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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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정여울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굳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이 유명한 책의 지은이란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가 정여울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음을, <그림자 여행>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림자 여행'이라는 제목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저 어렴풋하게 추축했던 것처럼 그녀가 말한 '그림자'란 저마다의 마음 속에 드리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마음들을 지칭한다. 고로, 그림자 여행은 우리들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심리학적 진단이 곁들여진 재미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정여울 작가가 마음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 자신이 상처가 많아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 안에 빛이 있으면 감추고 있어도 스스로 빛이 난다고 하지만, 그 빛의 뒷편에는 그만큼의 크고 선명한 그림자가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삶을 살아도 그림자는 생기게 마련이지만, 보통 우리는 그 그림자를 애써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의식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면의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만 성립한다면, 그 그림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형태와 농담이 다양할수록, 그 사람의 인생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글 가운데 유독 마음을 치는 것이 있다. 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글은 왜 한번도 자본가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본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 왜 한번도 권력의 중심에 서 보지 못한 사람들의 권력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녀는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의 신화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의 주체적인 선택이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의 시스템이나, 혹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언의 압력에 굴복한 수동적인 적응은 아니었는 지 되물어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질문에 온전히 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그녀의 주장이 조금은 과격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린 적이 없었다. 결국 잘못된 현실 또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네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장치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그녀는 결코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냉소와 패배감만을 가르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대학생들이 질소 과다포장 문제를 비판하며 과자 봉지 만으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넜듯,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에 공감하고 연대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여행'을 통해 작가 정여울이 얘기하고 싶었던, 우리 독자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가치있는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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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감성여행 - 낭만을 찾아 떠나는
염관식.옥미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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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높아질수록 여행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그럴 재주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글과 사진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정보를 토대로 실제로 여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에세이나 여행 정보를 담은 책들은 나름의 효용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떠날만한 상황이 못되는 사람들에게도, 떠나고 싶지만 정작 어디로 어떻게 떠나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런 종류의 책들은 때로는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하고, 훌륭한 지도나 나침반의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작가들인 염관식과 옥미혜가 펴낸 <소도시 감성여행> 역시 그런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지은이들은 이 책을 에세이와 시, 여행정보가 어우러진 구성, 그리고 도시의 로망을 일깨워 독자 스스로 여행을 디자인하는, 좀 독특한 책이라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책의 구성과 특성을 짤막하게 잘 드러낸 소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커피 여행의 로망 강릉, 항구 여행의 로망 통영을 시작으로 사진 여행의 로망 부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곳의 도시들을 에세이, 시, 사진, 여행정보들로 담아내고 있다. 사실 부산을 소도시라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고, 펜션 여행지인 태안과 캠핑 여행지로 소개된 가평 같은 곳은 개인적으로 마땅찮지만 그게 큰 대수일까 싶기도 하다.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각각의 도시가 지닌 감성을 잘 담아내면 그만일 것이다. 독자마다의 호불호가 다 다를 것이지만, 또 어떤 계기를 통해서 미처 몰랐던 매력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보람이라 할 수 있겠다. 늘 가던 곳, 비슷한 분위기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가끔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전까지 불편했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 볼만도 한 것이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며 즐기고, 어떤 맛을 느끼고 올 수 있는 지에 대해 친절하게 소개해 두었으니 책을 읽는 독자들로서는 그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골라 떠나면 그만이다. 몇 곳을 빼고는 거의 다 다녀온 도시라곤 하지만, 그 속속을 온전히 알 지는 못한다. 그동안 시간에 쫓겨 허투루 보아 남겼던 소도시들의 감성을 제대로 맛보러 다시 한번의 떠남을 감행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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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정운현 지음 / 비아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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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어른'이라 칭송받는 채현국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이후로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 또한 내겐 큰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쓴 맛이 사는 맛>이란 책에 끌렸던 것 역시 채현국이란 인물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에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팍팍한' 시대라 얘기한다. 지표로 보자면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우월한 경제적 수준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초등학생으로부터 팔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하루 각자의 '고(苦)'의 늪에서 허덕인다. 살림살이는 어렵고,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젊은 세대들은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간사에서 삶이 고달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대한민국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했던 1990년대의 황금기에도 누군가는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고, 생활고로 삶의 끈을 놓아 버린 이도 부지기수였다. 사회적 불평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 없다.

 

다 같이 어려운 시대였지만, 유독 갈수록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이 책의 지은이 정운현이 지적하듯 '어른'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서, 젊은 이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해서 '어른'이 아니라, 나 또한 저이처럼 나이를 먹어가야겠구나 하는 목표나 삶의 지향점이 되는 존재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사실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내가 살아온 길이 정답인양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주위 사람들을 가르치려만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수구화되는 늙은이는 어른이 아니라 '꼰대'에 불과하다. 달고 쓴 인생의 많은 경험들이 숙성되어 넓고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없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노인이 많은 사회에는 불행히도 희망이 없다.

