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를 기다리며 위픽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숨바꼭질 기억해?" 
이라는 부재가 표지 전면에 있는 책이라니. 지인의 추천으로 받은 책의 전면을 보고 책을 잘못 넣었나..? 했는데ㅋ
얇고 작은 책이였고, 조예은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라 아무~ 배경지식도 없이 읽기시작한 책이다.
스릴러일줄이야.
제목은 스릴러가 아니였는데...

주인공 정해는 그림을 그린다. 늘 바다를 배경으로 쌍둥이를 그린다.  남자친구 형석의 프로포즈를 받은 날 우영의 자살 소식을 경찰로부터 전해듣는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
우영이 자살을 했고, 익사체로 발견이 되었고, 그녀에게 남긴 메시지가 있었기에 경찰은 연락을 해온 것이였다. 
그 메시지는 
"우리 숨바꼭질 기억해?"

그녀는 우영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 영산으로 향한다.
그녀가 아는 우영은 자살을 할 인물도, 더더군다나 죽기위해 바다로 뛰어들 사람도 아니였다. 그래서 정해는 궁금했다. 대체 왜.
그리고 도착한 영산에서 만난 복은이 건낸 손수건에 표식. 그리고 적힌 문구 '재회'를 보고서는 그녀를 따라 영산교의 산주가 있는 곳으로 간다. 우영은 영산교와 관련이 있었고, 영산을 소유한 인물이였으며, 그곳의 산지기 였으니까.
그리고 되살아나는 영산에서 정해와 우영의 시간들. 그리고 그녀가 쫒는 우영의 흔적들.
산주 최양희.
산지기 우영.
그리고 복희.
그리고 정해.

영산에 숨겨진 일은 무엇이였고,
정해는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누구를 만날까.
잔잔한듯 스산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책을 펼친 순간부터 눈을 뗄수가 없었다. 정해가 살아있는 우영을 만날 것 같아서.
영산이 그녀를 우영에게로 보내어 줄것 같아서. 
그리고 산주가 이끄는 심야 기도회에서 정해는 우영의 목소리를 듣는다.
'정해야'

영산은 신비로운 곳이다. 많은 이들이 떠난 이를 만나고 싶어 그곳에 물건을 두고 간다. 산지기인 우영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그 물건을 치우고, 산을 관리하는 인물이면서도 영산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도시의 정해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않지만, 우영이 떠나고야 비로소 돌아온 영산에서 우영과 마주한다.
만조. 해수면이 가장 높은 때.
우영과 정해는 만났을까.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속에서도 전혀 고립되지 않았던 우영과 도시에 살면서도 우영과의 시간 속에 있던 정해. 과거 그 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현재의 정해가 우영의 자취를 쫒아가는 느낌은 스산하다. 그러면서도 왠지 영산이라는 묘한 기운이 우영의 죽음이 사실인듯 거짓인듯 뿜어내는 그것은 마치 뿌연 안개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인지 허상인지 조차 가늠 할 수 없게.

정해는 왜 만조를 기다리는 것일까.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인으로부터 몇년전에 처음 소개받아 읽기시작한 수상작품집.  매년 끊을수가 없다. 아. 이런일이 있었지 싶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주제들이 가득하고,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는 기쁨을 주는 책.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김지연 작가님의 반려빚. 처음에 빚을 빛으로 읽고서는 빛에 반려라.. 뭐지? 싶었는데 빛이 아니라 빚이라니... 빚에 허덕이는 모습에 반려라는 표현이라. 정현의 빚의 대부분은 사랑했던 서일로 인함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떠나갔다. 빚만남은 정현. 닥치는 대로 일을했지만 빚은 줄지 않고, 내 목을 옥죈 빚은 꿈에서조차 내가 먹고싶은 커피한잔을 하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서일. 하지만 정현은 서일을 매몰차게 끊어내지못한다. 이혼 후 돌아온 서일은 제법 큰 돈을 나에게 입금했으나 이자는 계산하지 않은 금액이였다. 하지만 나는 서일이 남기고 간 빚을 다 해결하고, 카드로 살아간다. 또다른 빚의 시작인걸까. 어느 날 반려빚은 너무나 당연히 나의 꿈속에 나타난다. 나는 이미 그 빚을 다 떠나보냈음에도. 너무나 당연히. 
정말 놓은 것일까.
이 시대 안에서 그저 나의 힘으로만 서야 하는 많은 이들에게 빚은 정말 평생의 반려처럼 붙어있다. 그 끔찍을 '반려'라는 말과 붙인 작가가 가혹하다 해야 할지, 긍정적이라 해야할지. 이 소설을 읽으며, 그저 헛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김지연 작가님의 파주. 군대 선임의 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 현철이 가해자 정호를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철은 정호에게 한달에 백만원씩 당신이 나를 괴롭힌 벌로 1년을 달라한다. 그러면 사라지겠다고. 그런 현철을 바라보며 정호는 욕을 해대지만, 돈을 입금하고, 정해진 날짜에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현철은 정호의 곁을 어김없이 헤매인다. 어떤 언급도, 해악도 끼치지 않지만, 정호는 현철이 두렵다. 왜일까. 현철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돈을 주기 싫어서이지만 정호는 현철에게 사과도 했다. 그런데도 현철은 딱 1년 한달에 백만원을 요구한다. 
그것 만이라도 해야겠다는 현철은 1년이 지나 정호의 곁을 떠났지만, 이제는 과거를 떠나보냈을까. 수년이 지나고도 잊지 못해 결국은 그것만이라도 해야겠다 찾아오는 현철을 떠나보낸 정호는 다시 원래의 일상을 찾는다. 현철은 위로 받았을까. 정호는 현철을 정말 잊었을까. 최근 밀양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고,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속에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감히 피해자의 상처를 가늠할 수조차 없기에 파주라는 이 작품이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에 대해서 말이다.

