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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광고인이다 - 희망도 절망도 아닌 현실의 광고 이야기
임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키스만 하면 상대의 과거가 보인다는 신박한 드라마 『키스식스센스』에서, 나는 광고인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본 적이 있다. 극 중 서지혜는 광고대행사 AE였는데, AE라는 직종이 원래 이렇게 극한가? 에이~ 드라마니까 과장 좀 섞였겠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는데 4샷 아메리카노를, 위로는 팀장한테 깨지고 아래로는 팀원이 친 사고 수습, 혼을 쏙 빼놓는 각종 회의에 반복되는 PT, 광고주를 만나는 일부터 촬영장에서의 허드렛일까지… 이 드라마는 두 주인공의 강렬한 키스가 메인인데, 오히려 나에겐 ‘아, 나는 광고 일은 절대 못하겠다’ 빠르게 현실자각을 하게 했던 드라마였다. 극 중 AE는 몇 날 며칠 밤샘 작업을 해도 언제 광고주를 만날지 모르니 항상 옷을 깔끔하게 갖춰 입었더랬다. 드라마라는 걸 감안해도, 광고업계가 이렇게 빡센건지 나는 처음 알았다. 저자가 “어떤 일이든 어떤 직종이든 시키면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도 “AE만큼은 사양”할 거라고 하는 걸 봐서, AE만 힘든 것 같기도 하고.
광고대행사의 직종이 비단 AE 뿐이랴. AP, AD, CW, PD, CD 등… 게다가 광고 촬영장으로 가면 프로덕션, 연출, 촬영, 데이터 매니저, 그립, 아트, 조명 등… 수많은 스텝이 있다. 광고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기술과 피, 땀, 눈물, 뼈(를 갈아 넣으니까)가 있는지 새삼 느꼈다. 우리가 15초, 때론 그 이상을 무심코 흘려보는 광고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작품’이었던 것이다.
제일기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임태진의 책 ≪이것이 광고인이다≫가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되었다.
책 뒷면에, 부들부들 바벨을 들어올리면서 ‘즈.. 즐거워!’하는 그림이 저자의 상황과 심정을 완벽하게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또 우리의 일반적인 편견처럼, 정말 광고 일은 빡세기만 한 일일까? 롱런하는 광고인들은 왜 그 일을 하고 있고 어떻게 그리 오래 할 수 있는 것일까? 광고 일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걸까? 정말이지 궁금하다.
이 책은, 괴로움과 즐거움 사이를 오가는 생계형 광고인이 들려주는, 광고계 안팎 생태계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광고계의 현실과 이면, 광고인의 삶 등을 재치있는 글과 그림으로 소개한다. 광고대행사의 직종과 하는 일, 한 편의 광고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피 말리는 과정, 광고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 등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흥미와 호기심을, 누군가는 속쓰린 현실공감을, 누군가는 이 업계를 미리 경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노동에 찌들어 보이지만 아이디어에 반짝이며, 꼰대처럼 보이지만 힙하고 유연한 광고인의 세계로 이 책을 통해 들어가 보면 좋겠다.
이 책의 매력은 단연컨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광고회사 그만두고 그림 그리셔도 될 것 같은데.
중간 중간 ‘풉!’하고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도 이 책의 묘미. 첫 장 펼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밥차(★매우 중요★)”에서 제일 크게 터졌…ㅎㅎ
챕터 사이마다 끼워져 있는 ‘전현직자 Q&A’도 좋았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간적접으로나마 이 직군을 경험해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이 일에 대한 애정과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각종 매체에 나오는 광고를 좀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그 중에 저자가 만든 광고도 있겠지.
저자는 ‘어쩌다 보니’ 광고인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자에게 이 일은 천직이라고! 마냥 힘들지만은 않은 일,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 광고를 만드는 일이라고.
광고업계에 관심이 있거나 이들의 삶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