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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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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 부족 이슈..로 한번에 읽지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읽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름도 눈에 안 익어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아름다운 문장이 한가득 담긴 소설이라고.
사실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문체가 너무너무 내 취향이었다.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읽어나가도 문장들을 읽는 맛이 있었다.

점묘화 같은 소설이라고 느꼈다. 작은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이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큰 그림을 형성했을 것이다. 비록 나는 읽어내지 못했지만⋯. 언젠가 재독할 기회가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읽어야겠다. 그땐 숲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기뻤던 수확은 음악이었다. 을유문화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아침 OST>와 <Froberger: Complete Fantasis & Canzonas>라는 음반을 알게 되었다. 『사랑 바다』와 찰떡이었던 건 물론이고 노래 자체가 너무 좋았다. 바로크 시대를 간접 체험해보고 싶다면 당장 들어보시길⋯ ⋯.

-
여자들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아요. 기다리죠. 그래요.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여자들이 하는 일이에요. 여자들은 선박이 아닌 무언가를 기다려요. 화물이 아닌 무언가를 기다리지요. 여자들은 눈길 끝은 결코 귀환을 찾지 않고, 반복을 찾지도 않아요.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도래를 기다려요. 그것이 여자들의 삶이죠. (42쪽)

바다가 감추고 있었던 그 땅 혹은 바위는 더없이 순백하고, 놀랍도록 새로우며, 진정 온전하고 순수했다.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 기이한 마음 가짐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튈린과 함께할 때는 모든 것이 이런 내려놓기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모든 것이 포기였다. 아니, 모든 것이 심지어 방종이었다는 말이 더 믿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그토록 사랑했다. (62쪽)

그녀는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이 낳는 고통에 오롯이 몰두했다.
이 두 가지가 그녀의 열정이었다. 바다를 뺀다면 말이다. 그녀는 세상 끝의 군도에서 온 사람이었으니까.
아니다. 그녀는 죽음에 대해 절대적인 두려움을 품 기도 했다. 따라서 네 가지 색이 꾸려지게 된다. 사랑, 바다, 음악, 죽음. (94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암실문고 #소설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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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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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SF 보다 벽』이라는 소설에 관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그 소설의 도입부를 열었던 문지혁 소설가의 글을 다시 한 번 빌려오겠다.

카프카 소설의 화자에 따르면 만리장성은 북방 이민족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렇다. 벽은 나누고 막고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7쪽)

그러나 벽은 반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략)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모험 사이에는 언제나 (비록 문지방처럼 야트막할지라도) 벽이 세워져 있고, 이를 넘는 행위는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의미한다. 문지방 너머에는 새로운 세계, 주인공을 필요로 하는 낯선 우주가 기다리고 있다. (8-9쪽)

문학이 무엇인지, 장르와 SF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어쩌면 그건 끝없이 벽을 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아닐까? 사람과 방과 계단과 궁전을 넘어, 누군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도하고 그리는 일. 우리에게 메타포가, 비유와 우화가, 문학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는 벽이 되고 문이 되고 세계가 된다. 책은 벽돌이다. (13쪽)

🚪
소설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정말로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문을 넘나드는 소녀 재뉴어리의 이야기이다. 그 이전에 그녀의 부모님이 먼저 그렇게 했다.

재뉴어리의 어머니인 애들레이드, 에이드는 우연히 다른 곳에서 온 소년인 유령 소년을 마주한다. 율 이언, 그러니까 재뉴어리의 아버지인 줄리언은 문을 통해 왔다. 그 찰나의 순간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에이드는 사흘 후에 또 만나기로 한 율을 기다리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녀는 율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세상의 모든 문을 여는 여정을 떠난다. 직접 배를 만들어서.
사흘 후에 만나자는 약속은 12년이 되어서야 이행된다. 마침내.
그들은 아이를 가지고, 부부가 되고,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향수병에 걸린 듯한 에이드를 위해 줄리언은 기어이 함께 떠나기로 한다. 불행한 사고를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에이드와 헤어진 줄리언은 그녀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의 문을 열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딸인 재뉴어리는 고용인인 로크의 집에 맡긴 채. 줄리언은 재뉴어리가 커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재뉴어리는 그런 아빠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어느 날, 재뉴어리는 로크로부터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책 속으로 뛰어든다.
그 책의 이름은 『일만 개의 문』.
바로 에이드와 줄리언의 이야기.
재뉴어리는 그 책이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긴 기록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아빠는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도.

