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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10
- 잔잔한 파동에서 시작되는 삶
나는 추억의 대부분이 음악과 함께 다시금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 할 만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음악은, 그때 그 시간의 감정, 냄새, 피부의 느낌까지도 모조리 기억해내게 만든다. 마치 음악이 그 시절 그 순간 자체가 되어 나의 몸속에서 활개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음악은 누구에게나 추억과 함께 공존하게 마련이다. 녹턴, 클래식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이 음악의 따뜻한 추억을 안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국은 낯선 이국의 거리에 울려 퍼졌을 <대부>의 테마 곡이라든가, 아코디언과 기타, 클라리넷의 음율, 늙은 가수의 세레나데들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책 표지의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섯 가지의 이야기로 묶여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오묘하게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연륜이 묻어나는 사랑도 있고, (다소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 시린 이별도 있고, 어떤 젊은이의 잔뜩 흐릿해 보이지만 언제나 빛나고 있는 꿈도 있다. 대부분의 글이 유럽의 거리, 음악과 연주, 사람에 대한 묘사들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책은 큰 이야기 없이 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언뜻, 밋밋하거나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잔잔함이 나를 매료시키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분위기와 낭만에 취해버렸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특별히 고민하거나 상념하지 않고 말이다. 인생의 진리는 어쩌면 그 작은 순간들의 만남, 여러 잡다한 추억과 그 시간들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섯 편 중 인상 깊었던 글은 「말번힐스」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야기 모두에 특별할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특별할 것 없는 것이 오히려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특히「말번힐스」속 음악을 하는 젊은이인 주인공이 나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음악을 하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주인공은 대학 동창들을 만나는 것에 약간의 피해망상을 가지고 지낸다. 동창들은 대부분의 동창들의 현재를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의 안락함에 부러워하거나 혹은 질투한다. 과연 그 애가 ‘성공적’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하지만 주인공과 그 동창들에게의 ‘성공적’ 삶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 그 부분이 나에게 몹시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이렇다 할 목표를 이루지도, 뚜렷한 꿈을 이루진 못한 채 누나의 카페를 도우며, 남들이 보기에 다소 성공적이지 못해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늘 그는 음악과 함께하였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틸로와 소냐 부부를 보며, 누군가의 ‘성공’ 혹은 ‘행복’은 감히 타인이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매우 성공적이어 보였으니까.
음악의 잔잔한 파동, 그 파동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매우 닮아있다. 삶은 사실 굉장한 굴곡이 아닌 이처럼 잔잔한 파동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파동이 결국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불리는, 물 흐르듯 잔잔한 <녹턴>을 듣게 된다면, 가보지 않았지만 가즈오의 글로 탄생한 나의 상상 속 그 곳, 그 거리의 그들을 떠오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