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큼 살았다는 보통의 착각 -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두려워지는 당신에게
이근후 지음 / 가디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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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신의학자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아흔을 바라보는 의사의 삶의 지혜는 얼마나 깊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나날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정신의학자로 살아온, 정말 어른의 이야기.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다만 제대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는 잘 늙어가는 것이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어른 중 한 분인 나의 교수님께서 나에게 앞으로 기억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하시면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나이 들수록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느껴지게 되어 있다고.

저자는 30대 때부터 노인대학에 출강하여 노인의 정신 건강에 대해 강의했는데, 돌아보면 그때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늙어 본 적도, 노인 심리나 행동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그저 이론만을 들고 그분들을 가르쳤다는 것이. 한편 본인이 노인이 되어 보니 이제는 노인들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러면 참 고맙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 강연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뭐라고 수업도 아니고, 강연에서까지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는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그 뒤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혹은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어주시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그저 누군가의 의견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고.

저자는 여든여섯의 노학자이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실수들을 전한다. 젊은 시절 아내에게 서운했던 것을 시작으로 꽤 오래 생일을 챙기지 않으며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이나 솔직한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건강하게 늙어가고 있는 어른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보양식에 눈을 뒤집고 탐닉하려는 우리 민족의 습관을 꼬집고자 바퀴벌레가 몸에 좋다고 썼던 칼럼 덕분에 수많은 동업 제의를 받은 이야기도 저자 특유의 유머로 보인다.

이 책은 입으로 구술하면서 출간하셨다고 한다. 시력 장애가 있으시다고. 그는 이전에는 노인이라면 공경을 받았지만, 이제는 노인이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는 사회에 대해 어른의 의견을 제시한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젊은이들에게 본이 되는 어른도 있다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자기 나름의 앞가림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六十而耳順)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60세를 이순이라고 표현한다. 아직 이십 년도 더 남아서인지 나는 남의 말을 듣고 이치를 깨닫기가 쉽지 않다.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조차 하기 싫어서 가끔 몸이 뒤틀리는 심경을 억누르곤 한다. 요즘은 내 안의 꽤 못된 성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건강하게 조절하며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다 받아주기보다는 적절히 거리를 두며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내가 젊었을 때 옳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 여전히 그것이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의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일이 옳은 일도 아닐뿐더러 잘 가꾸어지지 않은 노인은 나이 든 늙은이일 뿐 어른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제대로 나이 먹는 사람이 되자고. 조금 공부했다고 아는 척하기 전에 제대로 공부하고,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자고.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공부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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