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은 집, 절
윤재학 지음, 정정현 사진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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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바란다.
흔히들 '이것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그 바람은 무망하다. 바람의 목록은 무한정 늘어난다.
비루한 욕망에서 해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바람이다.
그 간극은 아득하여서 야차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에 걸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불보살이 우리 곁으로 왔다.
절집이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절을 좋아한다. 불심이 충만한 신자도 아니건만 목적지 없는 떠남의 끝에는 늘 절이 있었다. 그런데 절에 갔다고 해서 법당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 자체 보다는 절과 속세의 경계를 그어 주는 듯 상쾌한 절의 숲길과 오직 바람이 울려주는 풍경 소리만이 고요함을 일깨우는 그 느낌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고를 때도 우리나라의 유명한 절을 소개한 책에 눈길이 간다. 지난 몇년간 전국의 이름난 큰 절이나 인근의 작은 사찰까지 많은 절들을 다녀봐서인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없어서 등의 핑계로 못 가 본 곳들로 많다.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지난해 출간된 '바람이 지은 집 절'이라는 책이 있다. 독특한 제목에 마음이 이끌렸다. 깊이 생각해 볼 생각도 없이 그저 바람이라 함은 분명 바람[風]을 말함이겠거니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지은이는 두가지의 바람을 얘기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바람은 그 다음이었다.

이 책의 저자 윤제학은 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고 했다. 머리말에서 이 글을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아~ 바람은 간절한 사람들의 소망을 뜻함이었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은 무궁무진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그 바람의 종류와 수는 무한정 늘어난다. 그 수많은 바람들이 바로 절집을 지은 것이다.

또한 세상의 절집은 바람風이 지었다고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지만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인연의 얽히고 설킴에 의해서, 홀로 또는 여럿이 만든 업의 그물. 그 그물에서 벗어난 원효, 의상, 자장 스님과 같은 분들의 삶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바람이 되어 절을 지은 것이라는 얘기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싶은 바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찌보면 아이러니요, 인간 세상의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루한 욕망이든 해탈을 바라는 큰 욕심이든, 비우고 놓아 버릴 수 있다면 그 순간 진정한 자유와 평온이 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그 끝이 없다.

가만히 셈을 해보니 책에 소개되어 있는 스물 세곳의 절 중에 겨우 아홉 곳 밖에 가보질 못했다.바람願과 바람風이 지은 많은 절들이 또 내게 손짓하고 있다. 앞으로 절을 찾게 된다면 그 길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바람을 놓고, 그저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가는 가벼운 발걸음이어야 하겠다. 비우면 비울수록 그만큼 또 채워질 수 있을 것일테니. 지은이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이려니 여겨본다.

그냥 마음을 쓸었는데 반가운 이가 찾아오듯 내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우리 모두의 온갖 바람이 산산이 풍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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