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10 

 


  <남아있는 나날>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스티븐스의 고민과 상념은 그 답을 찾지 못하고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시종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했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위대한 집사’에 대해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35년을 꽤 괜찮은 집사로 몸바쳐온 한 남자가 떠나는 최초의, 6일간의 여행이라는 이야기에 비해 책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6일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시간동안 자신이 지나온 35년이라는 삶을,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을 걱정과 고민, 나름대로의 자부심, 혹은 어렴풋하게 깃든 후회로 되돌아보는 주인공의 긴 푸념들이 쭉 늘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단순한 푸념으로 흘러 넘기고 말 수는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두가, 우리를 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6일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의 여행에도 많은 조바심과 걱정을 갖고 떠나게 되는 스티븐스의 모습에는 어딘지, 안쓰러웠다. 그리고 여행 중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기 버거울 만큼 ‘위대한 집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였다. 완벽한 집사가 되는 것만이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인 양 구는 그의 모습은 사실 많이 답답하지만, 어쩌면 또 당연한 모습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위대한 집사에 대한 가르침만 받아왔으며, 그가 처음 하게 된 일 또한 집사 일이다.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런 모습이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왜 저렇게 ‘집사’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의 고단하고 무거운 삶이(심적, 정신적으로) 나는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그런 그가 안쓰럽게 느껴진 것은 비단 그의 답답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스를 보며 그의 모습을 통해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20년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매 순간의 지나친 기우와 조금은 부질없는 걱정들, 완벽한 상황들을 만들고자 하는 강박으로 가득했던 나의 모습들과 그는 매우 닮아있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버거움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을 떨치지는 못한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그리고 인생을 조금 더 여유롭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그 용기가 필요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인생이니 말이다.

 

  <녹턴>에서도 느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별 것인 이야기를 해줌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참 많이도 주고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스티븐스의 ‘위대한 집사’로서의 삶을 역설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희망을 볼 기회를 준다. 제목 그대로다. ‘남아있는 나날’에 대한 기회인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나날은 길다. 그 나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그 나날이 지금까지 걸어온 나날보다 한결 수월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책은 이토록, 읽고 난 후 그 정의와 답을 내 스스로가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는 대에 그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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