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법과 사법
법을 나누는 방법도 이유도 여러 가지다. 법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법 체계를 이해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대륙법에서는 법을 나누는 방법 자체가 하나의 법이다. 아무렇게나 나누는것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하에서 나눈다. 법을 나누는 방법은 사건을 어떻게 분류할지, 교육 과정을 어떻게 구성할지, 학자들의 전공을 어떻게 나눌지, 책이나 학회지의 주제를 어떻게 정할지, 도서관 서기에 책을 어떻게 배열할지에 영향을 미친다. 법률가 사이에서오가는 대화조차도 법의 분류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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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나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눈 부분이 전체 법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제10장에서 본것처럼 법학자들은 각종 법 관련 자료로부터 법의 기본 개념을 추출한다. 그걸 모아서 범주화하다 보면 완성된 법 체계가 된다.
즉, 개념과 범주는 체계의 한 요소이자 속성이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설명 목적으로 나눠본 것이었는데, 그것 자체가 하나의 규범이 되어 달리 나누는 방법은 없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개념과 범주를 특히강조하다 보면, 체계화, 추상화, 형식주의, 순수법학 등 대륙법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학자들이 학생들에게 주로 가르치는것도 이 개념과 범주다. 그것이 모든 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대륙법은 법을 공법과 사법으로 나눈다. 대륙법 국가의 법률가들이 보기에 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명백한, 꼭 필요한 분류법이다. 적어도 논문이나 책, 교재 등도 전부 이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법학을 배우는 학생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공법과 사법으로 법을 나누고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에 그분류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법학자 홀랜드를 비롯한 많은 학자가 공법과 사법으로 나누는 것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런 구별은 필요하지도 않고, 원칙도 아니며, 분명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대륙법계 법률가에게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에게 공법과 사법은 물과 기름이다. 그들은 공법인지 사법인지 헷갈리는 영역이 생기면 분류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실이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둘 사이를 더 확실히 나누려고 하며, 법률이나 판례, 이론 등 모든 면에서 공사 이분법을 관철하려고 한다. 분류가 안 되면, 분류법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사법 구별론은 대륙법 전통 안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구별이 로마 시대 고전주의 법학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로마법대전>에 처음 등장하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최소한 주석학파와 후기주석학파의 저술에는 이 구별법이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세 보통법 시대 내내 공법과 사법이 구별되었고, 19세기 법전 편찬과 사법개혁의 틀 속에서도 이 구별은 지속되었다. 같은 세기 개념법학자들이 나와서 법학전체의 체계를 다시 세울 때도 공법과 사법은 준별되는 것이었고, 학자들의 저술에서 거듭 강조되면서 이 구별은 아주 기본적이고, 필요하며, 명확한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공사법 구별론은 그 안에 특정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17세기와 18세기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고, 19세기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에서 제정된 민법전의기본 이념을 대표한다.
원래 민법전은 사법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으로서 개인의 소유권과 계약자유를 그 내용으로 한다. 당시 합리주의와 세속적 자연법에 따라 국가는 개인의 불가침의 소유권과 자유로운 계약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세를 얻었다. 국가가 할 일은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이며, 이를 명시해놓은 민법은 헌법과 다름없는 기본권의 보루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라 법학자들도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19세기 자유주의가 그대로 녹아든 법학이 나왔다. 당시 독일 판덱텐주의자들은 법학 분야에서 19세기적인 생각을 가장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법 규범 속에 구현하는 데 공헌했다. 그 기술이 얼마나 교묘했는지 독일이 만든 법전을 20세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가 큰 반감 없이 받아들일 정도였다. 독일식 사고란 법의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사상은 민법이 아닌 다른 법에도 적지 않게 녹아 들어가 있다.
