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 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 저자 서문 <시작을 위한 이야기> 중에서

제주라는 섬을 사랑해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의 중산간 들녘을 사진에 담는 작업에만 전념하다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 진단을 받은 후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남달리의 폐교를 임대해 2년여간의 작업 끝에 국제적 수준의 아트 갤러리를 꾸며낸 사람. 이것이 사진작가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제 김영갑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병든 육신은 2005년 5월 29일.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끈질긴 투병 생활에 접어든 지 6년만에 기나긴 안식에 들어갔다. 그가 손수 만들었던 두모악 갤러리에 그의 뼈는 뿌려졌고, 그의 육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그가 사랑했던 '그 섬' 제주에 영원히 살아 있다.

이제 두모악 갤러리는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굳이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들러보고 와야 하는 코스의 하나가 된 셈이다. 지난 여름 제주를 다녀왔던 지인의 사진을 통해 두모악 갤러리를 만나게 됐지만 언젠가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면 맨 처음 사진가 김영갑의 흔적이 남아 있을 이 곳에 나도 다녀오고 싶다.

사실 이 책은 2009년 어느 여름날에 처음 접하게 됐다. 스탠드 불빛이 잔잔히 비치는 어둔 방에서 이미 고인이 된 사진가의 열정이 담긴 글과 사진을 본 느낌은 경이로웠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김영갑의 사진 속에서 나는 사진이 가진 힘과 매력을 맛보았었다. 사진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제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절로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나에게도 제주라는 섬은 동경을 불러오는 존재다. 겨우 두번 제주도를 찾았던 것이 전부지만 사실 나를 사진이라는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었던 강렬한 끌림을 주었던 곳도 제주였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곳 역시 제주라는 섬이다. 하지만 김영갑이라는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섬을 사랑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

1982년 처음 제주도를 찾은 이후 그는 1985년에는 마침내 섬에 정착했다. 이후 스무해 동안 한라산과 마라도, 중산간과 바닷가, 제주도의 구석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다는 그의 수행과도 같은 사진에 대한 열정을 따를 자신도 없다. 나에게 사진은 그저 취미일 뿐이니까.

하지만 닮고 싶다. 병원에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3년을 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그는 버려진 폐교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진 갤러리로 만들어 놓았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처럼 삶을 포기하고 폐인처럼 살지 않았을 것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의 열정을 닮고 싶다. 그가 사진에, 제주라는 섬에 일생을 바쳤듯 그처럼 나도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면 좋겠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는 제주 시인 김순이의 시 구절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언가에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삶은 진정 아름답고 행복한 것일테니.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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