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낭비한 죄 -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다
박원자 지음 / 웅진뜰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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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에는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꾼 수행자 스물 여섯 분의 귀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책 표지의 오래 닳은 발우 사진이 큰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빈 발우, 수행자의 밥그릇을 보고도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큰 가르침은 어찌 보면 책 속에 있는 것도, 고요한 산사의 선방에 있는 것도 아닌가 보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시간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큰 지혜를 가진 고승대덕의 수행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고난한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행동을 바르게 하면 내 삶도 옳고 바른 곳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하여  - 혜국 스님

프랑스의 실존 인물이었던 빠삐용은 십 수년 간의 수용소 생활 동안 여덟 번의 탈옥을 시도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 빠삐용이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는데 사막 맞은편에 재판관과 배심원들이 앉아 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울부짖는다.

그러자 재판관이 이렇게 얘기하며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너에게는 분명 죄가 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동안 결백을 주장하던 빠삐용이 재판관의 말에 마침내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장면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석종사 혜국 스님께서도 법문 중에 그 영화를 거론하면서 "나는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을 저지른 죄보다 인생을 낭비한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한 답을 주셨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돌아올 오늘이기 때문에 영원히 하루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할 일을 못하고 사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나면서 하는 말, 오늘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할 것은 인류사에서 단 한번 밖에 없는 일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마지막 하루를 사는 인생을 사세요."

매일 아침에 깨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결코 인생을 낭비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매 순간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질 것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재생할 수 없는 지금을 제대로 살아보자. 지금 이 순간부터.


밥값  - 성철 스님

"야! 이놈들아! 밥값 내놔라!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밤낮 이렇게 졸기나 하고 공부를 제대로 안하는 네놈들이 도둑놈이 아니고 무엇이냐? 당장 밥값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신도들의 피 같은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수행자가 밥값을 하지 않으면 모두 도둑이라며 몽둥이질을 휘둘렀던 성철 스님의 일화에서 나 역시도 밥값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오롯이 나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고,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런 도움에 제대로 보답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빈 배  - 청화 스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와 부딪치면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배는 빈 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나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거나 상처를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빈 배가 되라.

나 자신을 철저히 비워 그저 빈 배가 되라는 청화 스님의 가르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나를 비우면 어떤 욕심이나 바람 조차도 없는 나를 경계하거나 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를 비움으로써 나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 비우는 것이 곧 가장 큰 것을 채우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조화인가.


내 일은 그에게 주는 것 뿐  - 숭산 스님

포교를 위해 미국에 갔다 고생하면서 이룬 모든 것을 한 사람으로 인해 잃어버렸음에도 당신을 배신하고 모든 것을 가져간 사람에게 여전히 무언가를 주시는 스님의 모습에 모두들 기가 막혀 한다. "스님은 그러고 싶으세요?"라며 따지듯 묻는 사람들에게 스님이 던지신  "그것은 그 사람의 job이고 내 job은 그에게 주는 것, 그것 뿐이라네."이란 말은 우리들에게 큰 무언가를 안겨 준다.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숭산 스님이 세상을 향해 던진 화두의 깊고 절실함이 느껴지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끊지 말고 풀라  - 탄성 스님

생전에 금오 큰스님은 우편물이 오면 물건을 묶은 끈을 툭 잘라내지 못하게 했다 한다. 어쩌다 누군가 무심코 가위로 툭 끊어 버리면 날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끊지 말고 풀어라. 맺힌 것은 끊지 말고 풀어야 한다." 한낱 물건도 그렇게 끊어 버릇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렇게 된다고 경계한 말씀이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큰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도 평소에 툭툭 잘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손재주가 없어 맺힌 것을 잘 풀지 못하는 탓에 부족함을 드러내기 싫음도 있을 것이요, 급한 성미 탓에 천천히 풀어볼 마음이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단박에 끊어 버릴 것이 아닌 것 같다. 순리대로 풀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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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은 집, 절
윤재학 지음, 정정현 사진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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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바란다.
흔히들 '이것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그 바람은 무망하다. 바람의 목록은 무한정 늘어난다.
비루한 욕망에서 해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바람이다.
그 간극은 아득하여서 야차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에 걸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불보살이 우리 곁으로 왔다.
절집이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절을 좋아한다. 불심이 충만한 신자도 아니건만 목적지 없는 떠남의 끝에는 늘 절이 있었다. 그런데 절에 갔다고 해서 법당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 자체 보다는 절과 속세의 경계를 그어 주는 듯 상쾌한 절의 숲길과 오직 바람이 울려주는 풍경 소리만이 고요함을 일깨우는 그 느낌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고를 때도 우리나라의 유명한 절을 소개한 책에 눈길이 간다. 지난 몇년간 전국의 이름난 큰 절이나 인근의 작은 사찰까지 많은 절들을 다녀봐서인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없어서 등의 핑계로 못 가 본 곳들로 많다.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지난해 출간된 '바람이 지은 집 절'이라는 책이 있다. 독특한 제목에 마음이 이끌렸다. 깊이 생각해 볼 생각도 없이 그저 바람이라 함은 분명 바람[風]을 말함이겠거니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지은이는 두가지의 바람을 얘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바람은 그 다음이었다.

