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극히 명료하다. 논의는 권위가 있으며, 공감적이면서도 무비판적이지 않고, 매우 포괄적이다. 한마디로 이상적이다."
제프 맥머(Jeff McMahan), 옥스퍼드 대학교 도덕철학 White‘s Professor
공리주의는 19세기 이래로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윤리 이론으로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공리주의는 여성평등, 동물 해방 등의 많은 도덕적 개혁을 이끌어 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철학적 급진주의 윤리 이론으로서 공리주의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면모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개혁성과 진보성은 불가피하게 전통적인 도덕적 견해와의 충돌을야기하였고, 이는 공리주의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대를 낳았다. 공리주의는 고문과 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개별성을 무시하며,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우리의 특수한 인간관계에서 기인하는 책무를 무시한다는 도덕적 반론들과, 공리주의가 극대화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혼란이 있고, 그런 가치에 기초한 공리의 계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리의 개인 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이론적인 반론들이 그러한 반대의 핵심 논거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반론들에 관해서도 일일이 명료한 형태로 답하고 있다. 공리주의에 대한 반론과 함께 그에 대한 공리주의의 응답을 들을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독자들은 공리주의에대한 찬반 양론을 함께 접하면서 어느 편의 논증이 더 설득력 있는지에 대해숙고하고 판정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왜 법은 모든 감각 있는 존재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는가? 인류가 자신의 책임을 숨 쉬는 모든 것들로 확대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노예들의 여건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돕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공급하는 모든 동물들의 여건을 완화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다.
제레미 벤담, 「형법의 원리」
취향에 대한 혐오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허용되어야 하지만, 한 사람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취향에 대한 단순한 혐오그 이상의 더 좋은 이유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제레미 벤담, 동성애 기소 반대 논변
어떤 조건 하에서 그리고 어떤 한계 안에서 남성들이 투표권을 인정받았건 간에 동일한 조건 하에 있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인정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여지는 추호도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예속
공리주의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그것의 이론적 토대를 발전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행복을 증진하고 고통을 완화하는 실천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간 존재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조건이라고 받아들이는실천 관행들을 비판했다. 이런 도전들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벤담은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동물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그리고 밀이 벤담의 선례를 뒤따랐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는 그러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벤담은 또한 죄수들의 열악한 여건을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더 좋은 빈민 구제 체계의 위대한 주창자였다.공리주의자들은 투표권 확대를 지지하였으며, 재산 소유의 엄격한 조건을 폐지하고 재산 소유를 여성에게 확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결혼한 여성들에게 재산을 허용하고 여성의대학 입학을 허락하는 등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캠페인을 이끌었다. 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는 공리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노선을 따라서 우리의 태도와 실천 관행들을 변화시켜 왔다.
밀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였으며, 국가는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벤담은 동성애 행위를 범죄시하는 법률에 반대하였는데, 이것은그의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었다.
우리가 이 책의 6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공리주의의 개혁 정신은 오늘날의 공리주의자들사이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에 대한 반대자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마르크스(Karl Marx)는 벤담을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방식에서 천재‘라고 조롱했고,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공리주의를 경멸적으로 ‘겁쟁이와 소심한 사람들과 열등한 사람들을 위한 노예 도덕‘이라고 불렀다.
소설가들 중에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찰스 디킨스, 엘리자베스 개스켈, 올더스 헉슬리 등이 자신들의 소설에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최근의 영국 철학자인 버나드 윌리엄스는 공리주의에 대한 오랜 공격 후에 ‘우리가 공리주의에 관해서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윌리엄스가 그런 논평을 한 지 이미 40년 이상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속해서 공리주의에 관한 많은 것들을 듣고 있다.
공리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는 계속해서 실천적 영향을 행사하고있고, 그것의 장점에대한 지속적이고 생생한 논쟁의 와중에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비판들을 넘어서 공리주의가 오래 지속되는 데는 그럴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
윤리학의 근본적 물음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며, 정치철학의 근본적 물음은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이 두 물음에 대하여 공리주의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 대답은 이렇다. 해야 할 옳은 것은 최선의 결과를 낳는것이다. 여기서 ‘최선의 결과‘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영향받는 당사자들 모두에 대해서 고통을 제하고 남은 행복에 있어서 가능한 한 최대의 순 행복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 대답은모든 가능한 상황들을 포괄한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목표로 삼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지향한다.
어쩌면 그것이 공리주의가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도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문제로 남아 있는 놀라운 습성을 지니게 된 이유일지 모른다. 반공리주의 철학자 필리파 푸트가 언젠가 지적한대로 ‘공리주의가 그르다고 우리가 아무리 주장을 해도, 우리는 공리주의가 확실히 옳다는 느낌을 영원히 가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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