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생성문법에서 인지과학,현실정치의 문제까지
촘스키 사상을 압축,정리한 입문서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의 범위와 한계‘라는 표현이 있다. 촘스키는 이 말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중요한 부분을 비틀어서 우리의 인지 능력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우리의인지 능력이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그 범위가 훨씬 넓고 깊은 부분적인 이유는 우리의 인지 능력 또한 한계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계는 우리의 본질이나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가속한 생물 유형, 특히 우리의 인지 능력이 생물학적 근거를 갖는다는사실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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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와 컴퓨터 공학자가 만나서 언어의
발생과 발달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선택에 의한 다윈의 진화가 매우 점진적으로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이 의심받지 않는 채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윈은 비글호 The Beagle 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자신이 살펴보았던 찰스 라이엘Charles Livell의 영향력 있는 책 지질학 원리 Principles of Geategya (Lyell,
1980-1833) 세 권의 내용을 완전히 수용했다. 이 책은 ‘동일과정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예컨대 산이 오랜 세월 동안 천천히 부식되면서 모래로 변하도록 하는 힘을 말한다. 다윈은 지질학 원리를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많은 언어이론가의 원천도 마찬가지다. 다윈, 그리고 라이엘의 이론이 진화에 들어서면서 두 사람 모두 강력한 지속성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안구 그리고 모든 다른 특성 형질과마찬가지로 언어 또한 "다수의 연속적인, 경미한 수준의 수정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Darwin,
1959 189). 그렇지만 이런 진화가 과연 확실하게 발생하는 것인가? 우선
‘연속적인‘을 살펴보자. 한 번 읽어서는, ‘연속적인‘이라는 단어가 진화적사건들이 시간상 한 사건씩 순차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생각은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사안을 살펴보기 위해 이 제약 조건을 잠정적으로 미루어둔다.
이제는 ‘다수의 그리고 ‘경미한 수준‘이라는 사안이 남아 있다. 종의기원』의 출판을 이루어낸 ‘다윈의 지킴이 (사실 다윈의 불독이라고 제시됨)헉슬리는 두 사항 모두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다윈에게 보낸1853년 11월 23일 자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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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의 기초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해습니다.


논증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대개 어떤 진술이 전제로서의 기능이나 결론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몇몇 낱말이나 구절에 의해서 알려진다. 

"그러므로 이런 까닭에따라서 "그러니까" "그래서." ‘당연히‘ 와 같은 말은 바로 뒤에 오는 진술이 결론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런 경우에는 그 결론을끌어 낸 몇 개의 전제가 가까운 곳에 진술되어 있게 마련이다. 

‘이어야 한다"와 같이 필연성을 시사하는 특정한 형태의 몇몇 동사는 이런 동사를 포함하고 있는 진술이 바로 결론이라는 걸 알려 준다. 이런 동사는 그 결론이 이미 개진된 전제로부터 필연적으로(즉 연역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려 준다. 
또한 몇몇 다른 낱말은어떤 진술이 전제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를테면 "왜냐하면" ‘이므로" "때문에"와 같은 낱말이 그런 낱말이다. 이런 낱말이 처음이나끝에 나오는 진술은 논증의 전제다. 그래서 그 전제에 근거를 둔결론이 그 근처에서 발견되게 마련이다.

논증의 부분을 가리키는 낱말은 논증이 제시될 때, 그리고 오직그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낱말을 사용했는 데도 전혀 논증이 성립하지 못한다면 이는 낱말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다. 한 예를들어 어떤 진술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면, 독자가 이진술이 이미 진술된 어떤 내용으로부터 끌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은 당연하다. 논증을 제시할 때에는 논증이 제시된다는 사실과 어느 진술이 전제로 사용되고 있고, 어느 진술이 결론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논증을 분석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진술이 전제이고, 어떤 진술이 결론인가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일은 논증을 분석하려는 사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과학적 일반 진술과 그것을 입증하는 관찰 증거 사이에는 
귀납 논증이 성립한다. 예컨대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의 제 1법칙에 따르면 화성의 궤도는 타원이다. 
이 법칙을 입증하는 관찰 증거는 화성의 위치에 대한 
수많은 단편적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법칙 자체는 화성이 관찰되고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계 없이 화성의 모든 위치에 대해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법칙은 화성의 
미래의 운동이 타원을이룬다는 것, 화성의 운동은 사람이 
관찰하기 전에도 타원이고, 하늘에 구름이 끼어 관찰할 수 
없을 때도 타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칙(결론)은 화성의 관찰된 위치를기술하는 
일련의 진술(전제)이 지닌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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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의 핵심을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인식의 획득은 종합 판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한 개밤이 그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또 다른 개념과 결합되고,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이제까지 그 개념에 속하지 않던 내용이그 개념에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분석 판단에서는 사고내용이 판단의 주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논리적 지성은 여기서 한 학문의 언표들과 개념들의 구성 성립에 주목한다. 그래서 분석 판단의 원리는 모순을 내지 동일률이다. 이 원리는 종합 판단들의 영역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순적인 개념들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볼 때 상호 간에 아무런 관계가없고, 상호 간에 아무런 연역 관계도 없는 그러한 개념들을 결합하는 일이 문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에서도 인식의 진보, 다시 말해 종합 판단의 산출이 주요 문제이므로, 전체 관심이 이런 종합 판단에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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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든 것
요나스 피스터 지음, 손영식 외 옮김 / 북코리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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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진국입니다.

객관 세계의 비존재우리가 감각하는 것처럼 세계가 그렇게 보이는지 확신할 수 없다해도 우리의 지각이 실재하는 
대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대상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가? 실재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존재를 학문의 기초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많은 이미지들을 보게 된다. 이것들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들을 지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이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가 같다고 의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정할 기준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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