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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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제32회 만해 문학상 최종심 대상작에 오른 작품들 중 하나인 은희경 작가의 단편 소설집 「중국식 룰렛.

이 소설집에는 중국식 룰렛 / 장미의 왕자 / 대용품 / 불연속선 / 별의 동굴 / 정화된 밤의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중국식 룰렛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여있는 곳. 미스터리 한 K의 술집.

 

 p.9~10

K의 술집에서는 세 종류의 위스키만을 팔았다. 씽글몰트로만. 다른 술은 없었다. 주문하는 방식도 여느 술집처럼 메뉴를 보고 고르는 게 아니었다. ~ 술의 정체는 끝까지 불문에 부쳐졌다. ~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표가 무엇이 됐든 제 입맛대로 즐기면 그만이라는 게 그 집의 술 해석법이었다.

 

젊은 술집 주인 K.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이다.  

그리고 '나'. '나'는 요즘 가정에서 직장에서 최악이랄 수 있는 상황을 겪고 있는 의사이다.

어느 날 K는 '나'에게 전화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가게에 꼭 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보기로 한다.

 

K의 술집.

K의 가게에는 K와 '나'외에도 K와 비슷한 또래 같은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청년과 검은 안경테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K는 가게 문을 닫고 '나', 그리고 그날 특별한 위스키를 주문한 그들과도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한다. 이제 그 네 사람은 모여 술을 마시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K는 세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며 대화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주로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이야기는 주로 아르마니 청년과 중년 남자가 하고 있다. 스스로가 얼마나 운이 없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K는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p.44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센트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

 

​그는 최소한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거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니 모든 것을 초월했다는 의미일까?

아무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병이 비워졌고, K는 새 술과 함께 그들에게 일종의 진실 게임을 제안한다.

'한 사람이 질문을 하고 지적받은 사람이 대답하고 술을 마신다. 대답을 못하면 술을 마실 수 없다'라는 것이 이 게임의 룰이다. 그리고 그 게임은 K가 첫 질문을 나에게 던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신 생애 최고의 날은 언제였습니까?"

 

 ​p.11

그리고 말 그대로 위스키가 '영혼' (spirit)이라고 불린다면 씽글몰트야말로 그중에서도 가장 정제된 형태이며, 순수한 영혼은 천사뿐 아니라 악마의 것이기도 하다.

 

 ​p.53

죽음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거기에 천사의 몫도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그 영혼이 씽글몰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파티의 진실게임을 통해 K는 원하는 답을 얻었을까?

 

장미의 왕자

 

찻집에서 일하는 '나'.

'나'가 일하는 찻집에 수첩을 놓고 간 '그녀'.

그녀에게 수첩을 준 '나'이자 '그'​.

이 세 사람의 연결 고리인 검은색 소가죽 수첩.

 

 ​p.58

운명이란 비정하고 무자비하지만 늘 전령을 먼저 보내 경고를 할 만큼은 용의주도하다고 어릴 때부터 나는 종종 생각해왔다. 그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방심하는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집행해버린다.

나는 경고를 받아들이는 의미로 카운터 아래 칸에 놓아두었던 숄더백을 꺼내 그 안에 수첩을 집어넣었다.

 

 ​p.74

수첩은 검은색이고 소가죽이었는데, 미래의 나에 대해 뭔가 적혀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그를 왜 떠났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이야기의 중심은 찻집의 '나'와 '그'.

 

 ​p.59

나는 그 마음을 당신이 조금이나마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로 알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라고 하는 함박눈이 미친 듯이 내려서 귀퉁이에 홀로 쌓여 있다가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봄이 되어서야 당신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으면 한다.

 

갑자기 느껴진 기척. 그리고 떨어진 명함.

그녀가 운명의 경고로 받아들인 수첩처럼 이번에도 운명이 그녀에게 신호를 보낸 것일까?


 

▶ 대용품 

 

'봄밤-멀미-J-해후-소년과 소녀-소년과 소년-봄밤'의 소제목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야기.

어린 두 소년이 함께 했던 '봄밤'에서 혼자가 된 소년의 '봄밤'

이 두 소년의 사연이 놀랍고도 짠했다.

 

 ​p.105~106

그는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가장 오래된 대용품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래서 자신의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거라고. ~ 왜냐하면 어른이니까.

 ~

 잘못 어른이 돼버린 사람에게도 아주 가끔 어린 시절의 짧은 꿈과 해후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생의 찬란한 진품을 되찾는 순간이며, 그때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불꽃의 그림자가 강물에 어리면서 진짜 축제가 시작되는 거라고. 그 축제에는 오랜 세월 그토록 멀어지려 했던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해줄지도 모른다. ~

 

그 소년은 자라 성인이 된 후인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또 다른 소년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 불연속선

 

'가방'에 얽힌 '그'와 '나', 그리고 사진.

 

그의 이야기.

그와 나는 같은 날, 같은 공항으로 입국해 가방이 바뀌어 버린다. 그의 가방을 가져가버린 '나'에게 계속 연락을 하지만 그는 아무 연락도, 보낸 문자메시지의 답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날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나의 이야기.

'나'는 왜 가방이 바뀌었음에도 일주일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그와의 만남도 불연속선에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진.

 

 ​p.133

그런 생각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생은 절취선처럼 불연속적으로 이어졌다가 약간 위태로운 절단면에 이르러 끊어져버리는 것이니까.

 

 ​p.137

그 뒤로도 그는 내가 자주 자신을 놀라게 만든다고 했다.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일기예보에서 보던 불연속선을 연상시킨다는 거였다.

 

담고 옮기고 꺼내는 것 중에 그릇과 사진, 가방이 있다. 이따금 그것들은 불연속선의 끝에 자리 잡아 화살표처럼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릴 것이다.


 

▶ 별의 동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는 9년째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마흔여섯 살의 평범한 독신 남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그의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형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그는 그의 삶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 나름의 기준에 만족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해진 부정맥으로 수술 일정이 잡히고, 그는 그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는 아마 겁이 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p.163

어떤 인생 말인가. 그는 중얼거렸다. 나에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언제였을까.

 

 ​p.168

대체 이처럼 비겁한 자기 위안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박탈감에 굴복해왔던 것일까. 식은 밥 같은 중간지대의 안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고독뿐이었다.


▶ 정화된 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 불안한 그녀. 그녀는 안정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학교 근처의 성당을 찾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성가를 듣고 감명을 받아 성가대에 들어가게 된다. 후에 계속 성당을 다니며 젬마라는 세례명을 받게 되었다.

같은 성가대 소속이며 지휘자인 가브리엘을 짝사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잘 챙겨주는 로사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세상의 비밀은 없는 법. 비밀만 없으면 다행이겠으나 그녀의 비밀을 안 후의 사람들의 태도가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그다지 취향을 내세우지 않고, 튀지 않는다. (인물 묘사를 보면 좀 튀는 인물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조용하다. 단지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평범함이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일지도 모르고, 내 주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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