이제는 아빠를 찾기 위한 재뉴어리의 여정이 시작된다. 재뉴어리는 아빠를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아빠는 왜 실종된 건지, 모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
문은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나무 판자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열리고 닫힌다는 성질 때문일까. 문 너머엔 왠지 이쪽과 다른, 낯선 세상이 존재할 것만 같다.
낯선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상상에서 그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우리의 상식과 질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소설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을 찾아 헤매고 그 문을 열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는 건 얼마나 큰 사랑이 담긴 행위인 걸까. 현재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사랑을 나도 언젠가 경험할 수 있을까.
새삼, 사랑은 힘이 세다.
그리고 이야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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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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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나’, 그러니까 각각의 소녀들은 주변 어른들에게 ‘유난스럽고 특이한 아이’로 여겨진다. 정말 미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녀도, 정신적 이상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소녀도 존재한다. 소녀들은 다른 듯 닮아 있다.
그러나 소녀들보다 더 이상한 건 어른들(특히 남성)이다. 아버지는 소녀를 향해 손을 들어올린다. 할아버지는 소녀의 뺨을 때린다. 예술가는 ‘검은 천에 강제로 눕혀진 살구색 알몸의 여자 둘이, 온몸 여기저기에 칼집이 난 여자 둘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소녀들에게 보낸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림 속 여자들은 귀신 들린 듯이 입을 쩍 벌리며 그가 원하는 대로-그의 판타지에 맞춰- 귀염성 있게 떠들어줄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소녀들)의 투쟁을, 공포를, 두려움과 슬픔을, 그 모든 절박한 성장을 믹서에 갈아 넣어 통째로 들이마시며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우리의 생을 자위 도구로 전락시키려고, 이제야 겨우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여자애들의 앞길에 고약한 정액을 뿌리려고‘.
정말로, 미친 건 소녀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폭력적인 어른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한 방어 기제일지도.
‘어린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녀들의 환경은 매우 끔찍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매일 훌륭하게 살아남”는다. 기이하고 선뜩한 소설 속에서 소녀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오래오래 이어지길, 그리하여 자신만의 결結을 보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
바다 건너 저 미국에서도 백인 여자의 인권보다 흑인 남자의 인권이 우선이다. 그게 세상이다. 미국이 그렇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니들은 지금 내 말을 이해 못한다. 한데 말이다. 미국의 역사에서 도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보다 먼저 투표권을 가지 게 되었단다. 두고 봐라. 미국 대통령 자리에 백인 여자보다 흑인남자가 먼저 오르게 될 거다.
그때서야 니들은 내 말이 생각날 거다. 니들은 니들이 이대 나오고 똑똑하고 능력 있으니 니들이 세상을 다 바꿀 수 있을 거 같지?
세상의 모든 남자들 너희보다 훨씬 못한 남자들까지 다 구제된 다음에 너희 인권이 구제가 될 거다.
그게 지구의 역사였다.

왜 그렇게 되냐면 여자는 너무 착해. 그렇게 착하도록 교육받았어. 착하게 길러졌어. 자기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교육받았어. 니들은 니들 이익을 주장하기 전에 니들 자신을 스스로 검열부터 한다. 그래서 니들은 공격성이 떨어져.


