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남 - 우리가 몰랐던 두 사회 진화론자들의 만남과 회심
김정기 지음 / 세움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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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로 파견 됐다가 거기서 생을 마감한, ‘열사’로 불리는 이준. ‘영역주권론’을 주창한 기독교에서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 아브라함 카이퍼. 저자는 두 사람에 대해 과도하게 신화화하고 영웅시한 기존 연구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신뢰할 만한 사료를 바탕으로 두 사람을 재해석한다. 명암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다. 저자의 역사가로서의 집념과 소신이 엿보이는 책이었다.


저자는 딱히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을 네덜란드 헤이그, 겹치는 활동시기, 그리고 <더 스탄다르트> 신문을 중심으로 접점을 찾아 집요하게 추적해 간다. 그 내용을 1,2,3부에 걸쳐 자세히 서술했다.


저자가 밝혀낸 이준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함경도 북청의 가난한 집안 출신에 장박의 도움으로 짧은 검사 생활을 했던 사람, 한때 사회 진화론자로써 친일 개화파였다가 감옥 생활 이후 일본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바뀐 사람, 그리고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 돼 나라를 위해 씨앗을 뿌리고 생을 마무리 한 사람. 이준의 헤이그에서의 활약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생전의 실패와 잘못까지 희석시키진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브라함 카이퍼도 마찬가지다. 그는 네덜란드 반혁명당의 수장이자 <더 스탄다르트> 신문을 만든 사람, ‘영역주권론’이라는 기독교 이론으로 ‘신칼뱅주의’의 선구자가 된, 여러모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침탈에 관해선, 평소 고수했던 반혁명당의 가치와 다르게 사회 진화론을 따르는 제국주의자의 입장을 보였다. 이후 제국주의 이념을 극복하고 약소국에 관심을 가지지만, 식민지 경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본다해도 아쉬운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 3부는 카이퍼가 처음 발행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한 신문 <더 스탄다르트>가 헤이그 특사의 행보와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더 스탄다르트>지는 처음엔 카이퍼의 제국주의적 관점에 비춰 한반도의 상황을 보도했지만, 헤이그 특사 활동 이후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신문은, <평화 회의보>에 실린 헤이그 특사의 연설 전문(여기엔 을사조약이 국제법상 무효라는 중요한 사실이 담겨있다)과 이준의 사망,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비판 등을 실어 보도했다. 3부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다.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연구의 깊이와 내용의 진중함 때문이다. 완독하는 데 오래 걸렸다. 저자에게서 연구에 대한 자부심과 겸손함이 동시에 엿보였다. 시원시원한 필력만큼이나 역사가로서의 주장도 거침 없다고 느꼈다. 두 사람을 ‘역사학’의 방법론으로 접근한 최초의 연구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종교 분야에 한정 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기독교라는 범주를 넘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 한다. 작가의 향후 연구도 기대가 된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잊히기 마련이지만,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이 책은 생생한 언어로 전달해 주고 있다. 올해로 광복 78주년을 맞아, 의미 가득한 이 책을 독자들도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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