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 어떻게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할 것인가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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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어떻게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할 것인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19년 동안 중환자실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왔던 한 간호사가 병원에서 일어나는 숱한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가까이서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낀 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죽음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써 내려간 '죽음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본 죽음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병원에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다. 제목 그대로 도시적인 죽음이다.

 

차례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화제로 내어놓았을 때 흐르는 분위기는 아마 절대적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러므로 피하고 싶은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인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강의나 책들도 종종 나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그나마 진지하게 생각하고 토론해 볼 수 있는 여지는 만들어지고 있다. 한때 '웰빙'의 붐이 일어났듯이 '웰다잉'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가까웠던 저자와는 달리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것에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내가 처음 장례식을 본 것은 대학생 때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였다. 방학 중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던 중 시골에서 연락이 와 가족 모두 내려갔지만 그때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였다. 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어려운 분이셨다. 할아버지와 인사 외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른들이었고 그 어른들도 할아버지를 어려워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정서적 교감이 별로 없었던 나를 포함한 손자, 손녀들은 그때 할아버지의 죽음 자체의 슬픔보다는 슬퍼하는 자신들의 부모님들의 모습에 더 슬픔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는 내 삶 속에 가까운 이의  죽음은 작년까지는 없었다. 죽음은 뉴스나 책,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나 있는, 나에게는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갑작스럽게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의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계시고 위독하시니 기도를 해달라는 전화였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친구의 아버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친구의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친구를 비롯하여 남겨진 이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그동안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가까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달랐다. 나에게는 친구 아버지 한 분이셨지만 나의 부모님에게는 여느 때보다 많은 부고가 들려왔다. 오랜 기간 투병하셨던 친구분들의 부모님부터, 때로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 소식에 마음 아파하셨고, 심지어 날벼락처럼 당한 사고로 자식을 잃는 분도 계셨다. 올해 유난히 부고 소식이 많았다. 아마 그만큼 부모님이 연세가 드셨다는 게 아닐까 싶어 내 마음도 편치 않다.


이제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모른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그 자체가 두려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작가의 말대로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p.36

나는 늘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을 더 두려워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 문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p.50

하루에 두세 번, 30분씩 가족 면회를 하는 시간에만, 그것도 제한된 인원만 출입할 수 있을 뿐인 중환자실에서 환자는 완벽하게 고립된다. 입원 직전까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순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받는 상황.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소한 것조차 통제받아야 한다. 나는 절대 중환자실에서 스스로에 대해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인 채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p. 61

그때 환자가 시술을 설명하는 자리에 있었다면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좀 심란해하면서 만약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농담처럼이라도 가족에게 한마디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음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남은 가족들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고 싶지 않다.

저자는 간호사의 눈으로 환자들이 병원에서 다양하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후에 오는 일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통해 나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 어떻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나를 위하는 것이고, 두 번째, 내 가족을 위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p.44

​이로써 특히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보낸 마지막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항상 죽음의 순간에 직면하는 의료진뿐 아니라 언제고 환자요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자주, 자연스럽게 생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바람처럼 누구에게나 죽음은 당연하게 오는 것이듯이 언제나 자연스러운 주제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나 스스로도 당황하지 않고, 나의 가족들의 마음의 짐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의식 없는 나를 두고 한 결정으로 힘들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나마 쉽지만 다른 가족들의 죽음에 대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는 아직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해도 말이다.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 가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죽음이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의 틀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면,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가꾸어 나갔듯이 마지막도 제 손으로, 스스로답게 마지막을 준비하거나 준비될 수 있었으면 한다.

 

 

 ​p.186

사전의료의향서는 생명 연장 및 특정한 치료 여부에 대한 의사를 서면으로 밝히는 문서다. 아직 관련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반드시 요구하는 형식은 없지만 전문가적 의견을 참고하여 작성할 수 있도록 돕는 양식이 마련되어 있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02-2228-2670)에서 받거나 한국죽음준비교육원 블로그 등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저자가 경험한 많은 사례들을 눈물과 안타까움으로 읽어내려가며 내가 나의 마지막에서 무엇을 원하게 될지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모두가 맞이하게 되는 죽음. 두려워하지 말고 미리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를 읽고 나니 죽음에 대한 현실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나는 결코, 절대 어느 날 그냥 날벼락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나, 마지막까지도 '나'다울 수 있기를.

 

 

 

* 이 서평은 출판사 뜨인돌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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