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도 여전히 환상 소설로 가득했다. 환상성의 정도가 조금 덜한지, 더한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옥구슬 민나」는 환상 소설을 넘어 어떤 신화나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작품집의 구성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걸 수미상관이라고 불러야 할까. 첫 번째 작품 「공중산책」의 주인공은 죽었다. 이미 죽은 주인공이 귀신이 되어 제목대로 공중을 산책한다. 「옥구슬 민나」에서 ‘득’은 죽는다. 득의 시체는 끊임없이 부풀다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민나가 우주의 모든 것을 위해 너무 작은 입자로 부서져 내린 것과는 대조적으로.다른 작품들에도 죽음 혹은 그와 유사한 것, 그러니까 사라짐이 존재한다. 「블러링」 속 언니는 액체가 되었고,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에서 유영은 호주로 사라졌다. 아마도. 「대체 근무」에서는 단강의 지도교수와 전임자의 아기가 죽었고 「통신광장」 속 민영은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받으러 모스크바로 떠났다.사라진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과 시선은 다르다. 「공중산책」 속 ‘나’만이 유일하게 죽은 당사자이고, 다른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떠나 보낸 뒤 남겨졌다. ‘나’ 역시 공중산책을 통해 죽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그렇다. 우리는 남겨질 수밖에 없다. 내가 죽은 뒤의 모습이 어떨까, 생각해도 상상에서 그칠 뿐이다. 그렇기에 소설이, 문학이, 영상매체가 끊임없이 죽음을 그리는 것 같다.또, 작아짐은 사라짐과 달라. 아무리 작은 것도 없는 것과 달라. 그러니 아무리 작은 것도 없는 것과 달라. 그러니 안심하고 어디로든 가.그러자 개가 날개를 펼친다. (「옥구슬 민나」 中)종국에 민나의 말은 무수한 사라짐을 겪어야 할 우리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이건 뜻밖의 마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