대상 작품인 김메라 작가님의 <이응이응>.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 사랑의 묘한 대응이랄까. 그리고 선택적 공감으로 인한 혐오가 일상이 된 지금 공감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어차피 세상은 멸망 할 텐데>, 교육자에 대해 학생에 대해, 지금의 학교가 학생에게 가르치고하는 것과 학생이 학교로부터 원하는 것의 괴리랄까. 묘한 씁쓸함을 남긴 <보편 교양>,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진심을 다한 가짜가 스스로 진짜가 되어버린 <혼모노>, 그리고 스릴러일까. 돈과 권력의 수직적 관계를 보여주면서도, 등장 인물 모두가 회색 빛처럼 보이는 <언캐니 밸리>. 지금의 시대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였다. 그래서 늘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즐겁다.

올해도 성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기완을 만났다" OTT 에서 드라마로 먼저 알았지만, 지인이 책을 먼저 읽어보라는 추천에 드라마보다 책을 먼저 집었다. 

그리고 한숨에 읽었다.


화자인 '나'의 시선을 따라 떠난 덴마크 브리쉘. 그곳에서 기사로만 만난 이니셜 'L'의 흔적을 따라간다. '내'가 'L'을 찾는 여정속의 '박'의 이야기도 함께다.

책은 타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3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윤주의 병을 뒤로하고 'L'을 쫒아 덴마크로 왔다.

'박'은 누군가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다.

'L'은 어머니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고, 덴마크로 왔다.

'나'가 윤주에게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묻은 채, 'L'의 일기를 토대로 그의 흔적을 쫒아 덴마크로 온다. 

그리고 'L'이 머물렀던 장소를 찾고, 그곳에 머물고, 그가 만났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윤주에게 해야 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여정을 함께 하여주던 '박'은  '나'에게 타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어느덧 '나'는 그것이 '박'의 이야기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에게 위로를 건낸다. 침묵으로. 그의 말을 들어줌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공감이라는 감정은 요즘 사회에서 보여지는 선택적 공감이 아니다. 

이 책이 내게 신기했던 점은 이 책의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로기완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내가 로기완의 삶을, '나'의 삶을, '박'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꽤나 신기한 경험이였다. 작가가 써놓은 감정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로만 접했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타인의 삶을, 책 속 화자의 '나'의 눈을 통해 이해하게 한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란 이런 것이지.

타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세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사실로만 읽었다면,

나는 어떤 입장이였을까.

아마도 판단을 하고 비판을 했겠지.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며 쉽게 말이다.

하지만 책 속 그들의 삶을 알아가며, 가장 감정의 바닥까지 떨어진 인물들이 쉽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그 사실을 감히 공감하게 했다.

'나'가 윤주에게 해야했던 말.

'L'이 로기완이 되어서 살아야했던 삶.

그리고 '박'이 가지는 죄책감이 어쩌면 그가 아닌 그녀의 선택이였다는 것. 감히 누가 그 상황에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슬펐다.

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책.

그것을 책을 읽으며 알았지만,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지만,

읽으며 행복했고 슬펐던 책.


추천.


"희망은 하나여서 절박했고 절망은 그 후를 약속해주지 않아서 두려웠다."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 엘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라는 제목이 뭔가를 탁 치게 만들었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학살당한 유대인과 지금 서양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 그 모순이 이 책의 제목을 통해 드러난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만'을 사랑하는 것일뿐이라는 저자의 말들.

