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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평점 :
나는 굳이 말하자면 한빠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겨레>를 계속 보고 있는 이유는, 그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다. 내 마음대로 이름붙인 소위 ‘한겨레의 3김’이 그들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좀 생겨나고부터는 신문을 보더라도 웬만하면 사설을 읽지 않는다. 사설 대신 주로 보는 게 바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돌아가면서 실어주는 칼럼들이다. 이 칼럼 읽는 재미가 쏠쏠해 나는 여전히 <한겨레>를 끊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필진 중에서 나를 매료시키는 3김은 바로 소설가 김별아씨, 김정운 교수, 그리고 김선주씨이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 이 3김 중에서 김선주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글을 통해 만나는 김선주씨는 참 선명하다.
열정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침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조목조목, 한눈 한 번 팔 수 없는 강렬함으로 그러나 넘치지 않는, 절제와 품위를 가진 사람이 내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각각 다른 이런 느낌을 한 사람에게서 동시에 받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가 김선주씨에게서 가장 멋지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당연히 그 사람됨이 가감 없이 풍겨져 나오는 그의 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글 잘 쓴다는 평을 듣는 사람은 꽤나 많다. 그들과 다른 김선주씨표 글쓰기는 무엇일까?
김선주씨의 글은 기교가 뛰어나지도, 미사여구로 잘 짜여져 있지도 않다. 대신 잘난 체를 하지 않고, 에둘러 두루뭉실 비켜가지 않고, 도 아니면 모로 몰아가지 않고, 무엇보다 담백하고 진솔하다. 자신의 흉․허물을 스스로 인정한다.
2010년에 출간된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그동안 김선주씨가 써온 칼럼을 모아 묶은 책이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을 낸다는 김선주씨의 말이 입에 바른 말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간 그가 자신의 글을 통해 보여준 여러 미덕들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나 목사를 향해 ‘목사님, 부처 믿고 사람 되세요’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의 일상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이 아니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억압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글쟁이가 몇이나 될까.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최전선의 지식인으로서 ‘글을 쓰면서 항상 괴로웠다. 이 글이 진실과 정의로움에 부합한 것인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역사에 올바로 동참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회피하거나 비겁하게 외면한 점은 없는가, 세월이 지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를 매번 곱씹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식인가 몇이나 될까.
‘평생 한 번도 확보해본 적이 없었다. 신념도 없었다. 지금도 매일 이순간 흔들리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 매번 두려웠다. 죽을 때까지 이런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사람으로 태어나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예외, 안 되면 염치만은 차리자, 라는 생각으로 살고 글을 썼던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진실한 지식인이 몇 이나 될까.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 실린 글에는 멀게는 1990년대(1993년부터)에 쓰여진 칼럼부터 가깝게는 2010년에 쓰여진 칼럼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함께 하고 있다. 주제별로 묶어서 추려낸 글들이겠지만 20여년 전에 쓰여진 몇몇 글들은 어제 쓰여진 글이라도 믿을 만큼 아직도 유효하다. 깨어있는,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2011년 오늘은 쉽지 않은 현재일 것이다.
하지만 ‘친구야, 내가 왜 <한겨레>에 있냐고? 영국의 리버풀 공항이 존 레넌 공항으로 명명되고 …(중략)… 베트남 전쟁을 반대해 미국 비자가 거부되었던 존 레넌 같은 평화주의자의 이름을 따서 공항 이름을 붙이는 그런 세상을 이 땅에서 만드는 것은 <한겨레>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란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나가리라 믿어본다.
말을 뒤집기는 싶다. 하지만 글을 뒤집기는 그보다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실천하는 글쟁이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이다.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멋져 보인다.
나는 그래서 김선주씨가 멋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