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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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후쿠가 뭔지 몰랐다. 제목의 의미를 알고나서는 알고싶지 않아졌다. 늘 우리의 가장 고통스러운 과거를 이야기하는 김숨작가님이 아니였다면, 아마 나는 외면했을 것이다. 이 책을.하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그분들의 말씀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나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라 해야하나. 책의 말미의 추천사를 쓰신 박소란 시인에 따르면 책의 첫 문장을 읽으며 이 것은 시라 하셨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런가?
보통의 소설은 기승전결로 이야기가 흐른다. 하지만 이 책 간단후쿠는 이야기 라기보다 열두살. 아니 엄마와 헤어지고 다른 것을 세느라 자신의 나이 세는 것을 잃어버린 한 여자아이의 나래이션이다.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되어, 간단후쿠에 누워, 나와 나의 몸을 분리시켜버린.
 죽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무엇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요코, 나나코, 미치코 내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하루를 그저 버티는 아이의 말이다. 진짜 요코도, 나나코도, 마치코도 심지어 내 이름도 잊어버린.
스즈랑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곳을 집구석이라 말하는.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라, 한 아이의 끝없는 말을 듣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그저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이토록 황폐할 수 있을까.읽는 내내 고통스러웠지만,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고,어디선가는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일 수 있기에 그러했다.

 “위문은 군인을 위로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리고 돌림노래.” p.218

바늘 공장에 그릇 공장에 총알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해 집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팔려온 아이가 주소도 모른 채 글자도 모른채 엄마에게 쓰고 싶은 편지의 마지막 한 줄이 그저 "답장은 하지 마세요" 라는 이 책의 말미에서 나는 앙 다물었던 입에서 새어나오는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내가 이 책을 숨을 참으며 읽고있음을 알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을 자세한 묘사도,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이야기의 배경을 다 제외하고도 가슴을 답답하여 내 가슴을 치게 만드는 역사라니.

이 이야기를 김숨 작가님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10년동안 듣고서야 글로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10년동안..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 아..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들에게 가해진 이 사실을 90년 100년동안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셨겠구나.. 그리고도 어떤 보상보다도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를 기다리시는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가끔은 펼쳐보게 되겠지....
그리고 또 매번 숨을 참아가며 읽게 되겠지.....

추천.
진짜 추천.

“향수병은, ’망상병‘과 함께 오곤한다. 부모님은 벌써 날 잊었을 거라는,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망상병이 더해지면 향수병은 약도 없는 고질병이 된다. 고질병에 걸린 나는 집에 돌아와 있는 굼을 꾼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 애를 태우다 욺며 깨어난다.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스즈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트럭을 타고도, 기차를 타고도 돌아갈 수 없다. 걸어서도.”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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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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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기에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고구마 백만개를 먹는 듯. 마치 카프카의 소송이 떠오르는 전개였으나, 해학으로 넘어가 슬픔으로 끝나는 전개랄까. 
책 한권에서 감정이 온갖 감정이 오고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장은 그저 은행에서 존재감 없는 과장 일 뿐이다. 본부장의 눈밖에 나 전국의 담 보물건을 보러다니는 중, 본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요직에 넣어주겠다는. 별다른 기쁨보다는 왜?라는 의문이 들던 어느날, 뉴스에서 서해안에 떠내려온 말뚝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차에 놓여진 메모 한장을 들여다 보다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트렁크에 갖힌 채 만 하루를 끌려 다닌다. 트렁크를 열고 나왔을 때는 납치범들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스스로 납치 신고했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CCTV도 없고, 차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고, 자신이 트렁크에 납치된 동안 들었던 뉴스는 어디에도 나온 적이 없다. 마치 나 조차도 나의 납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전개라니.

하지만 다시 돌아온 곳에서 장은 이전과는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행동한다. 이전의 장과 다르게. 주변인들이 왜저러지.. 싶을 정도.
그러던 중 대한민국 곳곳에서 등장하던 말뚝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기는 고조된다. 바다 어디에서 발견되던 말뚝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 건물 안 등등 사방 곳곳에서 등장한다. 결국 알 수 없는 현상에 국가는 감추기 급급하고, 기여코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포고령.
사회 곳곳에 등장하는 군인들. 총알을 장전하고 그들은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시작한다. 군인이 통제하는 세상.
그리고 장의 집에도 말뚝이 나타났다.
언젠가 그의 집을 찾았던 경찰이 말한 최초의 말뚝임을 장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도. 다만 이름은 끝내 기억하지 못한채.

