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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ㅣ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쳐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더위가
지속되는 한여름,
녹음이
짙게 그리워진 생명력이 넘치는 숲 속을 생각하며,
휴가
중에 이 책을 꺼내 읽어보았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베르트 발저’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솔직히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매우
낭만적이면서 몽환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강한 호기심과 끌림이 있었다.
우선,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며 그의 불우하고 비극적인 삶에 대해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과 독신 생활, 일정한 직업과 거처가 없이 하인으로도
생활했으며,
1천 편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생의
마지막 28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다 1956년 성탄절에 눈길에서 쓰러져 영면했다.
그의
일생(1878-1956)과 당시 사회의 시대적 불안을 생각하며,
그가
숲을 산책하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떠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을 지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1천 편이 넘는 그의 작품 가운데 숲과 관련된 작품만
엮어놓은 책이다.
연대순으로는 1900년대 초부터 절필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인 1933년까지의 시와 산문 32편이 실려 있다. 그 작품들 중에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이라는 산문이 제목으로 명명되었다.
어느
날 오전, 나는 숲으로 뒤덮인 가파른 산을 올랐다.
무더운 날이라 오르는 내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초록빛 숲은 그 밝음과 아름다움에서
노래를 닮았다. - P62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중에서 1914년
제일
먼저 책의 제목인 산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무더운 여름날, 저자는 온 몸에 흠뻑 땀을 흘리며 올라간 가파른 산의 초록빛 전나무 숲 한가운데
벤치에서 전나무 가지와 작은 손수건, 그리고 작은 인형 모자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이
글을 쓴 1914년 여름은 세계1차대전이 시작된 때이다. 문득 무더운 여름, 가파른 산,
흠뻑 흘린 땀에서 고난과 역경이 초록빛 전나무, 작은 손수건, 인형 모자에서는 소소함과 희망이 느껴진다.
어린아이로
인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영원하고 선한가라는 저자의 말과 정오에 점심 식사를 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인상깊다.

저자에게
숲은 개인적인 불행과 시대적 불안 속에서
현실적인
피난처이자 치유와 평화의 공간, 사색과 영감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가끔,
자연인 프로그램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책을 통해 느껴진다.
삶의 별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나도 가끔 궁금하지만,
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서
기분 좋게 꿈꾸는 것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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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6 숲에서 1930년경
숲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며, 발저에게 전해 주었던 지혜를 우리에게 건네 주는 듯
하다. 일상에 지쳐 위로가 필요할 때, 고요한 사색이 필요할 때 그리고
작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삶의 의미와 치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숲이 주는 평화와 행복을 다시금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 부분 엮은이의 후기에는 작품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책에 삽입된 그림의 작가
카알 발저는 로베르트 발저의 형이라고 한다. 불우한 가정 형편 가운데에서 그 둘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