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라는 족쇄가 풀리고 내 발로 어디라도 갈 자유가 주어졌다.'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 더 있다가는, 어두웠던 지난 세월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저자는 퇴사를 하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라도 갈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정작 어느 곳도 갈 수가 없었다.
출근이라는 족쇄. 그리고 자유에 대한 불안감.
나는 아직까지 그 족쇄에 묶여있다. 다른 이가 아닌 내가 묶은 족쇄에 묶여있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따라오는 그 불안감이 더 하기에, 아직 그 족쇄에 자발적으로 묶여져 있다.
그러기에 여행이 그리운 걸까?
그 족쇄에서, 그 불안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에 그리운 걸까?
하지만 그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짧은 여행마저도 쉽지않다.
'무작정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달려가는 한국의 가장에게 자기 삶에 스스로 질문할 기회란 없다.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왔고 나도 가족을 책임지고 사는 것이 숙명이라고 믿었다.'
이런 저자의 생각처럼 나 또한 그 숙명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데 지나치게 엄격했다.'
저자가 파리에 도착한 후 숙소를 떠나 개선문을 거쳐 루브르 박물관에 다다르기 전, 뛸르히가든의 플라타너스 아래의 허스룸한 의자에 앉아 지나온 파리의 모습을 되집어 본다. 저자는 자신이 40년 이상 파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로망이 지금의 현실로 인해 실망할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다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파리의 모습이 진짜 파리의 모습인데, 그 모습을 자신의 관점으로 만 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고 있었던 자신을 알게된다. 그로인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여행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보이는 대로 보라고 가르친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전하는 것 같다.
여행의 의미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제각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행자가 남긴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
아마 여행자가 남긴 마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서두에 남겼듯이 우리 모두는 마음의 족쇄를 하나쯤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족쇄로 인해 평소에는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기에 여행을 떠나지만, 때론 그 여행조차 쉽지 않기에 다른 이가 남긴 여행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