 

내가 곁에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치켜세우는 글은 솔직히 불편하다. 지은이 정운현 역시 채현국이라는 인물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의 시선이 편향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가 지나온 길이 온전히 올바르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칭송의 끝에는 반드시 감쳐진 이면이 드러나기 마련일 것일테니 시대의 어른 채현국에 대한 검증은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쓴 맛이 사는 맛이란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쓴 것이 몸에 좋듯, 인생의 쓴 맛을 많이 본 사람이 그만큼 깊이 있는 내면을 가질 가능성은 높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일화들, 채현국이 걸어온 인생 역정처럼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 더를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이겠지만, 희망의 촛불이 점점 사위어져 가는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진 '어른'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잘 늙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것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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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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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는 학생 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고, 그 이후는 칼럼니스트와 TV 토론 진행자를 거쳐 국회에 입성했고, 진보 정권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던 인물,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거친 자연인 유시민의 눈에 비친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우리 현대사와 함께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55년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번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역사학자는 물론, 역사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시대나 지역의 지난 기록을 최대한 객관화 시킨 역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는 지금까지 나의 의식 내부에 강력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수많은 역사를 접하고, 공부해 왔고, 심지어는 시험이란 것을 통해 그것을 검증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은 BC 2,333년 단군의 고조선 개국이라 배워 왔고, 대륙을 지배했던 강대했던 고구려의 영화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외세의 힘을 빌어 비로소 첫 통일왕조를 건설했던 신라의 선택에 진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은 과연 '사실'일까? 사서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과거의 역사서들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역사라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그런 과정에서 분명 왜곡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여러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의 현대사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그것은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친 이후 수십년간 고착된 분단과 남과 북의 체제 경쟁을 통해 증폭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기 쉽지 않았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1959년 7월 어느날, 경북 경주시 북부동의 낡은 기와집에서 태어나 지금껏 이 땅에서 수많은 일을 겪으며 유시민이 보고 듣고 느꼈던 우리 현대사 55년을 담담히 읽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정치인 유시민이 아닌, 글쟁이 유시민은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시대를 해석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아마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격동적인 세월을 보낸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 엄청난 변화와 질곡의 세월은 필연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서적 혼란을 야기했다. 특정 인물과 사안을 두고서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과도기적인 특징으로 이해해도 좋지 않을까.

 

4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유시민 특유의 글솜씨 덕분에 잘 읽혀지는 책이다. 객관적 사실에 주관적 경험을 투사시켜 우리의 현대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시키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분명 역사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것이지만, 그 누구도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 또한 존재함을 믿는다. 그러하기 위해 우리는 현재의 사실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최대한 객관화 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면에서 미래는 언제나 오래된 것이다.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이미 들어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정과 느낌이다. 기성세대 독자에게 묻는다. 지나온 자신의 삶과 우리의 현대사를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 느낌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 주어도 좋겠다 생각하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어떤 것이 문제였고 무엇이 달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젊은 독자에게 묻는다. 그대는 부모 세대의 삶과 그들이 만든 역사를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화가 납니까? 자랑스러운가요? 기성세대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며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 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헀다.

사실을 많이 담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잘 알려진 사실들에 대한 생각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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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1
박광수 엮음.그림 / 걷는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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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때 시를 읽게 될까? 문학적 감성이 샘처럼 솟아 오를 때이거나, 괜한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일 수도 있다. <광수생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박광수는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에 시를 읽는단다. 사람이 그리운 날, 외롭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시를 읽었다고 한다. 시는 깊이 가라앉아 있는 이들을 토닥여주며 숨을 불어 넣어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꼭 연애상대이거나 이성일 필요는 없다. 힘들 때 생각나는, 문득 그리워지는 사람은 몹시 많다. 그것은 어머니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친구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리워진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무언가 결핍이 생겼다는 방증일 거다. 현재의 부족함을 과거의 추억 속에서 채워 보려는 애잔함이라면 또 어떤가.

 

그래도 그리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행복했던 시절과 그 때의 느낌과 사람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함께 흥얼거렸던 노래에도, 늘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사진 속에도 늘 사람이 함께 한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큰 성공을 거뒀던 박광수는, 또 그만큼의 실패를 겪고 깊은 시련에 빠지기도 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그는 시를 읽으며 잠깐 동안이나마 행복을 느꼈다고 털어 놓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란 책에 담긴 100편의 시는 박광수의 인생에 힘이 되어준 시인 것이다.

 

시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짧은 글귀 하나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삶의 의욕을 얻기도 한다. 나보다 더 힘들고 처절하게 버티고 있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세상은 좀더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사실을, 각자의 인생이 그리 비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란 것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시인은 위대하다. 이름난 명의는 의술을 통해 병든 몸을 치료하지만 따뜻한 심성을 지닌 시인은 정제된 언어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힘을 북돋워준다. 문득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생각해 보니 그들은 모두 멀리 있는 것 같아 외로워 진다. 어딘가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처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그대들이여. 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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