한편 사법의 세계와 달리 공법의 세계는 전혀 다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권리 보호와 공익 실현이다. 보통공법이라고 하면 국가의 조직 원리를 담은 헌법과 국가 운영 및 정부와 국민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행정법을 말한다. 사법에서는 모든 당사자가 평등하고 국가는 그들 사이에 심판 역할을 하는 데 반해, 공법에서는 국가가 공익의 대표자로 당사자가 되고 개인보다 우월한 지위에 선다. 이처럼 서로 다른 원리가 지배하는 법 체계인 공법과 사법이 합쳐져 하나의 국법질서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의 역할, 경제상황, 사회제도 등에서 많은변화가 있었고 이론과 실제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속속늘어가고 있다. 공사법 구별 자체가 위기에 처했고, 이를 둘러싼 논의가 유럽 법조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 달라진 환경을 정리하면다음과 같다.
첫째, 대륙법계 법률가들이 영미법을 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다. 19세기 고리타분한 대륙법 학자들은 영미법을 대륙법에 비해 조잡하고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법 제도 간 교류, 특히 대륙법과 영미법의 비교연구를 통해 대륙법이 영미법에서 말하는 보통법(common law)보다 더 정교하고 효율적이고 공정하다고 할순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영미에서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라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 않고도안정적이고 선진적인 법 제도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사법 구별론을 버려야 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지만, 공사법 구별이라는 것이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진리라는 생각에서 대륙법계 법률가들이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것만큼은 틀림없다.
둘째,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소련의 소비에트,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독재정권에서 보듯이,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라는 거짓 진리를 방패막이 삼아 대륙법계 국가에서 국가권력이 남용된 역사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 빠른 법률가들은 법을 공법과 사법으로 나누는 것의 바탕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깔려있지 않은지 의심을 품었다.
레닌이 "사법은 부르주아를 위한 법이다"라고 말한 것과 혁명가들이 법은 결국 공법이다"라고 지적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법우월주의는 부르주아를 위한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개념이고, 반대로 혁명가들이 주장하는 공법우월주의는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는 전체주의를 구현하기위한 시도였다.
즉, 어느 쪽을 강조하는 철저한 공사법 구별론은 그 배경에 모종의 의도가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면서 국가가 사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식의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셋째, 정부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이제는 국가가 사회· 경제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다. 19세기 경찰국가는 20세기 복지국가로 바뀌었고,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개인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던 영역도 점차 축소되었다. 기본적인 사법이론이 후퇴한 자리에 공법적 요소가 가미되고 있는 것이다. 사법의 ‘공법화‘ 또는 ‘사회법화‘는 이런 경향을 나타낸다. 1917년 멕시코 헌법과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학자들 말로 소유권을 포함한 사적인 권리의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직도 전통적인 공사법 구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만 변화가 있을 뿐 법적인 면에서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민간이 누리는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다고우기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 전력 생산, 유통, 통신, 운송, 언론 같은 영역의 거대 기업들이 사인인지 아니면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공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국가는 이들을 규제하고 통제한다. 순수한 사법 영역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넷째, 국가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가담하고 있다. 상업과 제조업에 국가의 이름으로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공기업을 만들거나 사기업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참여하기도 한다. 국가가 예전처럼 행정법을 통해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이나 국가기관이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국가 정책이 추진되고실현되기 때문에 사법이 오히려 정책 수단으로 선호된다.
이런 현상에 주목해서 일부 행정법 학자들은 "사법이 행정법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거나 "사법과 행정법의 영역이 모호해졌다"고 이야기한다. 행정법과 헌법의 성격 자체가 바뀌기도 했다. 원래 행정법은 국가의 특권과 그 제한에 관한 법이고, 헌법은 국가의 구성에 관한 법이다. 그런데 헌법법원이 나오고 인권법원이 다양한 판결을 내놓으면서 국가와 행정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주의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헌법과 행정법을 지배하게 되었다. 즉, 공법이 예전 우리가 알던 그 단호한 어조의 공법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다섯째, 20세기에 우리가 목격한 또 다른 현상 중 하나는 법인의 역할과 중요성이 비약적으로 커진 점이다. 예전에는 법에 개인과 국가만 있었고, 개인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법인, 기업, 노동조합, 협동조합, 종교 단체, 컨소시엄 등 개인과 국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는 정당과 노동조합, 대기업을 떠올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민간 ‘정부‘ 급이다.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면 그냥 정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을 사법과 공법으로 나누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 수 있다.
