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 이상민 여행산문집
이상민 지음 / 심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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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여행작가 최갑수는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이후 신작 소식이 없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개정판에 실망을 하면서도 또 내 취향에 그만큼 잘 맞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늘 기다리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 나의 글과 사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하고 좋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여행 에세이가 그래도 제일 편하고 또 끌린다. 긴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 아름다운 우리 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들을 담은 사진이 있는 책은 언제 읽어도 좋다. 뭔가 읽을만한 새 책이 있나 싶어 찾아보다 발견한 것이 바로 '여정'이란 책이다.

 

이상민이라는 작가는 내게 생소하다. 경북 영덕의 강구에서 태어났고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시를 썼던 독특한 경력을 지난 여행작가인 듯 하다. 지금은 공연전문지에서 문학과 고전음악, 공연과 전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참 다재다능한 사람인 것 같아 부러운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과거가 그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그의 글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는 것은
길을 따라 떠난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서, 사진을 통해서 그 사람을 읽을 수가 있다. 그 속에 그 사람의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인간이란 존재가 '길을 걷는 존재'라고 말한다면 앞을 향해 걸을 때가 있고, 또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 있는 법이다.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온 것이고, 지금의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을 읽어보듯 이제는 나를 읽어보는 시간도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 떠나는 이 길의 끝이 어디로 향할 지 나 역시 알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작가의 바람처럼 내가 걷게 될 길이 어떤 길이든 발바닥 둘엔 대지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창공의 바람이 머리를 가르고 있는 순간을 느꼈음 좋겠다.

이 책을 다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월간 <토마토>에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이 책의 각각의 글들은 독립적이다. 처음에 나오는 계룡산 사진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지난 봄 홀로 걸었던 계룡산 계곡의 신록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 한장만으로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얼골 하나야
손가락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정지용의 호수


굳이 나누어 보자면 이 책은 최갑수 스타일이기 보다는,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디테일하게 파고들기 보다는 우리땅 구석구석에 자리한 고을들의 전체적인 느낌이 옅게 드리워져 있다. 표현 역시 직설적이기 보다는 비유적이다. 또한 그의 느낌을 온전히 잘 이해하자면 고전음악이나 문학에도 조금은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각자의 여정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끝이 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정표도 없고 결말도 알 수 없기에 두려운 길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한편 그래서 희망과 호기심을 가지고 걸어갈 용기를 내는 건 지도 모르겠다. 그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 좀더 풍요로울 수 있게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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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 법정스님의 무소유 순례길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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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연입니다. 책을 통해서 법정스님을 만나게 된 것도, 정찬주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된 것도 모두 두번째 입니다. 처음이 류시화 시인의 잠언집을 통해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말씀을 접하게 된 행운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은 정찬주 작가의 시선과 발걸음, 마음을 따라 스님의 일대기를 좇는 기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라는 향기로운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법정스님과 속세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정찬주 작가가 스님이 태어난 해남 우수영을 비롯하여 송광사 불임암, 진도 쌍계사, 미래사 눌암, 하동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봉은사 다래헌, 강원도 수류산방, 길상사 등 스님이 머물렀던 절과 암자를 다시 순례하면서 다시 되새겨보는 스님과의 흔적과 그리움을 담담히 적어내려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스님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요, 내게 필요없는 것을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또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요.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법정스님이 즐겨 읊조리시던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의 시를 저도 따라 나즈막히 읊어 봅니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달빛처럼 연연하지 말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섬돌을 가지려 하지 않는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을 따르고 싶은 마음 간절해 집니다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탓에 괴로움이 늘 뒤따릅니다.

법정스님은 입적하시면서 절판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이름으로 펴낸 책들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당부셨습니다만 어찌된 것인지 그 이후로 속세에서 스님의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님에 대한 당연한 추모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스님의 일관된 '무소유' 삶 속에 담겨져 있던 고귀한 가르침이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세속에 발붙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범인들이 오롯이 스님의 길을 따라 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모든 사람이 탈속의 삶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를 얻을 수 있고, 베푼 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된다는 말씀처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나눔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대만의 아름답고 맑은 향기를 가진 꽃을 한송이씩 피워보는 것 말입니다.


