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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 법정스님의 무소유 순례길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두번째 인연입니다. 책을 통해서 법정스님을 만나게 된 것도, 정찬주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된 것도 모두 두번째 입니다. 처음이 류시화 시인의 잠언집을 통해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말씀을 접하게 된 행운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은 정찬주 작가의 시선과 발걸음, 마음을 따라 스님의 일대기를 좇는 기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라는 향기로운 제목을 지닌 이 책은 법정스님과 속세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정찬주 작가가 스님이 태어난 해남 우수영을 비롯하여 송광사 불임암, 진도 쌍계사, 미래사 눌암, 하동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봉은사 다래헌, 강원도 수류산방, 길상사 등 스님이 머물렀던 절과 암자를 다시 순례하면서 다시 되새겨보는 스님과의 흔적과 그리움을 담담히 적어내려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스님은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요, 내게 필요없는 것을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또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요.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법정스님이 즐겨 읊조리시던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의 시를 저도 따라 나즈막히 읊어 봅니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달빛처럼 연연하지 말고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섬돌을 가지려 하지 않는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을 따르고 싶은 마음 간절해 집니다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탓에 괴로움이 늘 뒤따릅니다.
법정스님은 입적하시면서 절판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이름으로 펴낸 책들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당부셨습니다만 어찌된 것인지 그 이후로 속세에서 스님의 이름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님에 대한 당연한 추모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스님의 일관된 '무소유' 삶 속에 담겨져 있던 고귀한 가르침이 오히려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세속에 발붙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범인들이 오롯이 스님의 길을 따라 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모든 사람이 탈속의 삶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를 얻을 수 있고, 베푼 것만이 진정 내 것이 된다는 말씀처럼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나눔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대만의 아름답고 맑은 향기를 가진 꽃을 한송이씩 피워보는 것 말입니다.
* 아래 써 놓은 글들은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라는 책 속 소제목들입니다. 이 글귀만 보고 있어도 절로 눈이 밝아지고 귀가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줄 만한 것들입니다. 오늘부터 시간날 때마다 보고 또 보아야 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고 진해지는 자신을 만날 날이 오겠지요. 그렇게 믿어 보려 합니다.
대나무 그림자처럼, 달빛처럼 살아라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모란은 모란이고 장미꽃은 장미꽃이다
버려야만 걸림 없는 자유를 얻는다
필연은 우연이란 가면을 쓰고 손짓한다
백 가지 지혜가 한가지 무심(無心)만 못하다
걸레라도 힘껏 비틀지 마라
진정한 도반은 내 영혼의 얼굴이다
나쁜 말 하지 말고, 나쁜 것 보지 말고, 나쁜 말 듣지 말라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된다
침묵에 귀 기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