이 책의 저자 윤제학은 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고 했다. 머리말에서 이 글을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아~ 바람은 간절한 사람들의 소망을 뜻함이었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은 무궁무진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그 바람의 종류와 수는 무한정 늘어난다. 그 수많은 바람들이 바로 절집을 지은 것이다.

또한 세상의 절집은 바람風이 지었다고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지만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인연의 얽히고 설킴에 의해서, 홀로 또는 여럿이 만든 업의 그물. 그 그물에서 벗어난 원효, 의상, 자장 스님과 같은 분들의 삶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바람이 되어 절을 지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싶은 바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찌보면 아이러니요, 인간 세상의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루한 욕망이든 해탈을 바라는 큰 욕심이든, 비우고 놓아 버릴 수 있다면 그 순간 진정한 자유와 평온이 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그 끝이 없다.

가만히 셈을 해보니 책에 소개되어 있는 스물 세곳의 절 중에 겨우 아홉 곳 밖에 가보질 못했다.바람願과 바람風이 지은 많은 절들이 또 내게 손짓하고 있다. 앞으로 절을 찾게 된다면 그 길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바람을 놓고, 그저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가는 가벼운 발걸음이어야 하겠다. 비우면 비울수록 그만큼 또 채워질 수 있을 것일테니. 지은이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이려니 여겨본다.

그냥 마음을 쓸었는데 반가운 이가 찾아오듯 내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우리 모두의 온갖 바람이 산산이 풍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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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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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 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 저자 서문 <시작을 위한 이야기> 중에서

제주라는 섬을 사랑해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의 중산간 들녘을 사진에 담는 작업에만 전념하다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 진단을 받은 후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남달리의 폐교를 임대해 2년여간의 작업 끝에 국제적 수준의 아트 갤러리를 꾸며낸 사람. 이것이 사진작가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제 김영갑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병든 육신은 2005년 5월 29일.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끈질긴 투병 생활에 접어든 지 6년만에 기나긴 안식에 들어갔다. 그가 손수 만들었던 두모악 갤러리에 그의 뼈는 뿌려졌고, 그의 육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그가 사랑했던 '그 섬' 제주에 영원히 살아 있다.

이제 두모악 갤러리는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굳이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들러보고 와야 하는 코스의 하나가 된 셈이다. 지난 여름 제주를 다녀왔던 지인의 사진을 통해 두모악 갤러리를 만나게 됐지만 언젠가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면 맨 처음 사진가 김영갑의 흔적이 남아 있을 이 곳에 나도 다녀오고 싶다.

사실 이 책은 2009년 어느 여름날에 처음 접하게 됐다. 스탠드 불빛이 잔잔히 비치는 어둔 방에서 이미 고인이 된 사진가의 열정이 담긴 글과 사진을 본 느낌은 경이로웠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김영갑의 사진 속에서 나는 사진이 가진 힘과 매력을 맛보았었다. 사진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제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절로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나에게도 제주라는 섬은 동경을 불러오는 존재다. 겨우 두번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전부지만 사실 나를 사진이라는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었던 강렬한 끌림을 주었던 곳도 제주였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곳 역시 제주라는 섬이다. 하지만 김영갑이라는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섬을 사랑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

1982년 처음 제주도를 찾은 이후 그는 1985년에는 마침내 섬에 정착했다. 이후 스무해 동안 한라산과 마라도, 중산간과 바닷가, 제주도의 구석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다는 그의 수행과도 같은 사진에 대한 열정을 따를 자신도 없다. 나에게 사진은 그저 취미일 뿐이니까.

하지만 닮고 싶다.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3년을 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그는 버려진 폐교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진 갤러리로 만들어 놓았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처럼 삶을 포기하고 폐인처럼 살지 않았을 것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의 열정을 닮고 싶다. 그가 사진에, 제주라는 섬에 일생을 바쳤듯 그처럼 나도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면 좋겠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는 제주 시인 김순이의 시 구절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언가에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삶은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것일테니.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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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어제보다 조금 더
강원구 지음 / 프롬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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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작가의 글은 아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도 이런 류의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쇼핑하다 발견한 것이 네이버 블로그 '나무처럼'을 운영하고 있는 강원구님의 에세이 '사랑하라, 어제보다 조금 더' 였다.

그도 나처럼 여행과 사진, 글쓰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물론 그 수준의 차이야 존재하는 법이겠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의 글을 통해 그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직접 만나서 얘기하지 않더라도 그의 짤막한 글과 사진 속에 담긴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기대에는 조금 미치지 못했다. 쉽게 읽히는 책이란 점에서는 괜찮았다. 그리 심각하지 않아도 되고,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과 사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가고있는 사람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 비해서는 뭔가 조금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류의 에세이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의 독특한 향취를 느끼게 해줄 만한 그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아쉬움이다.