여섯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헌법을 보면 소유권과 법률행위자유의 원칙 등 사법에 있어야 할 내용이 대거 들어가 있다. 개인의권리 보호를 위해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사법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가장 공법적인 헌법에 들어간 것이다. 이걸 학자들은 사법의 ‘헌법화‘ 또는 공법화‘라고 부른다. 과거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사법과 공법을 나누자고 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이제는 설득력이 약해진 또 하나의 이유다.
일곱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따로 헌법법원을 만들기도했지만 어떤 국가에서는 일반법원이 위헌법률심사를 한다. 입법에사법이 관여할 수 없다는 삼권분립의 원칙과 공사법는 구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 내용상으로도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공법의 핵심 내용은 원래 국가가 우월하다는 점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법치주의의 관념이 널리 퍼지면서 공법의 영역에서도국가가 우위에 있지 않고, 국가라고 해서 특별한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국가는 그저 비중이 큰 당사자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본질적으로 대등하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이로 인해서 ‘공법의 사법화‘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아홉째, 학자 세계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19세기에는 판덱텐학파 일색이었으나 20세기에 신진세력이 가세했다. 종래의 개념법학이 아직 유효한 건 맞지만, 거기에만 매몰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법 이외의 다른 영역으로 법학자들의 관심이 확대되었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현실 세계이고, 따라서 현실 세계가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와 법과 현실의 관계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념법학의 딱딱한 논리에 답답해하는사람도 많아졌다.
법학의 관심사가 넓어지고, 유연한 사고가 법학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낡은 공사법 구별론의 입지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대륙법 국가 내에서 공법과 사법 어느 쪽에 속한다고단정할 수 없는 분야가 늘어났다. 가령 노동법이나 농업법은 공사구별법에 딱 들어맞지 않는 분야다. 하지만 이런 법에도 교수가 있어야 하고, 교육과정, 연구소, 학회지가 있어야 한다. 공법과 사법의 구별만 강조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어떤 학자는 이제 공법과 사법이라는 구별법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둘 사이의 애매한 영역이 점점 더 늘어나서 유연한 법률가일수록 공법과 사법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법과사법은 여전히 구별되고 있고, 이런 생각이 여전히 다수의 견해다. 두 법은 내용도 다르고, 대부분의 법률 문제는 둘 중 하나로 바로분류되어 해결되곤 한다. 법 관계자들의 관심마저도 결국은 공법적인 관심, 사법적인 관심으로 나뉜다.
게다가 구별을 통해서 얻는 이득도 있다. 가르치거나 연구하거나 토론할 때 공법과 사법을 나누는 것을 기초로 법을 더 세분화해 분업의 원리를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지나치다는 데 있다.
대륙법 세계에서 민법 교수는 공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부동산 소유권은 열심히 가르치지만, 부동산에 대한 과세, 부동산을 둘러싼도시 계획과 수용 문제, 소유권의 헌법적 보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공법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법과 사법만 나누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서 다시 실체법과 절차법을 나눈다. 대륙법에서는 이런 구별이 통할지 몰라도 영미법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색한 일이다.
어떤 법률 문제를 쫓아가다가 경계를 넘는다고 멈추어 서는 것은 미국 변호사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대륙법에서는 그것 자체가 법이다. 세상에 처음부터 공법 영역과 사법 영역이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더 웃긴것은 새로 생긴 분야가 있으면 그것이 어느 쪽인지 토론한다는 점이다. 각 분야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을 텐데 그런 것은 무시하고 공법 쪽인지 사법 쪽인지 편을 가른다.
