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희망은 항상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자신의 상처를 되새김질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근10년 동안 나는 사람을 공부하며 사람을 만나왔다. 내가 일로 만났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의 경험을 곱씹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은 상처를 곱씹고 있지 않노라 말했지만 그건 그만큼 상처의 뿌리가 깊고 오래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왜냐면 상처가 자신에게 어떠한 어려움도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내가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몸은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정의’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다문화나 옹호 같은 개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음에도 나에게 ‘정의’는 아직 멀고 어렵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내내 받았던 직간접적인 교육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투사가 되어 현장에서 직접 뛰거나 아니면 그런 주장이 가능하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품어왔다. 그래서 ‘헌신’하는 ‘투사’가 되거나 ‘입신’한 ‘전문가’가 되는 둘 중 어느 하나로 나갈 수 없으면 ‘정의’를 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어줍지 않게 시작한 공부를 통해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정의’는 어쩌면 ‘감수성’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감수성’이 없는 ‘정의’…….
‘감수성’과 관련해서 몇 군데 인상 깊게 읽은 부분들이 있다.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감수성이고 실력이다’(184쪽),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188쪽),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216쪽),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249쪽)는 부분이다. 이 부분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저자가 사회역학자의 눈으로 모아온 각종 데이터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시작임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서 품는 감정은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될 때마다 더 견고해진다. 그 감정이 사랑이든 미움이든.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가 된다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링 위에 올라가는’ 과정 중에 맺은 하나의 결실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나는, 우리는 ‘어떻게 링 위에 올라갈 것인가?’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