* 아래 써 놓은 글들은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라는 책 속 소제목들입니다. 이 글귀만 보고 있어도 절로 눈이 밝아지고 귀가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줄 만한 것들입니다. 오늘부터 시간날 때마다 보고 또 보아야 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고 진해지는 자신을 만날 날이 오겠지요. 그렇게 믿어 보려 합니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달빛처럼 살아라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모란은 모란이고 장미꽃은 장미꽃이다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를 얻는다

필연은 우연이란 가면을 쓰고 손짓한다

백 가지 지혜가 한가지 무심(無心)만 못하다

걸레라도 힘껏 비틀지 마라

진정한 도반은 내 영혼의 얼굴이다

나쁜 말 하지 말고, 나쁜 것 보지 말고, 나쁜 말 듣지 말라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된다

침묵에 귀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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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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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Noam Chomsky).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며 거대한 지배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온 촘스키를 책으로나마 뒤늦게 만나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MIT의 교수로, 언어학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학문 분야가 아닌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고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꽤나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이 2001년의 9.11 테러 사건 이후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를 알리는 데에, 그리고 그러한 음모에 순진한 대중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 일생을 보낸 촘스키가 아니었던가.

"나는 지난 세월 미국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촘스키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세계 지배에 대한 음모와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테러와 범죄들을 고발하여 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의 영향력이 지대한 우리 현실에서 그의 존재가 또한 불편했음도 지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기고 배워왔던 사람들에게 촘스키의 글들은 심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미 한가지 색에 진한 물이 들어 있다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테러를 통해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촘스키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실은 신문기사나 뉴스 저 너머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유력한 일간지의 기사나 방송사의 뉴스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그것들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는, 혹은 거기까지만 알려주고 싶은 존재에 의해 생산된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커 보인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지배권력은 선전을 이용하게 되고, 지식인이 이 작업에 동원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수천 년 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촘스키에게 있어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한계로 인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 대중에게 그 어떤 것도 가감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 경제, 언론 등 여러 분야의 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경제에 관한 촘스키의 생각만 떼놓고 보자면 장하준 교수의 입장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시민의 권한을 개인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고, 세계화는 기업계와 산업계가 만들어낸 창작품이며,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 등도 지금의 우리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될 이야기인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바람처럼 촘스키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정치계와 사회집단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도전의식을 키우면서 스스로 알아내려 한다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던 거짓과 위선이 발붙일 자리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것이 담겨진 탓에 손쉽게 하나로 풀어내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이야기들이 책에 담겨져 있지만 각 Chapter의 제목만으로도 촘스키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그 제목들을 소개하며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촘스키와의 대화를 끝맺고자 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은 진실된 행동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 톨스토이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자유란, 어떠한 환경이나 속박 그리고 어떠한 기회에도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세네카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힘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는 권력은 때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 코슈트

자본주의는 없다
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으려면 오백 명의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장사꾼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은 이익을 얻는 것 외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 - 제퍼슨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富는 온갖 범죄를 감싸주는 외투다.  - 메난드로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칸트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양심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매수되지 않는 것이다.  - 필딩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악인보다는 선량한 사람만을 학살한다.  - 소포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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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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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의 글을 읽는 기분은 새삼스럽습니다. 하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 역시 수백, 수천년 전에 이 세상을 살았던 분들의 글이긴 하지만 불과 몇 해전, 혹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살았을 분들의 흔적을 이렇게 글로 다시 되새길 수 있다는 것도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장영희 교수가 샘터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이 책은 2009년 5월 12일에 출간됐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그해 5월 9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마지막 유작인 셈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의 희망을 얘기하고자 했던 그분의 마음 씀씀이가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분명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위안을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독자들도 많을 겁니다.

책의 제목을 두고 고민을 한 흔적을 책의 서문에서 충분히 느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몇 개의 후보 중에 결국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최종 낙점을 받았지만 이 것 역시 처음에는 불합격을 받았던 제목이라 합니다. 스스로도 다시는 그런 기적같은 삶을  살기가 싫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미루어 짐작하기 조차 어려운 고통이었을 겁니다. 생후 1년만에 소아바비를 겪어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고, 말년에는 무려 세번씩이나 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던, 어찌보면 지독히도 불행했던 한 인간이 이 세상에 남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따뜻하면서도 지극히 담담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요. 하늘은 왜 내게만 이런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주는 것일까 생의 매 순간순간을 누군가를 원망하며, 지독한 절망감에 스스로를 저주하며 살아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부터가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장영희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기적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이 말은 여러 책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명언입니다만 한편 고개를 갸웃 거리게 만드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상대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더 낫지,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어리석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 말이 지닌 참뜻을 이제는 어렴풋 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산을 들어서 그 사람이 비를 맞지 않게 하는 것도 물론 충분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깊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나아가 나의 슬픔으로까지 공감해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은 한편 바보같은 일 같지만 그의 슬픔속으로 들어가 함께 젖어갈 수 있을만큼 넓고도 깊은 마음인 것이니까요.