대륙법 법률가들은 공법과 사법, 혼합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는것이 철칙인 줄 안다. 공법을 헌법과 행정법, 형법으로 나누고, 형법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까지 공법에 넣는다. 민사소송법을 공법에 넣을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의 중이지만, 공법에 넣자는 쪽이 다수다.
사법은 민법과 상법이다. 이 가운데 민법의 비중이 훨씬 큰데, 이는 당연히 로마법의 영향이다. 교회법이 관할권의 대부분을 빼앗긴 후로 교회법도 민법으로 흡수되었다. 그 바람에 민법은 내용이 더 풍부해졌고, 교회는 법과 관련해서 발언권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요즘은 상법까지 전부 민법에 편입될 기세다.
상법은 앞에서 본 것처럼, 상인이 자신의 사건 처리를 목적으로 창안한 법이다. 나름의 법과 관습이 있고, 법원과 판사, 판결과 집행절차, 관할이 있다. 민법,형법, 교회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분야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점점 사라졌고, 민족국가의 태동과 함께국법질서 안으로 편입되었다. 상사법원도 민사소송법 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상법만의 독자적 관할권은 옅어졌다.
상사법원이 따로 없는 국가나 이름만 존재하는 국가도 있다. 판사 중에 상인을한 명 앉힌 것 외에 다른 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국가도 있다. 상소심에서는 상인을 빼서 일반법원과 전혀 차이가 없다. 민사와 상사를 거의 구별 없이 보는 것이다. 상사법원이 별개의 법원이라기보다 민사법원의 한 분과처럼 된 셈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아직 상사법원이 따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곳마저도 예전과는 상사법원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상법전을 폐기하고 상사에 관한 내용을 민법전에 규정한다.
이처럼 대륙법 세계에서 상법이라는 분야는 설 자리를 거의 잃었다. 대학에 상법 전공이 따로 있고 도서관에 상법 서가가 따로 있지만, 보통은 대학에서 민법을 연구하는 사람과 공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상법은 민법에서 연구된 것을 가져다 쓴다.
한편 사법 내에서 ‘회사법‘이라고 하는 민법과 상법은 물론이고 세법과노동법까지도 아우르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아무튼 상법이 사실상 민법에 편입되면서 사법과 민법이 동의어가되어가고 있다.
상법이 대부분 민법으로 편입되면서 교회법이 민법에 편입될 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민법의 구성과 내용이 풍부해진것이다. 보통 민법에서 사인 간 거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데 반해 상인 간의 거래는 활발할 뿐만 아니라 정형화되어 있다. 이것은수백 년 동안 민법과 상법을 나누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미가 없어졌다. 현대산업사회에서는 민법에서도 상법처럼 활발한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법이 ‘상법화‘되기도 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법에 속해 있던 두 분야, 민법과 상법에서 대조되는 움직임이 있었던 셈이다. 민법은 상법을 흡수하면서 내용이 풍부해졌고, 상법은 민법에 영역을 빼앗기면서 그 독자적인 의미를많이 잃어버렸다. 이렇게 민법과 상법은 통합의 길을 거쳤고, 통합된 사법은 민법과 같다는 결론으로 향해 가고 있다.
이처럼 종래의 분류법은 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사법은 공법화되고, 공법은 사법화되고, 절차가 헌법에 규정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륙법은 과거에 묶여 있다. 대학에는여전히 사법학과와 공법학과가 있고, 헌법 교수, 행정법 교수, 형법교수, 상법 교수가 있다. 정책 실현에서의 법의 역할, 사회·경제적문제 해결을 위한 법의 역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세상에서, 사실 공사법 구별론은 과거의 잔재다. 지금 누가 노동법과 재정법이 사법인지를 고민하겠는가. 통합의 시대가 왔고, 법도 경제학과 사회학, 인류학과 나란히 연구하는 세상이다. 법을 안쪽에서 나누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금 되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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