이 책은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도하고,
어느 현장에서 이름없이 죽어가야만 했던 노동자를 떠올리게도 하고,
세월호를, 이태원 참사를 생각나게 한다.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같은 상황이 이 책속에서 펼쳐진 느낌.
우리가 수많은 사회적 재난을 어떻게 잊었는지, 그리고 국가는 그 사실을 어떻게 감추기에 급급했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장 앞에 나섰던 말뚝은 어쩌면 내가 아니였을 때 0%의 상황이지만, 나일 때는 100%일 수 밖에 없는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장의 양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말뚝은 우리가 외면했던 것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양심이 표상되어 보인 것 아니였을까. 그래서 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내게는 다르게 보인 말뚝들.
그리고 그 앞에 섰을 때 표정없는 그 말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슬픔은 우리가 가슴 저편에 감춰뒀던 양심이라는 이름의 죄책감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그리서 책의 서두에 전개된 장의 납치 역시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대해 말그대로 타자일 때 0이였던 것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100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듯 했다. 그러니 사회적 재난에 눈감지 말라는. 언제까지나 나에게 0일 수는 없다고 말뚝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뭘까.
고구마 100개를 먹는듯한 답답함으로 읽었던 이 이야기는 어느새 말뚝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식의 사이렌이 묵직한 슬픔으로 들린다.
사회적 참사에 함께하는 연대, 애도가 있어야, 그 다음을 나아갈 수 있음을, 같은 아픔을 겪는 이가 더 이상은 없게 해야 함을 말뚝들은 말하고 있다.
외면하지 말자. 외면하는 순간 나의 집 한가운데에 말뚝이 내 가슴 한가운데 말뚝이 박힐 수 있음을.

진짜 추천!


"목소리를 들었으니 서로 안부는 확인한 셈이었다. 다시 또 해주의 전화를 받는 날이 있다면 좀 더 밝게 통화할 수 있도록 농담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십 초 정도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을 만큼 재밌는 농담이 필요했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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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턱 멍키 - 탐닉의 대가
제임스 해밀턴-패터슨 지음, 박명수 옮김 / 로이트리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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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제목보다 부제가 더 눈에 들었던 책. 물병 안의 바나나를 넣어놓고, 그 바나나를 놓치 못하는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
탐닉의 대가로 우리는 어떤 바나나를 잡고 있는 것일까. 진짜로?내 목숨을 담보로?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댓가로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전반. 거의 다였다.
결국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우리가 앞으로 치뤄야 할 우리 생명의 비용인 것이다.

손쉽게 구입(이것 부터 사실 문제...동물을 구입하다니!) 할 수 있는 애완동물.
스포츠, 자동차, 패션, 휴가, 뷰티, 운송, 휴대폰.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아..이거 하나 놓으면 되겠지 싶었는데, 우리 생활의 전반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전부가 우리가 놓지 못하는 바나나였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중 하나에서 놀라웠던 애완동물.
언제부터인가 반려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곁에 존재하는 반려동물을 위한 많은 행위 역시 수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그들을 위한 고급간식, 옷, 장난감 등등 예전에는 생각치 않았던 많은 부분의 산업을 생각해보면 아.. 그렇겠구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고, 잘 키우는 분들을 응원하지만, 반려동물을 위해 하는 행위 역시 이 장의 다른 챕터인 패션등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분명 우리가 필수가 아닌 것들 소위 사치를 위해 소모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사실 이부분은 내가 관심이 없어서 (운동 싫어하는 한사람..) 이부분이 왜? 싶었는데, 올림픽, 월드컵 등의 행사를 생각해보라. 그 행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비행기나 배, 자동차를 이용해 움직이고, 그 행사를 위해 준비된 온갖것들이 다 탄소발자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것도 오로지 한번의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소모품일 뿐인데..

그리고 요즘 조금씩 재조명 되는 SPA 브랜드의 값싼 옷들. 저가 비용으로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버려지는 옷. 대다수가 합성수지 이고, 그래서 썩지도 않고, 태우기도 힘든(어마어마한 오염물질) 말 그대로 처치불가의 쓰레기들은 택조차 제거되지 못한 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무덤처럼 쌓여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SNS, 홈쇼핑등으로 그것들을 사들이고  버리는 행위를 계속 한다. 그 비용 역시 내 목숨 또는 나의 다음세대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오염행위인 것.

