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상담 - -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17명의 상담사례와 30가지 심리치료
최고야.송아론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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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17명의 상담사례와 30가지 심리치료를 담았으며, 공동저자는 어머니와 아들이자 스승과 제자라고 한다. 심리치료를 하면서 언젠가 발행하겠노라고 다짐했던 사례집을 아들과 함께 발간하며 느끼는 감회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여덟 개의 장에는 환경치료, 명상 최면치료, 인지치료, 아동상담, 분노조절장애, 피해의식과 피해 망상, 부부상담, 연애상담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고 최고야 원장의 실제 상담사례가 실려 있다. 상담 현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이 충족될 것이고, 상담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현장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상담 사례집이라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서 내가 먼저 신청한 책이라 찬찬히 흥미롭게 읽었다. 실제로 내담자와 주고받은 이야기, 내담자의 가족들을 전부 불러놓고 상담자가 했던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실려 있고 내담자들의 그림(미술치료)도 실려 있다. 중간중간 심리학이나 상담이론에 대한 해설이 곁들여 쓰여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대인기피증으로 칼을 들고 상담소에 무작정 찾아 들어왔다는 내담자, 독박 살림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어린 딸과 그 고통에 대해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감히 남의 가정에 함부로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지만, 요즘은 학교 교육만큼이나 절실한 것이 ‘부모 교육’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이를 낳거나 가정을 이루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 내키는 대로 기르는 경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세계이고 삶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가족이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고통을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텐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똑같은 고통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는 부모, 태어나서부터 받아온 학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국 똑같은 폭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자녀를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

명상 최면 치료 방법이 참 흥미롭다. 상담자와 내담자 양쪽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지만, 기존에 알려진 최면 기법은 내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명상 최면 치료 방법은 안전하고도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거부감이 드는 최면이 아닌 명상 상태에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내담자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면 부디 이 방법이 널리 알려져서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줄어들면 좋겠다.

뒤늦게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공부도 다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면 더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담 사례집을 많이 보고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론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이론을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과 이론을 모르는 사람이 이론을 벗어나 자유로운 시선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때로는 후자가 자유로울 수 있겠으나 때로는 그 자유로움이 의도치 않게 칼이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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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 -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두려워지는 당신에게
이근후 지음 / 가디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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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신의학자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아흔을 바라보는 의사의 삶의 지혜는 얼마나 깊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나날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정신의학자로 살아온, 정말 어른의 이야기.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다만 제대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는 잘 늙어가는 것이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어른 중 한 분인 나의 교수님께서 나에게 앞으로 기억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하시면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나이 들수록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느껴지게 되어 있다고.

저자는 30대 때부터 노인대학에 출강하여 노인의 정신 건강에 대해 강의했는데, 돌아보면 그때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늙어 본 적도, 노인 심리나 행동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그저 이론만을 들고 그분들을 가르쳤다는 것이. 한편 본인이 노인이 되어 보니 이제는 노인들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러면 참 고맙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 강연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뭐라고 수업도 아니고, 강연에서까지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는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그 뒤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혹은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어주시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그저 누군가의 의견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고.

저자는 여든여섯의 노학자이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실수들을 전한다. 젊은 시절 아내에게 서운했던 것을 시작으로 꽤 오래 생일을 챙기지 않으며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이나 솔직한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건강하게 늙어가고 있는 어른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보양식에 눈을 뒤집고 탐닉하려는 우리 민족의 습관을 꼬집고자 바퀴벌레가 몸에 좋다고 썼던 칼럼 덕분에 수많은 동업 제의를 받은 이야기도 저자 특유의 유머로 보인다.