나는 동양인이기에 유대인에 대한 역사나 현재 서양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소 좋지 않다는 것 외에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 캐나다 어학연수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나의 한글이름이 발음이 어려우니, 다른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호스트 아주머니의 말에 내가 '쥬'라고 하면 어떨까..라고 했었다. 그 때 아주머니가 하던 말. '나는 편견이 없다. 오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유대인을 싫어해. 쥬라는 발음은 그들을 연상시킬 수 있어서, 니가 위험해질 수 있단다'라고 했었다. 그 때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어려웠(...?)던 관계로 그 이상을 묻지는 못했다.
이 책은 아주 오래전 그 때 나의 질문에 답을 주고 있었다.

안네 프랭크. 누구가 아는 인물. 13살의 소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그녀가 나치를 피해 숨어들었던 곳은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해마다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하지만 그곳에 젊은 직원이 유대인이 쓰는 모자(야물커)를 쓰려고 하자, 고용주는 그 모자를 야구모자 속에 보이지 않게 쓰라고 했단다. 박물관의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안네프랭크의 집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대체 왜? 물론 4달의 심사숙고 끝에 그 박물관의 입장은 철회되었지만, 왜 그것이 4달이나 걸려야 했을까.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유대인이 유대인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 말한다. 홀로코스트 앞에서 눈물짓는 이들이 실제 유대인 앞에서는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그것은 유럽의 역사 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 예중 하나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예로 들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서도 같은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역사속에서 죽어야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애도에 눈물지으면서, 생존자들이 벌이는 사투에는 국가이익이니,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손가락질을 말이다. 왜 우리는 이런 모순적 행위를 행하는 것일까. 나와 '타인'을 구분함으로써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공감이라는 말 뒤에 혐오가 함께 따르는 지금. 내가 공감하는 대상이 그저 누군가 쳐놓은 울타리속만은 아닌지. 죽은자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은 그들이 그저 죽었기에 더이상 타자로써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저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길.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이 그저 내게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만을 하게 하지는 않는다. 살짝 불편함이 느껴졌달까..저자의 글속에서 유대인은 한없는 피해자로만 그려지는 모습이.. 그러했다.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행하는 가해행위는 그저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보여지지는 않기에 그러했다.

뭔가 뜨뜨미지근함이 남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하다.


"홀로코스트는 사랑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전 세계 모든 사회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책임을 대변하는 - 이 세계에 '명령받음'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래 언제나 그것을 대변해온 -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p.2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인지, 누구의 추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내 장바구니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가 202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기에 얼른 주문한 책. 상받은 책은 읽어줘야지. 싶어서.
그리고도 꽤 오랫동안 내 책장에 꽂혀있다가 문득. 눈에 들어와 읽었다.

작가의 책을 읽은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뭔가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것 같다라는 말.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하며, 작가의 흐름을 잘 따라가보자...하며 읽었는데, 대체 뭐지? 무슨 이야기인거지?하면서 알쏭달쏭하던 순간 어느 순간부터인가 앞의 내용이 사-악..하며 다가오고, 책의 말미에서 다시 첫 페이지를 펴게 만들었다.

1장이 요하네스의 탄생이였다면, 2장은 요하네스의 노년이다. 그러다 문득 노년의 요하네스가 다시 젊은 시절의 모습이기도하고, 다시 노년의 모습이기도 하다. 요하네스의 친구인 페테르 역시 그의 곁에 있다가, 없다가. 그가 한 때 좋아했던 페테르센의 모습도 그러했다.
아내 에르나와 함께 했던 부엌. 그녀가 끓인 뜨거운 커피한잔과 담배 한대. 그리고 그녀와의 소소한 대화들.
그리고 그와 그녀의 막내딸 싱네의 모습.

이 이야기는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제목같이 요하네스의 시작과 요하네스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그의 죽음은 다시 삶과 맞닿아있다. 그래서 책 속 문장엔 마침표가 없다. 그 마침표가 없음이 처음엔 굉장히 생소했음에도 문득 요하네스라는 '나'의 삶에는 마침표가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 어디서부터 시작, 어디가 끄읕이라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들 만났던 마지막이 아니라,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나의 할머니의 마지막보다, 나와 함께 했던 할머니의  훨씬 젊었을 때를 기억하고, 또한 나의 친구를 이미 20년이나 흘렀지만 중년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 만났던 교복입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었던 모습으로 상대를 추억한다는 사실. 그렇기에 우리 삶은 계속해서 순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모습, 그대로 말이다.
(조금 다른 결이지만, 제 5도살장에서 외계인이 모든 시간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계속해서 본다는 말. 그 말은 우리의 추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욘 포세가 그리는 인간의 노년은 삶의 끝, 곧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 아니라 나에게도, 나를 기억하는 이에게도 저녁이면서도, 깊은 밤을 지나 다시 아침, 새벽이 함께 느껴진다.

요하네스 역시 가장 사랑했던 이들을 그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회하고, 그의 막내 딸 싱네 역시 아버지 요하네스를 죽음이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추억하니까.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지....

여운이 길게 남는다.
죽음을 삶으로 다시 생각케하는 이야기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