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울 만큼 `짧은` 이야기들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 틈새에 공상을 덧대어 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함께 느끼게 된다.
"(...) 소리라는 건, 누군가가 혼자서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소리가 미치는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음악이에요. 어떤 대부호가 악단을 고용해 음악을 듣는다고 쳐요. 그 방에 하인이 있다면 그의 귀에도 음악은 어김없이 도달해요"
`건강한 자아를 지닌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는 걸까?` 하는 독자들의 질문에 미미여사가 내어놓는 대답인 듯 하다.`멋진 어른이 되어 있구나` 하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솔로몬의 위증>과 함께 보세요!
"왜 나쁜 놈이 저지른 진짜 나쁜 짓을 하나하나 모아서 입증하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어? 왜 거짓말에 기댄 거냐고?"
폴리아모리폴리피델리티의미를 이해하는데는 1분...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는 평생이 걸려도 어려울지 모르겠다.절반밖에 가지지 못한 당신을, 잃어버릴까 무서움이 드는 걸까?절반을 빼앗아 가버린 그놈을, 죽어라 원망하고 질투하는 걸까?아직은 통념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생각만으로도....
˝경찰소설의 대가가 그리는 피카레스크 로망˝ -옮긴이의 말-읽는 내내, 주인공 `마카베`가 과거를 떨치고`보통`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기를 응원하고 바랄 수 있었다.소속된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이지만,처벌이나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면...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범죄의 맞은편에 서 있는 `피해자`들 에게는 몹쓸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 눈에는 처벌이나 증오가 사회의 악을 줄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추리든 여하한 문학 장르든 결국은 `인간` 자체에 대한 의문과 탐구가 목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들춰낼 수 없는, 애써 감춰두고픈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전에 스스로 죽인 또 다른 내가 있게 마련이다. 저자가 말하는 `집`이란 바로 그러한 상징물이며, 우리는 이것을 `자아 찾기`의 한 갈래로도 해석할 수 있다. (...)˝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옮긴이(이영미) 후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