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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요즘 중국이나 중국계 작가들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도 중국 작가들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작가의 책들도 점점 관심이 간다.
번역만 매끄럽게 잘 되어 있다면 여러 나라 작가들의 책들을 골고루 읽어보고 싶다.
이번에 읽은 책은 작가 켄 리우의 소설 '종이 동물원'이다.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였는데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 만에 동시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SF 소설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상을 받았다니 기대가 되었다.
이런 수상들도 책에 관심을 갖게 하였지만 꼭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책 소개를 읽고 나서였다.
단편집이기는 하나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묵직했다.
종이 동물원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소재로 한 가슴 시린 단편소설부터 731부대, 위안부, 강제징용, 문화 대혁명 등 굵직한 역사적 상처를 소재로 한 SF까지..."
이 부분이었다.
SF와 이러한 소재들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너무 궁금했다.
차례

단편집의 매력은 여러 가지 다른 소재를 가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짧은 호흡으로 틈틈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왔다 할 수 있어 장편을 읽을 때보다는 쉽게 읽히는 것 같다.
솔직히 단편집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다.
이번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선택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종이 동물원'. 책의 제목이자 가장 첫 번째 이야기이며,
이 책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기대치를 한껏 올려준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성이 풍부해지는 밤에 읽은 탓인지 결국 눈물까지 흘려버렸다...
엄마의 숨이 담긴 종이 동물을 통해 아들은 드디어 엄마의 마음을 느꼈다.
이 가족 너무 안타깝다. 엄마가 너무 불쌍했고, 아들이 안타까웠다.
왜 아빠는 카탈로그에서 결혼할 여자를 찾았을까?
결혼 후에는 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다
결국, 하긴 언어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다른 생김새로 인해 받는 차별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짓고는 실제로 이런 가족들이 지금도 많을 텐데 그 아이들과 부모가 느낄 고통과 힘겨움을 잠시 안타까워했다.
'종이 동물원'처럼 마법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시간 여행'이라는 과학적 소재와 함께 엮어낸 이야기도 있었다.
731 부대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어쩌다 나온 역사 이야기에서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 역사를 그렇게 배우지도 않았고, 사실 관심도 없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한 짓이 아니다. 예전 조상들이 그랬던 것을 왜 우리에게 그러느냐?"
p.557
~ 과거에 떠난 희생자들의 침묵은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할 의무를 현재에 부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무를 기꺼이 떠맡을 때 비로소 더없이 자유로워집니다.
~ 죽은 이들의 고통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유령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겁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잡을 기회는 오직 한 번뿐입니다.
'천생연분'에서는 미래에 AI와 함께하는 삶이란 진짜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천생연분'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무섭다'였다.
이렇게 살기 싫다. 일부 편리함은 누릴지언정 내 모든 선택을 내가 아닌 AI에 맡기기도 싫을뿐더러 그걸 내 선택이라 착각하며 살기도 싫다.
AI에 관한 영화가 계속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단편은 읽으니 영화 'Her'이 생각난다.
'시뮬라크럼'은 예전에 봤던 어느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오래 전이라 지금은 영화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모습을 불러내고 그 모습을 보고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장면이었다.
'레귤러'를 읽으면서는 네트워크 공유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다.
이런 소재들의 글을 읽다 보면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분명 편리함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편이지만 장편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짧은 호흡으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좋다는 것이 단편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예외로 두어야 할 것 같다.
한 편을 읽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술발전이라면 충분히 있음 직한, 예상 가능한 미래의 일들에서
그 발전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것들을 이용해 과거를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또한 글 전체에 흐르는 감성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러 발달된 과학적 소재를 이용했으나 그런 발전에 주된 관심이 가기보다는
함께 다루고 있는 가족, 문화, 역사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가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왜 이 책이 그 많은 상들을 받게 되었는지 짐작이 갔다.
짧은 내용이었으나 절대 짧은 기간에 잊힐 작품이 아닌 듯하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