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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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만 읽어서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심장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는 걸 알고 보니 바로 이해가 되는 제목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세세한 심리묘사와 상황묘사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 놓치는 것 없이, 감정 하나를 쪼개고 또 쪼개어, 최대한 쪼갤 수 있을 때까지 나누어 세밀하게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마치 시를 읽는 느낌까지 주었다. 게다가 내용도 무겁다 보니 심리묘사를 상상하며 따라가는 동시에 내 마음도 같이 답답해져 오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야기는 이 책의 주인공인 시몽 랭브르의 심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과거 시점. 무엇보다 서핑을 좋아하는 세 소년, 시몽 랭브르, 크리스토프 알바, 조앙 로셰. 이 셋은 어느 날 아주 이른 추운 새벽 그들만의 서핑을 하기 위해 바다를 찾고, 그렇게 원하던 서핑을 맘껏 한 후 소형트럭 (그들이 부르기를 밴)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들 중 유일하게 면허가 있는 크리스토프가 트럭의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부터 나선 탓인지, 추위에 떨며 몸을 움직이고 난 후라 그런지, 그들은 결국 사고가 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트럭의 가운데 앉아 있던 시몽쪽에만 안전벨트가 없어 시몽은 다른 두 친구들보다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소생의학과 의사인 피에르 레볼의 등장. 그리고 시몽의 엄마인 마리안 랭브르의 등장.

집에서 잠에 취해 있던 마리안 랭브르는 어린 딸 루를 통해 충격적인 전화를 받게 된다. 바로 아들 시몽의 사고 소식이다. 패닉상태에 빠진 그녀는 루를 지인에게 맡기고 남편인 숀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 없이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해 겨우 아들 시몽 랭브르의 이름을 뱉어내지만 아들 소식을 바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소생의학과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

 

p.64

마리안은 한 층 더 올라가는 동안 (길기도 하네. 시몽에게 가는 이 길이. 미로 같은 이런 병원들은 정말 괴로워) 그 말을 되뇐다.

 

소생의학과로 가는 길이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무겁다. 아들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나쁜 상황일 것 같은 불안감이 그녀의 가는 길을 더욱 멀게 느껴지게 만들었을 것이리라. 아들을 찾아가는 마리안의 심정이 전해져 나도 같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들을 만나기 전 피에르 레볼이 마리안을 바로 알아보고 그녀를 맞아 환우 가족실이 아닌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레볼이 시간을 끄는 동안 마리안은 직감한다. 시몽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단순히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주 나쁜 상황임을. 그리고 레볼을 통해 아들의 상태를 전해 듣고는 그녀는 시몽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레볼은 시몽이 아직 처치 중이라 만날 수 없고, 처치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노르스름한 종이 한 장을 그녀에게 내밀며 시몽에 대해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레볼과 마리안은 간략하게 시몽에 대한 차트를 작성해 나간다. 이야기를 마친 그들은 사무실을 나선다. 그리고 마리안은 여전히 연락이 없는 시몽의 아버지, 숀을 찾아 나서면서도 혼자 있을 시몽 때문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온 레볼은 소생의학과 간호사이기도 했지만 현재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토마 레미주에게 전화를 건다.

드디어 만난 마리안과 숀. 둘은 시몽이 있는 병실로 간다. 시몽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하지만 기계덕분에 뛰고 있고, 여전히 비가역 코마 상태라 설명하는 레볼. 셋은 레볼의 사무실로 향한다. 그리고 한 명 더 토마 레미주까지 넷이 모였다. 그리고 레볼은 마침내 말한다. 시몽이 뇌사 상태임을, 사망했음을. 마리안과 숀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토마로부터의 충격적인 말, 시몽의 장기 기증에 대한 고려.

 

p.142~143

벽이 춤을 춘다. 바닥이 출렁인다. 마리안과 숀은 거세게 얻어맞았다. 벌어진 입. 낮은 테이블 표면에서 떠도는 시선. 비비 꼬이는 맞잡은 두 손. 두텁고 어둡고 아찔한 그 침묵이 무너져 내린다. 두려움과 혼란의 뒤섞임. 구렁이 저기, 그들 앞에 입을 벌렸다. ~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그들로서는 표현할 길 없는 질문들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를 하며 결국은 장기 기증에 동의를 한다.

 

p.181

그 사람들이 해로운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어떤 해로운 짓도 안 할 거야. 마리안의 목소리가 천의 조직에 한 차례 걸러지며 들어온다. 그러자 숀이 손을 놓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는다. 그의 오열은 자연의 숨결의 연장이다. 그가 동의한다. 그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야지.

 

p.199~200

숀이 힘들게 소리를 내며 그들의 청을 내놓는다. 들어낼 때, 시몽의 심장, 그때, 시몽에게, 그러니까 정지시킬 때, 심장을, 말해 줘요, 내가, 그 애에게 꼭 말해 줘요, 우리가 있다고, 함께한다고, 우리 모두 그 애를 생각한다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마리아가 뒤를 받는다. 그리고 루와 쥘리에트도요, 그리고 할머니도. 그러다니 다시 숀. 바닷소리, 들려줘요. 그가 토마에게 이어폰과 MP3 플레이어를 내민다. 7번 트랙이에요. 맞춰 놨어요. 아이가 바닷소리를 듣게요(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생각들). 그러자 토마가 그 의식을 두 사람의 이름으로 완수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시몽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마리안과 숀. 그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전하고 싶은 말도 많을 텐데…… 마지막 가는 길을 좋아하는 바닷소리라도 듣게 해주려는 마리안과 숀.

 

마리안과 숀이 장기이식을 결정한 후부터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서류작업부터 장기 이식 대기자들을 선정하는 작업까지.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 있는 자들은 고쳐야지라는 토마의 말대로 혹시라도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매 순간 이식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안과 숀에게는 루가 있다. 그리고 시몽의 심장인 여자친구 쥘리에트에게도 전해줄 말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피이식자인 클레르 메장으로 넘어간다.

시몽의 심장은 클레르 메장에게 갈 예정이다. 심근염을 앓고 있는 그녀의 심장은 점점 더 그 기능을 상실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두렵다. 다른 사람의 장기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온다는 것. 그것은 곧 그녀는 예전의 그녀로 되돌아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수술이 꼭 성공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수술에 대한 공포, 수술 후 치료에 대한 공포, 거부 반응으로 다시 그녀를 괴롭게 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 하지만 그녀는 심장 이식을 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자시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결심한다.

이후 진행되는 심장 이식의 과정들.

 

이 모든 이야기가 하루 만에 일어나는 일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끔직한 일을 겪고, 그 마음 추스를 시간도 없이 엄청난 결정을 해야 했던 마리안과 숀. 그들이 겼었을 그 수많은 고통의 감정들이, 길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들이 단지 24시간이었다니……  

언젠가는 심장 이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은 해왔지만 갑작스럽게 제안이 오고 별다른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클레르 메장.

 

친구와 길을 가다 장기 이식에 대한 홍보물을 본 적이 있다. 그땐 친구나 나나 어차피 살 수 없다면 나 한 사람 희생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둘 다 긍정적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건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이고, 만약 내 자식이, 내 가족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글쎄, 선뜻 그러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몸이 따뜻하고, 심장이 뛰고 있고, 혹시 모를 기적을 바라기도 하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더욱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느 누가 이성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작 의식이 없는 본인의 의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록 시몽의 몸을 이루고 있던 장기들은 시몽을 떠났지만, 시몽이 아닌 또 한 번의 삶을 꿈꾸는 다른 간절한 아직은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어 시몽 또한 피이식자와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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