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사례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법치국가의 원리

예외사례에 관해 부여된 권한을 명문화하는 일
(상호통제를 통해서든 시간적 제약을 통해서든, 
법치국가가 계엄상태를 규제할 때 하는 것처럼 
특별 권한의 나열을 통해서든)이 성공했을 경우, 
주권 문제는 심각하게 뒷걸음질치게 되지만 그렇다고 
제거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일상생활과 현재 생업 문제에 관심이 있는 
법률가는 주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그는 정상사례만을 알 뿐 다른 
모든 것은 그에게 ‘귀찮은 일‘에 다름 아니다. 
그는 극한사례와 마주하여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별 권한, 경찰의 모든 긴급조치나 긴급명령 
각각이 반드시 예외상태에 대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외상태는 원칙적으로 제한 없는 권한, 즉 모든 
현행 질서를 효력정지시키는 권한을 포함한다.



이 상태가 되면 법은 후퇴하는 반면 국가는 계속 존립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예외상태란 그럼에도 무정부상태나 
혼란상태와 다른 무엇이기 때문에, 법질서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법학적 의미에서 하나의질서가 존속한다. 
여기서는 법규범의 유효성보다 국가의 실존이 이론의
여지없이 우월하다. 결정은 모든 규범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고유한 의미에서 절대화된다. 

예외사례에서 국가는 이른바 자기보존의 권리에 따라 
법을 효력정지시키는 것이다. ‘법질서‘라는 개념의 
두 요소는 서로 대립하게 되며, 각각의 개념적 독립성을 
표명한다. 따라서 정상사례에서 결정의 독립적 계기가 
최대한 억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외사례에서는 
규범이 무화된다. 그럼에도 규범과 결정이라는 두 요소가 
법학의 틀 내에 머물러 있기에 예외사례는 여전히 법학적 
인식의 테두리안에 남아 있다.

만약 예외란 법학적으로는 의미가 없기에 ‘사회학‘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사회학과 법학 사이의 
형식적 구분을 거칠게 적용한것이리라. 

예외는 어떤 상위 개념에 귀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 파악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동시에 
법학에 고유한 형식요소, 즉결단을 완전히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예외사례가 절대적 형상으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조문이 유효한 상황이 창출되어야만 한다. 
모든 일반적 규범은 생활환경이 정상적인 형태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 일반적 규범이 복잡한 현실에 
적용되려면 이 형태가 필요하며, 그 규범은 이 형태를 
스스로의 규제 아래에 둔다.

규범은 균질적인 미디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립된 정상성은 법률가들이 무시할수 있는 
단순한 피상적 전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규범의
 내재적 유효성을 구성한다. 

혼란상태에 적용될 수 있는 규범 따위는 없다. 
법질서가 유의미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질서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하나의 정상적 상황이 
창출되어야만 하며, 주권자란 바로 이 정상적 상태가 
현실을실제로 지배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자이다. 

따라서 모든 법은 ‘상황에 따른 법‘이다. 주권자는 상황을 
하나의 전체로서 완전하게 만들어 내고 보장한다. 
그는 이 최종적 결정의 독점자이다. 

여기에 국가주권의 본질이 있는데, 그것은 강제나 지배의 
독점이 아니라 결정의독점으로 정확히 법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여기에서 결정이라는 말은 보다 널리 발전될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예외사례는국가적 
권위의 본질을 최대한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결정은 법규범으로부터 분리되고, (역설적으로 
정식화하자면)국가의 권위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예외상태는 로크(John Locke)의 법치국가적 원리와 
합리주의적 18세기와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17세기 자연법에서 뚜렷한 의미를 가졌던 예외사례에 대한 생생한 의식은 비교적 안정적인 질서가지배했던 18세기 
들어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칸트(Immanuel Kant)에게 긴급권은 결코 법이 아니다. 
오늘날의 국가론은 긴급상황에 대한 합리주의적 무지와 
본질적으로 반법률적인 이념으로부터 비롯된 긴급상황에 
대한 관심이라는 두 가지의 경향이 동시에 상호대립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켈젠과 같은 신칸트학과 
법학자들이 예외상태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질서 자체가 예외사례를 예상하는 
것이며 ‘스스로 효력정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틀림없이 
합리주의자들도 흥미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법학적 
합리주의 입장에 서면 규범이나 질서나 참조점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립시키는‘ 그림이 손쉽게 그려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태에 직면하여 체계적통일성과 질서가 어떻게 스스로를 효력정지시키는가 하는 물음은 구성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그럼에도 이 물음은 예외상태가 법률적 
혼란상태나 어떤 임의의 무정부상태와 구분되는 한에서 
법학적인 문제이다. 예외상태를 가능한 한 세세하게 
규제하려는 법치국가적 경향은 법이 스스로를 
효력정지시키는 사례를 정확하게 법률에 기입하려는 
시도를 의미할뿐이다. 


그렇다면 법은 이 힘을 어디서 길어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규범이 어떻게 해도 법률구성적으로는 
파악 불가능한 구체적 예외사례에 직면했을 때, 그래도 
그 규범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다양한 학문적 관심이 던지는 규칙(규범)이나 예외냐라는 
질문의 일반적 의미


예외는 무엇도 증명하지 않으며 오로지 정상상태만이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일관적 
합리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예외는 합리주의적 틀의 
통일성과 질서를 흐트러뜨린다.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국가론에서도 자주 비슷한 주장과 만난다. 

안슈츠(Gerhard Anschütz)는 예산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코 법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여기서는 법률, 즉 헌법조문에 결함이 있다기보다는 법에 
결함이 있는 것이며, 이 결함은 법학적 개념조작 따위로 
해결될 수 없다. 그저 국법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삶에 대한 철학은 여기에 이르러 예외사례와 
극한사례를 앞에 두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되며 
이 사례들에 최대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이 철학에는 규칙보다도 예외가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는 역설을 선호하는 낭만주의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진지한 통찰에서 비롯된 인식이며, 이 통찰은 언제나 
밋밋하게 반복을 일삼는 텅 빈 일반화보다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예외는 정상사례보다 흥미롭다. 
정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지만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예외가 규칙을 보증할 뿐 아니라, 
규칙은 애당초 오로지 예외에 의해서만 존속한다.

예외 속에서 실제 삶의 힘은 되풀이됨으로써 굳어 버린 
기계장치의 껍데기를 깨부술 수 있다. 자신의 생명력 
넘치는 강렬함이 19세기에 신학적 성찰을 가능케 했음을 
증명한바 있는 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외는 일반적인 것을 설명하고, 자기 자신도 설명한다. 
그리고 만약 일반적인 것을 올바르게 연구하고자 한다면, 
오로지 진정한 예외에 눈을 돌리기만 하면된다. 모든 것이 
일반적인 것보다는 예외 속에서 백일하에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것을 놓고 끝없이 떠들어 대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예외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일반적인것 또한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열정 없이 그저 겉치레로 일반적인 것을 사유한다면 
결코 이 어려움을 감지할 수 없을 것이다. 예외는 이에 
반해 일반적인 것을 뜨거운 열정으로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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