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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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논개” 구리가락지를 열손가락에 껴고, 왜장과 함께 강물로 뛰어든 여인. 임진왜란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다만 논개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기생으로 알았으나, 추후 양반집 딸이엿다는 말도 들은적이 있다. 남존여비의 시대였기에 이름 붙이진 못했지만, 나는 당시 논개는 임진왜란에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그런 논개라는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궁금했다. 논개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릴것인가.

책은 흥미롭게도 결론을 두고 앞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보통 이런 식이면 앞에 나온 결론이 책의 말미에도 다시 등장하지만, 책의 말미는 그녀의 마지막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홋.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논개가 그녀의 부군에게 독화살을 쏜 적장과 함께 강으로 투신하고, 점차 의식을 잃어가며 그녀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아들이였으면 더없이 좋았을 그녀의 사주. 그녀는 태어났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가세가 기울어진 모녀는 어쩔 수 없이 삼촌(아버지의 동생)에게 의탁한다. 그도 근근히 살아가는 처지였지만 모녀를 받아주었다. 다만 의도가 있었다. 논개를 민며느리로 주기로하고 댓가를 받은것. 하지만 그 집안이 말그대로 개..차반의 집안이고 논개가 결혼하기로 한 이가 백치에 배냇병신이였던 것이다.
결국 사주단자를 받기 전에 모녀는 도망을 쳤지만, 김풍헌에게 잡혀, 최 현감앞에서 재판을 받게된다.

최현감은 두 모녀의 억울함을 듣고, 오히려 김풍헌에게 죄를 내린다. 모녀는 갈곳이 없었기에 최현감에게 몸을 의탁하고, 최현감의 아내 김씨부인을 지극히 돌보는 것으로 은혜를 갚으려한다. 논개는 최현감에게 공부와 무술을 배우는 등 당시 여인으로써는 누릴 수 없었던 기회를 받았다.
 얼마나 사실에 기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의 내용전개를 보며 아. 양반이기도, 기생이기도 했던 그녀의 자취가 이렇게 쓰여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몸이 좋지 않았던 김씨부인이 사망직전에, 논개를 남편의 후처로 들이고 떠난다, 논개는 자신과 어머니의 평생 은인이자 자신이 존경해마지않던 최현감과 결혼하지만, 임진왜란 발발하고, 최현감은 전쟁터로 향한다.

논개라는 인물은 남존여비의 시대였음에도 지금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몇 안되는 여성이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배경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런 그녀에 대해 꽤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나, 사료의 부족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임진왜란의 시작과 동시에 포커스가 논개로부터 벗어나 전쟁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아쉬웠달까... (논개가 그때부터 조금 등장..ㅠ)
하지만 그 때의 사실을 읽고 있다보면 결국 나라를 구한것은 몇몇의 위정자가 아니라 당시 나라를 위해 들불처럼 일었던 국민들이였다. 논개와 같은 여인들의 투쟁을 포함한.

그래서 였을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최근 있었던 내란의 밤에 가장 먼저 맨몸으로 달려 국회앞으로 갔던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어쩌면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맨몸으로 일어선 이들로부터 전해진 무엇이 우리의 DNA에 심어진 것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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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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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유도 어떤 물질인지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까만 구. 그림자도 없어 밤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구가 어느날 갑자기 대한민국 서울의 한 골목에 나타났다.
평범한 직장인 정수는 편의점에 들렸다 그 구를 보았고, 그 구안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끌려 들어가는 남자를 보았다. 자신이 본 것이 진실인지 조차 알 수 없어 무턱대로 도망친 정수.
그러다 부모님의 안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마치 얼마전 OTT에서 보았던 지옥같이. 어느날 서울한복판에 심판자가 나타난것 처럼 구는 보이는 모든 사람을 흡수한다. 그리고 흡수되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스런 비명만 남는데...
그리고 그 구는 더욱 두렵게 자가분열을하며 사방 곳곳으로 움직인다. 높은곳은 뛰어서 들어가고, 벽은 통과하며 오롯이 인간만을 흡수한다.

사회는 순식간에 아노미상태로 변하고,
통신은 끊기고,
그 중간에 사람을 죽이고, 빈집을 터는 등의 강도살해사건도 빈번하다.
구에 의해 사라진것인지,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도시는, 나라는 점차 비워져갔다.

정수는 도망쳤지만 부모님을 찾기위해 부모님이 사시는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결국 부모님은 찾지못하고,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갈곳없이 방황한다.
구를 피해 끊임없이 도망다니며.