이화여대 진덕규 교수님이 2003년에 쓰신 글이라고 한다.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소설 속 소녀들의 투쟁을 보며 진덕규 교수님의 글이 생각났다. 공격적이고 쟁취적인 여자아이들은 왜 유난스럽고 예민하다 취급 받는가? 착하고 지고지순한 여자보다는 독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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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옥구슬 민나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3
김여름 외 지음, 김다솔 해설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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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도 여전히 환상 소설로 가득했다. 환상성의 정도가 조금 덜한지, 더한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옥구슬 민나」는 환상 소설을 넘어 어떤 신화나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집의 구성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걸 수미상관이라고 불러야 할까. 첫 번째 작품 「공중산책」의 주인공은 죽었다. 이미 죽은 주인공이 귀신이 되어 제목대로 공중을 산책한다. 「옥구슬 민나」에서 ‘득’은 죽는다. 득의 시체는 끊임없이 부풀다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민나가 우주의 모든 것을 위해 너무 작은 입자로 부서져 내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작품들에도 죽음 혹은 그와 유사한 것, 그러니까 사라짐이 존재한다. 「블러링」 속 언니는 액체가 되었고,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에서 유영은 호주로 사라졌다. 아마도. 「대체 근무」에서는 단강의 지도교수와 전임자의 아기가 죽었고 「통신광장」 속 민영은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받으러 모스크바로 떠났다.
사라진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과 시선은 다르다. 「공중산책」 속 ‘나’만이 유일하게 죽은 당사자이고, 다른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떠나 보낸 뒤 남겨졌다. ‘나’ 역시 공중산책을 통해 죽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

그렇다. 우리는 남겨질 수밖에 없다. 내가 죽은 뒤의 모습이 어떨까, 생각해도 상상에서 그칠 뿐이다. 그렇기에 소설이, 문학이, 영상매체가 끊임없이 죽음을 그리는 것 같다.

또, 작아짐은 사라짐과 달라. 아무리 작은 것도 없는 것과 달라. 그러니 아무리 작은 것도 없는 것과 달라. 그러니 안심하고 어디로든 가.
그러자 개가 날개를 펼친다. (「옥구슬 민나」 中)

종국에 민나의 말은 무수한 사라짐을 겪어야 할 우리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이건 뜻밖의 마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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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개빈 지음, 김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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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극도로 양면적인 사람이다.
10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다. 쳇 베이커의 탄생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그린 이 책에서 마약이 9할 이상의 분량을 차지했다. 세 명의 아내가 있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에게 소홀했다. 전혀 아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것에서 마약이 빠지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과 외모도 마약으로 잃었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마약을 끊지 못했다. 말년의 그는 마약을 하기 위해 음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약으로 인해 교도소도 들락날락했고, 주사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중독자였다. 그는 정말 인복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과분할 정도로. 그러나 그런 그들마저도 마약 하는 데 이용했다.
책을 읽으면서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들었다. 텍스트에서는 악인으로 그려지는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달콤하게 들려왔다. 읽을수록, 들을수록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쳇 베이커의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건 아니었다. 대중들은 그의 음악을 사랑했으나 음악인들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재즈를 잘 모르는 내 귀에는 그저 좋게만 들려서, 이게 악마의 재능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에 그토록 많은 조력자가 있었다는 건 그가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 매력이 마약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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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쳇 베이커가 저지른 ‘극악무도하고 흥미진진한’ 악행을 일일이 책에 옮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새삼 궁금했다. 무릇 역사란 사람 사는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를 반추하게 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닐 것이다. 철수와 영희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하는 얘기보다 슬프고 일그러진 비운의 사 랑 노래가 더 큰 감홍을 남기듯, 삶과 음악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마주친 모순 속에 재즈와 예술의 본질이 숨어 있지 않겠느냐는 화두를 저자는 넌지시 던지고 있다.

⠀⠀⠀⠀⠀⠀⠀⠀⠀⠀⠀⠀⠀⠀⠀⠀⠀⠀⠀⠀⠀⠀ 「옮긴이의 글(초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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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베이커 #재즈 #재즈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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