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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은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발걸음이라 했다. 이 두 권의 책 속에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정신이 담겨있고 그 속에서 발견한 수많은 나(저자)를 볼 수 있다. 1권을 다 읽을 때까지 이 책의 배경이 1980년이 아니라 현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직도 어둠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곳 나라의 어두운 현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모이는 곳 터키, 그곳에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이어주는 인도를 거쳐 자신의 피의 고향인 일본까지 이어지는 여행. 사진과 여행지에서의 느낌이 담긴 ‘동양기행’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여행이 무엇이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여행을 좋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언제나 사진을 담기 바빴지 그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나의 삶과 연결된 마음의 문까지 열지 못했다. 그저 감탄과 멋지다는 말만으로 포장된 사진만 멋지게 담아왔을 뿐, 때론 걱정과 억눌린 마음을 떨쳐버리고 돌아오려 했다. 그것은 단지 현실에서의 도피일 뿐이란 느낌이 든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타인의 테이블에서 음식을 찬미하고 무작정 먹어치워 음식점 매상을 올려주는 ‘먹어치우는 여자들.’ “나는 이 거대한 여자를 오스만 터키에서 살아남은 자라고 부르겠다.” 경제 불황과 생활고 속에 생존의 방법으로 택한 그녀들, 그 옛날 투르크 제국시절 사람들이 성과 음식에 대한 탐욕을 빗대어 흔들리는 오스만 전사들의 자존심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고, 신비를 해제하고, 혼란을 허용하지 않고, 적대적인 정신, 일신교, 우상의 배척’의 ‘광물적 세계’인 서아시아 그리고 ‘사람을 기르고, 인간을 부드럽게 만들고 신비를 가꾸는, 혼돈을 허용하는, 관용의 정신, 다신교’의 ‘식물적 세계’인 동아시아. 같은 아시아지만 너무나 상반되는 두 세계의 이념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동아시아 문화에 익숙해진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까? 2권에서 시작되는 티베트 불교이야기에서부터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행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 책은 사상과 종교, 문화의 벽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삶의 구원을 찾으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기 한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지, 신에게 얼마나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그 나이가 되면 누구든지 신과의 거리를 깨닫게 된다네. 그 한계를 이겨낸 자에게만 평안이 주어지는 거야. 미혹이 사라진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다…….”
- 절에서 도망친 40대 승려가 많은 이유에 대한 스님의 대화 중
청량리 여관에서 만난 월경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흘린 젊은이들의 피와 몸을 파는 여인의 가슴에까지 사무친 한의 표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존재들이 무르익고, 썩어가고, 그것이 거리를 이루고, 또는 발효되어 대지의 냄새처럼 발산하고,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저 뻔뻔스러운 냄새. 이것이 동양의 냄새였던가.”
저자는 여행의 출발지에서 동양의 냄새를 맡으며 앞으로 자신이 만나게 될 두 아시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책을 덮으며 느낀 동양의 냄새는 “활기 있고, 끈질기며, 가슴이 따스한, 고향의 바람 같은 냄새”라 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