진 그녀의 모습 아래 작게 그려진 그림들이 귀엽고 마음에 들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80km 가야지'라고 마음 먹고는 페달을 밟고, 자고 또 일어나는 일들의 반복을 그린 장면. 벗어나고 싶지만 잘 안되는, 특별했던 여행이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된듯한 느낌. 


그저 일어나서 갈 뿐이다. 



요즘 우리가 버텨내는 일상들이 전부 그런 날들이 아닐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기도 어려운 날. 그저 일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삶. 

처음 이런 일상이 찾아왔을 때 나는 패닉에 빠졌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으니 더 두려웠고, 어려웠고, 지쳐갔다. 

그럴 수록 일어나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먹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잠이 들고, 또 눈을 뜨는 단순한 생활들이 안정감과 위로를 줬다. 그녀는 자고 일어나 페달을 밟아 가고자 하는 곳까지 이어갔던 하루하루가 어떤 선물이 되었을까? 알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애리조나주 투손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조지아주 애선스에 있는 본인의 집까지 여행을 떠난다. 여정의 마지막에 남편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며 고른 숙소로 특별한 집을 만난다.

하필이면 그 집에서 노부부의 사랑과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남편을 더욱 애틋하게 기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금새 후루룩 읽은 첫번째엔 그저 재미있는 만화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재밌네. 그런데 좀 아쉬운 걸?' 싶었다. 간간이 마음을 두드린 부분들을 다시 느껴보려고 다시 천천히 그녀의 하루하루를 함께 카운트 해가며 책장을 넘기자, 그녀의 연필스케치에 색감이 덧입혀졌다.

그녀의 여행길에 잠시 지나간 매한마리, 무릎찜질하는 그녀를 맴돌던 비둘기들, 마음씨 넉넉한 국경순찰대, 지평선이 이어진 어느 곳, 그녀를 사로잡아 책속에 남겨진 꽃들. 그리고 미시시피강.

마치 소리 없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책 속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길을 떠나준 덕에 그리고 그녀의 무릎이 수시로 아팠던 덕에(이제는 잘 치료했기를) 그녀는 58일간 재밌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몸이 힘겨운 여행 후엔 마음이 후련하고 신선해지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그린 이 마지막 장만큼. 그녀의 모든 것이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딛고 일어선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 덕에 나도 짧고 선명한 여행을 떠나갔다 돌아와 어딘가 조금 건강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나도 다시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이 포스팅은 밝은세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고마워요 

#밝은세상 #오늘도아무생각없이페달을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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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데이비스 #재밌는그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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