나는 이런 책을 볼때마다 생각한다. 그냥.. 다 놓아버리면 되지 않나. 왜 끝까지 살아남을까. 아니면 그저 그 순간순간을 모면하면서 살아낸 것 뿐인가. 
그러다 정수는 그를 만났고, 구에 흡수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그 방법도 잠시 그와의 어색한 동거로 정수와 그는 끊임없이 다투고,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고립감에 점차 힘들어지면서도, 서로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구"가 나타내는 것은 그 구의 절망일까. 인간의 절망일까.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어~라고 옛날 동화책 어디선가 본 구절로 우리는 그 절망을 이켜낼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구"자체가 절망일수도 있지만,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 사회 그 자체가 절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주제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처럼말이다.
그저 힘과 칼을 가진 자가 아니면 다 죽거나 노예가 되어야하는 세상.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칠흙같은 구보다, 서로를 더 불신하고, 믿지 못하는 절망의 늪으로 계속해서 빠져들어가는 상황은 이 이야기를 읽고있는 나조차 옥죄어 오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까만 구가 내 눈앞에 있는 것 처럼말이다.


작가님은 "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사회에 알 수 없는 무엇에 의해 너무나 절망의 끝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셨던 걸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목 끝까지 들어온 생존의 위협앞에 여전히 우리는 저 명제를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펜데믹(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상황하에서 우리가 보였던 가짜뉴스, 선동 등에 수없이 흔들렸던 상황이 다시금 떠오르는 소설이기도 했다.

어느날 구가 사라져 모든 이들이 돌아온다면 사회는 다시 그 구가 나타났던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그만큼의 회복탄력성은.. 남아있을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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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 자유기업원 2026 추천도서 50권 | 법경제와 규제개혁 부문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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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이유는 안다. 왜인지도. 결국 법에 의한 판단이 그러했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저자는 책의 제목을 왜 이렇게 썼을까. 궁금했다. 간단히 저자의 이력을 살피자면 ”검사내전“이라는 책의 저자이면서, 국민의 힘에서 국회의원을 한번 했고,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채상병 사건에서 국민의힘 당론과는 반대로 창성표를 던졌고, 22대 총선에는 불출마하여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그런 저자가 법에 대한 책을 썼다.

책은 소크라테스부터 현대법까지 전세계의 법 중 형사소송법이 발전해 온 역사를 설명한다.
“법”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 시작부터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법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기위한 ‘원칙’과 ‘법칙‘을 정리한 것인셈.  소위 다수결에 의한 원칙이 늘 옳을 수는 없었고, 대중의 분노는 그것을 악용하는 이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기에 원칙은 더더욱 중요했다. 그것은 약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 것. 저자는 그것을 형사소송법의 근거라 말한다.

종교법이 주를 이루었던 중세에서 법의 근거는 신의 말씀이였다. 신정일치사회였기에 가능했고, 법은 곧 신의 말이였던 것. 그렇지만 교회가 부패하면서 야만의 행태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마녀사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공포정치로 몰아간다. 마녀라는 근거역시 그것을 집행하는 이들의 마음이였다. 이유는 하나다. 신에게 반한다는 것. 그런 야만의 시대를 지나 종교전쟁 및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었다. 또한 시민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이 무너지면서 "자연법"을 바라보는 개념이 변화하며,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법체계를 기반으로하는 국가가 만들어지며 현대에 이르렀다.
경제발전, 도시발달 및 인구증가,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며 인권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고, 그것은 곧 새로운 질서수단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그것은 곧 조직적인 관료체계를 낳았고, 결국 그 결과로 중앙집권화된 형사재판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역사를 설명하며 대중의 분노에 대해 계속 해서 언급한다. 대중에 의한 재판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선동질,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휘둘리는 대중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예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물론 저자가 대중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좀 이런 면이 불편했다. 그렇다면 법을 아는 또는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은 늘 옳았나?라는 것. 이부분 역시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글쎄. (강도가 약하달까.ㅋ) 대중을 그렇게 몰아간 이들은 정치와 언론이다. 그리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낸 이들역시 법을 집행하는 이들 아니였나?! (뭐 매번 그렇지는 않았지만.)
또한 최근 진행 되었던 검찰개혁에 있어,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그것을 등에 엎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개혁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내란으로 인한 탄핵 정국을 거치며 공수처에 대한 부분역시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렇다면 부패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자신들의 리그를 지키기위해 자신들의 부패를 눈감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부분에서 저자가 제안한 한국형 FBI에 대한 의견은 잘 모르겠다.(사실 이부분을 조금더 자세히 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검찰에서 특수수사 부분과 경찰의 사법경찰 부분을 떼어내어 공수처와 함쳐 만드는 통합 사법경찰 기구 p.395”라 하는데 글쎄.. 

