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무나 많은 시작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너무나 많은 시작>, 존 맥그리거, 2011, 민음사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라는 생각이 온종일 머리를 지배하던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죽도록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자랄수록 매순간 그런 크고 작은 절망과 상처, 눈물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주기적으로 내 앞에 들이닥쳤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아직은 어린 나의 삶에도 그토록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는데, 그 누구의 삶은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삶만큼이나 누구의 삶 또한 복잡하다. 삶 자체가 그토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삶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인색해져, 마치 자신의 삶만 그런 양 간주해버릴 뿐이지.
나는 그것을 문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들의 삶도 똑같이 복잡하고 똑같이 힘들고, 나와 똑같이 의미 부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은 아주 조용히 하지만 매우 격렬하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나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너무나 많은 시작>을 읽는 동안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온전히 나에게만 몰아치던 소용돌이를, 그리고 앞으로 지내나갈 시간 속의 소용돌이에 대해 짐을 조금 더는 기분이었다.
소설 속 데이비드의 삶은 결코 누구와 달리 특별하지 않다. 박물관 큐레이터로 오랜시간 일해 온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특별하지 않는 삶을 보며 우리는 동요하고 위안 받게 된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만약 데이비드의 삶이 너무 멋들어지는 삶이었다면 소설은 이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평범한 삶은 우리의 삶과 너무도 맞닿아있어, 더욱 그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친부모를 찾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는 타인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다. 다 커서, 여태껏 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뭐? 라는 생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당사자가 되는 순간 아주 작은 가시 하나에도 온 세상이 뒤흔들리는 일이 되어버린다, 충분히. 뭐 그 정도 일로 그래? 라는 말이 주는 소통의 부재와 상처에 대해 우리는 한번 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친부모를 찾겠다는 열망은 자신의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이 모아진 물건들을 찾아 모으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소설 각 장의 제목으로 붙여지는데, 이 사소하면서도 평범한 물건들 속에 데이비드 그의, 그리고 우리의 그토록 복잡한 인생 자체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의 행동은 그가 느낀 절망과 상처, 또 열망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줄곧 데이비드의 세상의 흔들림을 온전히 받아내며 동요해야만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은 뭐가 있을지 곰곰이 떠올려보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지극히 의미 없고, 또 너무 사소해서 웃어버릴 것만 같은 물건들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쌓여갔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사실은 한 인간의 인생 자체가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작고 사소할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절망, 기쁨, 열정의 순간들은 그렇지 않기에, 모두가 의미 있는 순간들이기에, 우리는 지금 또 시작을 해보려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