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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교수의 책. 출판사에서 가제본으로 받아 3장까지만 읽었고, 완독하고 싶어 책을 구매했다.
저자는 성별에 따라 역할이 부여 된 ’가족‘이라는 제도에 숨은 차별과 불평등을 추적한다. 이 가족제도는 대개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견고한 각본’ 같지만, 성소수자의 등장으로 균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당연하게 정해져 있는 역할이 ‘꼬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성별‘을 기반으로 짜여진 가족 ‘질서’를 교란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묻는다. 성소수자가 가정을 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불편하다면, 그래서 차별을 가하고 있다면, 도리어 그 걱정을 비틀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족‘이 대체 무엇인지 질문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의심하고 질문하다보면 기존의 가족제도를 당연하다 여기게 했던 지점을 찾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되지 않겠냐고.
책은 전체적으로 저자의 방대한 연구와 명료한 통찰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쓰여졌고,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저자의 논지 전개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며느리’에 관한 역사적 함의, 혼외출생자에 대한 인식의 근원, 환영 받지 못하는 출생아가 있는 이유 등의 내용에 (솔직하게) 충격도 많이 받았다. 오랜만에 지성을 시원하게 하는 책을 읽은 것 같다.
각 장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쉴 새 없이 의혹과 질문을 던지지만 해답이나 정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답은 독자가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책이라 더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읽는 내내 굉장히 불편했다. 아닌 척 했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에 답답하기도 했다. 저자의 말은 너무나 끄덕여지고 논리적인데, 왜 나는 불편한 걸까. 저자의 태도 때문에? 아니 저자는 ‘나는 맞고 당신이 틀렸어‘ 라는 자만심이나 설득하려는 어조, 무턱대고 ‘믿으라’는 허무맹랑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추적했던 것을 담백하게 글로 풀어내고, 독자들에게 질문할 뿐이었다. 저자의 태도나 글의 어조 때문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 때문에 불편했던거지? 나는 왜 혼란스러웠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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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성소수자에 관한 관점의 차이나 동의 여부, 불편함의 정도 등은 잠시 내려놓고 (아마 잘 내려 놓아지진 않을테지만.),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차분히 따라가 보기를 바란다. 책은 일차적으로 ‘가족제도’에 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게 되면, 확신의 균열을 통해 차별에 대한 자신만의 경계를 선명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만난 순간부터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 같다. 섣불리 답을 찾으려하기보다 진득이 고민의 걸음을 걸어가봐야지. 저자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