남들은 철이 들고 성숙해질 나이에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삶을 즐기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그가 부럽다. 이미 몇번은 철이 들어야 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어딘가로 향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찬 나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지금 충전하고 있는 중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각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에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올만한 좋은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유명한 철학가나 문인의 명언보다 오히려 무명씨의 이야기에서 더 큰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떤 연유일까. 그것은 그 무명씨의 마음이 바로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순간순간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진리'이자 '지혜'인 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된 가을방학이란 밴드를 책에서 만나게 된 것도 무척 반갑다. 가을방학이 부르는 '가을방학'이란 노래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역시 가을이다. 그 아름다운 계절의 절정 가을은 매번 짧기만 해서 더욱 아쉽고 간절해진다. 만약 가능하다면 인생에서 한달 정도의 가을방학이 주어진다해도 좋겠다.

단풍이 황홀하게 물든 산이든, 인적 드문 가을 바다든, 사람으로 붐비는 도심의 공원이든 상관 없을 것 같다. 그 어떤 곳에 있든 가을은 그저 가을이라는 이유 만으로도 아련해진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을 알면서도, 그 마지막을 가장 아름다운 절정으로 치닫을 수 있는 열정이 가을에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봄은 성큼 다가와  우리에게 그 화사한 얼굴을 내밀어 줄 것이다. 벌써부터 남도에선 봄꽃 소식이 전해져 온다. 어디에선 매화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든지, 붉디붉은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얘기들에 마음이 벌써 바빠진다. 이 계절, 잠시 숨을 고르며 한걸음 더 힘차게 발걸음을 내밀 수 있는 짧은 봄방학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열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마음이 약해진다면 육체의 시계를 보지 말고, 열정의 시계를 보라.
정말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이다.  - 손명원

세상에는 진실보다 더 반짝이는 아름다운 거짓말이 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랑도 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친구란 당신의 모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한다.  - 신영복 '처음처럼' 중에서

"연탄재를 함부러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한 바가지 물이라고
애초에 속이 없었던 건 아니야.
물길 인도하는 한 바가지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 넉넉해 질 수 있다면
빛나지 않는다고 서러울 것 없지.  - 유진 '마중물'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비를 가려줄 우산이 아니라
함께 걸어 줄 누군가이다.  - 이정하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 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정호승 '눈부처'

화분을 기르는 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더욱 키우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 영화 '중경삼림' 중에서

제 갈 길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비켜 준다.  - 찰스 킹슬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줘야 할 일은 듣는 것이다.
선물을 해주고 함께 여행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이다.
듣지 않는 건 무관심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 좋은생각 중에서

사진은 95퍼센트의 기술과
5퍼센트의 영혼으로 만들어진다.  - 김중만

 

"사진은 사진가 자신이다. 사진인은 사진으로 말하고 사진으로 살아간다. 사진은 그 사진을 찍은 사진가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비록 사진 속에 사진가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할 지라도.....
그러므로 사진은 다른 예술 표현과 같이 사진가라는 한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작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은 반쯤 핀 것을 바라보고 술은 반쯤 취하게 마신다.
그 속에 아름다운 향취가 있다.  - 채근담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어 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 것이다.  - 엘라 휄러 월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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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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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할 수도 있다. 저항해본다 해도 개인의 힘으로는 바로 고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하준의 경제서들을 읽으면서 미약한 존재인 개인들의 의식이 깨어지고, 그런 깨어있는 개인들의 힘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불합리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이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래 착한 사마리아인은 신약성서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향하던 한 나그네가 길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를 목격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본 척 지나갔지만 유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핍박받고 있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줬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이 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음에도 방관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관념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과 도덕을 동일한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하여 이 법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쁜 사마리아인인가.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을 통해 소위 선진국들이라 불리워지는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경제학을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며, 그들이 진실이라고 주장해왔던 것들이 실상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에만 치중해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 준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이제는 그들만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룰을 만들어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치졸한 방법을 통해 후진국들에게는 개방과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무척 많이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미 선진국들이 철저한 실패를 경험했던 역사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럼에도 강대국들은 그들이 개방과 세계화, 규제 철폐 등을 통해 지금의 번영을 이루었다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후진국들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뤄 경쟁자가 되길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어떤 것이든,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득세를 하든 말든 그것이 나의 일상과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세계화'의 폐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형 마트가 골목 상권에까지 진출해 영세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한 지 오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들이 양산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장하준 교수는 에필로그를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개발도상국들이 좀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대안적인 정책을 허용한다면 좀더 많은 이익을 좀더 빨리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해 그들의 개명된 이기주의에 호소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다수가 그렇게 탐욕스럽지도, 편협하지도 않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에 큰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치가와 언론들의 말을 믿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쉬운 일'이 아닌 '올바른 일'을 해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부디 그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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