현재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도는 검찰은 원래 낮았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지는 중이지 않나... 대놓고 정치에 개입했고, 그러고도 자신들에 대한 개혁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론은 대놓고 한쪽 편의 의견을 퍼다 나르는 형국. 대중들이 보기엔 어떨까. 누가봐도 기울어진 운동장 아닌가. 그렇다면 분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잘못된 정보를 통한 분노가 부당하다면, 그 정보를 제공하는 쪽은..?

나는 잘 모르겠다.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식적인 사회가 참 어려운 일이구나.. 싶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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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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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주”가 택시에서 말을 걸어? 신기한 제목이다. 이 책은 과학자인 저자가 이동중 어느 택시기사의 질문(외계인 택시기사가 있을까요? p.31)에 영감을 얻어 쓴 책이라고 한다. 과학자가 쓴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이 철학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식을 풀어내기 보단 우주라는 주제를 놓고 한번즘은 들어봤을 법한 또는 생각했을 법한 주제들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18가지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택시기사들의 질문과 답변,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는데, 각 주제를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듣고 보았던 우주에 대한 다양한 사고가 담겨있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였다.

    시작은 “외계인 택시기사의 유무”다. 이 내용은 결국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13장, 17장, 18장등)와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가 생겨나게된 이유부터, 그래서 우리가 사회를 이루게 된 계기, 그리고 발전하게 된 이유 등등 이 모든 것을 고민하게한 질문이였다. 역시 첫질문이 예사롭지 않았군.

    5장 ”나는 화성여행에 나설것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네!“라고 답했지만, 저자의 우주에서의 생활을 설명하는 부분 즉, 중력과 관련된 내용에서 순식간에 ”가지 말아야겠군“이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포기하게 된 챕터였다.ㅎ 얼마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아, 저건 오버지 했는데 사실이였다. 중력은 우리를 살아있게끔 한 중요한 인자였다. 읔. 그리고 다음챕터인”화성은 우리의 행성B가될수 있을까“도 연결되는 내용인데, 저자의 말로는 아~무리 지구가 망가져도 아직은 지구가 훨~씬 더 인간이 살기좋은 행성임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결국 행성B의 의미는 망가진 지구에서 살기 힘들다면, 필요한 무엇을 지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행성B에서 찾는 다는 의미.
    아직은 돈많은 이들을 위한 여행정도만 우리에게 허용된 셈이다.

    10장 ”우리는 외계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ㅋㅋㅋㅋㅋㅋ 이 제목 만으로도 내가 외계인에 대한 반짝빤짝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택시기사와의 대화로 시작하는 이 주제는 생각해보면 정말 당연한 것이였다. 만나면 뭐부터 시작하겠는가. 에일리언에서도 시고니 위버가 에일리언한테 말걸던데..대화가 안되던데..
    저자는 쉽지 않겠지만 과학자로써 서로를 이해할 것이라 했지만.. 나는 글쎄 싶었다. 책에서 말한것처럼 인간과 개미의 대화처럼 완전 불가능 하지 않을까... 


    11장 ”우주에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 다만 있어도 없어도 뭔가 불안하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우주에서 우리말고는 생명체가 없다는 것도 무섭고, 있어도 무섭달까. 다만 고등학교 영어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설사 외계인이 있어 우주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들 그들이 지구라는 행성에 굳이 올 필요가 있을까? 왔던들 우리한테 잡힐만큼 멍청할까? 또는 와서 그냥 이런데가 있구나 하고 갔을지, 여기까지 올만큼의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이들이 뭐가 아쉬워서..라는 말씀을 하셨을때는 웃고만 넘어갔는데, 왜 이질문에 그 때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는지.ㅎㅎ
    그런데 없다는 사실도 있다는 사실도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에 밝혀질 수는 있을까? 인류가 멸망할때까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이 답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에앵?! 싶었던 부분들. 과학책에서 한나아렌트를 생각하게 하는 "우주에는 독재사회가 넘쳐날까, 자유 사회가 넘쳐날까?를 논했던 챕터. 우주에 미생물만 있다면 우리는 “미생물도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의 챕터(안보이는데 보호가 가능할까요..?) 등등 우주와 연결하기 힘들었던 질문까지도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래서 과학책인듯 철학책인듯한 느낌이다. 
    뭐 인류가 남긴 기록의 시작도 철학이였으니, 우주의 시작도 철학이여야 하나. 기술이 바탕이 되었으나 결국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접근은 다양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철학일지도. 그래서 이 책은 모호한듯한 느낌을 주지만 질문은 구체적이기에 그래서 좀더 깊은 답을 생각해보게 했다.

    이 모든 질문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는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굉장한 우연이 만나 이뤄진 결과다. 진짜 우주 먼지중 하나인 지구라는 행성에서 너와 나는 오롯히 하나뿐이니까. 으흣.