휴대폰. 말할 것 있을까. 일개 개인의 손바닥 만한 휴대폰 하나쯤이야 싶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들. 최대한 가볍고 얇게 만들기 위해 경량화 초소형화된 부품의 재활용은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지는 요즘 그 부품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희귀금속들의 추출과정에서 불거지는 산림파괴, 강제노동, 독성 슬러리등은 지구와 인간 자체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럼에도 전자제품의 사용 주기는 계속해서 짧아지고, 일부 기간이 지난 가전제품의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등의 기업들의 불법 행위로 휴대폰 교체주기는 점점 짧아지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휴대폰을 통해 일어나는 많은 ACTION을 해결하기위해 IT 유니콘 기업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여 재생산 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에너지,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센터, 그리고 그 센터의 열을 식히기 위해 사용되는 수많은 자원들을 생각해보면, 손바닥만한 휴대폰이 뭘.. 싶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탐닉의 대가로 우리가 치뤄야 할 비용이고, 원숭이가 놓치 못하는 바나나이다.
바나나를 놓치 못하는 원숭이가 멍청하다고 웃을일이 아닌것이다.
그 바나나는 우리에게 옷이고, 휴대폰이고, 자동차이고, 컴퓨터이다.
그럼 당신은 그것을 놓을 수 있는가를 저자는 묻고 있는것. 
희화화의 대상이 원숭이가 아니라 우리인 것.

이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점은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다 비용으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각 챕터에서 그 비용을 계산하고 있다. 그것이 정말 맞는 금액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쓰고 입고 먹고 행동하는 많은 것들이 그런 소요되는 비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그렇다면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행위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며 딱 이것 하나는 하지 말아야지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각 부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옷을 신중하게 골라 조금은 더 오래 입고,
휴대폰은 주기를 두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용이 불가할 때까지 사용해보고자 노력하고,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길은 자동차보다 도보를 이용하고,
조금 더운 정도는 에어컨 보다는 선풍기를 이용하거나 조금은 더 참아보는 등의 행동.

저자 역시 바나나를 손에서 딱 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당신이 생활하는 모든 것에서 남겨지는 탄소발자국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아닌가.ㅠㅠ)

재밌는 책이다.
보통 이런 책을 읽을 때 죄책감이 들어 불편함이 들기도하는데(불편함 자체가 나쁜거지,,ㅠ), 이 책은 그런 느낌 없이 할 수 있는걸 찾아봐!라고 냉정하지만 경쾌하게 말하는 느낌이랄까.

굿.

"하루에 최대 2분씩 일 년 동안 휴대폰을 사용하면 일 년에 1.25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한 해에 전 세계의 휴대폰으로 인해 1억 2,500만 톤의 이산화 탄소가 배출될 것이다. 여러분이 하루에 한 시간씩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이라면, 연말까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런던에서 뉴욕까지 이코노미 클래스로 편도 비행하는 것과 맞먹는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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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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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죽음이란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것을 생각해볼 계기가 있었다. 다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것. 죽음에는 호상이 없다는 것. 타인이 보기엔 소위 호상이라는 말이 내게는 아니라는 것 정도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죽음이란. 죽음이 내게는 무얼까라는 것은 글쎄. 하루가 소중하다기보다 나는 영원히 살 것같은 마인드로 살고 있다보니..(아무 생각없이 산단 소리다.) 

궁금했다. 
죽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자들이 말한 죽음에 대한 글들을 통해 죽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철학자들의 언어이다 보니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이해한 바에 따르면 죽음이후의 삶을 말했던 이(결국 차원의 문제랄까, 한 세계를 접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무엇)과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이 계속해서 반복된 무엇을 말하는 삶. 그리고 죽음은 The End다 말했던 사르트르 같은 이. 보다 복잡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이른 결론이였지만, (단순한 나같은 이가 보기엔) 죽음을 이렇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길,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생각들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드먼드 후설의 장송 의례와 사르트르의 죽음의 생각이 와 닿았다. (사르트르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마지막을 맞이했지만..)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에포케(일시적 판단을 중지하고 체험을 통해 나타나는 자기 내면의 의식으로 상황을 살펴보는 p.124) 행위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수용할 시간을 갖는 우리의 장송 의식과 관계가 있는 것이댜. 유족으로써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 고인이 없는 세계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개념인 것이다.
후설의 말이 내게 와 닿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며, 사랑했던 그 이가 더 나와 함께하는 더 이상 이 공간에 함께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로소야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였는지도.