이 책은 입으로 구술하면서 출간하셨다고 한다. 시력 장애가 있으시다고. 그는 이전에는 노인이라면 공경을 받았지만, 이제는 노인이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는 사회에 대해 어른의 의견을 제시한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젊은이들에게 본이 되는 어른도 있다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자기 나름의 앞가림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六十而耳順)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60세를 이순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이십 년도 더 남아서인지 나는 남의 말을 듣고 이치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조차 하기 싫어서 가끔 몸이 뒤틀리는 심경을 억누르곤 한다. 요즘은 내 안의 꽤 못된 성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건강하게 조절하며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다 받아주기보다는 적절히 거리를 두며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내가 젊었을 때 옳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 여전히 그것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의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일이 옳은 일도 아닐뿐더러 잘 가꾸어지지 않은 노인은 나이 든 늙은이일 뿐 어른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제대로 나이 먹는 사람이 되자고. 조금 공부했다고 아는 척하기 전에 제대로 공부하고,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자고.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공부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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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 문장
백건필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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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훔치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카피라이팅이 과연 가능할까?

광고계에서 근무하게 될 일은 없지만, 마음을 흔드는 한 문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나는 책을 쓰고 글을 읽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며, 누군가의 책이나 영화를 분석한 후 내 의견을 발표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내가 던진 수많은 문장 중 하나라도 기억해준다면 나는 굉장히 기쁠 것이다.

더욱 솔직하게는, 누군가의 마음을 휘어잡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욕심일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겠지만, 사회적 동물이므로 예의를 갖춘 마이웨이가 되고 싶은 것이 요즘의 내 마음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눈이 먼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다. 팻말에는 ‘나는 눈이 안 보이니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한 남자가 지나가다 팻말을 발견하고는 문구를 고쳐주었고, 모금함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쌓였다. 훗날 노인이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때 팻말에 뭐라고 쓴 것인지 묻자 남자가 답한다. 의미는 같지만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이라고.

“화창한 날입니다. 하지만 전 그걸 볼 수가 없군요.” (p. 22)

요즘은 광고에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마케팅 심리나 경영 심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소비자의 눈으로 볼 때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대놓고 장점을 나열하는 것보다 때로는 무심한 듯 툭,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한 마디가 더욱 강렬한 힘을 얻곤 한다. 진정 무심한 한 마디였는지 아니면 철저히 계획되고 준비되었던 비장의 한 마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후자라고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툰 사람들이 특히 많은 것 같은 요즈음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상황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인간관계에도 거리 두기가 생기는 것 같다는 푸념을 더 이상 그냥 푸념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소나기가 쏟아져도 항아리 뚜껑이 닫혀 있으면 비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비가 내려도 항아리 뚜껑이 열려 있으면 물이 고인다. (p. 259)

사람의 마음을 얻고 호감을 얻기 위한 팁이자 예시겠지만, 문장이 참 좋다. 아무리 소나기가 퍼붓는다 한들 듣는 사람의 마음이 닫혀 있다면 이슬비만큼의 힘도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힘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혹은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 소나기보다도 큰 영향을 보여줄 수 있다. 비단 광고나 상업적 상황이 아닐지라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마음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평온한 상황이라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언젠가 다시 평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매번 잘 되지는 않는 것이 나의 한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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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의 힘
이미소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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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의 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춘천의 감자빵이 꽤 유명하다. 나도 지인들에게 몇 번 들어본 바 있을 정도로. 저자는 스물여섯에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춘천으로 내려와 감자들을 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한다. 춘천 감자빵의 시작은 아버지와 산처럼 쌓인 감자들이었다.

저자가 감자 산을 처음 본 날, 아버지에게 ‘심장이 꽉 막힌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 감정을 경험해 본 적 있기에 당시 저자의 막막함이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게다가 피할 수 없는 일정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나는 심장이 꽉 막힌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일정 목록에 가득 찬 일정을 볼 때면 증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춘천 감자빵은 춘천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대박 난 비결이나 노하우는 없다고. 그저 고군분투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고 행운도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의 경험들을 담았다고 이야기한다. 가끔 강연자로 사람들 앞에 서는 나에게 한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냥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그 후에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고. 맥락은 다를지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누군가의 이야기는 가르침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곤 한다.

