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에게 가는 길 -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
아샤 미로 지음, 손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수녀님 제게도 엄마, 아빠를 만들어 주세요."
어린나이에 수녀원에 살던 아샤라는 꼬마아이가
수녀님께 부모님을 만들어 달라며 졸랐다고 한다.
엄마, 아빠를 갖고 싶어 하던 꼬마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비록 인도사람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라는 낯선 땅에서
부모님이 생겼지만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부모님을 만났다.
양부모님은 자식이 없어서 딸 쌍둥이를 입양하려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입양 절차를 마치고 나서 바로셀로나로 떠나기
전에 쌍둥이중 한명이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수녀님이 보내주신 아샤의 사진에 끌려 결국 남은 쌍둥이 한명과
아샤를 입양을 하게 된다.
양어머니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일기로 하나하나 남겼다.
그 일기 속에 이런 말이 있다.
"가끔은 네 인생 중 첫 몇 년의 시간, 그 소중한 너의 첫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 너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을 놓친 것이
엄마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한단다. 또 그 순간 네 곁에 있으면서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한 다른 사람들에게 무척 질투도 난다.
그렇지만 여전히 엄마는 행복하구나. 이제 네가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모두 함께할 거니까."
10달을 품고 있다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질투라는 말속에서
일찍 만나지 못한 엄마의 아쉬움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예쁜 옷도 만들어
입혀주고, 아빠는 모든 순간들을 사진속에 담아 주고...
가슴으로 낳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것 같다.
좋은 양부모님이 계시지만 역시 인도의 친부모님이 궁금했나보다
양부모님과 상의도 안하고 인도로 봉사하러 가는 단체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합격이 되었다.
양부모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리지 않았고 그동안 적어온 일기를
주셨다. 내가 힘들게 키운 아이인데 선듯 가라고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샤가 입양 되기전 머물던 수녀원에 가서
수녀님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했지만 친부모님에 대한
것은 세례 증명서에 있는 것 말고는 알수가 없었다.
왜 키울 수 없었는지 수녀원에 보낼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바로셀로나로 돌아온 후 책을 출간을 하고나서
TV에서 이 책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위 제작진과 함께 다시 찾은 인도...
수녀님의 도움으로 인도 가족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아샤의 이름은 처음에 우샤였고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기전에 아버지에게는 첫번째 부인사이에서
낳은 언니, 오빠들이 있었고,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이 죽고나서
우샤의 엄마와 결혼을 했으며 연약했던 엄마의 몸은 우샤를 낳고
더욱 심해져서 3개월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도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아버지는 첫째 언니에게 우샤를
보냈고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되는 언니는 언니의 아들과 우샤를 모유로
키웠다. 시댁의 반대만 없었으면 어쩜 우샤는 언니의 양녀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댁의 반대로 다시 시댁에 보내야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녀원에 보내게 되었다.
입양 되던 날, 친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우샤를 보기 위해 수녀원에 왔고
우샤의 이름을 아샤로 바꿔 주기를 바랬다.
아샤는 인도어로 '희망'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비록 자기 손으로 키워주지는 못하지만 아이에게 '희망'이라는 좋은
이름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속에서 자기 자식을 키울 수 없어
안타까워 하는 아버지의 사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만날 수 없었지만 아샤를 기억하고 있었던
언니, 오빠들을 만났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수녀원에서 살때는 친부모님이 나를 버렸다고만 생각했지만
버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맞겨진 것이고
인도 어딘가에 있을거라는 생각에 찾았다는 것에
아샤의 벅차 오르는 가슴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아샤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아이들을 이런 마음으로 사랑해주고 싶다.
마음속 깊이 말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