못했지만 잘했어요

영어에서 쓰는 수사법 가운데 옥시모론(oxymoron)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의미의 단어를 합께 배치해서 상황을 강조하는 비유법인데 우리 말로는 '모순형용법'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 담겨진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못했지만 잘했어요'라는 진호의 모순형용이 유독 기억에 남네요. 

장영희 교수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기쁜 사람과 슬픈 사람이 서로 함께 어울려, 보듬어 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야말로 제일 좋은 모순형용법의 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모순형용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못났지만 잘 나 보이고,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그냥 그것으로 충분한, 사람에 대한 진실된 사랑 말입니다.


행복의 세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 에리히 프롬

'너만이 너다' - 이보다 더 의미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 - 세익스피어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 마크 트웨인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 김종삼의 '어부'


기적이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또는 '신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겨운 일상의 반복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또 어떤 이에게는 기적일 수도 있겠지요. 저 역시도 남은 인생에 꿈꾸고 있는 기적 하나가 있습니다.

기적, 그것은 분명 쉬 내게 와주는 것은 아닐테지만 간절히 바라고, 터벅터벅 쉼없이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 보려 합니다.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비가 되기 위해, 새처럼 자유롭게, 나만의 불가사리를 한마리 두마리 늘여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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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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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사 놓고도 이제서야 책을 다 읽고 손에서 놓게 되네요. 사람들의 평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책을 읽기 전 무심코 인터넷에서 접한 부정적인 서평에 선뜻 손에 잡히기가 않았었습니다. "좋은 책이긴 한데, 식상한 느낌이 난다."는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짤막한 글 하나에 마음이 흔들린 제가 문제였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좋은 책이긴 한데, 그 내용을 보면 조금 식상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삶에 힘이 되어주는 말들이란 것이 어떤 건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것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드는 생각입니다. 이 책은 아직은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있다거나 깊은 수렁에서 한걸음 빠져나온 사람들이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 말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이 절망에 빠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로 빙벽처럼 굳었던 마음이 풀릴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로 지옥과 천국을 경험할 수 있고,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갈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를 수 있고, 한마디 말이 갓 퍼담은 한그릇 쌀밥이 되어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에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그러한 것들입니다. 저는 그 말들을 통해서 제 인생에 힘과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다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혹시 이 책 속에 있는 한마디 말이 이 책을 읽는 분들의 인생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 본문에서



제목에서 짐작할수 있듯 이 책은 힘든 삶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안, 그리고 용기를 주는 따뜻한 한마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펴낸 정호승 시인이 그 말들에서 위안을 얻었고, 다시 용기를 내서 지금껏 인생을 살아왔듯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 역시 그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왜 유독 내게만 세상은 이토록 힘들기만 한 걸까. 누구나 그저 눈에 보여지는 나와 남의 겉모습만을 비교하면서 절망하고, 한편 분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어깨 위에 얹어진 고통의 크기는 달라 보이더라도 그 무게는 실상 같은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고통이 있어 그 사람의 인생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고 시인은 얘기합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들에게 기쁨 보다는 슬픔을, 즐거운 순간 보다는 고통을 안겨준 것이라 합니다. 그것은 어둠이 있어 별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처럼, 겨울이 있어 봄이 더욱 기다려지는 것과 같은 것일테지요.

참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만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정호승 시인이 펴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해인사에서 발간되는 월간 해인지에 실린 큰스님의 말씀 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는 말을 듣고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 시인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진정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제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가을이 너무 깊어 버려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겨울은 참 싫습니만 겨울이 있기에 봄이 기다려 지는 것이요, 짧기만 한 가을의 끝을 좀더 잡고 싶어지는 것일 겁니다. 아픔이 있고 힘들겠지만 잠시동안의 겨울을 잘 견뎌 보려 합니다. 곧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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