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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미카의 거짓말
에미코 진 지음, 김나연 옮김 / 모모 / 2024년 7월
평점 :
추리 소설이 아닌데도 한 번 손에 들면 멈출 수가 없는 이야기!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두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설 한 권을 아주 재미있게, 빠른 시간에 읽게 만들면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깊은 주제가 참 많았다.
미카는 미국으로 이민 간 35세 일본인 여성이다. 방금 막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나이만 먹고 여전히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을 자책한다. 이력서는 넣어 보지만 자신이 발붙일 곳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듯 무수한 거절 통보만 받는 그 시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16년 전, 자신이 열아홉 살에 낳은 딸 페니. 딸의 행복을 바라며 백인 가정에 바로 입양을 보냈는데 그 딸이 미카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 미카는 한시도 잊은 적 없던 딸의 전화를 받고 설레는 한편,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딸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딸이 우러러볼 수 있는 멋진 엄마, 존경할 수 있는 인물로 거짓말을 하나씩 하다 보니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
서로가 만날 날이 다가오고 천운으로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던 미카는 자신의 거짓말을 들키지 않게 '완벽하게' 꾸며보기로 한다. 엉망진창인 현실을 솔직하게 내비칠 순 없다. 정말로 '부끄러운 진실보다는 완벽한 거짓말'이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일까?
거짓 속 인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위트가 넘치고 유머러스하며 사랑스럽다. 하지만 거짓말과 거짓 상황을 꾸민다는 자체에서 오는 적절한 긴장감이 좋았고, 그래서인지 결말이 궁금해져서 책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 모습에 오랜만에 즐거웠다.
웃고 울며 페이지 속 흐름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미혼모, 입양, 이민자로서의 시선이 날카롭게 만연해 있고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거부감 없이 들여다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참 좋았다. 미카는 이제 지나간 삶에서의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로, 누렸을 수도 있을 다양한 삶의 모습에 아쉬워만 하지 않고 앞으로 찾아야 할 것들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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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있잖아, 기분이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 나도 평생을 내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노력했어.
🔖255. 어쩌면 더러운 진실이 거짓보다 더 위험한 게 아닐까.
🔖531. "쇼우가 나이(しょうがない)" 대략 어쩔 도리가 없다, 는 뜻이었다. 교통 체증에 갇힌 샐러리맨들이 보통 이렇게 중얼거렸다. 실연당한 딸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한 여자들에게 경찰관이 이런 말을 할 때도 있다. 상황은 늘 변덕스럽고 통제할 수 없으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걸 일깨워 줄 때 쓰는 말이었다.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 가는 것이 낫다는 의미로.
🔖539. 나도 이제야 의미가 명확해졌어.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던 거야.
#에미코진 #완벽한미카의거짓말 #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