저자는 진솔하게 자신들의 고군분투기를 담아내었다. 열두 종류의 감자를 기르며 감자에 진심인 아버지에게 설득 당해 부녀가 미국에 답사를 가기도 했고, 생애 첫 창업은 아버지의 닭갈비 사업이었다. 첫 창업은 실패였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감자 농사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며 SNS에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적극 활용한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저자는 결과보다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동기와 인간적인 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결과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관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농장 카페를 만들기도 했지만, 춘천에 내려온 지 5년 만에 감자빵을 만들어냈다. 연 매출 100억의 신화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5년간 같은 조건이 주어진다 해도 저자처럼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노력, 시행착오 그리고 작은 실패를 기회로 삼고 도전했던 저자의 근성에 기인한 성공이다.

마인드가 참 멋진 사람이다. 선점하되 확장을 하지는 않는다는 신념, 혼자가 아니라 상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인드가 오늘의 성공을 이끈 근본이 아닐까 싶다. 아직 감자빵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것을 먹는 날에는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그저 운이 좋아서 성공한 누군가의 뽐내는 이야기가 아닌, 고군분투 끝에 얻은 값진 결과를 책으로 녹여낸 누군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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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 죽음으로 완성하는 단 한 번의 삶을 위하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윤영호 지음 / 안타레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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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찰력 있는 어른들을 보면 존경을 넘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 때가 있다. 학문이 깊다고 반드시 통찰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자신만의 연구 분야에 집중하며 치열하게 노력하고 자신을 갈고닦은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 나에게 없는 힘이다 보니 그저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저자 윤영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이자 삶의 질 연구 및 완화의료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라고 불린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32년간의 통찰을 담아낸 책이 아닐까.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을 돕기 위해 국립암센터에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신설하고 관련 분야에서도 계속 힘써온 분이라고 한다.

저자는 죽음을 준비시키는 의사라고 불린다. 그는 우리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써 완성된다고 말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던 우리는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며 이로 인해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각자의 인생의 끝은 모두 같다. 죽음. 좋든 싫든, 인간은 모두 한 번 죽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의 삶 종료의 순간이다.

소유의 가치보다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며 호스피스 법제화를 추진했던 이야기에서 저자의 철학이 느껴진다. 일본이나 대만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던 호스피스 기관들을 국내에도 정착시키기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력과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상황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은 대한민국은 첫 시도를 제안하는 사람에게 그리 협조적이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정성이 보장되고 다른 나라에 성공사례가 있더라도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있다면 보류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저자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이야기가 참 아프고, 인간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 아버지가 숨이 차다고 전화하셨고, 저자는 119에 신고하게 하고 누나에게도 연락한 후 안심한다.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가 되었고, 연이어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 미안해 주변에 알리지도 못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아버지를 묻던 날 엄청나게 비가 왔고 그제야 엄청난 슬픔이 몰려왔다고. 슬픔은 내가 해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해 긴장을 조금 늦출 때, 그때 무자비하게 한꺼번에 몰려오곤 한다.

부모님과 동생, 누님을 먼저 보낸 이야기에 덧붙여 학창 시절부터 연구했던 웰다잉 문제까지 삶에 포함되면서 저자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삶의 위기를 실패라고 단정 짓기보다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라고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라는 저자의 말에 힘이 실린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또 새로운 삶이 이어지니까.

저자는 간병 살인과 동반 자살을 사회적으로 강요된 선택이라고 말한다. 국가에서 이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 아버지를 간호하다 생활고와 고통 속에서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었다. 자극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언론들은 앞다투어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보도했고 전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에서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나도 선뜻 대답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복지혜택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한 도움이 전달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끔찍한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삶의 마지막 돌봄을 국가에서 안정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도록 관심을 촉구하는 마지막에서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품위 있게 죽고 싶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의 꿈은 호상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남은 사람들에게 슬프지 않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한 번쯤 고민해야 할 삶의 방향성에 대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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