    재밌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에서조차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지구의 생명은 우주에서 에외적인 존재 일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창발과 많은 경로는 우주의 물리학 법칙을 변함없이 따르지만, 생명자체는 특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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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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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7 봉준호 감독님의 미키17을 보고서 영화의 원작이 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던져지는 주제. 그대로 프린트된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존재인가? 원작 미키7역시 테세우스의 배를 통해 게속해서 자신과 타인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먼 미래.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여전에 필요한 지원자 익스펜더블. 그는 죽기위해 탐사대에 포함되는 인물이다. 탐사 도중 인간에게 가해지는 위협이나 탐사중에 발생하는 모든 위험한 일을 처리하는 인물로, 그러다 죽으면 다시 프린트된다. 그런 익스펜더블은 죽는 순간까지 기억을 업로드해야하고, 게속해서 죽어야했기에 모든 이들이 터부시한다. 사실 인간으로 보지 않는 측면도 보인다. 
    그런 임무에 미키가 지원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익스펜더블이라도 해서 지구를 떠나야했기에.
    지원업무를 받는 이가 익스펜더블의 지원을 다시 생각해보라했지만, 사채업자에게 쫒기는 미키는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하지만 익스펜더블 역시 녹록치 않았다. 그저 부품으로 취급될 뿐이다. 약물검사, 약물중독검사, 온갖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기도하고 온갖독성과 미생물에 노출되어 있다 죽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프린트된다. 그러던 중 미키7은 행성 탐사중 크리퍼의 동굴에 떨어졌고, 그들에게 잡힌다. 그와 함께 행성탐사에 나섰던 친구(?) 베르토는 그와의 통신이 끊기자 기지로 돌아가 그가 죽었다고 보고했고, 미키8이 프린트되었다. 하지만 미키7은 죽지 않았고, 살아서 돌아갔다. 단한번도 나는 나와 만난적이 없는데, 미키7, 8. 익스펜더블의 가장 원칙중 하나는 한번에 한명씩만 프린트되어야 한다. 행성이동에 소요되는 자원의 한정도 있고, 그 자체가 법이다. 익스펜더블을 만들었던 초창기의 이슈로 인해 더 그러했다.(그 이슈는 책에서..)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부분이 가장 신기했다. 미키7과 미키 8은 정말 다른 인격체이다. 그저 나와 똑같이 생긴 인물일뿐. 그렇다면 행성 탐사에 있어 익스펜더블을 많이 만들어서 보내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인구감소등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이 부분에 대해 영리하게 작가가 초창기 익스펜더블을 만들었던 인물 매니코바의 사건을 말한다. 한 국가의 한마디로 왕이 되고 싶었던 인물. 인간을 프린트하는 기계를 만들어 어떻게 활용했는지.
    사실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정말로 아이러니.


    미키7과 미키8은 공존할 수 있을까?
    테세우스의 배처럼 그 배는 처음의 그 배와 같은것일까 아닐까? 사실 이성과 의견, 감정을 가진 인물과 배의 비교가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미키7과 미키8은 이름만 같을 뿐 엄연히 다른 존재다. 말투나 성격부터. 
    이 책에서 가장 무서웠던 단어는 “프린트” 였다. 인간을 복제하는 표현보다 “프린트”되었다는 그 표현이.
    정말로 이런 기계가 나온다면, 다른 방식의 혐오와 게급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 자체가 디스토피아인것이지. 영화 아일랜드에서 나와 나의 미래를 위해 복제된 복제인간을 대하는 원본의 태도처럼.


    이래서 인간 복제가 두려운 것일듯.
    인간의 건강한 삶에 어쩌면 필요한 기술이면서도, 인격을 가진 사람을 복제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논란이 많은 생명과학 기술이면서, 여전히 거의 다수의 국가에서 “절대불가”라는 원칙을 만들었겠지. 어떠한 기준도 없으니.

    복제인간이라는 관점을 바꿔,  영생이라는 관점에서 미키는 영생을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가장 단시간에 죽고 단시간에 태어나는 인간일까?도 생각케 한다….. 으. 이 책 한권이 뭐가 이리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것인지. 
    “죽일 수 없는 몸이 아니야. 나는 계속 죽어. 익스펜더블이 되는 건 그런거라고” p.271

    이 역시 테세우스의 배를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배야? 아니야?
    계속 죽고 게속 태어나는 사람. 같은 사람이면 다른 사람. 같은 기억을 가졌지만, 받아들임은 다른 사람. 
    영화의 마지막은 미키17 대신에 미키반스를 보여주며 끝났는데,,, 

    재밌다.

    "자살요. 제가본 바로는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에도 자살은 거의하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세시간짜리 강의 가지고는 수십억년동안 내재된 인간의 자기 보호본능을 극복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생각해보세요" p.36

    다음 반물질을 읽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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