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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지금의 정치가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줄 뿐이다. 언제부터 인지 정치 관련 뉴스를 보고 들을 때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데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정치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공정과 상식,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한다지만,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이번에 읽어본 책 『마지막 섬』은 이런 정치에 대해 많은 생각과
함께 어떻게? 라는 정치 참여에 대한 숙제를 안겨준 책이다.
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탁월한
정치적 우화
이 책의 저자는 반독재, 반전, 친환경, 여성
등 약자와 소수의 권익을 대변해온 터키를 대표하는 지식인 쥴퓌 리바넬리(Zülfü Livaneli) 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치 활동가로 1972년 사상범으로 군
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1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의
문화 정치 활동은 세계 평화에 대한 공헌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명예 대사 및 유네스코 사무총장 자문을 역임하였다.
이 책은 터키에서 총 4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며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또한 2022년 6월
미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 저자는 오르한 파묵 이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터키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 만해도, 우리는 ‘절대 비밀’로 지켜왔던 그 지상 낙원에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책의 첫 문장은 그의 등장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는 오랫동안 철권 통치를
휘두르다가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혁명 의회에 의해 사임된 전직 대통령이다. 작은 공동체 속에서 조용하고
평화롭던 섬은 그의 가족이 정착하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하고 변화를 맞는다. 섬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어주던 커다란 나무들이 그의 지시에 의해 잘려 나가고, 그의 손녀가 갈매기의 공격을 받는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그의 제안으로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운영위원회의
대표를 맡게 된 전직 대통령은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며 4명의 운영위원을 선출한다.
전 대통령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주제를 꺼냈다. 그는 이 섬에서
가장 큰 위협이 갈매기라고 했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점령해서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 야생 조류가 사람을 공격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의 섬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P95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닌가! 시작은 갈매기와의 전쟁이었는데, 마치 갈수록 주민들 간의 문제로 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 간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P149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가치를 주장하며, 섬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고, 주민들의 생활이 더 평화롭고 누구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며,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운영위원회는 민주적 방식이라는 미명 아래 결국 운영위원장인 전직 대통령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섬의 주민들은 전직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 방관하는 사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분열된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모든 것들을 너무나 순진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갈매기들은 저항했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승리했다. 이 상황에서
고개를 숙인 인류가 더 똑똑했던 건가, 아니면 저항한 갈매기가 더 똑똑했던 건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맞지
않을까? P286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체포, 고문, 사망에
관한 정부의 발표를 듣고도 ‘어쩌면 당해도 쌀 짓을 했으니까 당했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한다. 섬에서 벌어지는 전직 대통령의 독재와 독선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만, 그의 절친이자 스승인 소설가를 통해서 변화된다. 소설가는 독재정권 아래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군 형무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는 작가와 동일시된다. 그는 논리적이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정치적인
성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에르도안 독재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 또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권위주의적 정치인에 한정되지 않고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로 빗대어 이해할 수도 있다. 끝에
실린 작가와의 대담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마지막 섬이라는 제목은 이야기 속 불행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한계도
모르면서 스스로의 지능에 만족한다. 배우려 들지도 않으며, 현명해지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모든 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다. 161p
사람들은 편향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거짓과 구분해내고, 굽은 것 속에서 곧은 것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은 어제는 잊어버리고, 내일은 생각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금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집권자들과 언론이 이 ‘지금’을 조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 작가와의 질의응답 中
책을 읽으며 정치에 무관심하고
부정적인 태도는 삶을 퇴보시키는 가장 최하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의 의견에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되는 것은 다수의 무관심과 침묵 때문일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급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플라톤의 말과 함께 이 책의 지식인인 소설가가 주인공인 나에게 건네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잊지 마, 자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제일 중요한 게 그거야. 자네, 자네의 목소리! 세상의 어떤 형식이나 유행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네의 것이 되어버린 방식 말일세” P43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