사르트르가 말하는 죽음은 비로소야 나의 죽음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막연히 했었구나를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죽음을 앞두고서 본인의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르트르처럼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죽음을 ‘끝‘이라 생각한다. 니체의 영원 회귀도, 키에르케고르처럼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단계 정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일 뿐. 야스퍼스도 유사한 생각을 했으나 죽음에 종교적 의미 부여가 있기에 글쎄. 나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작이 있으니 끝이 존재한다는 것 뿐. 니체의 영원 회귀와 같은 영생(?)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긴하지만, 사실 좀 어렵고, 이 책  한권으로 그런 의미까지 설명하자면 끝이 없겠지. 말한들 이해할까 싶기도 하고,ㅎㅎ
 그저 나의 짧은 이해에 따르면 결국 그 부분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연관을 갖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경험하지 못하는 무엇을 삶 속에서 부여되는 의미가 있어야, 인간의 마지막이 좀더 덜 비참하지 않을까..하는 그런거? 
 아니면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종교적 의미 부여는 결국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목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죽어가면서 나는 죽음을 겪지만, 결코 죽음 자체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P.166
라는 하이데거의 말이 새삼 콱 꽂힌다.
죽음을 말해야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통해 말하는 건 늘 삶이다. 어짜피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으니까.

진짜 난해한 주제다. 그래서 어려웠나.. 
그래도 흥미로웠다. 죽음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경험하지 못하기에 매력적이면서 두렵고, 늘 궁금하면서, 결론은 늘 삶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주제.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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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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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기록된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고 말하는 현재 이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은 막연히 역사 책이나 뉴스에서만 알고 있는 나에게 전쟁의 민낯을 설명하는 듯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책을 꽤나 읽어보았지만 이 책은 그와는 사뭇 달리 전쟁이라는 현실을 알게 했다.

조지 오웰이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 또는 혁명의 한가운데에 외국인으로 참전했던 그의 기록이 이 책 "카탈루니아 찬가"이다.  
왕정 국가였던 스페인이 공화정, 왕정, 그에 반대하는 노동자 세력의 반란 등등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스페인 내부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의 대결이 분명해지던 시기 오웰이 반파시스트로 본 전쟁에 뛰어든다. 파시스트 세력의 등장은 당시 발생했던 노동 혁명을 잠시 주춤하게 만들며, 반파시스트로 연합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내부는 각기 다른 이념 논쟁,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 등으로 계속 시끄러운 상태.

전쟁은 현실이다. 정의를 위해 뛰어들었지만, 그런 생각이나 판단을 하기보다는 그저 하루를 버텨내며 생존해야 하는 상황.

적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도 수 십년 전 모델로 동작 여부 조차 알 수 없는 수류탄과 제대로 동작하는 지조차 의문인 총, 한없이 모자란 총알에 내 목숨이 달려있다. 그렇기에 극한의 대치 상황 속에서도 상대가 그저 물러나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수 개월 동안 제대로 된 목욕은 어불성설.  썩어가는 냄새가 풍기는 옷을 입고도  하루 한끼조차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 먹을 물도 부족하고, 온몸에는 이가 들끓는다.
막상 국지전이 펼쳐지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조차 알 수 없어 그저 총질 할 뿐. 오웰 역시 같은 편이 쏜 총알에 얼굴을 다쳤다. 그런 와중 불발 될지도 모르는 수류탄을 던지면서도 상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반파시스트라는 같은 목표 아래 함께 했지만, 결국은 내부 분열로 이어져 분명 같은 편이였던 이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상황까지 이어지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이념이란 정의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했다. 
결국 조지 오웰은 그런 상황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놓인 현실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라는 적을 두고 싸웠던 이들이 해방 이후 각자의 이념 논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겨눴던 총구. 6.25 기간 동안 함락하고, 함락 당하는 아노미상태 속에 놓였던 일반 시민들의 혼란이 왜 오버랩이 되는 것인지.


나의 주장, 나의 의견을 상대를 설득하지 못해 강요에서 폭압이 되었을 때, 그 반대를 위해 시작된 것이 전쟁이라면, 전쟁을 끝내고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설득 되지도 못했다. 수십만이 죽고도 으르렁대며 싸울 준비를 늘 하고 있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일반 시민들은 한없는 피해자로 남을 뿐이다. 그럼 정치는 무얼까..

예술이 정치적이면 안된다던 사람들에게 조지 오웰은 모든 글은 정치적이라고 했다지만, 나는 이 책이 오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리고 극한의 현실 속에서도 너는 흔들리지 않는 너의 신념이란 것을 지켜낼 수 있는지? 아니면, 너는 너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사고를 하고는 있는 것인지...냐고 말이다.


전쟁 전, 전쟁 그자체, 전쟁 이후.

가볍게 묘사된 장면도 있지만, 그 참상 자체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쓰여진 민낯.
물리적 전쟁은 끝났지만, 결국은 해결되지 않은 많은 이들의 이념 논쟁이 가져온 또 다른 내전.

지금은 진짜 평화로운 나날들일까?


"이 무렵 내가 만난 모두가 목에 관통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지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선뜻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예 총을 맞지 않아더라면 더 큰 행운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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